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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마켓-83화 (83/277)

#083화

"…너무 맛있자낭."

도화지가 얼굴을 들었다.

지렁이처럼 몸을 부르르 떨면서도 입을 계속 오물거렸다.

"휴우…. 놀랐잖아요! 장난치지 말라고요!"

"아니야. 꿀물도 꿀물인데, 이 노란색 버섯은 진짜 맛있다구. 먹어 봐!"

"…그래요?"

마침 허기진 상태여서 나도 같은 버섯을 따서 입에 넣었다.

"아…."

"그치?"

"네."

이거, 뭐랄까. 바나나를 먹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식감은 달랐지만, 심지어 포만감까지 있었다.

'다행이야. 굶어 죽진 않겠어.'

막 노란 버섯을 씹어 삼킬 때였다.

【활력 버섯을 발견했습니다.】

【활력 버섯은 다양한 재료와 섞어 드링크를 만들 수 있습니다.】

"오…?"

"왜? 뭔데?"

"아니에요. 누나는 하던 거 하세요."

꿀물을 넘겨주면서 말했다.

"최대한 여러 종류로 드셔야 해요. 아시겠죠? 맛있다고 노란색만 먹으면 안 돼요!"

속마음을 들켰는지 도화지가 찔끔한 표정을 지었다가 꿀물을 보고 말했다.

"이게 이런 맛이었구나. 할머니가 왜 좋아했는지 알 것 같아."

"되게 구하기 힘든 거라고요. 아껴서 드세요."

"왜? 얼마나 구하기 힘든데?"

"무서운 괴물을 수십 마리 잡아야 겨우 한 병 살 수 있어요."

나는 주섬주섬 가방에서 빈 드링크 병을 꺼냈다. 그런데 도화지가 또 나를 껴안았다.

"저, 저기… 우리 이러려고 온 거 아니거든요."

"고마워서 그래. 너무너무 고마워서."

도화지의 목소리에 눈물이 섞여 있었다. 그렇게 귀하다던 꿀물을 흔쾌히 할머니에게 내준 게 떠오른 것 같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왜 이렇게 잘 안아!

"자꾸 이러면 전 저쪽 버섯으로 건너갈 거예요."

"쳇! 인정머리 없긴!"

도화지가 내게서 떨어졌다.

"나도 자존심 있는 여자거든?"

"제발 그 자존심, 계속 지켜 주세요."

"알았다고! 흥! 나중에 내 품이 그립다고 울지나 마라! 범아! 가자!"

뀨웃?

토라져서 저쪽으로 걸어가는 그녀를 보며 나는 웃어 버렸다.

솔직한 그녀의 성격이 싫진 않다. 하지만 다 받아 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여긴 긴장감을 유지하지 않으면 언제 어떤 공격이 날아올지 모르는 필드다.

빈 병을 내려놓고 주변의 버섯들을 잔뜩 모았다.

그리곤 앉아서 생각했다.

'드링크를 만들 수 있어. 빈 병이 상자에 괜히 들어 있던 게 아니겠지. 이 버섯들이 원료가 되는 거야.'

보조 직업을 선택한 뒤 처음으로 드링크를 만드는 순간이었다.

냠냠.

몇 가지 버섯을 더 먹어 보았다.

"우엑…."

분홍색 버섯은 진짜 맛이 없었다. 모래 씹는 기분이다.

【매혹 버섯을 발견했습니다.】

【피 버섯을 발견했습니다.】

【힘 버섯을 발견했습니다.】

피 맛 나는 것도 있었고, 파 맛이 나는 것도 있었다. 도마뱀 날것의 비린 맛보단 훨씬 나아서 꾸역꾸역 먹어 볼 수 있었는데, 여섯 종류쯤 먹었을 때 새로운 반응이 나왔다.

【드링크 제조: 빈 드링크에 두 가지 이상의 재료를 넣고 베이스가 되는 액체를 넣은 뒤 숙성하세요.】

【주의 사항: 각 병은 담을 수 있는 재료의 종류가 한정되어 있습니다.】

내가 상자에서 찾은 건 2가지 재료만 합칠 수 있는 1,000p짜리 빈 병이었다.

'그렇단 말이지.'

나는 정밀한 공정을 하는 장인처럼 빈 드링크에 두 가지 버섯을 구겨 넣었다. 활력 버섯과 힘 버섯이었다. 꽉 차지 않게 똑같은 양을 넣고, 반쯤 남은 공간에 생수를 부었다.

'생수로 되려나?'

내 지력+4의 뇌가 의식의 흐름대로 드링크를 만들고 있었다. 2가지 재료라 했으니까 꿀물 같은 것을 베이스로 할 순 없을지도 모른다고 여겼다. 꿀물 그 자체로도 하나의 재료가 될지도 모르지 않나?

'돼라!'

모험이었다. 하지만 나도 슬슬 필드와 재능마켓에 적응해 가는 중이었고, 내 판단이 옳았음을 알리듯 메시지가 울렸다.

