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마켓-73화 (73/277)

#073화

"쉬잇."

녀석을 발견한 건 정말이지 우연이었다. 놈은 아직 내가 자길 본 걸 모르는 거다. 내가 발견한 것도 불룩 솟아오른 등의 일부가 수면 위로 살짝살짝 보이는 것뿐이었으니까.

'날이 밝기 전에 해치워야 해!'

사람들의 눈에 띄어서도 곤란하고, 놈이 다시 숨어 버리면 얼마나 더 이 짓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오늘 끝내자.'

시위에 화살을 먹인 뒤 상체를 숙이고 오리걸음으로 놈에게 접근했다. 물가로 내려오니 사람들이 보이진 않았다. 범이는 여전히 물이 싫은지 적극적이지 않았지만, 호기심에 귀가 쫑긋거리는 게 보였다.

화악!

팽팽하게 당겨진 시위는 끊어지지 않는다는 효과가 아니었다면 몇 번이나 내 힘에 의해 끊겼을 거다.

10미터…!

'더 가까이 와라.'

수면에 접촉하는 순간, 화살 위력이 떨어진다는 걸 몇 번의 경험을 통해 깨달았다. 놈이 밖으로 나오지 않으면 괜히 쏴 봐야 경계심만 높일 거다.

'개구리야, 제발 그만하자. 응?'

혹시라도 놈이 방향을 틀어 버리면 끝장이라서 조마조마하며 기다리고 있었을 때, 놈이 어기적어기적 다가왔다.

'됐나?'

코트가 내 기척을 숨겨 주고 있으리라… 믿었다. 그래서 놈이 뭣도 모르고 3미터 앞까지 다가왔다고 여겼고.

하지만 이건 내 오판이었다.

촤아아아악!

뭔가가 나를 향해 날아왔다.

"이크!"

불쾌하고 길고 축축한 게 내 하체를 노리고 날아오자 나는 순간적으로 몸의 중심이 무너져 버렸다.

하지만, 카앙!

나에겐 범이가 있었다.

작던 범이가 순식간에 몸집을 키우더니 은빛으로 덮이며 날아드는 순간, 그 아가리엔 길쭉한 개구리의 혀가 물렸고 바닥에 착지한 범이가 팽이처럼 몸을 빙글 돌리며 머리를 화악 젖히자 놀랍게도 물속에 있던 개구리가 밖으로 푸확! 튀어나왔다.

"하아…."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 끌려갈 수 있지 않았나?

"와… 씨…."

그리고 나도 모르게 욕이 절로 나왔다. 내 상상을 벗어난 크고 육중한 몸이 풍선처럼 떠서 이쪽으로 향해 날아오고 있었는데, 범이의 힘에 이끌린거든 아니면 놈이 펄쩍 뛴 거든 모르겠지만, 놈의 몸은 정말 거대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놈이 물 밖으로 나왔다는 것이다.

"불 기름."

화르르륵!

강철 촉이 타올랐다.

그리곤 솨아아악!

화살이 불꼬리를 매달며 위로 쏘아졌다.

-구루루루루루룩!?

개구리가 비명 지르는 건 처음 들어 봤다. 물론 저렇게 큰 개구리도 처음 봤다.

-구루루루루룩!

목구멍에 처박힌 화살은 녀석의 머리마저 뚫고 날아가 물에 떨어졌다.

【축하합니다! 한강 괴물을 사냥했습니다!】

【2,000P를 얻었습니다!】

【미션을 완료했습니다. 재능마켓에서 보상을 수령하세요!】

절명해 버린 개구리가 바닥으로 떨어지기도 전에 범이가 날아올랐다. 그러더니 개구리의 몸을 앞발로 후려쳤다.

철퍼덕!

저쪽으로 날아가 처박힌 개구리에게 달려든 범이가 입을 쩍 벌렸다. 그리곤 콰악 깨물더니 오물오물하다가 퉤-! 뱉어 버린다.

'맛… 없냐?'

웬만하면 가리지 않는 녀석인데….

-방금 뭐지?

-무슨 소리 들렸지?

위쪽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나는 범이와 함께 급히 자릴 벗어났다. 나머지 괴물 한 마리도 잡았겠다, 이제 돌아갈 시간이다. 시간을 본 나는 집이 아닌 강남역으로 향했다.

이제 곧 오전 6시.

괴물 3종도 해치웠고, 모은 포인트로 서브 미션까지 완료하면 새로운 미션이 나를 기다릴 것이기 때문이었다.

.

.

.

예원이는 원래 예뻤다.

그런데 오늘은 더 예뻤다.

'칫, 뭔데? 무슨 화장이 저렇게 잘 먹었어?'

오늘은 디지털 싱글 녹음이 있는 날이다.

"워, 예원이 오늘 진짜 예쁘네?"

매니저도,

"오! 네가 예원이구나! 반가워. 나 김용진이야."

프로듀서도 예원이만 본다.

박채린은 그게 얄미웠지만 꾸욱 참았다. 저 김용진은 이쪽 마당발이라 한번 밉보이면 소문이 금세 퍼진다는 얘길 들었다.

