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마켓-60화 (60/277)

#060화

토요일 저녁.

팀장은 전주로 내려가고 있었다. 그간 '19번 방' 살인 사건 때문에 하루 2시간도 못 잤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룸에 함께 있던 용의자는 혐의를 찾을 수 없었다. 쌍팔년도였다면 그를 범인으로 몰아서 처넣었겠지만 이젠 그런 시대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김유선 주변의 인물들이 수상했다. 지금까지 확인된 실종자만 무려 세 명이었다.

옆에 앉은 조우진이 말했다.

"갑자기 학교도 그만두고 잠적했었답니다. 1년 전쯤에 선릉역 인근 식당에서 그녀를 목격한 동기가 있었는데,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고 하고요."

"그럴 만도 하지. 얼굴이 그렇게 바뀌었는데 알아본 게 더 신기한 거야."

"의도가 뭘까요? 신분 상승? 단순히 예뻐지고 싶어서?"

"그것만으론 사람을 몇 명이나 죽이진 않아."

"아직 확실하진 않잖습니까?"

"일단 하난 죽었잖아. 김유선 자신."

"아…."

대한민국 성형 기술이 세계 최고라지만 김유선의 변화는 깜짝 놀랄 정도였다. 김유선은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시골에서 올라와서도 한동안 수수한 차림을 고수했고, 조부모 손에서 길러져 사치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 그녀가 강남 최고의 미녀로 탈바꿈했다.

"이렇게 변신하려면 얼마나 들어?"

"못해도 억대 아닐까요? 싹 다 갈아엎은 거 같은데요. 얼굴뿐 아니라 몸이 전혀 다르잖아요."

팀장의 손엔 두 장의 사진이 들려 있었다. 2년 전 그녀의 대학 때 모습과 최근 CCTV 확대본이다.

"그런데도 그 가게 사람들이 그랬잖아. 자연 미인인 줄 알았다고. 어떻게 그럴 수 있지? 티가 나지 않나? 성형외과는 아직도 수소문 안 됐지?"

"네."

"하, 외국에서라도 하고 온 거야?"

미녀 많기로 소문난 강남에서도 최고급 술집 에이스였던 김유선이다.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실종된 남자들은 어떤 연관이 있고?

'하나같이 상류층 남자들이었어.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 건 실종이 아니라고 봐야겠지.'

이건 김유선의 연쇄 살인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데 그렇다면 그날 룸에서 왜 죽었던 걸까? 앞뒤가 맞지 않는다. 혹시 그 실종자 셋 중 하나가 침입해서 그녀를 죽이고 달아난 걸까?

'치정은 아니야. 많은 남자가 오피스텔에 드나들었지만 긴 시간 머문 적은 없었어. 다퉜다는 증언도 없었고.'

이미 옆집 아랫집은 다 만나 봤다.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살았던 김유선이다.

'돈을 노린 건가?'

그녀가 뭐가 부족해서? 그 업소에 하루도 빠짐없이 출근했으니 최소로 잡아도 월 1,500은 벌었을 거다. 명품 가방 하나 없었던 오피스텔을 보면 씀씀이도 크지 않았던 것 같고.

'알면 알수록 더 모르겠어.'

그간 많은 사건을 접해 왔지만 이런 건 처음이었다. 하지만 팀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거의 다 왔습니다."

도착한 곳은 지독한 시골이었다. 이런 곳에 사는 젊은 애들이 왜 서울로 나오려는지 알 것 같다. 이제 막 8시가 넘은 초저녁인데도 어둑해진 인근엔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없었다.

"정리해 보자. 김유선은 2년 전 조부모와도 연락이 끊겼지? 학교도 갑자기 나오지 않게 되었고. 살던 집에서도 그 시점에 다른 곳으로 이동한 거야."

"맞습니다."

강남역 오피스텔에 오기까지 몇 곳을 전전한 것 같은데, 그것까진 확인할 길이 없었다. 남자 집에서 머물렀을 수도 있고.

"군소린 말아."

"네."

이미 조부모에겐 김유선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을 거다. 부검을 위해 아직 장례를 치르진 않았지만 억장이 무너졌을 것이니 그분들 마음이 더 다치지 않게 조심해야 했다.

"김유선은 아직 피해자니까."

"알겠습니다."

차가 멈추고 다 쓰러져 가는 시골집 대문 앞에 선 두 사람은 문을 밀고 들어갔다.

"실례합니다! 김유선 씨 댁 맞습니까?"

