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마켓-67화 (67/277)

#067화

【추가 타격 효과가 발동합니다.】

쉬이이이이익!

화살이 날았다.

퍼억!

가슴에 명중한 화살에 원숭이는 비명을 지르며 벽에 처박혔다.

【50포인트를 얻었습니다.】

【축하합니다! 서브 미션을 달성했습니다!】

【전용 무기의 숙달로 이제 전용 무기 스킬이 출현합니다.】

'오오… 드디어.'

【중급 필라테스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재능마켓에서 확인하세요.】

'중급 필라테스!'

살아 나가야 할 이유가 한 가지 더 늘었다.

피라미드에 들어온 것도 일주일이 지났다. 나는 그간 환풍구를 이용해서 곳곳을 누비며 원숭이를 사냥했는데, 이제까지 내가 사냥한 원숭이가 무려 100마리에 가깝다. 마리당 50포인트였으니 5,000포인트 가깝게 누적했고, 활의 숙련도도 점차 올라서 이제 활이 직선거리의 가까운 표적을 빗나가는 일이 거의 없었다.

콰드득!

환풍구에서 뛰어내린 범이가 사냥한 원숭이를 먹고 있었다. 범이는 맹수다. 나처럼 초코바로 허기를 때울 순 없었다.

'곧 밤이 온다.'

내가 밤을 기다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원숭이들이 밤엔 잠을 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처럼 마냥 무방비로 자진 않았다. 나란 존재 때문에 불침번 원숭이가 생겨났고, 거대 원숭이도 홀에 있었다.

'오늘은 놈을 찾아야 해.'

먹을 것이 떨어졌다. 이 밤이 지나면 원숭이를 구워 먹든지 아니면 밖에 나가서 과일을 따야 했다.

'놈들도 사냥당한다는 걸 알았는지 홀에서 잘 나오질 않고 있어.'

나는 피라미드의 아래쪽까지 내려와 있었다. 여기선 홀이 내려다보이는데, 그간 알아낸 사실은 원숭이들이 녹색 액체를 마시면서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정확히 뭔진 모르겠지만, 원형 기계가 액체를 끊임없이 만들어 내고 있었는데, 거대 원숭이마저 그걸 마시면서 살았다.

'우선은 좀만 더 참자.'

녀석들이 먹는 걸 보면 나도 급하면 먹어 보긴 해야겠지만, 어떤 효과를 낼지 알 수 없으니 우선 지켜봐야겠다.

'똑똑한 놈이야.'

원숭이 왕은 지난 일주일 동안 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자기 부하들이 사냥당하는 걸 알면서도 어디 처박혀 있는지 모르겠다.

'아니면 겁쟁이거나.'

다행히 원숭이들은 허약했다. 거대 원숭이만 피하면 내게 위협될 게 없었다. 그 거대 원숭이 한 놈이 문제긴 한데, 녀석은 그 몸집 때문에 내가 이동하는 루트에 나타날 수 없었다.

'어느 쪽이든 반드시 찾고 만다.'

정글에 온 것도 두 달.

이젠 내 일상이 어땠는지도 까마득하다. 머릿속에 온통 원숭이다. 약한 놈들이라곤 해도 나에 비하면 그렇다는 거지, 놈들에게 둘러싸이면 나도 장담할 수 없어서 잠도 깊이 못 잔다. 그나마 범이가 있어서 기척을 미리 감지할 순 있었지만, 이건 일방적인 싸움이 아니라 서로 먹고 먹히는 경쟁이었다.

'저쪽으로 가 보자.'

바닥을 손으로 두드리자 범이가 알아듣곤 뛰어올랐다. 얼마 전부터 범이는 제 모습으로 다니고 있었는데, 원숭이와 싸울 때 도움이 된다.

그르르르릉.

범이가 뒤따르면서 낮은 울림을 냈다. 녀석은 이게 재미있는 것 같다. 하긴, 평생을 토끼 사냥하고 살던 녀석이니 답답한 도시보다는 이편이 더 좋을 거다.

나도 어느 정돈 공감하고 있었다. 처음엔 살기 위해서 환풍구로 들어왔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활을 통한 수렵에 대한 재미를 알아가고 있었다. 돌아갈 수만 있다면 좀 더 다양한 화살을 사야겠다고 마음까지 먹었고.

"…."

나는 환풍구 끝에서 머릴 스윽 내밀었다. 홀 아래가 보였다. 역시 어두워지자 원숭이들이 거대 원숭이 근처로 모여들고 있었다.

'좋아, 시작하자.'

원숭이들의 숫자를 다 센 뒤 왔던 곳으로 돌아갔다. 그리곤 방으로 뛰어내려서 통로로 나갔다. 모든 원숭이가 홀에 모여 있는 지금이 내가 활동하기에 가장 좋다. 초반엔 거대 원숭이가 밤새 날뛰었지만, 원숭이들이 하나씩 사냥당하자 거대 원숭이도 홀을 떠나지 않았다.