김용진이 말했다.

"편하게 가자. 오래 안 걸릴 거야. 밥은 먹고 온 거지? 노래도 밥심으로 하는 거라고!"

"네에!"

예원이는 신이 났다. 민준이한테 고민 상담을 한 이후로 모든 일이 잘 풀리고 있었다. 본래 미인은 세상만사 어려운 게 없다지만, 그게 한계점을 넘어 버리면 세상 전체가 나를 도와주는 기분을 맛볼 수 있다. 요즘 예원이가 딱 그랬는데, 모두가 사랑해 주니 자신감이 부쩍 올랐다.

"예원이부터 할래?"

매니저의 말에 예원이는 비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녹음실 부스로 들어갔다.

"와아…."

언제나 이 순간을 꿈꿔 왔었다. 무대에 서긴 했었지만, 지금이 진정 가수가 된 기분이 들었다. 관객도 없고 환호성도 없었지만, 이런 녹음실 장비가 선택된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이란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고마워, 손잡아 줘서.

예원이는 민준이를 떠올리며 노래했다. 긴장해서 몇 번 다시 하긴 했지만, 뒤로 갈수록 나아지는 게 확 보였다.

"잘하는데?"

김용진의 말에 매니저가 헤헤 웃었다.

"뜰 것 같습니까?"

지금까지 수많은 스타를 발굴한 김용진의 안목을 빌려 보려는 거다.

"노래도 좋고, 발성도 좋고, 마스크도 좋은데 안 뜨면 그게 더 이상하지."

그러면서 박채린을 힐끔 봤다. 직설적이기로 유명한 김용진이기도 하다.

"어느 한쪽이 지나치게 처지지만 않는다면 말이야."

"…."

그 말을 들은 박채린의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예원이가 오늘 잘하고 있다는 건 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열받는 건 너무너무 예쁘다는 것이다. 필러를 한 것도 아닌데, 피부과를 다녀온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저 존재감은 뭐람? 화장이라고 해 봐야 파운데이션 하나 꼴랑 바르고 온 것 같고.

"저 잠깐만 화장실 좀요."

결국 박채린은 답답한 녹음실에서 나와 버렸다.

"…."

어떻게 된 걸까?

나 박채린인데, 어디 가서도 꿇리지 않는 박채린인데!

울화통이 터지겠는데, 그 이유를 명확하게 모르겠다는 게 더 짜증 났다.

'이게 다 걔 때문이야.'

엄한 곳으로 화살이 돌아갔다.

'도민준!'

나를 좋아하지 않는 남잔 처음이었다. 그 눈빛, 그 냉랭한 말투는 거짓이 아니었다. 그럴수록 더 갖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라던가?

"씨이…."

그녀의 주먹이 꽉 쥐어졌다.

"절대 안 져."

녹음실로 돌아가는 그녀의 눈빛에 독기가 서렸다.

.

.

.

"…."

요즘 묘하게 뒤통수가 따갑단 말이지.

【재능마켓에 입장하셨습니다.】

'따라오는 사람 없었지?'

뀨우?

나는 범이와 복도를 좌우로 훑어보곤 문을 열고 냉큼 들어갔다.

【미션을 완료했습니다.】

"하하핫!"

며칠 헤매긴 했어도 죽을 만큼 어려운 미션은 아니었기에 기분이 좋다. 이렇게 쉬울 때도 있으니 얼마나 좋아?

"우리 귀여운 개구리가 뭘 흘렸는지 볼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장롱으로 향했다.

메인 미션의 보상을 받을 차례 아닌가!

터엉!

문을 열자, 기분 좋게 반짝거리는 돌 3개가 보였다.

"나이스!"

괴물이 아이템을 줄 수도, 안 줄 수도 있다. 한 마리가 2개를 연달아 줄 때도 있고, 10마리를 잡아도 1개가 안 나올 때도 있었지만, 어쨌든 3마리 잡고 3개가 나왔으니 선방이었다.

"우리 예쁜 개구리!"

사실 개구리가 떨궜는지 물고기가 줬는진 모르는 거지만, 뭐가 중요한가!

손을 뻗어 돌을 잡았다.

【중급 필라테스 이용권을 얻었습니다.】

'이건 평타!'

옆의 돌을 쥐었다.

【잠수 드링크: 30분간 물속에서 숨을 참을 수 있다.】

'오호?'

물고기에 개구리라서 그런지 이런 희귀한 아이템을!

다음!

나는 음흉한 눈으로 마지막 돌을 집었다.

【스킬: 작살!

물속에서도 화살의 위력이 줄지 않는다. 단 화살에 담긴 속성 효과는 사라질 수 있다.】

"와, 대박! 이건 진짜 작살인데?"

이걸 진즉 얻었다면 개구리 잡기가 더 쉬웠을 거다.

"근데, 이걸 왜 지금 주냐고!"

갑자기 흥이 싹 식어 버렸지만, 그래도 이런 스킬이 어딘가? 분명 나중에 요긴히 써먹을 곳이 있을 거다.

