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마켓-81화 (81/277)

#081화

학교에 왔더니 애들이 난리가 났다.

-민준아!

-어제 TV 봤어! 깜짝 놀랐다, 야!

-미리 말 좀 해 주지!

-민준아! 멋있었어! 꺄아!

1학년뿐만 아니다. 2, 3학년 여자들도 죄다 우리 반 앞에서 내 얼굴을 보려고 진을 쳤다.

자리에 앉자마자 박인성이 총알처럼 날아왔다.

"우와! 너! 뭐야! 박채린이랑 무슨 사이야?"

"사이는 무슨…."

"혹시 번호도 땄냐?"

"아니."

"워…. 엄청 다정해 보이던데?"

박인성이 부러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봤다. 다른 애들도 우리 얘길 숨죽여 듣고 있었다.

아, 예원이도 항상 이런 기분이었던가?

"근데 너 언제부터 운동한 거야? 사람이냐? 그 덩치를 한 방에 날려 버렸잖아!"

"운이 좋았어."

"운으로 그랬다고? 리얼? 아니던데?"

박인성이 혀를 내둘렀다.

"상금은? 뭐 했어?"

"뭐 하긴."

"떡볶이라도 쏴야 하는 거 아니냐?"

-그래! 민준아! 학교 끝나고 떡볶이 먹으러 가자!

-그으래! 민준아! 가자! 가자!

여자애들이 우르르 다가오는 걸 보면서 나는 움찔했다.

"아, 미안. 어머니 가게 도와드리러 가야 해."

"어머니가 뭐 하시는데?"

"식당."

"아, 그랬어?"

태어나서 이렇게 큰 관심을 받아 본 적이 있었던가. 초롱초롱한 여자애들의 눈빛이 참으로 부담스러웠다. 어쨌든 수업이 시작되고 다시 교실이 조용해졌을 때 나는 평화를 느끼면서 한숨을 삼켰다.

'TV엔 더 나가면 안 되겠어.'

돈 때문에 하긴 했지만, 이렇게 알려져서 좋을 게 없었다. 최근만 해도 괴물 3종 세트를 잡느라 한강을 이 잡듯 뒤지고 다녔었는데, 얼굴이 알려지면 자유롭게 다닐 수가 없을 거다.

-중간고사 2주 남았다! 다들 정신 바짝 차려! 1학년 중간고사가 앞으로 너희 3년을 결정할 수도 있어!

몇 달 전보다 공부에 대한 열의는 식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손 놓은 건 아니었다. 오히려 지력이 +4가 되면서 그냥 교과서를 보기만 해도 머리에 쏙쏙 들어왔다. 따로 열심히 공부하지 않아도 이 상태면 무난하게 잘해 갈 수 있을 것이다.

'이 상태면 공인 중개사도 2달이면 합격할 것 같은데.'

이젠 삶이 완전히 달라져서 그 시험을 볼 생각은 없었지만 그만큼 압도적으로 머리가 좋아져 버렸다는 거다.

나는 틈틈이 사건, 사고 소식을 모니터했다. 전국 각지에서 발생하는 일 중에서 '하층민'이 연관된 것이 있다면 이상한 점이 반드시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 서큐버스 같은 것들이 사람을 해쳤다면 정상적일 리 없어.'

기사를 보면서는 워딩과 팩트를 잘 분석해야 했다. 실제로도 한강 괴물 3종이 인터넷 기사에 나긴 했지만, 환경 문제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이면의 진실을 알고 있다. 내가 막지 않았다면 수많은 사람이 그 3종 세트에 죽거나 다쳤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기사들을 뒤지다 나는 폰을 내려놨다.

'아, 이놈의 모자이크 때문에 보이질 않네.'

범죄자 인권 운운하면서 얼굴을 죄다 가려 놓으니 수호자의 안경으로도 분간이 안 된다.

'후… 방법이 필요해.'

이렇게 나는 학교와 강남역 고깃집, 어머니 가게를 왔다 갔다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는 한편, 계속해서 백작의 흔적을 추적하려고 애썼다.

며칠 후, 고깃집.

"서운해서 어떡해."

내 뒤를 이을 불판 알바가 구해졌다. 오늘이 내 마지막 알바 날인 것이다. 사장님은 계속 안타까워했지만 본래 알바는 알바일 뿐 스쳐 가는 사람이란 걸 사장님도 아신다.

나는 아저씨한테 가서 머리를 숙였다.

"그간 감사했습니다. 알려 주신 것들, 잊지 않을게요."

아저씨만큼 칼을 다루려면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이론은 다 배웠다. 이제 내가 그 기술들을 녹여 내는 일만 남았다.

"열심히 살란 말은 안 해도 되겠지? 그러지 말라고 해도 네가 어떻게 지낼진 눈에 선하니까."

아저씨가 웃었다. 저렇게 환하게 웃는 건 처음 봤다.

"가끔 놀러 올게요."

