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1화
한강 수색 2일 차.
드디어 괴물 3종 중에서 한 마리를 만났다.
"범아!"
뀨웅!
화살은 놈의 몸통에 정확히 명중했다. 어떤 아저씨를 노리고 달려들던 큰 쥐는 화살을 매달고 부리나케 도망치고 있었는데, 그 뒤를 범이가 추적했다.
쥐?
정확히 말하자면 '뉴트리아'라는 종일 거다. 전에 TV에서 봤다. 원랜 식용으로 쓰려고 우리나라에 들여온 종자들이었다.
뉴트리아, 베스, 개구리.
한때 정부 차원에서 장려되던 이 요상한 식재료들은 농장까지 이뤄 가며 길러졌지만, 아무리 없이 살아도 누가 저런 걸 먹겠나? 결국, 농장들도 다 문을 닫고, 야생으로 버려진 그놈들은 생태계를 바꿔 버렸다. 뱀도 잡아먹는 쥐와 개구리, 천적조차 없는 물고기가 대한민국 야생에서 지배종이 된 것이다.
물론, 저 정도의 크기는 말이 안 된다.
'운이 좋았어. 일주일은 족히 걸릴 것 같았는데, 이렇게 빨리 찾다니!'
그래, 나도 이런 날이 가끔 있어야 하지 않겠나? 그 빌어먹을 밸런스 볼 스쿼트 하느라 오피스텔에서 보름은 있었던 것 같은데, 꾸역꾸역 어떻게 해내고 드디어 나왔다.
다신 하기 싫은 끔찍한 경험.
그래도 나는 해냈다.
또한 앞선 모든 종목 운동보다도 더 큰 성취감도 맛봤다. 그렇게 얻은 힘+3은 아직도 적응이 힘들 정도였다.
기이이익!
살짝 당기려고 했는데, 시위가 쭉 벌어졌다.
근력과 힘은 또 달랐다. 근력이 내 온몸의 근육을 말한다면 힘은 그냥 순수한 힘이었다. 더 정확하게 설명하자면 컨디션, 근육량, 경험, 자세, 나이, 성별, 인종 같은 여러 요소가 힘의 상대량을 만들어 낸다면 내가 얻은 힘은 그걸 다 씹어 먹을 정도의 절대량이었다.
'고됐지만, 역시 필라테스를 하고 나오길 잘했어.'
무엇보다 힘+3이 주는 폭발하는 자신감으로 저런 괴물 쥐 따윈 한 주먹에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
-끼이이이잇?
저 앞에서 쥐 소리가 났다.
간만에 신나게 사냥을 하니 범이는 물을 만난 것 같다.
-끼기끽!
소리가 점차 더 가까워졌을 때,
【축하합니다! 괴물을 사냥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2,000p를 얻었습니다!】
앞으로 나갔더니 은빛으로 번들거리는 큰 범이가 괴물 쥐의 목덜미를 물고 있었다.
"괴물은 너 아니냐…."
나는 녀석의 엉덩이를 손으로 때리며 말했다.
"누가 보면 어쩌려고! 빨리 작아져!"
규우웅.
엉덩이를 몇 번 더 찰싹찰싹 때렸더니 범이의 크기가 줄어들었다. 근데 그 와중에도 쥐 고기를 열심히 먹어 댄다.
'이제 두 마리.'
저 식성은 나도 어쩔 수 없는 것이었기에 고갤 돌려 한강을 보았다.
'하나당 2,000포인트면 꽤 짭짤하네.'
포인트로 미션의 난이도를 결정할 순 없겠지만, 강한 놈 하나보단 어중간한 놈 셋이 상대하기 쉽다는 건 불변의 법칙이었다.
'빨리 찾는 게 관건이겠지만.'
이때였다.
-아아아아아아악!
비명이 들렸다.
"범아, 그만!"
나는 외치면서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뛰었다.
그러면서 강철 촉 화살을 꺼냈다.
"불 기름."
화르르륵!
내가 외치자 촉에 이글이글 불이 붙었다.
주변이 환해졌다. 이 불화살은 살상력도 좋지만, 이렇게 어둠을 밝히는 용도로도 아주 좋았다. 더 마음에 드는 건 유니크 기름을 발라서 그런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꺼지질 않는다는 거다.
오피스텔에 갇혀 밸런스 볼과 싸우며 미쳐 버릴 것 같을 때면 활을 꺼내서 연습했는데, 무한대의 화살과 무한대의 기름의 궁합은 너무도 잘 어울리는 것이었다.
물론, 지금은 실전이니까 한 대당 5포인트짜리 값비싼 강철 촉을 쓴다!
흔들흔들.
나는 호롱불에 비친 그림자처럼 흔들리는 주변을 보면서 강 쪽으로 곧장 뛰어갔다.
