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마켓-51화 (51/277)

#051화

등굣길.

나는 작아진 녀석을 안고 담장 옆을 서성이고 있었다.

갸르릉.

"너무 멀리 가면 안 돼. 알았지?"

냐앙-.

내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녀석이 울었다.

너무도 귀여운 얼굴의 녀석.

짙은 회색 털의 표범이었다.

그대로 크기가 줄어든 거라 고양이 같아 보이기도 했지만, 실상 이 녀석은 무서운 맹수다.

그렇다고 얘를 표범으로 볼 사람도 없겠지만.

그런데 그때,

"어머? 민준아?"

들려오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예원이가 나를 보며 놀란 표정으로 서 있었다.

"웬 고양이야?"

"아…."

너, 진짜 고양이로 보이나 보다.

성공인가?

"너무 예쁘다아아아!"

예원인 동그란 눈망울로 반짝이며 물었다.

"네가 키우는 거야?"

"아, 뭐…."

"언제부터?"

"오늘…?"

"진짜? 우와! 나, 한 번만 안아 봐도 돼?"

나는 멈칫 고민했다.

커스텀을 했다지만 이 녀석은 거대한 표범이었다. 솔직히 생긴 것도 고양이완 전혀 달랐고, 발톱도 날카롭다.

'할퀴기라도 하면 곤란한데.'

어떻게 할까? 고민하는데, 내 품에 있던 표범이 예원이를 보며 갸르릉 울었다.

"꺄아! 어떻게! 너무! 너무! 너무! 귀엽잖아!"

예원이는 순식간에 두 손을 뻗더니 표범을 낚아챘다. 그러더니 세상을 다 안은 것처럼 행복한 표정으로 표범을 품에 꼭 끌어안았다.

조마조마하게 바라보는데 우려와는 달리 녀석은 예원이의 품에서 한껏 기분 좋은 소리를 냈다.

'뭐지, 저 자식….'

어쨌든 당장 할퀴거나 하진 않으니 한숨을 돌리는데, 예원이가 물었다.

"그런데 학교에 데려온 거야? 어떻게 하려고?"

"아니야."

딱히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 녀석은 본래 야생에서 살던 맹수다. 차라리 내 주변에 머물게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 일단 여기까지 데려왔다.

"혹시 몰래 숨겨서 가게?"

"그건 아닌데…."

오는 내내 생각해 봤는데 표범이 앞으로 나와 살려면 이 세상을 직접 체험하고 익히는 게 좋으리라 판단했다. 그곳이 학교 내라면 좀 더 안전할 것 같기도 하고.

사실 대한민국에 이 녀석을 위협할만한 생물은 없겠지만, 자동차나 오토바이 같은 위험 요소도 배제할 순 없었다.

나는 문득 생각나서 물었다.

"학교 나왔네? 당분간 힘들다고 하지 않았어?"

"아…. 오늘까지만. 내일부터는 정말 못 나오게 될 것 같아."

"그렇구나."

연예인의 생활이 어떤지는 잘 모르지만, 무척 치열하다는 건 알고 있다. 알아서 잘하겠지만 그래도 한마디 한마디가 힘이 되리라.

"이왕 하기로 한 거 잘해 봐. 응원할게."

"고마워."

생긋 웃는 예원이 품에서 표범이 훌쩍 뛰어내렸다.

"어?"

예원이가 놀라서 어버버 표범을 부르려고 했지만, 녀석은 훌쩍 담장을 올라가더니 그대로 뛰어내렸다.

"야아! 아아앗! 어떡하지? 가 버렸어!"

"괜찮아."

"괜찮긴! 빨리 찾아야지! 아직 애긴데!"

애기 아니거든….

"나 때문에 어떡해! 빨리 가 보자! 아직 멀리 가진 못했을 거야!"

내 소매를 잡고 채근하는 예원이를 보며 나는 픽 웃어 버렸다.

저 표범이 마음만 먹으면 이곳에서 얼마나 위협적인지 모를 거다. 무려 5,000포인트짜리 괴물 아닌가?

"정말 괜찮다니까. 어차피 주운 녀석이라 다시 나타날 거야."

"주웠다고? 길냥이였어?"

"비슷… 해."

다른 세상에서 주워 왔다는 게 좀 다르긴 하지만.

"…그래, 근데 참 이쁘게 생겼던데. 어디 갔을까?"

