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마켓-72화 (72/277)

#072화

"민준아."

무려 힘이 +3이나 된 놈이 나다.

뿌리치려면 뿌리칠 수 있다지만….

"응?"

"덕분에… 좋아진 것 같아. 고마워, 진짜…."

내가 웃으며 끄덕이자 예원이가 말했다.

"이 손, 안 놓아도 되지?"

내 생애 최초.

여자와 손을 맞잡았다.

.

.

.

"이게 일본에서 발생한 연쇄 살인 자룝니다. 제가 이거 구하느라고 정말 힘들었어요."

"조 형사가 그렇게 일을 잘하니까 내가 아끼잖아. 어서 줘 봐."

택시 안에서 팀장은 서류 봉투를 급히 열었다.

"으음…."

무려 13명이나 하루에 살해된 사건. 일본 언론에서도 대서특필된 희대의 살인 사건이었는데, 아직도 범인은 특정되지 않았다.

'거의 비슷해….'

팀장은 침을 겨우 넘겼다.

이건 김유선 하나만의 문제가 결코 아니었다. 서울뿐 아니라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해서 광수대까지 붙었다. 그런데 이젠 일본까지란다. 살인마가 양국을 왔다 갔다 하면서 미친 짓을 벌이고 있다? 그게 가당키나 하나?

"일본에선 개인이 아니라 단체의 소행일 수도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종교?"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혼자서 일을 꾸몄다고 보기엔 너무 엄청나지 않습니까?"

"그럴 만도 하지."

생각에 잠긴 팀장이 한창 고민하는 와중에 택시가 섰다.

새벽 1시 40분.

또 한강이다.

막 퇴근하려던 팀장이었는데, 급한 연락을 받고 이리 온 거다. 조우진 형사가 말했다.

"사람들이 몰려 있는 걸 보니 저쪽인 것 같습니다."

"광수대는 이미 와 있네…."

"그렇겠죠. 우리가 알면 저쪽도 안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최초 신고가 들어온 건 40분 전. 광수대는 낚시꾼으로 보이는 사람과 얘길 하고 있었다.

팀장이 슬쩍 그쪽으로 가다가 흠칫 놀랐다.

"저게 뭐야…."

조우진 형사가 말했다.

"베스입니다. 제가 낚시 좀 다니지 않습니까? 베스가 맞습니다."

"나도 알아, 베스인 건. 근데 저… 크기가 말이 돼?"

우리가 회로도 먹고 탕으로도 즐기는 우럭의 한 종류가 바로 베스다. 아무리 커 봐야 50cm 정도인 게 일반적인 베스인데, 저건 무슨….

"상어냐?"

하, 기막혀 말도 안 나온다.

"2미터는 넘어 보이지 말입니다."

성인 남자보다도 훌쩍 큰 베스라는 거다.

"저런 게 물면 팔다리 정돈 그냥 끊어지겠는데?"

물로 끌려 들어가면 바로 익사할 거다.

"요즘 환경 오염이 심각하다더니 진짜 그런가 봅니다."

조우진 형사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정말이라니까요?

성난 목소리에 팀장이 고갤 돌렸다. 낚시꾼은 씩씩거리면서 말을 이었다.

"저놈이 나를 잡아먹으려고 튀어나왔는데, 어디선가 뭐가 날아오더니 저놈 대가리를 꿰뚫었다고요! 저놈 주둥이에 내 낚싯바늘 걸린 거 보이잖아요!"

머리에 작살 같은 게 뚫고 지나간 흔적이 보였다.

"선생님, 흥분하지 마시고요. 제가 못 믿는 게 아니라 그, 뭐가 날아와서 저걸 맞혔는지 여쭤보는 겁니다."

"여길 보세요. 이렇게 어두운데 뭐가 보입니까? 거, 사람 참 답답하네!"

중요한 건 저 베스가 자길 잡아먹으려고 했다는 것이다. 낚시만 30년 넘게 했지만, 물고기가 살해 의도를 지니고 접근한다는 생각은 오늘 처음 들었다.

-물고기 한 마리 때문에 이게 웬 고생인지! 에잉! 어쨌든 저건 내가 잡은 거니까 내 거요! 알겠습니까? 빨랑 끝내고 집에들 가자고요!

낚시꾼은 짜증이 나서 외쳤지만, 이미 여긴 광수대와 감식반까지 와 있었다.

팀장은 그게 이상했다.

'뭐가 더 있는 건가?'

그가 광수대 윤일권에게 걸어갔다.

"안녕하세요."

"자주 뵙네요."

팀장이 담배를 꺼내며 물었다.

"큰놈이긴 한데, 광수대가 호기심을 가질 사안이던가요?"

윤일권도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곤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는 팀장님은요?"

"아, 뭐 저야 겸사겸사."

윤일권이 웃음기를 지우며 말했다.