"…."
그리곤 멈춰 섰다.
쥐야 뭐 저쪽 세상에서도 큰 걸 많이 봤고, 엽기적인 토끼도 봤으며, 그런 것들을 구워 먹기까지 했어서 그런가? 큰 감흥은 없었다. 그런데 단연코 저 앞에 있는 것만큼 징그러운 걸 본 적은 없었다.
"개구리냐…."
【한강의 괴물을 발견했습니다.】
배불뚝이 개구리는 키가 3미터는 훌쩍 넘어 보였다. 웬만한 여자들은 저걸 보자마자 기절할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잘도 안 걸리고 살아왔구나.'
사진이라도 찍혔다면 당장 해외 토픽감이었다.
꾸룩?
개구리는 나를 보다가 후다닥 물속으로 숨어 버렸다.
피잉-!
화살이 날아갔지만, 수면으로 포옥 처박혀 불도 꺼져 버렸다.
"이런…."
범이도 물은 싫은지 근처에서 끼잉, 낑…!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움직였다.
"저거, 골 아프네."
2,000포인트짜리라서 전투력 자체는 높지 않을 거로 추정되지만, 물속에 산다는 게 걸림돌이었다.
"흐으음…."
일단 두 번째 괴물이 뭔진 확인했으니까 세 번째부터 찾아야겠다고 생각하며 근처를 보았다.
'그 아저씨는 잘 도망쳤나?'
보이질 않았다. 무사히 피했길 바라면서 나는 어둠 속으로 몸을 감췄다.
.
.
.
토요일 아침.
오늘은 예원이와의 이벤트가 있는 날이었다. 확실하게 말하지만, 데이트 아니다. 이벤트다!
'대공원이라….'
솔직히 말하자면 서울에 이런 곳이 있는지도 몰랐다. '어린이' 대공원에 내가 가도 되는지조차 모르겠다. 그런데 막상 와 보니까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많다.
"아아…."
내게도 이런 날이 오는구나.
-민준아!
편한 복장에 모자를 푹 눌러쓴 예원이가 저쪽에서 나를 부르며 달려오고 있었다. 모자를 써도 예쁜 애들은 아름다움을 감출 수 없다는 걸 지금 알았다.
"오래 기다렸니?"
"나도 막 왔어."
가방이 열리며 범이가 머리를 빼꼼 내밀었다.
뀨우?
"아앗! 귀여워어어어어! 진짜 데려와 줬구나!"
딱히 그렇다기보단 나랑 항상 다니는 애니까….
"안아 봐도 돼?"
"어…."
두 손을 내밀자 범이가 냉큼 예원이의 품으로 넘어갔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자니 기분이 묘하다. 저거 저놈, 수컷임이 확실하다!
"아… 보들보들해."
문득, 범이 이마에 얼굴을 비비는 예원이를 보고 있자니 어제 범이가 뜯어 먹은 괴물 뉴트리아가 생각나 섬뜩했다.
"커허험! 갈까?"
"그래!"
어린이 대공원엔 반려동물을 데려온 사람들은 꽤 많았다. 동반이 가능하고 안엔 따로 애견 운동장까지 설치되어 있어서 인기가 많은 것 같았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우주 대스타는 범이었다.
"엄마, 저거 뭐야?"
"뭐긴, 고양이잖아."
"무슨 종이지?"
"글쎄…. 엄마도 처음 보네."
예원이 품에 안긴 범이는 시선 집중을 받았다. 우린 동물원을 먼저 돌기로 했는데, 어차피 범이가 있어서 놀이공원 쪽은 생각도 안 했다.
작은 문제라면.
-뭐야? 쟤? 고양이 아닌데? 아닌데!
가끔 마주치는 사육사들의 눈초리를 피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동물에 대해 일반인보다 많은 지식이 있어서 그런지 범이가 고양이가 아니란 걸 느끼는 거다.
하지만 그들도 뾰족하게 특정하진 못했다. 설마 누가 표범을 안고 다닐 거라고 상상이나 하겠나?
뀨웃?
심지어 이렇게 온순한 표범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
"와! 저기도 가 보자!"
"천천히 가. 넘어져."
"응응!"
예원이가 총총 커다란 철창이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호칭 권능이 발휘됩니다.】
그런데, 뭐지?
갑자기 들려온 메시지에 갸웃하는데,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엄마! 원숭이들이 이상해!
-다들 왜 이러는 거지?
큰 철창엔 일본원숭이들이 잔뜩 살고 있었는데, 녀석들은 내가 접근하자 절을 하듯이 엎드려서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원숭이 사냥꾼!】
개장수가 나타나면 온 동네 개가 침묵한다는 말처럼 내 권능은 원숭이들에게 직빵이었던 거다.
'거, 참 쓸모없는 권능도 다 있네.'
