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9화
유니크라니!
유니크라니!!
【이제 활 통에 불 기름을 장착해 불화살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와… 미쳤다…."
【불 기름은 무제한 이용하실 수 있으며 캐스팅 중엔 시전자에게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더니….
눈물이 다 핑 돈다.
오랫동안 정글에서 헤맸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유니크…."
처음 본 등급에 손이 덜덜 떨릴 지경이었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중급 필라테스 이용권을 구매할 수 있습니다. 재능마켓을 확인하세요.】
나는 홀린 듯 돌아서서 유리 벽으로 걸어갔다. 오른쪽 하단에 새로운 물건이 보였다.
【중급 필라테스 이용권을 구매하시겠습니까? 1,000p.】
"줘."
포인트는 넉넉했다.
【1,000p가 소모되었습니다.】
【누적 포인트 11,300p.】
정글에서 원숭이 잡고 이것저것 해서 쌓인 포인트가 이렇게나 많다. 여차하면 아까 그 부품들도 팔아치우면 된다.
【선택할 수 있는 중급 필라테스는 '밸런스 볼 올라서서 스쿼트 10,000번'입니다. 힘+3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힘+3이라니!
'확실히 중급인가?'
1씩 오르던 것이 3으로 뛰었다. 1만 올라도 엄청났었는데, +3이 오르면 대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벌써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유니크에 재능마켓 체류 시간 1,000시간까지 벌고 중급 필라테스까지. 이번 미션은 확실히 대박이었어.'
어쨌든 서브 미션도 끝냈으니 내일 아침이 되면 새로운 미션이 나올 것이었다. 필라테스는 그때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집에 가자."
아무리 샤워 후 회복되었다지만 너덜너덜해진 정신력은 집을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EMP 발생기나 활, 각종 물건들을 내 전용 붙박이장에 넣어 두고 나는 재능마켓을 나왔다.
이때였다.
지이이잉. 지이이이잉.
샤워가 방전된 배터리까지 완충시킨 건가?
"허…."
분명 꺼졌었는데?
가득 충전된 휴대폰을 보면서 메시지를 확인했다.
『아들, 바쁘지 않으면 잠깐 가게로 올래? 엄마 좀 도와줘!』
무슨 일이지?
신림으로 가야겠다.
건물을 빠져나오며 톡을 확인했다.
『바쁘니?』
예원이었다.
답을 쓸까 하다가 그냥 전활 걸었다. 정글에 오래 처박혀 있어서 그런지 괜히 사람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여보세요?
"나야."
-으응, 통화 괜찮아?
"그럼!"
-왜, 우리… 전에 약속했던 거 말인데.
"…."
약속? 무슨 약속을 했지?
망할 정글 때문에 머릿속이 다 날아가 버렸다.
-놀러 가기로 했었잖아….
"아! 그랬지! 알지! 근데 너 바쁜데 시간 돼?"
-주말에 잠깐은…. 그래서 말인데, 이번 주에 어때?
"좋아."
-정말?
"응."
-그러면 10시에 어린이 대공원 괜찮니?
"그러자."
-그래, 그때 봐!
"응."
-아, 참! 고양이는 잘 있니?
"당연하지."
-혹시 그날 델고 올 수 있어? 보고 싶은데.
"알았어."
-와, 진짜? 고마워! 민준아!
전활 끊고 가방을 내려다보았다.
'야, 어째 나보다 니가 더 인기 많은 것 같다.'
지익.
가방을 열어 보았다.
은빛 덩어리가 몸을 동그랗게 말고, 쿨쿨 자고 있었다. 처음엔 그렇게 낯설어하더니 이젠 좋은가 보다.
'저 갑옷은 두르고 있어도 안 불편한가?'
나는 다시 지퍼를 잠그며 지하철에 탔다. 생각해 보니 범이를 오토바이로 만들어 타고 가도 될 것 같았지만, 지금은 지쳐서 그런지 그저 이렇게 흔들리는 전철에 몸을 기대는 게 편했다.
-이번에 내리실 곳은 신림….
얼마 전에도 어머니 가게엔 와 본 적 있었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절대 같은 곳이라 볼 수 없었다.
"뭐, 뭐야…."
황당해서 바라본 곳엔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문전성시란 말이 딱 이럴 때 쓰는 거다. 내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문을 향해 걸어가는데, 저쪽에서 누군가 말했다.
-학생! 줄 서야지!
-새치기는 안 돼요! 저도 2시간 기다렸다고요!
불같이 화를 내는 사람들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저 눈빛은….'