"그 시간에 공부나 해."

"하하! 고기 먹으러 온다고요!"

아저씨도 내심 서운한지 손가락으로 코를 훔쳤다.

고깃집에서 나와 재능마켓으로 향했다.

매일같이 오던 곳이었는데, 이제 알바도 그만뒀으니까 백작을 찾을 때까진 뜸할 것 같다.

【재능마켓에 입장하셨습니다.】

이제 내 집같이 느껴지는 공간. 강남 한복판에 이렇게 큰 오피스텔을 소유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여전히 깨끗하네."

올 때마다 느낀 거지만 내가 흘렸던 땀방울 흔적 하나조차 없었다. 나 없을 때 누가 청소라도 하는 건가?

유리 벽으로 걸어갔다.

'백작을 처리하기 전엔 아무것도 안 돼.'

드링크를 만들려면 포인트가 필요했다. 병 하나에도 1,000P씩 하다 보니 섣불리 시도할 수도 없었고, 결국 남은 포인트로 생수를 사 내 개인 벽장에 넣었다. 어머니 가게로 옮겨야 할 물건들이었다.

냉장고를 열었다.

꿀물이 2개 보였다.

그간 도화지 할머니 덕분에 꿀물이 10병으로 늘었는데, 이건 계속 이렇게 모아 볼 생각이었다.

"이제 됐나?"

딱히 정리랄 것도 없었으니 오래 머물 필요도 없었다.

그래서 나가려고 했다.

가방을 들고 현관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이때, 내 생애 가장 충격적인 순간이 벌어졌다.

끼이이익.

문고리가 돌아가는 거다.

오싸아아악!

등줄기에 돋는 소름과 한순간에 뽑아 든 활! 거기에 활활 불타는 기름을 먹인 강철 촉 화살이 걸렸다.

'누구지?'

지금까지 오롯이 나 혼자만 있던 공간이었다. 고블린이나 늑대 같은 게 침범하긴 했었지만, 내가 지켜 냈다.

'뭔데!'

얼마나 놀랐으면 입술이 덜덜 떨렸다.

조금씩 열리는 문을 화살로 겨누면서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난입이겠지? 설마 백작인가?'

재능마켓은 절대로 안전한 공간이 아니었다. 화장실에서 고블린이 튀어나오는 장소다. 필라테스를 못 하면 나갈 수도 없고, 툭하면 사지로 몰리는 음험한 곳이다.

'제길! 안일했어!'

나는 옆을 보면서 범이를 발끝으로 툭 찼다.

갸릉?

하지만 녀석은 질펀하게 앉아서 앞발을 핥아 댈 뿐이었다.

'야! 싸울 준비 하라고!'

눈을 부릅뜨면서 채근했지만 범이는 아예 벌러덩 드러누워 버렸다.

'이 자식이 왜 이래?'

피가 말라 가는 남의 속도 모르고 자빠져 있는 범이를 보며 나는 어이가 없었지만, 눈을 현관으로 돌리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셋에 쏜다.'

한동안 화살을 쏜 적이 없어서 '인내'로 모인 추가 타격이 상당할 것이다. 백작이 얼마나 강한지 모르겠지만 내 첫 타라면 해볼 만하다.

'빙결이 터져 주면 여기서 나가는 거야.'

어디로 도망치든 이런 밀폐된 공간보단 나으리라 생각했다.

'셋, 둘….'

문이 더 열렸다.

꿀꺽-!

침은 넘어가지만, 호흡은 아까부터 하지 않고 있었다. 조금의 진동이나 반동도 줄이려는 거다.

'맞힐 수 있어.'

거리도 가깝고, 문의 열린 틈으로 쏘면 되는 거니까 빗나갈 리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마침내 문틈으로 뭔가가 아른거렸다.

'지금이야!'

손을 놨다.

피잉-!

화살이 날았고, '명중률'과 '바람 무시' 스킬도 더해지며 강력한 추가 타격이 발생할 예정이었다.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면 말이다.

"저기요오오오오."

"허억!"

나는 순간 활을 비틀었다.

화살 끝이 활대에 맞아 화살의 방향이 바뀌었다. 나 정도 노련한 사람이 아니었다면 이런 대처도 못 했을 거다.

퍼억!

화살이 현관문 옆에 박혔다.

"꺄아아아아!"

누가 문 뒤에서 넘어졌다.

아, 나는 왜 이 목소리를 알고 있는 거냐.

-학생! 무슨 일이야?

복도에서 아저씨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활을 던지며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벌컥, 문을 열고 나가서 애써 웃으며 말했다.

"하하! 아무것도 아니에요! 장난을 좀 쳤더니 놀라서 넘어졌어요."

-아, 그래. 조심해야지.

이쪽으로 걸어오던 아저씨가 픽 웃으며 몸을 돌렸을 때, 나는 주저앉아 있는 도화지의 손목을 잡고 끌어당겼다.