안에서 불빛이 나왔기에 더 목소릴 높였다.

"어르신! 실례합니다!"

발칵, 문이 열렸다.

"뉘신지?"

"경찰입니다."

문을 연 할아버지 너머로 할머니의 모습도 보였다.

'80이 넘었다고 하셨는데, 생각보다 정정하시네?'

손녀의 죽음에도 두 분은 생각보다 잔잔한 얼굴이었다.

"멀리서 오셨구먼. 들어오세요."

할머니가 말했다.

"감사합니다."

팀장과 조우진 형사는 신발을 벗고 작은 방에 몸을 밀어 넣었다.

어른 넷이 누우면 꽉 찰 만한 방.

김유선이 여기서 자랐다.

'좋은 냄새가 나네.'

시골에 살면 잘 씻질 못한다. 특히 어르신들은 특유의 냄새가 방에 머무는데, 그것을 지울 만큼 달콤한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박카스인가?'

낡은 텔레비전 앞 드링크 병이 보였다. 마개가 없는 빈 병 두 개다.

"엊그젠가 서울에서 전화 왔을 때 다 말했는데 뭐 하러 여기까지 고생해서 내려왔어요."

할머니의 말에 팀장은 억지로 웃어 보였다.

"상심이 크셨겠습니다."

"…사람 일, 누구도 모르는 거고 때 되면 가는 거지요."

할머니는 초연했다. 유선을 사랑하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니라 진짜 득도한 고승처럼 분노나 울분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건 할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도 얼마 안 남았으니까 저 위에서 만나면 되겠지."

그러면서 미소를 지었는데, 팀장은 하마터면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22년 동안 수많은 피해자 가족을 만나 보았지만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슬픔, 좌절, 분노를 넘어 수용의 단계까지 가려면 적어도 몇 달은 걸릴 텐데 두 분은 이미 몇 년 전 유선과 연락이 끊겼을 때부터 짐작하고 계셨던 걸까?

"혹시… 죄송한 말씀이지만 손녀분께서 연락이 끊긴 이후로 찾아오거나 한 사람은 없었습니까?"

팀장이 힐끗 눈치를 주자 조우진 형사가 서류철에서 사진 세 장을 꺼냈다. 실종된 세 남자였다.

"이 사람들은 모르겠고… 친구가 오긴 했었습니다."

"친구요? 어떻게 아는 사이랍니까?"

"서울 친구라고 하는데, 잘생긴 총각이었어요."

팀장은 몇 가지 질문을 더 했지만, 할머니는 그 친구란 사람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았다. 다만 그를 떠올릴 때 흐뭇한 미소가 입가에 가시질 않았다.

'누구지? 그 친구는?'

김유선이 쓰던 폰의 통화 기록을 조회해 봐도 가게나 손님들 외엔 아무도 없었다. 헬스장과 세탁소 말곤 오가는 곳도 없었다. 지극히 단조로운 삶을 살던 그녀에게 친구가 있었다? 그것도 젊은 남자가?

"어떻게 생겼습니까?"

"아주 잘생긴 젊은이였지요. 키도 훤칠하고."

그 친구에게 무언가 있는 것 같다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하지만 팀장은 정보를 더 얻을 수 없었고, 1시간 후 밖으로 나와 주변을 둘러보면서 신음을 삼켰다.

CCTV는커녕 블랙박스조차 확보할 수 없는 깡촌.

"어떻게 생각해?"

차에 타며 담뱃불을 붙인 팀장이 조우진 형사에게 물었다.

"솔직히 말씀드려도 됩니까?"

"어."

"전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 친구란 사람도 그렇고요. 실종된 사람들 찾기도 빡센데. 하아…."

워낙 어르신들이라 말도 두서가 없었고 그렇다고 심문하듯 따져 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도 해야지. 그게 우리 일인데. 버스로 내려왔을 수 있으니까 주변 터미널, 도로 CCTV도 다 확보하고."

말을 하면서도 팀장은 눈앞이 아찔했다.

말이 쉽지. 저걸 다 어떻게 추적하나.

'…대체 누굴까?'

새로 나타난 김유선의 친구.

어쩌면 그가 이 사건의 유일한 열쇠일지도 몰랐다.

.

.

.

전주에 가 본 건 처음이었다.