휙휙!

몇 개의 통로를 지나친 뒤 계단을 통해 살금살금 위로 올라갔다. 내가 가 보지 못한 방들을 뒤져야 했다.

'피라미드 밖으로 나간 건 아니겠지?'

그건 아닐 거란 생각은 수족처럼 따르는 거대 원숭이가 여기에 있는 것으로 뒷받침되었다.

그렇게 나는 3시간을 더 수색했다. 빠르게 달리고 있기 때문에 빈방들을 확인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고층에 있는 건가?'

다시 계단으로 나가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몸을 돌리는데 통로 끝에 뭔가가 보였다.

"…?"

원숭이가 서 있다. 그런데 놈이 망토를 둘렀다.

'저놈?'

나만 보면 부리나케 도망치던 녀석이었는데, 지금은 저쪽 끝에서 당당하게 서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뭐 하자는 거지?'

내가 황당해서 보고 있는데, 범이가 상체를 낮추며 으르렁댔다. 범이는 원숭이들에겐 천적 그 자체다. 그런데도 원숭이 왕은 콧방귀를 뀌며 움직이지 않았다. 여긴 좁아서 거대 원숭이의 도움도 받지 못할 것인데, 무슨 자신감인지 모르겠다.

'상관없지! 놈이 나타났다는 게 중요하니까.'

이번엔 절대 놓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 활을 들었다. 그리곤 조금씩 놈을 향해 걸어갔다.

"…어라?"

거리가 가까워지자 이상한 게 보였다.

"뭐야…?"

망토만 걸치고 있던 원숭이 왕이었다. 그런데 지금 놈의 전신에 뭔가에 덮여 있었다. 그건 은빛을 냈고, 마치 스테인리스 냄비처럼 반질거렸다.

-끼끼끼끼!

놈이 괴성을 지르며 이쪽으로 뛰어왔다.

"…!"

어이가 없었지만, 정확히 조준해서 놈의 몸통을 향해 쐈다.

쌔애애애액!

날아간 화살이 놈의 명치에 정확히 닿았는데,

"헛?"

팅!

화살이 튕겨서 옆으로 처박혔다.

철도 뚫는 강철 촉인데, 놈의 외갑을 뚫지 못한 거다.

캬아아아아!

범이가 날아올랐다.

거대 원숭이는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은빛으로 덮여 있었는데, 범이가 다가오자 팔을 휘둘렀다.

퍼억!

범이의 앞발이 녀석의 팔과 닿았다. 그런데 웬걸? 힘에서 밀리지 않는다.

"…?"

범이가 움찔할 때, 놈의 주먹이 범이의 얼굴을 때렸다.

깨앵!

힘이 어찌나 좋은지 범이가 옆으로 처박혔다. 나는 이때 두 번째 화살을 쏘고 있었다.

티잉!

"…!"

더 가까운 거리에서 쐈는데도 뚫지 못했다. 그렇다고 손가락만 빨 순 없었기에 세 번째 화살도 시위에 먹였는데, 원숭이 왕은 그런 나를 보면서 가슴을 쫙 펴고 웃었다.

-끼끼끼끼끼!

'얄미워!'

이번엔 녀석의 얼굴을 향해 쐈다. 하지만 놈은 확실한 믿음이 있는지 피하지도 않았다.

팅!

역시 화살은 뚫지 못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쩌엉-! 한기 효과가 들어갔다는 거다.

"범아! 튀자!"

-끼이이?

서리가 내린 것처럼 얼어붙은 놈을 뒤로하고 범이와 나는 놈을 지나쳐서 뛰었다.

'대체 저게 뭐지?'

원숭이 왕이 두른 은빛 물체를 화살이 뚫질 못했다. 단순하게 방어력만 오른 게 아니다. 범이가 한 방에 나가떨어질 정도로 힘까지 상승했다.

일단 정면에서 상대할 수 없으니 거릴 벌려야 했다. 계단을 뛰어오르며 가까운 통로로 나와서 방에 숨었다.

"헉, 헉헉."

그래도 안심이 안 돼서 환풍구로 올라갔다. 그리곤 계속 이동하면서 생각했다.

'저런 모습으로 나타나기까지 일주일이나 걸렸어.'

환풍구를 기어가며 아래를 보았다. 파괴된 것들이 수북한 방이 내려다보였다.

'무슨 수를 쓴 걸까?'

내가 원숭이라고 생각해 보자. 이 피라미드에서 대체 얼마나 살았는진 몰라도 놈들은 위협이 없었을 거다. 거대 원숭이 한 마리면 어떤 맹수도 한주먹 거리였을 테니까.

'근데, 왜….'

저런 강력한 무기가 있었다면 왜 처음부터 들고나오지 않았을까?

나는 퍼뜩 깨달았다.

"…!"

'찾느라 시간이 걸린 거야.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어.'

