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마켓-50화 (50/277)

#050화

"제발!"

표범이 맞을 수도 있었기에 내가 노릴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았다. 녀석의 부리 위쪽을 겨냥하려 했지만, 놈이 미친 듯이 머리를 흔들고 있었기 때문에 쉽게 명중할 순 없었다.

피잉!

허무하게 뒤로 날아가는 화살을 보면서 두 번째 화살을 꺼내 다시 겨냥했다.

이어 날아가는 화살!

핑!

하지만 또 스쳤다.

명중률과 바람 무시 스킬이 발동하고 있는데도 맞히기란 여간 쉽지 않다.

'조금만 버텨, 조금만!'

표범의 비명이 연신 터져 나오고 있었다. 후두둑, 후두둑 피가 사방에 뿌려지고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내 가슴이 찢어질 것처럼 뭉클했다. 하룻밤이었지만 녀석에게 이만큼 정이 든 거다.

"그만하라고! 개자식아아아아아!"

이렇게까지 화가 났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차라리 나와 싸웠다면 덜 열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놈은 표범을 집요하게 노렸는데, 보이지 않는 표범이니까 놔줘선 안 될 것 같다고 여긴 것 같다.

'날 구하려고 뛰어든 거야.'

보이지 않았지만 알 수 있었다.

'씨×….'

이건 무력한 나 자신에게 하는 욕이었다.

그으으윽!

다시 시위를 당겼다.

놈과의 거리는 고작 5미터.

이제 더는 표범의 울음이 들려오지 않았다.

'죽인다! 넌 반드시! 네놈은 무조건!'

분노에 정수리가 차갑게 식었다.

그윽!

좀 더 당긴 시위에서 팽팽한 소리가 났을 때, 나는 시위를 놓았다.

새애애애애액.

화살이 날았다.

촉이 반짝 빛을 반사하며 날아갔고, 워낙 거리가 가깝기에 눈 깜빡할 시간이면 목표에 촉 끝이 닿는다.

퍼억!

몇 번이나 빗나갔던 화살.

놈의 부리 같은 딱딱한 곳에 맞으면 효과도 없던 그 화살이 이번엔 드디어 빛을 발했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아!

놈의 비명이 길게 울리며 놈의 몸이 우뚝 멎었다. 그리곤주둥이가 한껏 벌어지면서 몸이 부르르 떨렸다.

'돼, 됐어!'

드디어 내 화살이 놈의 미간 한가운데에 정확히 박혀 들어간 것이다.

바르르르르르….

떨던 녀석이 그대로 고꾸라졌다.

쿠웅-!

육중한 놈의 몸이 바닥에 쓰러졌을 때, 반가운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축하합니다! 미션을 완수했습니다!】

【회색 산맥 포식자를 사냥했습니다.】

【사냥 포인트 10,000을 획득했습니다!】

【코어가 성장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사냥꾼' 호칭을 획득했습니다.】

토옥.

놈의 주둥이에서 반짝이는 뭔가가 튀어나왔다.

【안전 구역으로 돌아가면 복귀할 수 있습니다.】

허리를 숙여 빛나는 돌 조각들을 잡고 주머니에 넣었다. 몇 개의 메시지가 더 떠올랐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어딨어? 야!"

나는 매의 주변을 돌며 손으로 바닥을 더듬었다.

물컹!

매의 발치 쪽에서 만져지는 표범의 온기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죽은 거 아니지?"

가방에서 생수를 꺼내서 녀석의 입으로 짐작되는 곳으로 물을 흘렸다.

"마셔! 어서! 너 좋아하는 거잖아!"

하지만 생수는 땅을 적셨다.

"이런 젠장! 야! 죽지 말라고!"

나는 벼락을 맞은 사람처럼 몸을 떨면서 녀석의 가슴팍으로 팔을 밀어 넣었다. 그런 다음 녀석의 두 앞발을 잡고 몸을 일으켰다. 축축하게 피가 등에 젖어 드는 느낌이 들었다.

"버텨야 돼!"

한 발 걸었다.

이 녀석이 몇 킬로그램이나 나갈까? 모르겠다. 그 무게가 온몸을 짓눌렀지만 나는 한 발, 한 발 계속해서 나아갔다.

질질질질….

표범의 뒷다리는 바닥에 끌리고 있었지만 이것 말곤 방법이 없었다.

오두막까지 얼마나 걸렸더라?

여기까진 토끼들을 따라 뛰어와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거리가 상당할 것이다.

'죽지 마…. 제발….'