경찰이 그녀의 흔적을 추적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장롱에 넣어 둔 그녀의 신분증이 계속 눈에 밟혀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내려갔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뵈었고, 두 분께 그녀가 번 돈을 드렸다. 나도 욕심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 돈을 내가 써 버리면 왠지 모르게 건너선 안 되는 선을 넘어 버릴 것 같았다.

-이 큰돈을 유선이가 맡겼다고?

-네, 할머니.

-유선이는 어떻게 알고?

-동네에 살았었어요. 가까이에….

펑펑 눈물을 흘리는 두 분께 내가 할 수 있는 위로는 꿀물과 생수뿐이었다.

그 서큐버스란 괴물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유선이라는 여자는 이들의 손녀였다.

.

.

.

고깃집에 가기 전에 재능마켓에 들렀다.

【선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재능마켓에서 보상을 수령하세요.】

정말 이걸 바라고 한 일은 아니었지만, 보상이 돌아왔다. 꿀물이겠지. 씁쓸하게 웃으며 안으로 들어가는데, 메시지가 또 떠올랐다.

【시크릿 미션을 완료했습니다. 시크릿 미션은 해당 카테고리에서 한 번씩만 수행할 수 있습니다.】

"…어? 뭐?"

【사용한 5,450만 원이 54,500포인트로 변환되었습니다.】

"오, 오만?"

화들짝 놀랐다.

【누적 포인트 61,500p.】

맙소사….

5,450만 원이 54,500포인트가 되어 돌아오다니? 뭐가 뭔지 모르겠다. 시크릿 미션이라는 것도 신기하고, 돈이 포인트로 변환되었다는 것에도 어안이 벙벙했다.

"잘 쓰겠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두 분 모습이 아직도 선했다.

그 돈으로 손녀의 죽음을 대신할 순 없겠지만 미약하나마 위로가 되길 바랐다.

"어떻게든 제가 막아 볼게요."

이제 내가 할 일은 명확해졌다. 더 많은 희생자가 나오지 않게 해야 했고, 그건 오직 나만이 할 수 있었다. 김유선 같은 억울한 피해자가 더 생기지 않게!

그러기 위해선 우선 내가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진열장으로 걸어갔다.

"무한의 활 통."

【5만 포인트를 사용하시겠습니까?】

"그래."

나는 진지했다.

【무한의 활 통

화살을 무한대로 뽑아 쓸 수 있는 귀한 물건.

착용자의 요구에 맞게 훨씬 강화된 화살도 무한대로 저장할 수 있다.】

"남은 포인트로 강철 촉의 화살도 줘."

【강철 촉의 화살

1대당 5포인트. 갑옷도 뚫을 만큼 위력이 세다.】

【강철 촉의 화살 900개를 구매하시겠습니까?】

"그래."

나는 다시 한번 각오를 다졌다.

【누적 포인트 0p.】

나는 쉬어선 안 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있을 거다. 이번 사건을 겪기 전엔 내 생존만 생각하느라 벅찼었지만, 할머니, 할아버지를 뵙고 난 후 내 안의 무언가가 움직였다.

【무한의 활 통에 강철 촉의 화살 900개가 저장되었습니다. 필요할 때 해당 품목의 이름을 지칭하면 꺼낼 수 있습니다.】

포인트를 남김없이 다 써 버렸다. 예상하지 못한 포인트를 많이 받아 버렸지만, 그렇지 않아도 완전 무장을 할 생각이었다.

장롱을 열었다.

활과 활 통은 왼쪽과 오른쪽 어깨에 비껴 멨다. 가방은 앞으로 메고 드링크와 생수, 초코바를 채웠다. 아까 터미널에서 산 라이터와 낚싯줄, 맥가이버 칼도 주머니에 있다.

【재능마켓 체류 시간이 9분 남았습니다.】

알고 있다.

그거 하려고 이렇게 준비하는 중이니까.

-그러는 너는 몇 명이나 죽였는데?

김유선, 아니, 서큐버스가 한 말이 가슴을 쿡 찔러 들어왔다.

'아니야. 내가 죽인 건 괴물이야.'

【재능마켓 체류 시간이 6분 남았습니다.】

운동화 끈을 단단히 묶었다.

'나는 사람을 죽이지 않아.'

【재능마켓 체류 시간이 3분 남았습니다.】

나도 알고는 있다.

어느 순간부터 내가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나도 점점 괴물이 되어 가는 거다.

【재능마켓 체류 시간이 모두 소진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러니까 괴물끼리 싸울 수 있는 거다.

자, 나타나라.

뭐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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