"…어? 어어어어? 너?"

그녀도 나만큼 놀란 것 같았다.

쿠웅-!

현관문이 닫혔다.

"하아… 하아… 하아…."

거대 원숭이랑 싸울 때도 이렇게 단박에 지치진 않았었다. 순식간에 머리가 다 하얗게 변하는 기분이었다.

"뭐예요?"

"넌, 뭔데? 그리고 여긴… 또 뭐고?"

놀랄 수밖에 없을 거다. 밖에서 볼 때랑 내부는 천지 차이였으니까.

"여긴 어떻게 왔어요?"

설마 날 미행한 건가?

고깃집에서부터 따라온 거야?

복잡한 눈으로 그녀를 보며 뭐부터 물어봐야 할지 인상을 팍 쓰고 있는데, 도화지가 말했다.

"네가 장난친 거였어?"

"무슨… 장난이요?"

"여기로 오라며!"

"제가 언제요?"

"그랬잖아! 안 오면 탈모, 심장 마비, 치매, 생리 불순, 뭐 그딴 거 걸린다고!"

어라?

어어어어라?

"그게 들렸다고요?"

도화지도 인상을 팍 구기면서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저쪽을 보다가 주춤 뒤로 물러섰다.

"허어어억, 저게 뭐야…."

나는 그녀의 시선을 따라 뒤를 돌아보았다.

"…아, 그새 좀 컸죠?"

본모습을 한 범이가 뒹굴뒹굴 구르고 있었다. 어쩐지, 저 녀석이 반응하지 않더라니. 도화지라는 걸 안 모양이다.

"저, 저게 범이라고? 컸다고? 너 제정신이야?"

뭐 어쩌라고, 사실인데.

아니, 지금 범이가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도화지의 손목을 잡고 안으로 이끌었다.

"그 얘기, 해 보세요. 뭐가 들렸다고요? 최대한 자세히요!"

"아파…."

"아, 미안해요. 워낙 중요한 일이라서 그래요."

도화지가 손목을 다른 손으로 만지며 울상을 지었다. 그러더니 옆을 본다. 필라테스 기구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휘황찬란한 아이템들이 진열된 곳.

"헤에? 저게 다 뭐니? 다 네 거야?"

"누나."

내가 그녀의 어깨를 두 손으로 잡았다.

"이거 진짜 심각한 일이거든요?"

내가 이글이글 불타는 눈으로 바라보자 도화지가 겁을 먹었는지 목을 움츠렸다.

"모르겠어. 일하고 있는데… 갑자기 머리가 아팠는데, 이상한 소리가 들려서… 아줌마한테 죄송하다고 말하고 나왔단 말이야."

"여긴 어떻게 찾았는데요?"

"오라잖아…. 브라칸 빌딩 511호로."

"누가요?"

"너겠지!"

아닌데, 나 아닌데!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라서 미치고 환장하겠는데, 메시지가 울렸다.

【파티 시스템이 활성화되었습니다.】

【적합한 파티원이 재능마켓에 입장했습니다.】

"드, 들려요?"

"으응…."

【파티 미션을 시작합니다.】

【대상이 고를 수 있는 두 가지의 직업이 있습니다.】

"뭐래? 이게 뭔데? 민준이, 너! 장난치지 말고 빨리 말해!"

"쉿! 더 들어 봐야 돼요."

【추적자: 흔적을 분석, 추적할 수 있다.】

【무투가: 무기를 쓰지 않고 육체 강화를 통해 적을 멸한다.】

"…."

"…."

【직업을 선택하면 파티 미션이 시작됩니다. 미션을 완료하지 않으면 재능마켓에서 나갈 수 없습니다.】

허억…. 미션이라고? 도화지랑?

【신중하게 선택하세요. 한번 선택한 직업은 되돌릴 수 없습니다.】

【1분 안에 선택하지 않을 시 베네핏이 소멸합니다.】

"신중하라며! 망할 자식아!"

나는 나도 모르게 버럭! 소리쳤다.

【59초 남았습니다. 58초 남았습니다.】

이런 제기랄!

"누나, 잘 들어요. 시간이 없어요. 누나도 들었죠?"

"어…. 근데 뭐가 뭔지."

"싸워 본 적 없죠?"

"거의?"

"운동은요?"

"매일 숨쉬기 하지!"

"…."

내가 본 도화지는 무투가는 아니다. 여기서 개같이 구르다 보면 툭툭 주먹질 정돈 언젠가 하겠지만, 그렇게 해서 살아남을 수 있는 만만한 재능마켓이 아니었다.

"추적자 하세요."

"그게 뭔데?"

"일단은 고르세요. 우리, 지금… 큰일 났으니까."

"아… 알… 았어. 나 추적자 할게. 이러면 돼?"

【추적자를 선택하셨습니다. 이제 10분 후 필드로 이동합니다. 추적자를 위한 베네핏을 수령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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