어느 순간 스르르륵.

표범의 발이 눈에 보였다. 은신 효과가 끝난 것이다.

'야!'

불러 보고 싶었지만, 녀석이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확인하기 두려워졌다.

"…."

그래서 계속 걸었다.

"허억, 허억…."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가방에, 활에, 녀석까지 짊어지고 걷고 있었으니 체력이 순식간에 동이 났다.

잠깐 멈춰서 생수를 마셨다.

그리곤 곧장 걸었다.

'이렇게 멀었나? 제길….'

자고 일어났을 때 밖이 환했으니까 아침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태양이 머리 위에 떠 있었다. 녀석을 업고 4시간 이상을 걸은 거다. 그런데도 오두막은 보이지 않았다.

하악, 하악….

그래도 내가 버틸 수 있는 건, 녀석의 입에서 숨이 느껴진다는 거다. 너무도 미약해서 이게 내 착각일 수도 있을 거란 생각도 들었지만, 분명한 건 온기가 아직 남아 있었고 몸이 딱딱하게 굳어 버리진 않았다.

'버텨야 해.'

녀석에게 하는 말이었지만, 나 자신에게도 해당하는 말이었다. 너무 힘들어 생수를 마셔 봐야 그때뿐이었다. 늘어진 표범의 무게는 내가 애초에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육체는 의지를 따라 움직인다는 말처럼 기적적으로 발을 내디디고 있었다.

그러다가 오르막이 내리막으로 변했다고 느꼈을 때, 반가운 소리가 들려왔다.

-낄낄낄!

그렇게 거슬리던 울음소리였는데!

'거의 다 왔어!'

토끼들이 있다는 건 오두막이 그리 멀지 않다는 뜻이었다.

-낄낄!

-낄낄낄!

좋은 구경이라도 났다는 듯 토끼들 몇 마리가 이쪽을 보며 앉아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모르겠다.

"하아, 하아, 하아…."

멈추면 다시 못 걸을 것 같아서 억지로 버텨 냈다. 한 발 걸을 때마다 어깨 위로 돌덩이를 툭툭 더 얹는 것 같았지만, 오르막이 아닌 게 그나마 위안이었다.

"…."

주변에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낄낄….

토끼들은 무슨 생각인지 계속해서 따라오고 있었다. 혹시 표범이 죽으면 시체를 빼앗을 생각인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절대 내어줄 생각이 없다. 내 몸이 으스러져도 이 녀석을 오두막까지 데려갈 것이다.

"하아… 하아… 하아…."

세상이 어둑어둑해졌다.

어쩌면 내 눈이 가물가물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이젠 의식하지 않고 습관적으로 걷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투욱.

뭔가에 막혔다.

"아…?"

표범의 머리가 통나무에 닿은 것이다.

"도, 도착했다!"

오두막에 온 것도 모르고 걸었던 거다.

"야! 다 왔어! 다 왔다고!"

나는 급히 말하며 문을 찾았다.

안으로 들어가자 반투명한 경계가 보였다. 재고 자시고 할 거 없이 곧장 그리로 표범을 업고 들어갔는데, 익숙한 오피스텔 계단이 보이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버렸다.

"허어어억…!"

표범과 함께 계단에서 굴러떨어졌다.

"젠장… 아파…."

나도 힘이 다한 거다.

하지만 이대로 멈출 순 없었다.

나는 표범의 발을 잡고 끌었다.

다시 업을 기운이 없었다.

지이이익. 지이이이이익.

녀석의 몸이 현관 쪽으로 끌려왔다.

"하악… 하아아악…."

나도 기절하기 직전이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다.

조금만, 조금만 더…!

벌컥!

화장실 문을 열고, 표범을 끌었다. 샤워 부스 안으로 녀석의 몸을 끌어당긴 채 서둘러 물을 틀었다. 그리곤 주저앉았다.

솨아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

머리 위로 떨어지는 물을 맞으며 나는 녀석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야… 죽은 거 아니지? 정신 차려 봐."

고통과 아픔, 상처가 마법처럼 씻겨 내려가고 있었다. 언제 그렇게 힘들었냐는 듯 온몸에 활력이 충만하게 샘솟고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행복감이 밀려들었다.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죽지… 말라고…."

나는 녀석의 얼굴을 안고 기도했다. 평생 종교를 가져 본 적도 없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누군가가 녀석을 도와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간절했다.

내 간절한 소망이 닿았을까?

"…?"

할짝!