이런 걸 주려면 원숭이 사냥하기 전에 줬어야지 다 끝난 다음에 주면 어디에 써먹나?
뭐, 그래도 웃기긴 하다.
밉살맞던 원숭이 왕이 떠올라 속으로 웃고 있는데, 예원이가 내 소매를 잡아끌었다.
"아이스크림 먹을래?"
"좋지."
소프트아이스크림 두 개를 사서 벤치에 앉았다.
"맛있다앙."
예원이가 아이스크림을 반쯤 먹어 치운 걸 보던 나는 슬쩍 물었다.
"왜? 뭐가 잘 안 돼?"
흠칫 놀란 예원이가 나를 보며 눈을 크게 떴다.
"어떻게 알았어?"
"척 보면 알지."
"와…. 둔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 우리 민준이, 칭찬해!"
"놀리지 말고. 무슨 일인데?"
예원이는 말했다. 박채린과 연습 중인데, 예전 실력이 나오지 않는다고.
'그 약빨을 계속 유지하는 게 애초에 무리지.'
그래서 내가 남발하지 않았던 거다.
'자존감이 땅까지 추락했네. 쯧.'
예원이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나 혼자 하는 거면 모르겠는데, 채린 언니한테 민폐를 끼치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답답해서. 그래서 바람 쐬려고 너한테 부탁한 거야. 나와줘서 고마워, 민준아."
이때였다.
냐암!
말하느라 내렸던 손, 거기에 잡혀 있던 아이스크림을 범이가 덥석 물었다.
"아앗!"
예원이가 깜짝 놀라서 일어나려고 했는데, 내가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괴물 뉴트리아나 서큐버스도 먹는 애야.
"안 돼! 사람 먹는 거 먹고 아프면 어떡해!"
괜찮다니까.
걘 조만간 괴물 개구리도 먹을 예정이라니까.
규우우웃!
아이스크림을 처음 먹어 본 범이의 반응도 굉장했다. 콘을 물고 옆으로 튀더니 걸신들린 것처럼 먹어 치웠다. 녀석의 움직임을 예원이가 따라갈 리 없었다.
"놔둬. 하하!"
나는 예원이의 손을 잡아끌고 벤치에 앉혔다.
"히잉. 미안해."
"괜찮다니까. 그보다."
한 손을 뒤로 뺐다.
'소환, 서큐버스의 파운데이션.'
팔아 봤자 포인트도 얼마 주지 않는 아이템, 예원이 자존감 올리라고 줘야겠다.
"어머? 이게 뭐… 야?"
"선물."
"서, 선물?"
"응."
포장지는 없었다. 아니, 포장은커녕 박스도 없다. 하지만 무려 매력+3이나 붙은 물건답게 여자가 볼 땐 영혼까지 사로잡는 모양이다.
"고… 마워… 민준… 아."
아, 이거 위험한 거 아니겠지?
예원이는 몇 대 맞은 사람처럼 파운데이션을 두 손으로 꼭 쥐고 말했다. 그러더니 토옥 뚜껑을 열었다.
"아아아아…."
감전된 사람처럼 몸을 바르르 떨던 예원이가 이끌리듯 쿠션을 잡고 작은 거울을 보며 볼에 톡톡 두드렸다.
그리고 이때 나는 보았다.
화아아아악-!
-내 귀에 도청 장치가 있어요!
소리치면서 벌거벗고 뛰어도 이렇겐 주목을 받지 못할 거다.
"…."
나도, 저쪽 여자도, 뒤쪽에서 아이스크림을 사던 아이도, 저 멀리서 긴 목을 삐죽 내밀고 있던 기린도 예원이를 봤다.
시선 집중!
이렇게 주문이라도 건 것처럼 매력+3은 엄청난 매력을 발산했는데, 그건 곤충이 페로몬에 이끌리듯 치명적이었다.
"와아, 예뻐."
자기 자신도 저렇게 얘기하는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정말 고마워, 민준아. 근데 이거 어디서 샀어?"
예원이가 보물처럼 두 손으로 파운데이션을 꽉 잡았다.
"왜?"
"채린 언니도 하나 사다 주려고."
"그러지 마. 그거 더 못 구해. 너만 써."
"응? 그래? 왜?"
"그런 게 있어. 다신 못 사."
저걸 5만 포인트씩 쿨하게 주고 살 수 있는 날이 오면 또 모를까….
"세상에 하나뿐인 물건이라고."
"그렇구나…."
예원이가 감동한 것 같은 표정으로 미소 지었다.
크흠! 이거 분위기가 요상한데?
나는 냉큼 일어났다.
그리곤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범아! 멀리 가면 안 돼!"
괜한 범이 탓을 하며 움직이려는데, 내 손을 잡아 오는 부드러운 것이 힘으로 나를 당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