소설리스트

재능마켓-85화 (85/277)

#085화

뾰옥!

바닥에서 뭔가가 불쑥 튀어나왔을 때, 나는 활을 이미 겨냥하고 있었다.

"히이이이이이익-! 저, 저게 뭐야아아아앗!"

도화지가 기겁하면서 물러날 때, 내 화살엔 내가 가진 모든 힘이 응축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피잇!

화살이 날았다.

【야광 버섯을 발견했습니다!】

"…!"

야광 버섯이란다.

【밤에만 활동하는 야광 버섯은 매우 빠릅니다.】

크기는 주먹만 했다.

그게 다가 아니다. 동그란 머리 아래엔 두 개의 다리까지 달려 있었다.

휘익!

그 짧은 다리가 움직였을 때, 내 화살은 어이없이 녀석을 스치며 뒤로 홱 하니 날아가 버렸다.

'엄청나게 빨라!'

게다가 그냥 빠른 게 아니었다. 마치 빛 같았다. 심지어 녀석이 움직이면 형광색 잔상이 허공에 남는 착각이 들었다.

'이런!'

나는 다시 화살을 시위에 걸었다.

훅! 훅훅!

바닥을 달리는 야광 버섯은 우리 주변을 빙빙 맴돌았는데, 도화지는 이미 자지러질 것처럼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으아아앙! 할머니! 나 귀신 봤어! 살려 주세요오오!"

그래, 저건 진짜 유령 같았다.

그런데 하나가 아니었나 보다.

뾰옥!

바닥에서 또 불쑥 야광 버섯이 솟구쳤다. 둘이 셋이 되고, 셋이 다섯까지 불어나는 건 그야말로 눈 깜빡할 시간이었다.

"히에에에에엑! 많아! 더 많아졌어!"

피잉.

두 번째 화살이 날았다.

하지만 이번에도 화살은 야광 버섯에 한참 떨어져 빗나갔다. 화살이 느린 게 아니다. 녀석들이 너무나도 빠른 거다.

규웃? 규우우우웃!

범이조차 쫓아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머리만 획획 돌릴 뿐이었다.

"누나! 움직이지 마세요!"

이렇게 빠른 녀석들이니 여차하면 공격당하기 십상이었다. 나는 활을 겨누면서 도화지의 곁에서 두근거리는 심장을 애써 감췄다.

뾰옥!

또 나타났다.

퐁퐁! 거품이 바닥에서 샘솟는 것처럼 야광 버섯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규우우우웃!

범이가 놀라서 근처의 큰 버섯 위로 우다다! 뛰어올랐다.

새카만 암흑에서 돌연 주변이 온통 형광빛으로 물든 것 같았다. 이렇게나 많은데, 내 화살이 놈들을 맞힐 수 없다는 것을 직감하는 기분이란!

"민준아… 우, 우리도 도망가자!"

틀렸다. 저 속도라면 우리가 어디로 가든 떨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다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왜 공격하지 않지?'

놈들은 이미 기선을 잡았다. 숫자도 월등했고, 내 공격 수단으론 대항할 수도 없었다.

"…."

나는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그리고 조심히 활을 내리면서 놈들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일정 거리 안쪽으론 접근하지 않고 있어.'

놈들은 마치 우릴 감시하는 것 같았다.

'아니, 감시보다는 호기심?'

장난감을 발견한 어린아이들처럼 버섯들은 우리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꺄르르! 웃는 것 같기도 했다.

'단순히 빠르기만 할 뿐일 수도 있어.'

애초에 저 속도에 공격력까지 겸비했다면 이 미션은 말이 안 된다. 누가 저걸 이겨? 머리에 뿔 달고 그냥 들이받기만 해도 무적이겠다.

"누나… 가만히 있어요. 움직이지 말고."

"어쩌려고?"

"시간이 필요해요. 저 녀석들… 우릴 해칠 것 같진 않으니까."

"반딧불 같은 거야?"

버섯이라니까!

황당했지만 생각해 보니까 도화지의 말이 맞을 수도 있겠다.

'밤에만 활동하는 녀석들이라고 했어. 빠르지만 공격성은 없다라…. 하긴, 당연하잖아? 저것들은 버섯이니까.'

그런데 왜 갑자기 튀어나온 거지? 이렇게 넓은 곳에서 왜 하필 우리 앞에 나타난 걸까? 잡히지 않으려고 빠른 다리를 장착했다면 이미 사방으로 도주했어야 옳다.

나는 기묘한 위화감에 위를 올려다보았다.

"…."

범이가 큰 버섯 위에서 우릴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범이 주변으론 야광 버섯이 한 마리도 없었다.

지력+4가 극한까지 회전하면서 뇌를 깨웠다. 그리고 발견한 어떤 가능성 하나.

'설마….'

내가 생각해도 기막혀서 이걸 실험해 봐야 하나 망설여졌다.

'어차피 밤은 길어.'

야광 버섯들은 우리 주변에서 떠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마치 뭔가에 강제로 이끌려 온 듯한 모습이었는데, 어두운 밤 우리가 반딧불에 의지하듯 바로 그런 풍경이었다.