물컹하면서 까칠한 게 내 얼굴을 핥았다.

"어? 어어어어어어어?"

나는 눈을 뜨고 상체를 들었다.

"너!"

내 무릎을 베고 누운 표범이 나를 올려다보았다.

"살았구나! 하하하…!"

솨아아아아아.

떨어지는 물은 표범의 상처를 아물게 했다. 피도 씻어 냈고 더러운 오물도 말끔하게 가져갔다.

그르르르르릉.

표범은 내 품에서 기분 좋은 듯 몸을 털었다.

【회색 산맥 표범의 호감도가 큰 폭으로 증가했습니다.】

【회색 산맥 표범이 당신을 따릅니다.】

【호감도의 증가로 인하여 회색 산맥 표범이 당신의 의지를 일부 알아듣습니다.】

이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나는 녀석이 살았다는 거면 됐다.

"살았어…. 흑흑. 살았다구…."

어느새 나의 웃음은 울음으로 바뀌었다. 녀석의 얼굴에 내 얼굴을 묻으며 나는 안도의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

.

.

갑자기 이렇게 큰 동물을 키우게 될지 몰랐다.

"…."

상처가 말끔하게 치료된 표범이 오피스텔을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녔다.

'만두라도 사 먹여야 하나?'

아니면 생닭을 사 와야 하나?

모르겠다.

일단은 정산부터 하고 생각하자.

나는 아이템 진열장 앞에 서서 주머니를 뒤졌다.

매를 잡고 얻은 아이템!

【커스텀 교환권 3장.】

【오래된 수호자의 바지(레어).】

무려 1만 포인트짜리 괴물을 사냥해서 그런지 신기한 아이템이 나왔는다. 커스텀 교환권이 어떤 효과를 내는진 모르겠지만 3장이면 이것만 해도 최소 6,000P였다.

우선, 오래된 수호자의 바지를 살펴볼까?

반짝.

빛나던 돌이 허공에서 형체를 갖추더니 하얀색 바지로 변했다.

【오래된 수호자의 바지(레어)

방어력+3.

내구력이 강하다. 항상 청결을 유지한다. 추위와 더위에 대항한다. 확률적으로 모든 물리 공격을 무시한다.】

'확률적으로 물리 공격 무시?!'

이게 어떤 방식으로 발동할진 모르겠지만, 위급한 상황일 때 목숨을 구할 수도 있을 거다. 물론,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것이 베스트겠지만.

"…."

나는 일단 바지에 발을 넣었다.

요즘 안 그래도 부쩍 자라 옷이 필요했는데, 잘됐다. 혹 안 맞으면 어떡하나 내심 걱정했지만, 다행히 내 체형에 맞춰 나온 건지, 바짓단도 알맞게 쫘악 맞아떨어졌다.

그런데….

'이걸 어떻게 입고 다니냐….'

소위 말해서 새하얀 '빽바지'였다. 심지어 남자의 소중한 부분이 심하게 돌출되는 핏이었으니. 참으로 난감하다.

여기에 두고 미션 할 때만 갈아입어야 하나?

'아니야. 언제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이런 건 항상 걸치고 다녀야지.'

나는 머리를 흔들며 생각을 고쳐먹었다.

'뭐, 지금은 마흔이 아니니까. 요즘 젊은 애들은 많이들 입더만.'

나만 좀 철판 깔면 못 입을 것도 없다.

그런데 그때,

【원하시는 이미지의 커스컴이 가능합니다. 커스텀하시겠습니까?】

"어? 정말?"

3장의 커스텀.

이렇게 사용하라고 줬나 보다.

보기보다 센스 있는데?

"혹시, 교복으로도 돼?"

내 말이 끝나자마자 하얗고 민망하던 바지는 우리 학교 교복 바지로 변했다. 마침 키가 훌쩍 커 버려서 짧았던 교복이었는데, 새로 맞춘 것마냥 꼭 맞았다.

"오오, 좋아."

내친김에 활을 가져왔다.

바지가 된다면….

"이것도 바꿔 줄 수 있나?"

【원하시는 이미지로….】

너무도 고풍스러워서 밖엔 들고 다니지 못할 것 같던 활이 금세 현대식 양궁으로 바뀌었다.

"아싸!"

시위를 당겨 보았다.

모양이 변했지만, 이제까지 쓰던 그 감촉과 느낌이 고스란히 났다.

이제 남은 커스텀은 한 장.

"으음…."

이거론 뭘 바꿀까 하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혹시…."

기막힌 생각이 떠올라 버린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