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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마켓-62화 (62/277)

#062화

바바바바박!

숟가락으로 크게 뜨면 공깃밥 하나는 숟가락질 여섯 번 안에 끝난다.

아무리 그렇다지만….

"예지 씨…."

"천천히 먹어…."

그녀가 밥그릇을 뚝딱 비운 건 고작 1분도 안 걸렸으니, 앞의 두 사람은 걱정이 앞섰다.

그런데 정작 그녀 자신은 그걸 인식하지도 못하는 것 같았다. 이 식당의 다른 사람들처럼 그저 먹는 것 자체에만 푹 빠져 있었는데, 아직 제육도 찌개도 안 나왔건만 김치 하나만으로 한 공기를 끝내 버렸다.

"언니, 그거 저 먹어도 돼요?"

"아, 으응. 그럼요."

아직 한술도 뜰 새가 없던 작가는 자신의 밥을 내밀었다. 그걸 빠르게 낚아챈 서예지는 황홀한 표정으로 숟가락을 들었다.

두 번째는 첫 번째보다 더 빨랐다.

"이, 이모님! 여기 밥 세 공기… 아니, 차라리 다섯 공기 주세요!"

작가가 외칠 땐 이미 스태프도 자신의 그릇을 서예지에게 내밀고 있었고, 김치를 가져오려고 일어났다.

'장난 아닌데?'

말은 단 한마디도 안 하고 밥을 퍼먹기만 하는 서예지의 모습을 보며 작가는 황당해서 입을 떡 벌렸다. 이제까지 이런 적은 단 한 번도 없지 않았나?

'왠데? 왜 이러는데?'

꼴깍, 침을 넘길 때 아주머니가 밥을 가져다주셨다.

"호호호! 참 복스럽게도 먹네요. 천천히 드세요. 체해요."

"으흐으으흑."

서예지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아, 아가씨?"

"괜찮아요. 너무 맛있어서 그래요, 너무 맛있어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맛있는 밥 지어 주셔서요."

방송 때문이 아니었다. 남들 1인분 먹을 때 10인분 먹고 살아온 그녀여서 더 그랬다. 그녀에게 음식은 곧 삶이자 인생이었으며 사랑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서예지는 오늘 찐사랑을 만났다.

밥그릇 하나씩 작가와 스태프에게 건네고, 나머지 세 개는 서예지 앞으로 왔다.

여전히 제육 같은 건 없다.

스태프가 가져온 김치 하나가 전부.

하지만 서예지는 상관없었다. 그녀에게 이 밥은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음식이었으며 완전체였다.

그녀가 세 그릇을 더 비웠을 때, 제육과 찌개가 나왔다.

-부럽다….

-나도 저렇게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진짜 부러워….

주변 사람들은 '먹방' 하는 그녀에게 호기심을 가지는 게 아니었다. 단지 그녀의 위장을 탐낼 뿐이었다.

-잘 먹었습니다!

-또 올게요!

-후아, 세 그릇이나 비웠어.

-내 인생 맛집이야.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갈 때도 서예지는 묵묵히 밥을 먹었다.

"예지 씨… 괜찮아?"

벌써 20공기가 넘었다. 그러나 누가 보면 이제 막 앉은 사람처럼 밥을 먹고 있다. 말도 하고 시간도 끌면서 방송해야 소화도 되는데, 이렇게 계속 먹기만 하면 얼마 못 버틸 거다.

"언니…."

"네?"

"나 오늘 여기서 죽을래요."

"그게 무슨 말이야?"

작가가 만류하기도 전에 서예지가 손을 번쩍 들었다.

"어머님! 여기 밥 열 개 더 주세요!"

.

.

.

배가 고팠다.

정글에 들어온 게 벌써 닷새.

지금까진 이런저런 것들을 씹으면서 버텼는데, 더는 안 되겠다. 이쪽이 노출될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제대로 먹어야 기력을 채울 수 있을 것 같다.