"돌아올 거야. 점심시간에 다시 찾아보지, 뭐."

"그럴래? 그럼 나도 같이 찾자!"

"그래, 알았어."

"꼭이야?"

걱정하던 예원이가 반색하며 새끼손가락까지 내밀었다.

"그래."

나는 손가락을 걸어 주며 피식 웃었다.

예원이가 동물을 이렇게 좋아하는진 몰랐네.

나는 녀석이 간 곳을 바라보았다.

'주변 탐색 좀 해 보라고.'

표범의 모습이 보이진 않았지만 크게 걱정되진 않는다. 녀석도 호기심이 많을 테니 한동안은 이 근처를 활보하면 지리도 익히고 좋을 것이다.

-예원아! 안녕!

-너, 앨범 낸다면서?

교실로 가까워질수록 예원이에게 따라붙은 아이들이 많아졌다. 나는 슬쩍 뒤로 물러나 운동장을 탐색했지만, 여전히 표범은 눈에 띄지 않았다.

뭐, 그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몸집이 클 때도 나는 녀석이 근처까지 다가온 줄도 몰랐었다. 그런데 지금은 더 작아졌으니 살금살금 다니면 절대 찾지 못할 것이다.

'빨리 적응하면 좋겠네.'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

우리에겐 일주일이 지났지만, 이 세상은 고작 몇 시간이 흐른 게 전부였다. 곤충을 잡고 토끼와 사투를 벌이다가 표범을 마주하고 회색 산맥 깡패까지 사냥했던 그 모든 일들이 꿈같이 느껴진다.

하지만 이젠 현실로 돌아올 때였다.

"여어, 도민준!"

붙임성 좋은 박인성이 말을 걸어왔다.

"교복 새로 맞췄네?"

"아, 어."

이놈의 눈썰미는 역시 대단하다. 하지만 거기까지. 녀석 눈엔 커스텀 덕분에 평범한 교복 바지로 보이겠지만, 이건 무려 방어력이 +3이나 붙은 레어 아이템이었다.

'표범도, 바지도, 활도…. 커스텀이란 게 정말 쓸 만하구나.'

얼결에 나온 템이 이렇게 유용하게 쓰이니 내심 뿌듯하다.

"휴…."

교실에 앉아 있어서 그런가? 순간, 긴장이 탁 풀려 버렸다. 그렇게 고생하면서 죽기 직전까지 몰렸다가 탈출했는데, 여긴 너무나도 평화로웠다.

교과서를 펼쳤다.

전엔 치가 떨릴 정도로 싫었던 공부였지만 이제 안다. 왜 '세상에서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라는 말이 나도는지를.

'그만할 수 있을까?'

문득 든 생각에 입맛을 다셨다. 어차피 내가 가지 않아도 미션은 나올 거다.

그 미션을 하지 않으면?

암, 심장 마비, 뇌출혈….

그 협박이 거짓이 아니란 것도 이제 안다.

'내가 원한다고 멈출 수 있는 게 아니잖아….'

솔직히 이제 그만두고 싶은 마음도 슬그머니 올라온다. 지능에, 힘에, 말도 안 되는 아이템도 얻었고 표범까지 키우게 됐는데 뭘 더 바라나? 사실 이 정도만 해도 나는 이미 일반인의 범주에서 아득하게 멀어지지 않았나? 뭘 해도 먹고사는 덴 지장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 모든 게 내 선택이 아니라는 것.

'이제 훈련장에 들어갔다가 나온 것뿐이라고 했지. 앞으로 어떤 것들이 내 앞에 나타날지….'

예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게 두려운가? 라고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답은 당연히 '그렇다'이다.

하지만 이제 돌아갈 순 없다는 걸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알고 있었다. 또한, 이면적으로 그 두려움보다 더 큰 호기심과 흥분이 생기기도 했다. 대가야 혹독히 치르겠지만 지금껏 놀라운 보상을 얻다 보니 더 많은 것을 얻고 싶단 욕심이 슬그머니 올라오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점심시간이 됐다.

예원이가 냉큼 달려와 내 소매를 잡았다.

"민준아! 가자!"

"알았어. 근데… 괜찮아?"

나는 의식적으로 주변을 훑었다. 하지만 예원인 씨익 웃더니 내 팔을 끌어당겼다.

"뭐 어때? 빨리 가자!"

"알았어, 가자, 가."