"뭐, 좋아, 좋아!"

범이에게 말하며 웃곤 유리 벽으로 걸어갔다. 이제 보조 직업을 사야 할 때가 왔다.

【드링크 제조를 구입하시겠습니까?】

【20,000p를 사용하셨습니다.】

【누적 포인트 5,300p.】

2만 포인트가 한 방에 나간 건 가슴 아프지만, 몇 가지 흥분되는 일이 기다리고 있으니 시원하게 미소 지을 수 있었다.

【축하합니다! 드링크 제조를 익혔습니다.】

【이제 드링크를 만들 수 있습니다. 재료는 재능마켓에서 구하거나 필드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서브 미션을 완료했습니다.】

【2,300p를 얻었습니다.】

【모든 미션을 완료했습니다. 중급 필라테스에 도전할 수 있습니다.】

이거거든!

【중급 필라테스에 도전하시겠습니까?】

"아니!"

일단 이건 킵하자.

전에 밸런스 볼 스쿼트 하느라 죽을 고생을 했더니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미션부터 줘!"

【미션: 백작을 사냥하라. (위험도 레어)】

'위험도 레어??'

【서브 미션: 드링크 3종을 제조하라.】

꿀꺽.

레어 미션이란 얘기에 심장이 쿵쾅거렸다.

'레어면 얼마나 위험하다는 거지?'

하지만 피한다고 안 할 수도 없는 거라 일단 마음을 진정시키며 다른 생각을 했다.

'우선 드링크부터.'

나는 재능마켓을 스윽 훑어봤다.

없던 병들이 종류별로 생겨났다.

【2종류 재료 합성 병. 가격: 1,000p.】

【3종류 재료 합성 병. 가격: 2,000p.】

【4종류 재료 합성 병. 가격: 3,000p.】

생긴 건 똑같은 갈색 박카스 병인데, 어마어마하게 비쌌다.

"…."

조금 전에 서브 미션까지 해서 내게 남은 포인트라곤 7,600이 전부. 근데, 이걸 드링크 만드는 데 다 쓰면 저 '백작'을 사냥할 때 빈손일 수도 있겠다.

나는 재료라는 것들의 가격을 봤다.

【육식 토끼 부산물: 200p.】

【괴물 개구리 부산물: 900p.】

【괴물 쥐 부산물: 700p.】

"이런 망할!"

다 내가 잡았던 것들이었다.

"왜 꼭 뒤에 알려 주는데애애애애애!"

유리 벽을 주먹으로 쾅쾅! 치면서 항의해 봤지만, 돌아오는 메시지는 없었다.

지금이라도 개구리 회수하러 가야 하나?

"아으…."

이미 사람들이 발견했을 거다.

"아… 진짜 너무해."

분하지만 사냥감이 드링크의 재료가 된다는 걸 이제 알았으니 어쩌리.

그러다 자연스럽게 눈이 옆으로 돌아갔다.

【재료 수집망(일회용): 버튼을 누르면 죽은 재료를 회수해 보관할 수 있는 그물이 발사된다. 원터치! 가격: 1,000p.】

"…."

이런 걸 지금 알려 준다고?

【재료 수집망(레어): 버튼을 누르면 죽은 재료를 회수해 보관할 수 있는 그물이 발사된다. 영구적으로 쓸 수 있다. 가격: 50.000p.】

'장난하냐?'

점점 이 재능마켓이 미워지려고 한다. 레어를 보여 주지나 말든가. 저렇게 떡하니 옆에 있으면 일회용을 살 수밖에 없는 내가 너무 비참해지지 않나?

'두고 봐라. 내가 포인트 모아서 저거부터 산다.'

하지만 오늘은….

"수집망 하나 줘."

이제부터 재료들을 살뜰하게 챙겨야 했다.

【재료 수집망(레어)를 구입하기엔 포인트가 모자랍니다.】

"그거 말고! 개자식아! 옆의 거 달라고!"

【1,000p를 사용하셨습니다.】

아, 성질 나빠지겠네.

파스스스스.

빛이 모이면서 곤충 채집통 같은 게 나타났다.

'이런 게 있으면 확실히 흔적을 남기지 않아도 되겠어.'

일본에서의 구울들도 말끔하게 시체를 치웠다면 그렇게까지 크게 이슈가 되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서큐버스도 마찬가지고.

'어쨌든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잘 챙겨야지.'

원망스럽지만 어쩌랴.

나는 재능마켓 앞에 서서 말했다.

"필라테스, 가자."

【중급 필라테스에 도전하시겠습니까?】

'백작'의 미션 위험도가 무려 (레어)다. 그냥 갈 수는 없는 일.

"와라아아아아! 와!"

열 오른 김에 해치우자!

【철봉 거꾸로 매달려서 1분 버티기 10,000회를 선택하셨습니다. 완수하시면 지력+3을 획득합니다.】

"뭐? 철봉 거꾸로 뭐? 잠깐만…."

【미션이 시작됩니다. 이제 미션을 완료하기 전까지 재능마켓에서 나가실 수 없습니다.】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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