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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마켓-46화 (46/277)

#046화

'이런 젠장!'

거리는 약 200미터!

도망칠까? 아니면 맞서야 하나?

나는 망설여졌다.

일단 여길 벗어나야 하는 건 맞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토끼들한테 먼저 밟혀 죽겠다.

'토끼몰이라도 하는 거냐?'

활을 들고 급히 옆으로 이동했다. 토끼와 표범은 무식할 정도로 빨랐다. 거리가 순식간에 줄어들었고 촐싹대며 뛰는 토끼는 용케 표범의 앞발에 걸리지 않았다.

스악!

표범의 앞발이 할퀼 때마다 간발의 차이로 꽁무니를 빼는 토끼들이 용하게 보일 지경이다. 그러나 저 표범이 나를 발견하면 언제 먹잇감을 바꿀지 모르는 거다.

꿀꺽!

절로 넘어가는 침을 의식하면서 활을 겨눈 채 계속해서 뛰었다.

우두두두두두!

토끼들이 내 은신처를 짓밟았다. 휑하니 노출된 장소여서 은신처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했지만, 지난 일주일간 내가 머물던 장소가 쑥대밭이 되는 걸 보면서 나는 입맛을 다셨다.

표범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토끼를 계속해서 따라갔는데, 이때 나는 봤다.

'오래된 고기는 안 먹는 거냐?'

저기엔 내가 일주일 전에 잡은 토끼가 있었다. 하지만 표범은 그걸 거들떠보지도 않고 살아 있는 토끼를 추적했다.

"…."

그리고 순간 느꼈다.

놈은 토끼에게 정신이 팔려 나를 의식하지 않고 있다.

'어쩌지.'

이곳도 이제 놈에게 노출된 거나 마찬가진데….

'따라갈까? 아니면 오두막으로 피해야 하나?'

선택은 빨라야 했고, 나는 본능적으로 놈들을 따라 뛰었다. 머릿속으론 빠르게 계산이 깔렸다. 표범이 토끼를 사냥하면 저 추격전은 멈출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나는 표범이나 토끼를 노릴 수 있게 될 것이다. 백날 곤충 따위나 잡아 봐야 포인트는 손톱만큼밖에 되지 않으니, 어찌 보면 기회일지도.

'토끼굴이 없으니까 한 마리 정도는 잡을 수 있을지도 몰라.'

그런 생각에 빠르게 놈들을 따라 달렸다. 토끼들은 벌써 저 앞 산등성이를 넘고 있었는데, 속도를 더 내야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었다.

'놈의 점프력을 보면 나무 위에 올라가서 피한다거나 하는 건 자살 행위야.'

만약 표범이 나를 노린다면 어디로 도망쳐야 할지는 고민해 볼 문제였다.

'하지만 더 높은 곳이라면 그게 기회가 될 수도 있지. 뛰어오르는 놈을 맞히긴 어렵지 않을 거니까.'

활이란 무기는 평지보단 위에서 아래의 목표를 노려서 쏠 때 더 정확도가 오르고, 화살도 직선으로 떨어지며 파괴력도 높아진다.

나는 주변 지형지물을 빠르게 파악하면서 계속해서 흔적을 따라 달려갔다.

'벌써 저기까지 갔나.'

전력 질주로 달리고 있었지만, 거리는 더욱 벌어지고 있었다. 순발력을 얻었다지만 애초에 사람이 네발 달린 짐승의 속도를 넘을 순 없는 것이다. 이걸 다시 말하면 놈들이 나를 노렸을 때는 떨쳐 낼 수 없다는 뜻이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기회를 놓칠 수도 없는 일.

나는 긴장감에 입술을 뜯으며 달려 나갔다.

"…."

높은 지대까지 달려 저편 아래를 보니, 토끼들은 원을 그리며 선회하고 있었다. 표범이 그런 토끼 중 한 마리를 노리고 훌쩍 뛰었다가 주르륵 앞으로 미끄러졌다. 그러면서 앞발을 휙! 휘둘렀는데, 그 칼날 같은 발톱을 간신히 피하며 토끼가 옆으로 방향을 틀었다.

나는 그런 표범의 동작을 선명하게 뇌에 각인시키려고 애썼다.

'굉장한 몸놀림이야. 사람의 동선을 생각하고 상대해선 안 돼. 저놈은 어떤 방향으로든 자유자재로 몸을 뒤틀고 발톱으로 할퀼 수 있어.'

그런 표범을 계속 따돌리는 토끼들도 대단하지만, 전투력은 응당 표범을 당해 낼 수 없으리라.

'갖고 노는구나.'

표범은 마치 장난감들을 모아 놓고 노는 아이 같았다. 너른 평지에서 토끼들은 벗어나지 않고 빙빙 돌면서 큰 원을 그렸는데, 나는 조금씩 그쪽으로 다가가면서 숨을 죽였다. 쪼그려 앉아서 이동하니까 종아리와 허벅지가 찢어질 것같이 저렸지만 은밀함을 유지하려면 어쩔 수 없었다.

'희생양 하나를 내려는 건가?'