일단, 불을 피웠다.

지금껏 참아 온 것이 아쉽지만, 정글의 밤은 그야말로 끔찍했고, 어둠을 밝힐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지가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습기가 많아서 그런지 불이 잘 붙지 않았다. 그래도 내 의지는 꺾을 수 없었다.

'붙었다.'

타탁, 미약하던 불씨가 화르륵 타올랐다.

나는 모닥불 주위로 오늘 사냥한 것들을 가져왔다. 이게 뭔진 모른다. 하지만 지금 난 뭐든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쥐같이 생겼는데, 엄청 크네.'

팔뚝만 한 놈이니 한 마리면 충분히 허기를 채울 수 있을 것 같다.

'자, 실력 발휘 좀 해 볼까.'

이제 이걸 그대로 구우면 안 된다는 것 정도는 안다. 고깃집 아저씨에게 칼질을 배우려고 이것저것 정보를 검색하다 보니 가죽 벗기는 거나 뼈를 어떻게 분리하는지 정돈 습득했다.

갸르르릉.

집 나갔다 돌아온 범이가 저 옆에서 누워 졸고 있었다. 녀석은 얼마나 잘 잡아먹고 다녔으면 배가 축 늘어진 것 같았는데, 살짝 얄밉기도 하다.

하지만 어쩌랴.

범이의 오감이라면 적이 접근했을 때 나보다 먼저 알아차릴 것이고, 녀석이라도 먹어 체력을 채웠다면 다행이지.

좌악.

가죽이 고기와 분리됐다.

지난번의 아쉬움에 챙긴 맥가이버 칼과 라이터가 어마어마하게 유용하다.

지난 오 일.

나는 미친 듯이 활을 쐈다.

처음엔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무작정 정글을 쏘다녔지만, 어느 순간부턴 이번 미션이 장기전이 될 것 같다는 예감을 받았다. 정말이지 정글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뱀이든 뭐든 움직이는 건 닥치는 대로 사냥하며 다녔다. 그러다 보니 온몸은 땀과 습기 때문에 번들거렸는데, 이 끝도 없는 숲에는 씻을 물가도 없었고, 변화도 없었다. 온통 나무 또 나무였다.

그래, 나는 기분 전환이 필요했다.

"어머니…."

어머니가 차려 주신 따듯한 밥이 생각났다. 그거 한 그릇만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 하지만 일단 이 고기라도 구워 먹으면 갈증이 씻길 것 같다.

활 통에서 화살 하나를 꺼냈다.

화살이지만 꼬치로 쓰기엔 무리가 없다.

'역시 편해. 오만 포인트 값어치를 톡톡히 한다니까.'

사실 전엔 활보다 화살 보관이 더 까다로웠다. 그런데 이제는 이 활 통 하나면 화살은 무제한 보관이 가능했다. 화살 하나 아까워서 재활용하던 때를 생각하면… 크흡! 눈물이 앞을 가린다.

불이 활활 붙자 활 통에서 나무 화살을 한 다발 꺼내 불에 던져 넣었다. 주변에 나무가 많다지만, 화살이 더 잘 말라 있었고, 무제한이니 쓰지 않을 이유도 없다.

화살에 꿴 고기를 가장자리에 댔다. 타지 않게 계속 굴려 가면서 생각했다.

'원숭이는 한 번도 못 봤어. 내가 아직 놈들의 군락지를 찾지 못했거나 아니면 놈들이 숨어 있다는 거겠지.'

사각, 사가각.

이젠 이골이 났다 생각해도 소리가 들리면 본능적으로 고개가 돌아갔다. 며칠 전에 개미 같은 거에 물렸다가 손등이 퉁퉁 부어오른 걸 생각하면 여기선 크기가 작다고 우습게 봐선 안 된다.

"…."