범이가 처음 생수를 먹어 보고 계속 채근하던 그런 갈망이 깃들어 있었다.
"알바하러 왔어요!"
-아, 그래요?
-하하! 미안합니다! 몰랐어요! 어서 들어가 보세요.
순식간에 푸근해진 인상의 사람들이 나를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일하는 사람이 더 늘었으니 빨리 자리가 나길 바라는 마음이 얼굴에 그대로 읽히고 있었다.
'설마 이렇게까지인가.'
생수가 도움이 될 줄은 알았건만, 심한데?
"엄마…."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열기가 후끈했다. 날이 더워서가 아니다. 손님들이 내뿜는 식탐이 투기까지 내고 있었다.
"아! 민준아! 아이고, 정신없어라. 거기 좀 치워 줄래?"
이미 테이블이 두 개나 비어 있었지만, 치우질 못해서 손님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서둘러 가방을 벗고 소매를 걷었다. 이미 고깃집에서 홀을 본 경험도 있었으니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쟁반에 빈 그릇을 가득 담아서 주방으로 들어갔다. 쓴 식기가 싱크대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내친김에 설거지부터!
【광택 효과가 깃들었습니다.】
설거지 중에서도 가장 난이도 높은 불판을 매일같이 닦던 나다. 이런 식기들은 그저 내 손만 닿아도 말끔히 씻기면서 광택 효과까지 머문다.
'이걸 다 어머니 혼자서 했던 건가….'
장사가 잘되길 바란 마음이 있었지만, 잘돼도 너무 잘되는 게 문제였다.
-이모! 여기 앉아도 되죠?
-제육 2인분이랑 공깃밥 7공기 주세요!
"허어…."
대체 둘이 와서 공깃밥을 왜 7개나 시키는 거냐?
-네! 앉아 계세요!
하지만 어머니는 익숙하게 주문을 받았다.
문득, 테이블이 4개밖에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아니었다면 몸이 3개라도 모자랐을 거다.
힐끔.
저쪽 구석 테이블을 봤다.
화려하게 생긴 젊은 여자가 혼자 밥을 먹고 있어 눈길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었는데, 그 여자 앞엔 이미 빈 그릇이 10개는 넘었다.
-으어어어엉! 어머니! 밥 너무 맛있어요! 내일도 또 올 거예요!
'뭐야, 저 사람은…. 멀쩡하게 생겨서.'
대체 이 식당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냐.
어쨌든 폭풍은 언제나 지나가게 마련이다.
"브레이크 타임이라도 해. 혼자 이걸 어떻게 감당하려고."
어머니 어깨를 주무르며 나는 진지하게 말했다.
"멀리서 찾아온 사람들을 어떻게 그냥 보내니?"
"그래도 혼잔 못 한다니까!"
"알아, 안 그래도 내일부턴 사람 쓸 거야. 장사가 이렇게 잘될 줄 누가 알았니? 호호호!"
모든 사장님들은 아무리 몸이 힘들어도 손님이 많은 게 좋은 거다. 어머니도 세상을 다 가진 사람 같았다.
"근데 민준아, 강남 사모님한테 물 더 얻을 수 있겠니?"
"벌써 다 떨어졌어? 반 컵씩 넣은 거야?"
"그럼! 100인분에 딱 반 컵씩! 정확히 하는데도 손님이 너무 많아서 다 떨어져 가지 뭐니."
그나마 생수가 10포인트라 부담이 없었기에 망정이지 잘못하면 거덜 날 뻔했다.
'드링크는 시도도 못 하겠네.'
생수로도 이런데, 꿀물이라도 반찬에 섞었다가는 가게 앞에 매일같이 좀비 떼가 몰려들 것 같았다.
"알았어. 내가 말씀드릴게."
"고마워! 나중에 엄마가 꼭 보답한다고 말씀드려."
"보답은 무슨…."
지금이라도 내 전용 장롱에서 소환하면 되겠지만 이상하게 보일 게 분명하니 내일 아침에 두고 가자.
"엄마."
"응?"
"무리하지 마. 건강한 게 가장 중요하잖아."
"호호호! 알아! 근데 장사가 잘되니까 진짜 살맛 나지 뭐니?"
만병의 근원은 스트레스라 했다. 그렇게 보면 이것도 나쁜 건 아니긴 한데….
"그래도. 내가 걱정하는 거 알잖아."
"알았어! 우리 아들!"
이러다가 우리 어머니… 요식 업계의 재벌 되시는 거 아니야?