전에 보니 표범은 토끼 한 마리면 족할 것 같았다. 토끼들은 더 도주해 봐야 의미가 없다는 걸 알았는지 이곳에 머물며 뛰고 있었다. 러시안룰렛처럼 한 놈만 걸려라! 작전을 쓰는 것 같은데, 토끼들에게나 표범에게나 어떤 한 놈이 먼저 지치느냐의 싸움이었다.

'희생자가 필요하단 건데….'

뭐, 나도 토끼를 사냥하러 왔으니까 비정한 사냥꾼이나 다름없었지만, 표범을 피해 달리는 녀석들이 안쓰럽기도 하다.

'어쨌든 지금 표범이 토끼에게 집중하고 있어.'

지금 만약 저놈에게 내가 공격을 가하면 놈이 토끼를 버리고 나를 따라올까? 아니면 쫓던 토끼들을 계속 쫓을까?

'짐승이니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

도박은 모험을 동반한다.

걸린 판돈이 클수록 리스크도 커지게 마련이었다.

사사삭.

땅을 쓸 듯 이동하면서 거리를 계속 줄여 갔다. 내가 있는 지대가 저곳보단 높아서 한눈에 다 내려다보였다.

휘이이잉-!

내 쪽으로 불고 있는 바람이 내 냄새를 지워 줄 것이다. 궁사에게 이런 바람은 굉장한 악조건이었지만, 다행히 나에겐 '바람 무시' 스킬이 있었다.

'한 발, 단 한 발로 승부를 내야 돼.'

일격에 죽이지 못할지라도 치명상을 줄 수 있다면 저 오천 포인트짜리 표범을 사냥할 수 있을 것이다.

이건 기회다.

언제 이런 기회가 또 올진 모르는 거 아닌가?

하지만 불안감도 엄습했다.

'만약 빗나간다면?'

그때는 죽을 각오로 대적해야 할 거다. 내가 도망쳐 봐야 이런 개활지에서 따라붙는 표범을 따돌릴 순 없을 테니까.

"…."

이제 100미터.

멀다면 멀고 짧다면 짧은 거리였다.

하지만 더 접근하는 건 위험하다.

실패하면 다시 한 발 정돈 쏠 수 있는 거리가 유지되어야 하니까.

"후우우우…."

차분하게 숨을 내쉬었다.

지금도 저 아래는 개판이었다.

두두두두두!

토끼들은 죽자 살자 달렸고, 표범은 크앙! 포효하면서 토끼를 공격했다. 저게 일반 토끼였다면 진즉에 한 마리쯤 발톱에 걸렸을 것이지만, 저 토끼를 빙자한 생물은 사슴처럼 잘도 달렸다.

'너무 빨라. 지금은 아니야.'

있는 힘껏 활을 겨누고 시위를 당긴 채 기다렸다. 많은 체력이 필요했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표범이 전력으로 달리고 있었으니 아무리 잘 겨냥해도 빗맞을 확률이 높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기회를 엿보아야 한다.

'이벤트가 벌어져야 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다.'

나는 시위를 당긴 팔에 힘을 풀지 않으며 계속 기다렸다.

3분….

토끼들은 지치지도 않는지 계속 달렸다.

5분….

표범의 숨이 아주 가빠졌다.

길게 빼문 혀와 하얀 입김이 훅훅! 뿜어져 나왔다.

이 지구전의 승자가 누가 될지가 관건이다. 토끼들은 밤새워 달려도 계속 뛸 수 있을 것처럼 체력이 좋았지만, 표범의 집착도 만만치 않아서 흥미진진했다.

10분….

그러나 나는 이걸 관전하려고 따라온 게 아니었고, 점차 흐름을 되새기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속도가 느려졌어.'

확실히 봤다.

토끼들도 그렇고, 표범도 그렇고 아까보다 현저하게 속도가 줄어들었다.

'기다린 보람이 있구나.'

계속 시위를 당기고 있어서 팔이 저릿저릿했지만, 그렇다고 쉴 순 없었다. 언제 어느 찰나에 쏴야 할지 모른다. 그 1초도 안 되는 시간이 내겐 가장 소중한 찬스일지도 몰랐다.

-끼이이익!

-끽! 끽!

가장 빨리 달리던 앞쪽 토끼들이 옆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10분 넘게 이어지던 판세에 변화가 생긴 거다.

'뒤쪽 놈들을 버리려는 건가?'

앞쪽 토끼들은 옆으로 틀어서 더 넓게 달리기 시작했는데, 뒤쪽 토끼들은 갑자기 바뀐 방향에 당황했다. 그건 표범도 마찬가지였는데, 이미 상당히 지쳤는지 표범은 곧장 대응하지 못했다.

그 찰나의 공백이 앞쪽 토끼들과의 거리를 쭈욱 벌려 버렸다.

'영리한데?'

대여섯 마리 토끼들만 남기고 우르르 저쪽 산등성 오르막을 향해 뛰는 토끼들을 보며 나는 곧 결판이 날 것을 깨달았다. 남겨진 토끼들과 표범은 어떤 형태로든 끝장을 봐야 했다.

