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마켓-61화 (61/277)

#061화

【해당 스테이지에 입장하셨습니다.】

【확정 보상: 재능마켓 체류 시간 1,000시간.】

"여긴 어디지…."

설원에도 가 봤고, 고원에도 가 봤었다. 이제 뭐가 나와도 이상할 것 없다고 생각했는데, 넘어오자마자 밀어닥친 고온다습한 공기에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단단히 각오하고 들어왔는데도 당황스럽긴 매한가지다.

"온통 나무로 만든 건가?"

아니, 나무로 '만들었다'는 건 부정확한 표현이었다. 나무 자체가 서로 얽히고설켜 내가 있는 공간을 구성하고 있었다.

"이렇게 굵은 뿌리라니…."

그래도 보이는 게 있었기에 그쪽으로 갔다. 낡은 상자다. 뚜껑을 열었더니 커다란 칼 한 자루가 있었다.

【정글도를 얻었습니다.】

묵직하고 큰 칼.

이런 걸 마체테라고 부른다는 걸 어디서 들은 것 같다.

"이것뿐인가…."

묘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출구로 생각되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

그러자 미션이 날아들었다.

【원숭이 왕을 사냥하라!

정글 깊숙한 곳에 원숭이들의 왕이 살고 있다. 매우 난폭하고 무서우니 주의하여 사냥하자.】

"아…."

원숭이 왕.

'고블린이 50포인트였는데, 원숭이는 얼마나 되는 걸까?'

처음 잡아서인지 기준이 매번 고블린이 되는 것 같다. 어쨌든, 원숭이라…. 까다로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때, 범이가 가방에서 뛰어내렸다.

갸르르르릉.

코를 벌름거리던 녀석이 갑자기 뛰쳐나갔다.

"야! 잠깐만! 기다려!"

불러 봤지만 뭐에 홀린 듯 범이는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

나도 급히 뒤를 따라갔다.

이어 나오는 알림에 멈칫,

【안전 구역을 벗어났습니다.】

발이 멈췄다.

이제 죽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밖으로 나오자마자 알 수 있었다.

"정글…."

분명 대낮인데도 울창한 나무 때문에 빛이 거의 들지 않는 이곳은 분명 자연 다큐에서나 보았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찌르르륵, 찌륵!

정체불명의 알 수 없는 소리들이 사방에서 들려왔다. 하지만 범이는 그새 온데간데없었다.

'사냥이라도 하러 간 건가?'

그냥 맥없이 당할 녀석은 아니었으니 큰 걱정은 없지만, 참 제멋대로인 녀석이다.

'원숭이 왕이라고 했으니 무리를 이루고 있을 가능성이 크겠지?'

예전 주말이면 무료하게 보던 동물농장이 떠오르니 웃기기도 하지만, 녀석들이 군락지에 모여 있을 거란 추측은 쉽게 할 수 있었다.

또한, 그나마 원숭이란 게 마음이 놓이긴 하다. 그 강한 서큐버스 같은 녀석들이 모여 있다면 사냥해 볼 엄두나 냈겠나?

나는 주변을 살피며 나아갈 곳을 찾았다. 하지만 문자 그대로 정글인 이곳은 어디에도 길이 없었다. 그래서 정글도를 준 모양이다. 나는 손에 그걸 단단히 잡고 휘둘러서 앞의 나뭇가지를 잘랐다.

퍼억!

하지만 가지는 출렁거릴 뿐 깨끗하게 잘려 나가지 않았다. 이것도 적응이 필요할 것 같다.

'저건… 뱀인가….'

설마 하며 자세히 보니, 저쪽 나뭇가지에 길게 몸통을 늘어뜨린 커다란 뱀이 보였다.

'조심해야겠어.'

스윽.

주변을 집중해서 다시 살펴보았다.

'…뭐가 이리 많아.'

거미, 개미, 각종 곤충부터 뱀과 날벌레까지 수많은 것들이 내 주변에 머물고 있었다. 의식하고 보니 보이지만, 집중하지 않으면 놓칠 만한 위험 요소들이 곳곳에 깔려 있는 것이다. 어떤 것들이 어떤 독성이나 공격성을 품고 있을지 모르니 매우 조심해야겠다.

'여긴… 하층이겠지.'

휴대폰을 보니 시간이 멈춰 있었다. 그렇다는 건 내가 미지의 어디론가 이동했다는 뜻일 거다.

'근데 하층이 무슨 뜻이길래….'

숲으로 가려져 있지만, 뚜렷이 보이는 하늘. 하층 하면 떠오르는 지하 같은 느낌이 아닌, 세상 어디에도 없을 푸른 하늘이 숲을 감싸고 있었다.

.

.

.

먹방계의 떠오르는 신예 서예지는 작은 키에 호리호리한 몸매였지만 한 끼에 20인분을 먹어 치우는 남다른 체질이었다. 어렸을 때는 많이 먹는다고 구박도 많이 받았지만, 이제 세상이 변해서 그녀의 식사가 돈이 되었다.

"여기예요?"