"누나."

"으, 응?"

"놀라지 마세요."

나는 활과 활 통을 풀었다. 그리고 코트를 벗었다.

【수호자의 코트

방어력+1

매력+1

물리적 타격으로부터 사용자를 보호한다.

낙상에 강하며 쉽게 찢어지지 않는다.

착용 시 기척 감소 효과 발동.】

'간단한 실험이야.'

【방어력이 감소했습니다.】

【매력이 감소했습니다.】

하지만 필드에선 절대 벗지 않는 내 보물과도 같은 장비였다.

【수호자의 셔츠

방어력+1

매력+1

수호자를 지켜 주는 가장 기본적인 아이템.

타이나 단추를 구매하여 추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구김 방지.】

셔츠도 벗었다.

그리곤 도화지를 향해 돌아섰다.

"야, 너… 갑자기 뭐 하는 거야."

도화지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그런데도 시선은 느껴졌다.

"수… 순서가 틀렸잖아. 고백부터 해야지! 나 그렇게 쉬운 여자 아니거든? 사람 단단히 잘못 봤어!"

"누나."

"…응?"

"진짜 가만히 계셔야 해요."

"이러지 마, 민준아. 부끄럽단 말이야."

그녀가 은근슬쩍 눈을 감을 때, 나는 천천히 반대로 걸어갔다.

"…어? 야! 가지 마! 왜 그래! 삐졌어? 잠깐만! 민준아!"

"…."

나는 도화지에게서 멀어지면서 야광 버섯들의 반응을 살폈다.

스스스스스스.

버섯들이 움직였다.

아까까진 두 개의 원이 나와 도화지를 중심으로 돌고 있었다. 하지만 이젠 완벽하게 하나의 원만 남았다.

"가지 말라고! 무섭단 말야!"

그 원은 오로지 도화지를 위해 존재하는 거였다. 그리고 내 주변은 원래처럼 어둠으로 물들어갔다. 단 하나의 버섯도 내게 오지 않은 거다.

'역시! 그럴지도 몰라!'

깜깜하던 머릿속에 반짝 형광등이 켜진 기분이었다.

"야아아아아! 도민준! 으아아아아아앙! 나 버리고 가지 마!"

대성통곡하는 소리에 나는 몸을 돌렸다. 그리곤 도화지에게 돌아가면서 버섯들을 눈으로 계속 살폈다.

'이놈들, 그거에 반응하는 게 확실해!'

범이는 버섯들에게 소위 듣보잡이었다. 나 역시 좀 전과 달리 그 어떤 관심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왜일까?

나는 입술이 미소로 뒤틀렸다.

추론 끝에 실험이 성공했을 때 학자들이 느끼는 그런 쾌감 비슷한 걸 맛보고 있었다.

도화지에게 돌아갔을 때,

퍼퍼퍼퍼퍼퍼벅!

"으윽, 아파요."

그녀는 내 가슴을 인정사정없이 주먹으로 때렸다.

"으아아아앙! 나빠! 왜 그러는 거야!"

나는 웃으면서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확인할 게 있었어요. 이제 대충 감 잡았어요."

"무슨 확인? 내 마음? 나 떠본 거야?"

"…누나, 우리가 입은 이 옷들엔 특수한 힘들이 깃들어 있어요. 제 셔츠와 코트엔 매력이 붙어 있는데, 누나 거에도 그렇거든요?"

그랬다. 내가 좀 전에 벗어 놓은 코트와 셔츠엔 분명 매력이 붙어 있었다. 하지만 그걸 빼면, 내겐 매력이 +된 아이템이 하나도 없었다.

그녀를 보자.

【추적자의 구두: 주력을 영구적으로 50% 상승시킨다. 매력+1.】

【추적자의 하의: 방어력+5, 매력+1.】

【추적자의 상의: 방어력+5, 매력+1.】

이것들을 봤을 때, 나는 분명 이런 생각을 했었다.

-근데 매력은 왜 덕지덕지 붙어 있는데?

내 코트와 셔츠의 매력+2. 그건 수줍은 여고생이 내게 먼저 다가가 전화번호를 묻게 할 만큼의 놀라운 효과였다. 물론, 내 체형이 훤칠하게 변한 것도 일부 작용했겠지만, 절대 그것만으로 불가능한 무언가가 있었다.

그러면 지금 매력+3인 도화지는 어떨까? 나보다 더 매력이 흘러넘친다는 거다.

'내 코트는 귀속이니까 도화지의 매력을 더 올릴 순 없어.'

나는 어떤 가능성 하나를 더 생각 중이었다. 버섯이 모여든 이유는 알겠는데, 놈들이 너무 빠르고 일정 거리 이상 다가오지 않았다.

일단 가방으로 가서 필요한 걸 꺼냈다.

그리고 도화지에게 돌아왔다.

"누나, 손 내밀어 봐요."

"너 오늘따라… 이상하게 과감하다? 손 다음엔? 뭐 할 건데?"