-낄낄!

-낄낄낄!

평지나 내리막보다 오르막을 오르는 게 당연히 더 힘들다. 그 힘든 일을 해낸 승리 토끼들은 정상에 올라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앉았다. 그리곤 그 특유의 비웃는 소리를 냈다. 조금 전까지는 이 싸움의 참가자였다가 갑자기 관전자로 바뀌어 버린 거다.

'얄미워.'

아까 안쓰럽다고 생각한 거 취소다.

나는 좀 더 앞으로 갔다.

'놈도 지쳤어.'

확신이 들었다.

좀 전과는 확연히 다른 게 느껴졌다. 하지만 여전히 거리는 멀었고, 나는 조심히 거리를 줄여 가며 정확도를 높여 갔다.

'딱 하나만 제대로 맞으면 돼.'

이동하면서 잠깐 내렸던 활을 다시 앞으로 들며 이를 악물었다. 사람도 칼에 찔리면 그 즉시 무력해진다. 동물도 마찬가지일 거다.

'하나만….'

긴장이 정수리까지 올라 머리가 뜨거운 느낌이 들 때, 나는 숨을 멈췄다.

"…."

활을 얻지 않았더라면 이런 감각도 느껴 보지 못했을 거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내 몸의 모든 세포가 경직되는 기분이 들었고, 그것이 폭발하기까지는 눈 한 번 깜빡이는 것보다도 더 빨랐지만, 의식은 아주 길었다.

티잉-!

드디어 화살이 날았다.

쑤아아아아아아아악!

80미터 거리를 찢어 버리며 날아가는 화살은 지금까지 한 번도 사용한 적 없었던 깨끗하고 날카로운 화살촉을 매달고 있었고, 바람을 무시하며 표범의 등허리를 향했다.

【명중률이 높아집니다.】

화살촉이 어떤 위대한 힘에 의해서 조금 움직였다. 총도 마찬가지겠지만, 화살 역시 처음의 각도에 굉장한 영향을 받는다. 손톱만큼만 틀어져도 100미터 밖의 표적에선 수 미터나 차이가 나는 것이다. 그런 미세 조정을 내 스킬이 자동으로 해 준 것이다.

내가 노렸던, 내가 의도했던 곳을 향해서 화살촉은 유도탄처럼 움직였고, 마침내 그것이 표적에 닿았을 때 비명이 터졌다.

-크아아앙!

퍼억!

등허리 인근 옆구리에 박힌 화살에 놀란 표범이 풀쩍 뛰었다.

'좋았어!'

그간 노력한 땀이 배신하지 않았다는 것이 벅차올랐다.

"…!"

"…?"

토끼들도 놀랐는지 화들짝 뛰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방인의 참전은 토끼들에게 천운 같은 기회였던 것이다. 정상에 앉아 있는 토끼들은 이게 뭔 일인가? 우리를 구경꾼처럼 보며 낄낄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저런 토끼를 볼 때가 아니었다. 나는 빠르게 한 발의 화살을 더 겨눴다.

크르르르르.

표범이 나를 향해 돌아섰다.

고통이 상당했는지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웠지만, 그 섬뜩한 눈동자가 내 피를 바짝 말려 버렸다.

'일주일간의 훈련이 없었다면 빗나갔을 거야.'

이제 나 역시 돌아설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어쩔 거냐.'

나는 놈의 눈을 피하지 않고 보며, 겨눈 활을 언제든 쏠 수 있게 준비했다. 놈이 나를 향해 달려온다면 내 화살은 더 빨리 놈에게 닥칠 것이다. 지그재그로 뛰어온다면 문제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한 발 정돈 더 꽂아 넣을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이 있었다.

크르르르.

상체를 바짝 엎드린 표범이 당장에라도 나를 향해 뛰어들 것같이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어?'

돌연 후욱! 옆으로 뛰었다.

'도망쳐?'

표범이 뭘 느낀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놈은 분명 도주를 선택했다.

'따라잡을 수 있어!'

그러나 그걸 그냥 지켜볼 내가 아니다. 이미 지쳐 있을 표범을 어찌 놓치랴. 몸에 화살까지 박힌 상태니 본래의 속도 역시 나올 수 없을 것이다.

'저게 몇 포인트인데!'

나는 어기적어기적 도망치는 표범을 따라 활을 겨눈 채 이동했다.

막 능선을 넘었을 때,

'뭐야?'

갑자기 풍경이 확! 바뀌는 걸 보며 순간 나는 멈칫했다.

고원에서 시커먼 협곡으로 변한 거다.

'이래서 토끼가 이쪽으로 오지 않은 거였나?'

양이나 말을 키우면 딱 좋을 것 같던 지대에서 거친 절벽과 험한 지형으로 바뀌자 난감해진 건 나였다.

'놈이 절벽 사이로 숨어 버리면 답이 없어.'

속도를 더 높였다.

꾸역꾸역 낭떠러지 쪽으로 이동하는 표범의 등을 보면서 나는 멈춰 섰다.

그그그그그극!

그리곤 시위를 끝까지 당겼다.

'놓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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