구독자가 많아지다 보니 옛날처럼 혼자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일하지 않게 되었다. 승합차도 있고 유명 식당을 섭외해 주는 작가도 있었으며 영상을 찍고 편집까지 해 주는 직원도 들였다.

"네! 아마 우리가 가장 빠를 거예요. 누구도 다녀간 적 없는 숨은 맛집!"

"이쪽은 순대가 유명하지 않아요?"

서예지의 말에 작가가 눈을 가늘게 뜨고 저쪽을 보았다.

"원래는 그렇죠. 그런데 어제 제 친구의 친구가 우연히 들어갔던 식당에서 보물을 발견했다지 뭐예요."

"보물이요? 그게 뭔데요?"

"호호! 그건 예지 씨가 찾아봐야죠!"

작가가 그녀의 손을 잡고 식당으로 이끌었다. 골목을 하나 돌자마자 두 사람의 눈이 크게 뜨였다.

"저거 봐요!"

작가가 삿대질하며 흥분했다.

"이 시간에도 줄을 서 있잖아요!"

"셀카 봉 든 사람 없죠?"

"아직은 안 보여요! 빨리 가요! 우리가 먼저 따야 해요!"

요즘은 먹방도 치열해져서 누가 먼저 선점하느냐도 매우 중요했다.

점심시간이 훌쩍 지났는데, 작은 가게 옆으로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무려 20명이 넘었다.

"가게가 무척 좁아 보이는데, 테이블이 몇 개나 있어요?"

"4개요."

"아… 그러면 꽤 오래 기다려야겠는데요?"

"어쩔 수 없죠. 시간 더 지나서 유명해지면 오늘보단 무조건 더 기다려야 할걸요? 또 텐트 치고 날밤 새우긴 싫잖아요."

"그렇죠. 으으…. 생각도 하기 싫어요."

요즘 맛집들은 전날 밤부터 줄을 서야 하는 경우도 있고, 어떤 가게에는 촬영을 허락하지 않는 사장님도 있었다. 그렇게 되기 전에 영상을 따는 게 좋다.

'근데….'

그녀는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표정들이 왜 저래?'

맛집에서 여러 번 줄을 서 봐서 기다리는 사람들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한 그녀다. 원래 사람은 배고파서, SNS에 인증하려고, 그냥 호기심에… 수많은 이유로 줄 서는 것을 각오하고 오기 때문에 기대나 흥분, 약간의 짜증과 후회를 동반한다. 그런데, 이들은 뭐랄까… 그렇지가 않았다.

'꼭 뭔가에 홀린 사람들처럼….'

서예지가 작가에게 귓속말을 했다.

"이상하지 않아요?"

"왜요?"

"핸드폰 보는 사람조차 없다고요. 다들 가게만 보고 있잖아요."

한번 이상함을 느끼자 모든 것이 수상해 보였다.

"저 아저씨는 침까지 흘리고 있어요!"

"정말 그러네요?"

무척이나 피로해 보이는 아저씨는 작업복을 입고 있었는데, 축 늘어진 어깨로 간신히 서서 버티고 있었다. 저 정도 되면 그냥 집에 가야 하지 않나?

그럼 저 여자는? 배고파서? 호기심에? 인증 샷 따윈 관심도 없어 보였는데, 도대체 무엇이 저 사람들을 저렇게 만들었을까?

"그냥 식당이라고 했죠?"

"네, 제육볶음이랑 된장찌개가 메인이긴 한데, 여기가 유명한 건 밥이래요."

"밥… 이요?"

"네, 그냥 흰 쌀밥요."

"허얼…. 밥이 얼마나 맛있길래."

이제껏 많은 음식을 방송했지만 순수하게 밥을 리뷰한 적은 없었다. 밥이란 게 그렇지 않나? 배가 고플 때야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쌀밥이 생각나긴 해도 밥이란 건 결국 보조다. 화려한 음식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던가?

"우리, 전에 이천 한정식 방송한 적 있었죠?"

"네."

작가가 의미심장한 눈을 했다.

"사람들 말론 그 집보다 백배 맛있대요."

"설마요. 밥이 맛있어 봐야…."

게다가 밥이란 건, 물을 얼마나 조절하느냐에 따라서도 사람마다 진밥, 된밥 식성이 확 갈려서 모든 이를 만족시킬 수 없다.

이때였다.

누군가 식당에서 나왔다.

네 사람이었는데, 중년의 그 사람들은 얼마나 많이 먹었는지 트림을 해 대면서도 만족한 얼굴로 배를 두드리고 있었다.

-오늘 저녁에도 여기서 회식 어때?

-좋습니다!

-아예 직원들 다 데려오는 건 어떨까요? 통째로 빌려서 하면 될 것 같은데.

-김 대리 덕분에 오랜만에 포식했어.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가 지어 주시던 밥, 딱 그 맛이었어. 고마워.

-아닙니다, 부장님. 저도 혼자 먹기엔 아까워서 그랬습니다. 하하!

네 사람은 사이좋게 어깨동무를 하며 저쪽으로 걸어갔다. 그들의 뒷모습에서 세상 시름을 다 잃고 행복만 가득한 느낌을 받았다.

"뭐지…."