"됐어. 그만해. 이제 하나도 안 아파."
"으응."
나는 웃으면서 맞은편에 앉아 어머니께 드링크를 하나 내밀었다.
"색이… 왜 이래?"
"요즘 유행하는 에너지 음료라 그래. 비타민 같은 거야."
"그러니?"
어머니는 대체 에너지 드링크를 마시며 웃었다. 정글 원숭이들도 저것만 먹고 살았었으니, 몸에 필요한 영양소는 다 채워지리라. 그러다가 문득 병을 잡은 어머니 손을 봤다.
'언제 저렇게 거칠어지셨지.'
문득, 두 가지 아이템이 떠올랐다.
'서큐버스의 파운데이션과 매니큐어라면….'
아니야!
갑자기 끔찍한 생각이 떠올랐다.
어머니도 분명 여자다. 아름다워지고 싶은 본능도 있으실 거다. 하지만 이렇게 손님이 많은데, 어머니에게 매력까지 붙어 버리면?
'죄송해요, 어머니. 나중에 더 좋은 거 드릴게요.'
밥에 취한 아저씨들이 어머니께 무슨 수작을 부릴지 모른다는 생각에 아쉬움을 속으로 삼켰다.
.
.
.
다음 날 오전 6시.
어김없이 메시지가 왔다.
【재능마켓에서 미션을 확인하세요.】
【24시간 안에 확인하세요. 거부 시 심장 마비, 뇌출혈, 암….】
"알았어! 간다니까?"
알람을 끄듯 외친 나는 일단 신림으로 가서 엄마 가게 앞에 생수 16병을 놓았다. 이게 내가 가진 전부였다. 이따가 재능마켓에 가면 넉넉히 사서 장롱에 넣어 둬야겠다.
그리곤 학교로 향했다.
정글에서 오래 있다가 나와서 그런지 한가한 학교 풍경이 너무도 안락했다.
꾸웃!
범이도 좋은지 가방에서 쏘옥 빠져나와 학교 담벼락으로 성큼 올라갔다.
"야! 그거 함부로 쓰면 안 돼!"
나노 갑옷을 입은 고양이는 누가 봐도 이상하다. 당부하려는데 범이는 이미 사라진 후였다.
교실로 들어갔더니 아이들이 중간고사 얘길 하고 있었다.
-공부 많이 했어?
-아니!
-오늘부터 우리 집에서 밤새울까?
아, 요즘 공부에 소홀하긴 했다. 목숨 줄이 왔다 갔다 해서 어쩔 수 없었다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잃고 싶진 않다.
'기회는 있어.'
나는 중급 필라테스에 희망을 걸고 있었다. 힘+3을 얻고 난 다음엔 뭐가 나올지 기약할 수 없다고 해도 언젠가 반드시 지력이 나올 거다. 그러면 중간고사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겠지?
'아득하네.'
이렇게 학교에 와서 수업을 듣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저 녀석들은 어제도 나를 봤겠지만, 내겐 몇 달 만의 출석이었다.
'그래도….'
나는 웃었다.
'나쁘진 않아.'
.
.
.
학교가 끝나자마자 재능마켓에 왔다. 어떤 미션이 나올진 모르겠지만 유니크 아이템도 얻은 마당에 두려울 건 없었다.
【중급 필라테스 이용권을 사용하시겠습니까?】
"아니, 일단 미션부터."
유리 벽으로 걸어가며 말하자 진열장 물건들이 자릴 잡아 가고 있었다.
【미션: 한강의 괴물 3종을 사냥하라.】
【서브 미션: 보조 직업을 선택하라.】
"괴물? 보조… 뭐?"
【한강의 괴물 3종이 번식하기 전에 처리하세요.】
【보조 직업은 재능마켓에서 스킬북을 구입해 익힐 수 있습니다. 다양한 보조 직업을 익힐 수 있지만, 보조 직업으로 선택된 스킬은 숙련할수록 진화합니다.】
괴물? 번식?
당최 알 수 없는 얘기에 우선 스킬북부터 봐야겠다.
책처럼 생긴 게 눈에 띄었다.
저건 어제까지만 해도 없던 거였다.
【보조 직업: 세공. 물건을 정밀하게 다듬을 수 있다. 가격:20,000p.】
【보조 직업: 요리. 사냥감을 맛 좋게 가공할 수 있다. 가격: 20,000p.】
【보조 직업: 드링크 제조. 각종 추출물로 드링크를 만들 수 있다. 가격: 20,000p.】
오호라!
"이거!"
답은 이미 나와 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