잠귀가 밝은 범이가 미동도 하지 않는 걸 보니, 내가 예민하긴 한가 보다.

다시 고기를 구웠다.

구워도 풍기는 누린내는 어쩔 수 없었지만, 허기진 내가 가릴 처지는 아니었다. 소금도, 후추도 없지만 바싹 익은 겉면을 한 입 베어 무니 턱 안쪽이 찌르르하다.

'뭐, 먹을 만은 하네.'

도마뱀도 날것으로 먹었던 고원의 경험이 없었다면 이것을 먹는 게 더 힘들었을 수도 있겠다. 이래서 경험이 중요한 거다.

한 마리를 해치우고 어느 정도 부른 배를 손으로 만지면서 모닥불 옆에 누웠다. 그러자 범이가 벌떡 일어나더니 곁으로 와서 품에 파고들었다.

"너나… 나나…."

이렇게 정처 없이 떠도는 삶을 삶게 될 줄 누가 알았겠나.

"후우…."

여기서 나가려면 원숭이 왕을 찾아야 한다.

'혹시 지하에 있거나 하진 않겠지?'

다큐멘터리 같은 걸 보면 사원 근처에서 모여 살기도 하고 그러던데.

"…."

화살을 더 꺼내서 불에 던져 놓고 억지로 눈을 감았다. 하지만 깊이 잠들진 않을 거다. 여기서 그랬다간 아침에 일어났을 때 큰 뱀을 목도리처럼 두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선잠을 자는 것도 오늘이 지나면 엿새다.

'내일은 뭐라도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

.

.

"야."

"저 예원이에요, 언니."

"알았으니까, 야."

"…왜요?"

연습실.

"너, 걔랑 무슨 사이야?"

"누구요?"

"왜, 있잖아. 친척이라고 구라 쳤던 애."

박채린은 예뻤다. 하지만 또 의외로 살인적인 연습도 군소리하지 않고 소화할 만큼 독종이었다.

그래서 성격이 저러나…?

'지랄 같다니까.'

엄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예원이조차 감당하기 버거울 때가 많았다. 하지만 팀이 된 이상 버텨낼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달은 예원인 노련하게 그녈 대했다.

"아시면서 뭘 물어요."

"사귀냐?"

"그건 아니에요."

"썸 타?"

"글쎄요."

"흐응…."

다른 언니들 같았다면 와서 고민 상담도 들어 주고 '걔랑 잘되는 방법' 같은 걸 훈수하겠지만 박채린은 아니었다. 저 눈빛만 봐도 무슨 생각하는지 대강 알겠다.

다리 꼬고 누워서 발을 건들거리던 박채린이 일어나 앉으며 말했다.

"대표님 말씀처럼 넌 말주변 좀 늘려야 돼. 요즘 어떤 세상이니? 노래만 잘해선 밥 빌어먹고 살기 힘들다니까?"

"알아요…."

인정하긴 싫지만 맞는 말이었다. 예능에 나가서 얼굴도 비추고 인터뷰도 하려면 싫어도 해야 하는 일들이 있다.

"땀 식었어?"

"네."

"그래, 다시 해 보자."

거울 앞에 선 두 사람이 나란히 서서 '신곡'의 도입부 자세를 잡았다.

"쓰리, 투, 원."

박채린의 구령에 맞춰 시작되는 연습.

"몰래, 몰래 지켜보고…."

"하아."

박채린이 멈췄다.

"그게 아니잖아."

그녀의 인상이 잔뜩 일그러졌다.

"왜 그때처럼 못 하는데? 나 엿 먹이려고 그러니?"

"아니에요. 제가 왜 그래요?"

"근데?"

"…저도 잘 모르겠어요."

오디션 당시 예원이는 모두가 흠뻑 빠질 정도로 노래했다. 박채린도 그걸 인정했기에 유닛 활동을 덥석 문 거다. 그런데 그때만큼의 기량이 나오지 않으니 박채린으로선 짜증이 치솟을 수밖에 없었다.