연예인 하겠다는 애가 이렇게 조심성이 없어서야.

우린 식당이 아닌 운동장으로 향했다. 예원인 가장자리 나무 근처부터 샅샅이 훑기 시작했는데,

10분, 20분….

시간이 흘렀지만 예원이는 뜻을 이루지 못했고 슬슬 지쳐 가는 게 보여서 내가 멈춰 서며 말했다.

"이러지 않아도 된다니까."

"하지만 나 때문에 잃어버렸는데…."

"그게 왜 너 때문이야."

표범이 누구 품에 안겨나 봤겠나? 지금쯤 어딘가에서 쥐라도 잡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억지로 예원이를 벤치로 데려갔다.

"앉아."

"으응…."

계속 근처를 눈으로 살피던 예원이가 하아, 숨을 내쉬었다.

"혹시…."

"어?"

"기억나?"

"뭐가?"

예원이가 나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너, 옛날에도 이랬었어. 길고양이 보면 도와주려고 하고, 그러다가 고양이 괴롭히는 애들 혼내 주고."

"내가?"

"그래, 니가…."

"…."

대체 언제 적 얘기지?

솔직히 아무런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물론, 이건 당연한 것 같다. 예원이한텐 불과 몇 년 전 일이겠지만, 나한테는 어느덧 40여 년 전의 이야기 아닌가?

"한번은 내가…."

"…?"

"아니야."

녀석이 얼굴을 붉혔다.

그러더니 벌떡 일어났다.

"너 기억 못 하지?"

"뭘?"

"됐어! 다 알려 주면 재미없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보면서 흥! 코웃음을 치던 예원이가 저쪽으로 달려가며 손을 흔들었다.

"난 더 찾아볼게! 미안! 나 때문에 밥도 못 먹었잖아! 빨리 가 봐!"

"야! 너는!"

"다이어트!"

소리치며 뛰어가는 예원이를 보다가 나는 벤치에 등을 기댔다. 요즘 워낙 굶는 일이 많았다 보니 한 끼 정도 거르는 건 일도 아니다.

'뭔진 모르겠지만….'

누군가 날 기억해 준다는 사실이 사뭇 기쁘다. 살며 이런 기분을 느낀 적이 있었을까?

이때, 후우우우웅.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그런데 갑자기 뭔가가 위에서 투욱 떨어져 내렸다.

"에에?"

작은 표범은 깃털처럼 사뿐하게 내려서더니 내 품으로 들어와 앉았다. 그러더니 앞발을 동그랗게 말고 혀로 핥았다.

"뭐야? 여기 있었냐?"

그르르르릉.

아까 예원이가 분명 나무 위도 살펴봤던 것 같은데, 녀석은 확실히 은신에 대가인가 보다. 그러고 보면 이 녀석, 내 근처를 계속 맴돌고 있었던 것 같은데, 우린 몰랐던 것 같다.

하긴, 사람과 달리 후각 같은 게 월등할 테니 내 자취를 쫓는 건 너무도 쉬운 일이었겠지.

"그나저나…."

녀석의 등을 손으로 쓸어 만지면서 생각했다.

'아직 다음 미션이 나오지 않았어. 아마도 내일 뜨겠지.'

오래 쉬게 하진 않을 것 같다.

그렇다면….

"돈을 어떻게 하지?"

그동안 미션을 위해 모았던 돈. 그걸 어디에 써야 잘 쓸지 고민이 되었다. 모으라고 해서 모으긴 했는데, 어떤 가이드도 나오지 않으니 함부로 사용하기도 애매하다.

"흐음…."

만약 자유롭게 쓸 수 있다면? 그 돈으로 뭘 해야 할까?

'생각해 보자. 이때 무슨 일이 있었지?'

나는 무려 23년 전으로 돌아왔다. 그렇다면 뭔가 미래 관련해서 할 수 있을까 싶지만….

'젠장. 뭘 아는 게 있어야….'

안타깝게도 나는 과거 일을 기억하는 게 별로 없었다. 솔직히 몇 년 전 일이라면 모를까, 10년, 20년의 과거 일을 또렷하게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딨나? 게다가 그게 내 신변에 관련된 거라면 몰라도 사회가 어땠고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다 안다고? 세상살이에 관심도 없던 나는 더욱 모를 수밖에 없었다.

'신도시 같은 것들이 지정된 것 같긴 한데.'