갈수록 궁금해진다.

20분 후.

또 두 사람이 나왔다.

젊은 연인으로 보였는데, 기분이 무척 좋아 보였다.

-거봐, 내 말 맞지?

-응! 피곤이 다 날아가 버렸어! 아깝다. 조금 더 먹을 수 있었는데.

-세 공기나 먹었잖아. 그것도 과식이라고.

-자긴 네 그릇 먹었으면서!

-그랬나? 하하! 또 오자. 자주 오자.

그들이 떠나가는 걸 보던 서예지는 문득 또 다른 의문에 빠졌다.

'왜 이렇게 오래 걸리지?'

생각해 보니 이상했다. 보통 이런 식당은 메뉴도 간단하고 성인 남자들이 밥 한 공기 뚝딱하는 건 10분이면 족하다. 그런데 들어갔던 사람들이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나오질 않았다.

하지만 별수 있나? 어떤 비밀의 맛이 있는질 파악하려면 기다려야 했다.

그렇게 기다리길 한참.

"우와…."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자 믿기 힘든 일이 벌어졌다.

"저게 뭐야…."

줄은 점점 더 길어져서 이젠 대기 인원이 50명도 넘었다. 지나가던 사람도 '뭐지?' 호기심에 슬쩍 대열에 합류하기까지 했는데, 이미 이 식당을 아는 이들도 있었다.

"맛집인가?"

"그런가 봐!"

"어? 나 전에 저기 가 봤는데? 그땐 그저 그렇던데?"

"연예인이라도 왔나?"

반신반의하는 사람들 속에서 서예지는 꾹 참고 기다렸다. 이윽고 작가가 카메라를 켰다.

"예지 씨, 시작할까요? 다음번이 우린데."

"네!"

올해엔 구독자 100만을 반드시 넘기고 말겠다는 목표처럼 그녀의 목소리가 경쾌하게 울려 퍼졌다.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신림에 나와 있습니다! 벌써 소문이 퍼졌는지 이곳 열기가 무척이나 뜨거운데요! 보이시나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아요! 저도 3시간째 웨이팅 중이랍니다! 어딘지 궁금하시죠?

방송이었지만 이제 그녀는 그것관 별개로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아무리 대박 난 맛집이라도 이제까지 '그런' 표정으로 만족하며 나온 사람들은 없었다. 일부도 아니라 전부가 그런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데, 이 집은 분명 달랐다.

'섭외된 사람들은 아닌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기다리는데, 드디어 안에서 사람들이 나왔고 빈자리가 생겼다. 작가가 냉큼 들어가서 사장님께 방송 찍어도 되냐고 물어봤다.

-어머? 방송이요? 저야 상관없긴 한데… 다른 분들이 불편해하실 수도 있으니까….

-저희 음식만 나오게 찍을게요!

-그런 거라면….

허락이 떨어지자 서예지는 냉큼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아찔했다.

'뭐지? 이 냄새?'

제육도 된장도 아니다. 잘 지은 가마솥 밥의 뚜껑을 처음 열었을 때 그 냄새만으로도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포만감 그 자체!

"…."

마성의 밥 냄새도 그랬지만, 식당 안의 분위기는 더 살벌했다. 우선 잡담하는 사람도 없다. 경쟁적으로 숟가락을 움직이고 있었는데, 한 숟갈이라도 더 입에 넣으려고 밥을 씹지도 않고 삼켰다.

"주문하시겠어요?"

중년 아주머니가 물었다.

'이걸 혼자 하시는 건가?'

그러니까 테이블이 4개밖에 없나 보다.

그녀는 아주머니를 보며 밝게 말했다.

"메뉴 다 주세요."

"전부요?"

"네!"

"시간이 좀 걸릴 수도 있어요."

"빨리 나오는 것부터 먼저 주셔도 돼요! 제가 먹성이 좋거든요!"

서예지는 기본으로 10인분은 먹는다. 방송할 땐 20인분까지 해치웠다. 다시 말해서 여기 음식 다 나와도 그녀 혼자서 클리어가 가능하단 거다.

쩝쩝쩝!

달그락, 달그락!

-여기 밥 하나만 더 주세요!

-아니, 그냥 두 개 주세요!

여전히 들려오는 소린 씹거나 식기 부딪히는 것뿐, 사람들의 목소리는 밥을 추가 주문할 때만 나왔다.

드디어….

아주머니가 쟁반을 들고나왔다.

평범한 놋쇠 그릇에 담긴 밥과 밑반찬이라곤 김치가 전부다.

"맛있게 드세요."

"감사합니다!"

아주머니의 푸근한 인사에 경쾌하게 인사한 서예지가 숟가락을 들었다.

'이상하네. 딱히 특별할 건 없어 보이는데….'

카메라가 돌고 있으니 최대한 복스럽게 먹어야 했다. 크게 한 숟갈 떠서 카메라를 향해 말했다.

"그럼 먹어 보겠습니다!"

김치 한 조각 올려서 아아앙!

덥석 물었다.

"…!?"

그리고 그 순간….

'이, 이게 뭐야아아?'

그녀의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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