【축하합니다! '힘 불끈 원기 회복 드링크'를 만들었습니다. 드링크는 숙성 단계에서 매우 드문 확률로 진화할 수 있습니다. 레벨이 오를수록 진화 확률도 상승합니다.】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와아…."

내 힘으로 값비싼 드링크를 만들어 냈다. 사악한 재능마켓 특성상 이런 드링크를 팔 때 50p 정도밖에 안 쳐주겠지만, 내가 사려고 하면 막 3천씩 불러 댔으니 직접 이 비싼 걸 만들어 냈다는 것에 감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힘 불끈 원기 회복이라니. 이름도 멋져.'

이거 나가서 아저씨들한테 팔면 떼돈 벌겠다.

'가만 보자. 어디 이것들도….'

나는 이때부터 버섯들을 주워 먹으면서 드링크 재료를 찾아다녔다. 그러나 모든 버섯을 다 재료로 쓸 수는 있지만 내게 쓸모없는 효과의 버섯이 더 많았다. 1시간에 걸쳐 신중하게 5개의 드링크를 완성했을 때, 도화지가 내게 다가왔다.

"뭐가 그렇게 혼자 재밌니?"

"…꿀물 떨어졌어요?"

"눈치는 백 단이라니까? 그런 애가 왜 내 마음은 모를까?"

"얼마나 올랐어요?"

우리가 탈출하려면 도화지가 100/100을 채워야만 했다.

"29라는데?"

"오…."

이거 하루에도 되겠는데?

반나절도 안 됐는데, 삼 분의 일이나 한 거면 상당히 진도가 빠른 거다. 원숭이 왕 미션에만 몇 달이 걸렸던 걸 생각해 보면 정말 놀라운 성과였다.

"근데 새로운 버섯이 더 없어."

"아…. 다른 곳으로 옮겨 보죠."

"아니야! 더 못 먹겠다고! 배불러! 배 터지겠어!"

도화지가 주저앉았다.

그러더니 흐물흐물 오징어처럼 바닥에 몸을 붙였다.

"왠지 이 버섯 부드럽고 따듯하네. 음냐."

눈이 풀리고 있었다.

'아, 꿀물 때문에?'

그거 한 병을 다 먹었으니 행복감과 충만함이 뇌를 지배하고 있을 거다.

'어쩔 수 없나?'

나는 웃으며 도화지 앞에 앉았다.

"좀 쉬죠."

그래도 한 시간 내내 버섯을 먹고 29까지 올린 건 칭찬해 줄 일이었다. 갑자기 여기로 끌려와서 고생하고 있는데 군소리 없이 따라 주는 것도….

"무릎베개해 줄 거 아니면 친한 척하지 마. 얄미우니까."

아, 군소린 한다.

"민준아."

"네."

"그 약병 같은 거, 많이 만들면 우리 할머니도 더 나아질 수 있을까?"

"아마…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이곳은 우리가 사는 세상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흘러가니까요."

도화지가 옆으로 누워서 날 보며 웃었다.

"꼭 그랬으면 좋겠다."

그녀의 눈이 스르륵 감겼다.

"이게 꿈이라고 해도… 나는 그거면 돼. 우리 할머니만 나을 수 있으면 몇 번이라도 죽을 수 있으니까."

속눈썹에 맺힌 눈물을 보면서 나는 마음 한구석이 시큰해졌다.

.

.

.

5일째 아침.

드디어 도화지가 폭발했다.

"아아아! 싫어! 진짜 버섯 같은 거 다 싫다고!"

처음엔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99/100에서 멈춰 버렸다. 먹고 토하고 먹고 토하고 할 순 없는 노릇이라서 무한정 온종일 버섯을 먹을 수도 없었는데, 이런 방식으론 안 된다는 걸 사흘 차부터 이미 느끼고 있었다.

'새로운 버섯이 없어.'

그랬다. 도화지와 나는 이곳의 모든 버섯을 다 먹었다. 그런데 성장이 멈춰 버렸다는 건 새로운 버섯을 찾기 전에는 탈출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찝찝해! 씻고 싶다고! 왜 물이 없는 거야! 비도 안 와! 뭐 이딴 곳이 다 있어!"

토룡이 살던 곳을 경험하면 저런 말 못 할 텐데.

'…결정해야겠어.'

도화지가 더 미쳐 날뛰기 전에 말했다.

"누나."

"부르지 마! 안 먹을 거야! 먹어도 소용없다고!"

"아니, 그게 아니라. 저 좀 봐요."

나는 진지한 얼굴로 그녀에게 설명했다.

"제 생각인데, 우리 이동해야 할 것 같아요. 새로운 버섯이 있는 군락지를 찾아야 하는데, 이 근방엔 없거든요."

"오! 그래? 그래서?"

"우리 선택지는 두 가지예요. 올라가든가, 내려가든가."