그나마 공인 중개사 공부를 해서 대강 주워들은 지식은 있었다. 하지만 그래 봐야 아주 조금. 게다가 내가 붙은 1차 시험은 민법이랑 학개론이였고, 실무적 지식이나 중개업 관련은 2차 시험 범위였기에 전혀 몰랐다.

'이왕 하는 거 동차로 공부해 볼걸.'

늦었지만 후회가 된다.

물론, 내가 그만큼 공부를 했으리란 보장도 없다. 안타깝게도 지력 1이 날 성장시킨 거지, 난 똑똑하지 못했으니까.

'아냐, 어차피 못 해.'

그래 봐야 부동산이란 게 500만 원 정도로 투자할 수 있는 게 아니니 아쉬운 마음은 접어 두자.

'과거로 돌아와도 할 게 없네.'

스마트폰을 열었다. 그리곤 이것저것 찾아봤다. 역시 3기 신도시에 관한 기사들이 많다. 그러면 이건 이미 끝난 거다.

'이다음엔 뭐였더라?'

분명 3기 신도시로도 부족해서 추가로 지정된 곳들이 있었는데 그게 참 가물가물했다.

'일단, 돈부터 모으고 생각나면 그때 정하자.'

나는 표범의 엉덩이를 치며 일어났다.

갸르릉!

녀석은 나를 보며 울다가 훅! 옆으로 뛰어갔다. 순식간에 높은 나무 위까지 올라간 녀석은 튼튼한 나뭇가지에 자릴 잡더니 나를 내려다본다.

'종잣돈을 더 모아야겠어.'

뭐라도 있어야 얄팍하더라도 미래 지식을 이용할 수 있지 않겠나?

나는 교실로 향했다.

.

.

.

"야, 머리 내밀지 마."

가방에 표범을 넣고, 지하철을 탔다. 이제 무식하게 뛰어다닐 필요가 없어졌으니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시간을 활용하는 게 나았다.

강남역으로 향하는 길.

학교가 끝났지만, 내 일과는 아직 안 끝났다.

"안녕하세요!"

고깃집에 도착했다.

다른 날보다 일찍 와서 그런지 한산했다.

곧장 안쪽으로 들어가서 아저씨를 찾았다.

"웬일이냐? 이렇게 일찍?"

오늘 쓸 고기를 손질하고 있던 아저씨가 나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저, 혹시 남는 거 버리실 거죠?"

몇 번 봤다고 여기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안다.

"이거?"

발치의 통을 툭 차는 아저씨를 보면서 나는 대답했다.

"네!"

가게에서 주로 팔리는 건, 소 갈빗살이나 돼지 삼겹살, 껍데기인데, 보기 좋고 먹기 좋게 자르다 보면 질기거나 흐물흐물한 지방 부분이 꼭 있었다.

"이건 뭐에 쓰려고?"

별 이상한 놈 다 보겠다는 눈으로 나를 향하는 아저씨의 눈동자가 살짝 아래로 내려갔다. 그러더니 크게 뜨였다.

"어? 너, 가게에 고양이 데려온 거야?"

"아, 그, 그게."

나는 난처해하며 고갤 끄덕였다.

몰랐다.

가방에서 표범이 머리를 쏘옥 내밀고 있는 걸. 하긴 사방이 고기인데 참는 게 더 어려웠을 거다.

"참 희한하게도 생겼네? 이런 종자도 있나?"

아저씨가 바짝 다가오며 표범을 뚫어지게 보았다.

"하! 그놈 참!"

표범은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것 같은 표정으로 침을 줄줄 흘리며 아저씨를 올려다보고 있었는데, 나도 황당할 정도다.

"얘 먹이려고?"

"네."

"기다려 봐라."

아저씨가 빨간 바가지를 통에 넣었다.

"이 정도면 되겠지?"

"감사합니다!"

"아주머니 보시면 싫어하실 거니까 뒤에서 먹여."

"네! 그렇게 할게요! 감사합니다!"

바가지를 건네받고 가게 뒤로 돌아갔는데, 아저씨가 따라왔다. 담배에 불을 붙이고 벽에 기대서 나를 바라봤다.

"하, 그놈 참."

게걸스럽게 바가지 속 고기를 퍼먹는 표범을 보며 아저씨가 말했다.

"아무리 봐도 고양이 종자가 아닌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