"후우…. 까놓고 말씀드리죠. 며칠 전에 근처에서 쥐가 한 마리 발견됐습니다. 죽은 상태였는데, 그렇게 큰 쥐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이랍니다."

"그래요?"

"네, 근데 그놈 발톱에서 실종자 DNA가 나왔어요."

"사람을 공격했다고요?"

"저… 크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허어… 세상이 망하려나."

"실종자가 전자 발찌를 차고 있어서 빨리 대응할 수 있었습니다."

"찾았습니까?"

"아뇨. 저 어딘가에서 신호가 끊겼답니다."

"허어…."

"저 베스도 감식을 보낼 생각이긴 한데…."

다 줄 것 같으면서도 정보를 숨기는 윤일권이었다.

"또 봅시다."

저쪽으로 걸어가는 윤일권을 보면서 팀장은 입맛을 다셨다.

"말세네, 말세야."

쥐도 모자라서 물고기까지 사람을 공격하다니.

"팀장님."

조우진 형사가 말했다.

"이상한 걸 봤다는 사람이 있어서 잠깐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조우진 형사가 떠나자 팀장은 죽은 베스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런 게 낚싯줄에 걸렸다면 그 힘이 상상을 초월했을 거다. 강태공들에겐 끝내주는 손맛이었겠지만 자칫하다간 골로 가겠다.

한참을 보던 팀장은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어? 저거….'

그가 서둘러 아까 봤던 서류 봉투에서 사진을 꺼냈다.

작살 같은 거에 뚫린 흔적!

베스도 같았다.

'비슷해?'

일본 연쇄 살인 사건의 피해자들과 같은 종류의 흉기에 당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

.

.

최악은 차악을 보면서 위로받고, 차악은 최악을 보면서 힘을 낸다던가? 똥 묻은 개 어쩌고란 말도 있었지만 내 말의 요지는 정글에서 몇 달 굴러 보니까 한강은 천국이란 거다.

'이제 한 마리 남았어.'

이 괴물 3종 세트는 기본적으로 동물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이쪽으로 넘어온 지 얼마 안 돼서 그런 건지 본능을 숨기지 못했다. 서큐버스처럼 영리하면 까다로웠을 텐데, 이놈들은 으슥한 곳에서 사람이 혼자 뭘 하고 있으면 출몰했다.

한데, 겁은 또 많은지 가로등 밝은 곳이나 사람들이 자주 오가는 곳엔 코빼기도 안 보였다. 이러다 보니 내가 노릴 곳이 오히려 좁혀져 편했다.

'세 번째 놈이 물고기였다는 게 의외였긴 해도 잡았으니까 된 거고.'

하마터면 굉장히 까다로울 뻔했는데, 낚싯대에 걸린 채 정타로 치명상을 먹여 한 방에 해치웠다. 낚시꾼도 구하고, 미션도 해결했으니 일석이조인 셈이었다.

"아, 배고프다…."

밤새 한강을 이 잡듯 뒤지고 다녔더니 출출했다. 한강엔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새벽까지 술 마시는 젊은 사람들과 그와 대조되는 운동에 심취한 사람들이 엉켜 있었다. 차 끌고 와서 한강을 보며 유유자적하게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도 있었다. 여기, 이 사람들을 노리는 괴물들이 살고 있었다.

'어디 있는 거냐, 망할 개구리 자식!'

놈들의 전투력만 놓고 보면 진즉 끝났어야 할 미션이 길어지는 건 놈들을 찾을 수가 없어서였다.

벌써 일주일째.

예원이와 대공원에 간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그간 학교가 끝나면 고깃집에 가서 아저씨한테 고기 다루는 법을 배웠고, 알바가 끝나면 한강에 왔다. 인적이 드문 시간에 놈들이 출몰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아, 그보다 이제 고깃집 알바도 그만둬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돈 때문에 거기서 그러느니 그 시간에 차라리 어머니 가게를 도와야 할 것 같다. 아저씨한테 칼 쓰는 법은 한 달이면 다 배우려나? 그것만 끝나면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한텐 재능마켓이 있으니까.'

아저씨의 노하우는 10년이 걸려도 다 못 배울 거겠지만, 속성으로 한번 보면 나 혼자 재능마켓에서 무한대로 복습할 수 있으리라.

'하, 이놈 진짜 안 나오네.'

배가 불렀는지 흔적도 없는 개구리 때문에 이만 돌아갈까? 하고 정리하는데, 저쪽에서 한 무리의 사람이 보였다.

새벽 5시가 가까워지는 시간이다.

"…."

교복 치마는 입었는데, 치마 밑엔 트레이닝복 바지가 보인다. 위엔 모자가 달린 셔츠를 입었고, 가방 따윈 없다. 교복인지 사복인지 헷갈리는 저런 복장은 딱 한 부류가 입는다.