녀석은 원숭이다. 사람의 지능보단 현저히 낮을 것이다.

'사용법을 몰랐거나.'

어쨌든, 녀석은 성공했다.

그리고 그 무기는 판세를 바꿀 만큼 위력적이었다.

그렇다면?

'찾아야 해.'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놈의 약점이 될 만한 정보가 필요했다.

'지속 시간이 얼마나 될까?'

저렇게 강력한 병기가 설마 무제한인가? 그런 끔찍한 일은 없길 바라면서 나는 내가 가 보지 못한 곳 위주로 탐색했다. 언제 놈이 뒤에서 나타나 기어 올지 모른다는 경각심을 가지면서 움직이고 또 움직였다.

'최악의 상성이었어.'

활이 통하지 않는 적을 만났을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이 아니었지만, 막상 닥치니 눈앞이 캄캄했다.

'앞으론 이런 일도 대비해 둬야 해.'

그때, 범이가 앞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어? 야!"

말리기도 전에 후다닥 앞으로 나가서 아래로 훌쩍 뛰어내리는 범이를 보면서 나는 속도를 높였다.

"…어?"

처음 봤다, 이렇게 온전한 곳은.

내려간 범이가 문가로 향했는데, 항상 열리던 문이 반응조차 안 했다.

이것도 처음 겪는 일이었다.

"너! 함부로 만지지 마!"

엉덩이를 들썩거리는 걸 보니 또 사고를 칠 것 같아서 녀석의 몸을 붙잡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50평 정도 되는 넓은 공간이었다.

사방에서 용도를 알 수 없는 기계들이 불빛을 내고 있었고, 근처의 선반엔 몇 가지 물건이 있었다.

"흐음."

그중의 하나를 집어 보았다.

【마스터키를 얻었습니다. 모든 문을 열고 닫을 수 있습니다.】

"오호?"

열쇠처럼 보이진 않았는데, 짧고 뭉툭한 막대기가 이런 막강한 물건이라니!

그 옆의 것도 들어 봤다.

【전능한 EMP 발생기(레어)를 얻었습니다. 모든 기계를 잠시 무력화할 수 있습니다. 충전 소요 시간 8시간.】

"이야, 이거 대박인데?"

마스터키에 이런 물건까지?

아마도 여긴 매우 중요한 사람이 쓰던 방이었나 보다.

호기심이 더 생겼다.

마스터키와 EMP 어쩌고를 주머니에 잘 넣어 두고 샅샅이 방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회생 드링크를 얻었습니다. 내외부 상처에 탁월한 효과를 발휘합니다.】

'오호라!'

【대체 에너지 드링크를 발견했습니다. 마시면 필요 영양소와 공복감을 충족할 수 있습니다.】

녹색 액체!

원숭이들이 홀에 모여서 마시던 게 바로 이거였나 보다. 보물 창고라도 만난 듯 나는 신나서 방을 뒤졌다. 몇 가지 물건이 더 나왔지만, 어디에 쓰는 건지 모르겠다.

"끝인가?"

성한 기계들이 잔뜩 있었지만, 저것들이 뭘 하는 용도인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가져갈 수 있는 건 모조리 가방에 때려 넣었다. 빵빵해진 가방을 보면서 나는 환풍구를 보다가 문득 생각을 바꿨다. 그리곤 열리지 않는 문으로 걸어갔다.

'마스터키….'

오직 나만이 피라미드의 수많은 방들의 문을 열고 닫을 수 있다면 이걸 전술적으로 어떻게 쓸 수 있을까?

그리고 또 하나.

'EMP….'

전자 장치를 무력화한다고 했다. CCTV나 컴퓨터, 휴대폰 같은 것들도 해당할까? 무엇보다 그놈이 쓰던 그 은빛 갑옷 같은 것도 전자 장치인가?

'실험해 볼 수밖에 없어.'

안 되면 또 다른 방법을 찾더라도 일단은 그놈을 다시 만나야 할 것 같다.

'이 버튼을 누르는 건가?'

문가에 서자 마스터키의 한 부분이 반짝거렸다. 그 부분을 손가락으로 눌렀다.

지이이잉.

아주 오래 닫혀 있던 문이었는지 먼지가 떨어졌다.

"호오."

통로로 나가서 다시 눌러 봤다.

지이이잉.

문이 닫혔다.

"간단하네."

내가 이 피라미드에서 느낀 건 이곳의 기술들은 매우 진보했다는 것이었다. 단적인 예로 녹색 액체만 해도 그랬다. 어떤 음식도 없이 영양소를 다 채울 수 있다지 않나? 회생 드링크는 또 어떻고?

'내가 재능마켓에서 얻던 드링크들이 이런 기술로 만든 건가?'

어쩌면 그 재능마켓 자체와도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통로로 나아갈 때, 저쪽에서 소리가 들렸다.

-우끼끼끼끼!

그 자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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