나는 어느 순간부터 도화지의 말을 듣는 즉시 다른 귀로 흘리고 있었다. 이게 내 정신 건강에 이롭다는 걸 습득했다.

"이게 누나 매력을 올려 줄 거예요. 그러면 저 녀석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봐야 하거든요?"

"어머? 이게 뭐야? 나 주는 거야?"

【서큐버스의 매니큐어

사용 시 매력이 +2 증가한다. 지속 시간 7일. 소모품.】

"와아…."

새빨간 매니큐어는 이전 예원이에게 준 파운데이션만큼이나 그 자체만으로도 여자들의 마음을 뒤흔들었는지 돈다발을 꼭 쥔 사람처럼 매니큐어를 소중하게 쥔 도화지는 홀린 사람처럼 말했다.

"고마워… 민준아…. 지금 상황이 정말 이상하긴 한데, 나 정말 감동했어."

"…소모품이니까 아껴 써야 해요. 천천히 써 보세요."

나는 저걸 어떻게 사용하는지도 모른다. 40년산 모솔이 괜히 탄생하는 게 아니다. 게다가 내가 매니큐어를 써도 +4밖에 안 되니 도화지에게 가능성을 걸어 보는 게 더 나았다.

"버섯들이 움직여도 놀라면 안 돼요. 알겠죠?"

내 예상대로라면 도화지의 매력이 상승하는 순간 저것들도 반드시 움직일 거다.

도르륵.

작은 붓이 달린 뚜껑이 돌아갔다.

"와아…. 이렇게 예쁜 제품은 처음 봐. 이거 비싼 거야?"

중독자처럼 도화지가 손톱에 색을 칠하기 시작했다. 두려움도 공포도 다 날아간 사람처럼 버섯조차 안 보이나 보다. 서큐버스의 매니큐어는 여자라면 갈망하는 아름다움 그 자체를 선물하는 것 같다. 거부할 수도 없고 고갤 돌릴 수조차 없는 강력한 정신계 공격!

하나, 둘….

손톱이 빨간색으로 물들어 갈 때마다 나는 버섯들이 조금씩 다가오는 걸 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10개의 손톱이 모두 붉게 물들었을 때,

화아아아악-!

도화지의 매력이 만개했다.

"와아아…. 예뻐."

그녀는 세상 모든 빛을 다 가진 사람처럼 자신의 손톱을 바라보며 행복해했다. 잠깐이지만 나조차 멍하니 그런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을 정도였다.

슬금슬금.

주변 모든 빛이 그녀를 위해 존재했다. 여캠들이 쓰는 반사판이나 조명처럼 버섯들은 도화지 주변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이게 매력+5의 힘….'

왜 저런 아이템들이 몇만 포인트씩 하는지 이제 알겠다. 하나하나 모여 스탯이 더해지면 무시무시한 힘을 발휘하는 거였다.

'그래서 소모품이구나.'

파운데이션도 매니큐어도 너무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니까 제한이 붙은 거다.

'저건 한번 맛보면 절대 못 끊지.'

아는 맛이 더 무서운 거다.

미에 관한 인간의 본능적인 열망. 그 정점에 지금 도화지가 있었다.

그런데 이때, 나조차 상상하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잡았다! 요놈!"

"…!?"

워낙 빠른 버섯들이었다.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가 매니큐어가 완성되었을 때 도화지 곁으로 쏜살처럼 모여든 것들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를 도화지가 콱 잡아 버린 것이다.

"호호호호호! 다 속았지?"

도화지는 재미있다는 듯 웃어 재꼈는데, 그녀의 손엔 야광 버섯 한 마리가 잡혀서 다리를 버둥거리고 있었다.

"누나?"

깔깔대며 웃는 도화지의 모습에 나는 깨달았다. 아까 울던 것도, 내 말에 계속 동문서답하며 약한 척했던 것도….

'연기였어?'

워낙 오락가락하는 애니까 나조차도 그게 다 진짜인 줄 알았다.

"호호호호홋! 요 귀여운 것!"

도화지가 입을 아앙! 크게 벌렸다.

'헛….'

왜 이 순간 저 버섯이 불쌍해 보이는 거냐.

콰악.

그녀가 버섯 머리를 크게 한 입 베어 물었을 때였다.

번쩍-!

그녀의 몸에서 100가지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건 농축되어 다시 그녀의 몸으로 빨려들어 갔다.

【파티 미션을 완료했습니다.】

【재능마켓으로 돌아가 보상을 확인하세요.】

"오예!"

도화지도 메시지를 듣고 있었다.

【추적자 고유 능력을 얻었습니다. 이제 100가지 향기로 적을 탐지 및 추적할 수 있습니다. 가까워질수록 향기는 강해집니다.】

그녀가 또 입을 벌렸다.

그러더니 버섯을 한 입 더 깨물었다.

섬뜩.

나를 바라보는 눈동자가 무척이나 매혹적이었다. 그리고 그게 한쪽만 감기며 윙크했다.

"맛있어."

형광색으로 물드는 그녀의 입술을 나는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