문득 도화지가 생각났다.

'할머니가 건강해지셨다지.'

도화지 덕분에 꿀물이 꾸준히 하나씩 늘어나고 있었다.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꿀물이 도움이 된다니 흐뭇할 수밖에 없었다.

-집에 간다니까!

-가긴 어딜 가! 놀자고 따라와 놓고 이러기야?

-내가 언제 아침까지 논다고 했니?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불량해 보이는 남자 여섯과 벗어나려는 여자애 둘. 주변 사람들도 보고 있었지만, 휘말리기 싫은지 인상만 쓰고 갈 길 간다.

-하! 술만 잔뜩 처먹고 튀네? 야! 갈 거면 술값 내놓고 가.

-니네가 사 줬으면서 왜 이러는데?

-세상에 공짜가 어딨어! 알면서 이래?

잠시 벤치에 앉아 멍하니 바라보는데,

'…?'

나는 반색했다.

이런 곳에서 아는 얼굴을 만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여어!"

내가 손을 흔들며 무리에게 다가가자 술에 취한 남자애들이 나를 보면서 와락 인상을 썼다. 그러다 술이 확 깬 표정으로 바뀌는 건 순식간이었다.

"어, 너?"

"너, 너는!"

나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내가 눈에 띄지 말라고 했지?"

인성고 2학년 애들이었다.

저기 쟤가 2학년 대가리 영준이랬던가?

"…이 개새끼…."

영준이가 나를 보며 이를 갈았다.

"…."

나는 녀석에게 평범하게 걸어갔다. 진짜 평범하게 말이다. 하지만 녀석에게는 그게 싸우자고 하는 거로 보였을까? 녀석은 냅다 달려들기 시작했다. 술이 용기를 준 모양이다.

하지만 퍼억.

"…."

나는 무심히 녀석을 발을 들어 차 냈다.

"…커허허허허허허허헉!"

아무리 가볍게 찼다지만 근력+1, 힘+3의 발차기가 영준이의 배에 꽂히자 녀석은 주르르륵 뒤로 밀렸다가 데굴데굴 구르며 엎어졌다. 그리곤….

"우왜애애애애애애애액!"

녀석은 엎드린 자세에서 먹은 걸 다 토해 내기 시작했다.

'아, 더 살살 해야 했나?'

조절법을 좀 익혀야겠다.

빈대떡이 걸쭉하게 부쳐지고 있을 때, 나는 주변 녀석들을 보았다.

"너네, 여기 있음, 죽는다."

"이 씨×놈아! 넌 왜 우리한테만 이러는데!"

"여기 강남 아니잖아!"

술기운에 용기를 얻은 녀석들이 악다구니를 질러 댔다. 여자애들은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서 우리만 멀뚱하게 바라봤다.

"아, 내가 말 안 했나?"

이제 이런 녀석들은 농담이나 주고받을 정도로 귀엽다.

"여기도 내 구역이야."

"…!?"

"…뭐?"

"너무하잖아!"

"니가 어디 있는 줄 알고 피해 다녀!"

커험, 이건 내가 생각해도 좀 억지긴 하다. 하지만 나는 정말 이 녀석들을 위해 말해 주는 거다.

"죽기 싫으면 제발 꺼져 주라. 응?"

괴물 개구리가 언제 튀어나올지 모른단다, 아가들아.

"…이씨."

"개자식…."

"크흐흑…. 우린 어디 가서 놀라고…!"

나는 웃음기를 싹 지우고 다시 말했다.

"맞을래?"

2학년 대가리도 저기 뻗어 있다. 다구릴 쳐서 될 상대가 아닌 것도 이미 경험했다.

"…맨날 우리만 갖고 그래…."

"아오… 간다, 가."

"영준아, 괜찮냐? 정신 차려 봐."

녀석들이 영준이를 둘러메고 저쪽으로 가자, 나는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조심히 가! 다신 보지 말자!"

-이 씨×발놈아!

-야, 가자. 상대하지 마. 저거 또라이야. 못 이겨.

불량한 아이들이 사라지자 평화가 찾아왔다.

"저, 저기이… 오빠…."

여자애들이 다가왔다.

"가라."

"네?"

"가라고. 부모님 걱정하신다. 일찍일찍 다녀. 파리가 꼬이는 건 음식이 썩었기 때문이야."

"…."

뭘 기대했는진 몰라도 여자애들은 시무룩해져서 몸을 돌렸다.

아직은 어린 애들. 그런데 요즘은 사회도, 어른도 이 녀석들을 케어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개구리 밥이 되게 할 순 없잖아?'

곧 해가 뜰 것 같은데, 나도 슬슬 퇴근할까? 생각하면서 강 쪽을 봤다.

그런데,

"범아."

가방에서 범이가 머릴 쏙 내밀었다.

"나타났다! 개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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