"다음 주가 녹음이라고. 이러면 우리 둘 다 죽도 밥도 안 돼. 알아?"

"네…."

"후우…. 1시간 쉬고, 다시 하자. 목 풀어."

박채린이 연습실을 나가 버리자 홀로 남은 예원이는 울적한 표정으로 쪼그려 앉았다.

"나도 정말 모르겠다고."

그날의 감동이 이렇게 생생한데, 왜 그때처럼 노래할 수 없을까?

문득 그녀가 휴대폰을 들었다.

『바쁘니?』

씩씩하게 뭐든 다 잘 해내고 싶지만, 이럴 때마다 그 애 얼굴이 생각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

.

.

핸드폰을 봤다.

시간은 14일째 멎어 있었다.

초반 일주일은 어떻게든 제정신을 유지하려고 애써 봤는데, 이제 다 포기해 버렸다.

머엉.

퍽, 퍽퍽!

정글도가 나뭇가지를 시원하게 잘라 나가는데도 나는 무표정이 되어 있다. 아마 원주민들이 이런 감정일 거다.

차르륵!

옆에서 기척이 나자마자 정글도가 그쪽으로 날았다.

"…!"

허리가 잘린 뱀이 바닥으로 추락했다. 하지만 나는 무심히 다가가 다시 칼을 잡고 전진했다.

사람의 정신이 붕괴하려면 시간은 딱 2주가 필요하다. 붕괴했다고 말하기엔 너무 과한가? 그래, 그러면 완벽한 적응이라고 하자.

우뚝.

멈춰 서서 활을 잡았다. 그리곤 '강철 촉' 화살 하나를 꺼냈다. 일반 화살로는 저걸 사냥할 수 없다.

"…."

그으으으윽!

시위가 벌어지고, 강철 촉을 매단 화살이 티잉! 빠르게 날아갔다.

【바람을 무시합니다.】

【명중률이 상승했습니다.】

시원하게 22미터를 날아간 화살이 나무에 틀어박혔다.

퍼어어어억!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다.

나무를 뚫고 반대편까지 삐죽 튀어나온 화살촉은 뒤에 숨어 있던 놈까지 꿰뚫었다.

-키에에에에에엑!

거미가 기괴한 소리를 내면서 죽었다.

저 거미는 몇 번 마주한 적이 있어서 가까워지기 전에 죽여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몸통이 나보다도 크고, 다리는 그 하나하나가 몇 미터씩이었다. 골치 아픈 건 놈이 위에서 침을 뱉는다는 건데 그 침이 매우 고약하다. 고약하기만 할까? 냄새만 맡아도 치명적이었다.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70p를 얻었습니다.】

여기서도 사냥을 하면 포인트를 얻었다. 쥐가 5 정도고, 위험도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았다. 저 거미가 무려 70이니 무조건 보이면 멀리서 죽여야 한다. 포인트 때문만이 아니라 저놈이 나를 사냥하려고 슬금슬금 다가올 게 확실하기 때문이다.

'확실히 쓸 만해.'

강철 촉의 화살은 1개에 무려 5포인트다. 며칠 전부터 쓰기 시작했는데, 흠뻑 중독될 정도로 위력이 강했다. 갑옷도 뚫을 만큼 위력이 세다는 게 거짓이 아니었던 거다.

그래서 자신감이 더 붙었다.

이젠 뭐라도 좋으니까 원숭이 비슷한 놈이라도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칼을 쥐고 길을 뚫었다.

30분쯤 더 전진했을까?

"…!"

내 얼굴에 변화가 생길 만한 이벤트가 생겼다.

드르르르르르릉.

소리라고 하면 정확하지 않다. 이건 진동에 가까웠다.

"뭐… 야?"

언제나 평온하던 범이 역시 어느새 털을 세우며 앙증맞은 송곳니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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