내려가는 게 더 쉬울 거다. 하지만 범이와 함께면 올라가는 것도 가능했다. 하지만 내가 이 고민을 하는 이윤 하나였다. 내려갔다가 버섯을 못 찾으면 몇 배는 더 힘들게 다시 꼭대기로 올라와야 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랄까?

"네가 알아서 해. 복잡한 거 싫어. 머리 아파. 이미 냄새들 때문에 죽을 것 같다고."

도화지는 맡을 수 있는 냄새가 늘어날수록 고통을 호소했다. 어디가 아프다거나 한 건 아니었지만, 없던 코가 99개쯤 더 생긴 것 같다고 했다. 갑자기 늘어난 감각 때문에 뇌나 몸이 적응하질 못하고 있는 것이다.

'내려가서 바로 새 군락지를 발견하면 고생을 줄일 수 있겠지. 하지만 없다면 일이 커지는데.'

꼭대기냐, 바닥이냐.

이게 또 어려운 것이 바닥도 얼마나 깊은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여튼 뭐든 너무 크다니까.'

이런 버섯 군락지 몇 개면 지구의 모든 기아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니, 규모는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5일을 한 방향으로만 움직였는데도 보이는 것엔 변화가 없었는데, 느낌상 50일을 가도 비슷할 것 같았다.

"내려가죠. 범아."

내가 범이를 불렀다.

"커스텀."

범이의 몸이 오토바이로 변했다. 그러자 도화지가 펄쩍 뛰었다.

"뭐, 뭐야? 너 마법사야? 범이 어디 갔어?"

나는 오토바이에 타면서 그녀에게 말했다.

"타세요. 놓치지 말고 꽉 잡아야 합니다."

"며, 면허는 있어?"

"나보다 오토바이 운전 잘하는 고딩은 없을 거예요."

도화지가 뒷좌석에 앉아 내 허리를 꽉 잡았다.

"원래 오토바이였던 거야? 아니면 고양이인 거야?"

고양이 아닌데….

"모습을 바꿀 수 있는 아이템이 있어요. 누나도 여기서 나가게 되면 알게 될 거예요. 갑니다. 꽉 잡으세요."

버섯을 하나하나씩 건너며 살금살금 내려가다간 한세월이 걸릴 거다. 이럴 땐 과감하게!

"꺄아아아-! 너무 빨라!"

"아직 시작도 안 했다고요. 무서우면 눈 감아요!"

오토바이가 버섯 위를 질주했다. 그리곤 아래를 향해 투웅! 떨어졌다.

"으아아아아아아악!"

도화지는 자지러지게 소릴 질렀지만 실상 충격은 그리 크지 않았다. 70cm 정도 아래의 버섯을 향해 뛰었기 때문이다. 평균 키가 40~50미터짜리 정글 숲 위를 뛰어다니던 범이에겐 아무것도 아니었다.

오토바이는 계속 질주했다.

계단처럼 조금씩 아래로 내려가면서 다음을 향했고, 나는 빠르게 주변을 훑으면서 목표로 해야 할 버섯들을 찾았다.

꽈악.

내 허릴 감싼 도화지의 팔에서 힘이 느껴졌다. 당찬 척했지만, 그녀도 결국 어른은 아니다. 여고생일 뿐인 거다. 그녀가 그나마 이렇게라도 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건 그래도 일면식이 있는 나 때문일 것이다.

'해가 지기 전에 내려가야 해.'

밤이 되면 이곳에선 잠을 자는 것 외엔 그 무엇도 할 게 없었다. 세상천지가 암흑으로 변하는데, 달빛도 없어서 무섭기까지 했다. 말 그대로 칠흑이 되는 것이다.

투웅! 퉁! 퉁!

버섯이 워낙 부드러워서 오토바이가 떨어질 때의 충격은 다 흡수해 주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편한 승차감은 아니었고, 나는 악조건에 이골이 난 놈이었지만 도화지는 그렇지 않으니 이쯤에서 좀 쉬어 갈까? 생각하던 차였다.

'아아아?'

저 아래에 끝이 보였다.

'바닥인가?'

색이 바뀌었다. 말랑말랑한 버섯들 머리만 잔뜩 보다가 칙칙한 땅을 보니까 이렇게 반가울 수가!

"거의 다 왔어요! 저기까지만 갈게요!"

"정말? 알았어! 참을게! 우웁!"

"토하면 안 돼요!"

제발!

오토바이가 버섯 세 개를 남겨 두고 내려가서 멈춰 섰다. 한 번에 바닥까지 내려가지 않은 이유는 내 경계심과 신중함이 발동했기 때문이다. 지력이 4까지 올랐는데, 그런 무모한 일은 벌이지 않는다.

"헉헉…. 죽는 줄 알았어. 오토바이 같은 건 왜 재미있다고 타는 거야?"

보통은 이렇게 타진 않지….

나는 버섯에 엎드리며 아래를 주시했다. 그리곤 말했다.

"뭐가 있을지 모르니까 기다려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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