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마켓-45화 (45/277)

#045화

【회색 산맥 표범을 발견했습니다.】

【회색 산맥 표범은 매우 위험합니다. 사냥 포인트 5,000p.】

【표범의 가죽은 비싼 값에 판매할 수 있습니다.】

【표범을 사냥하면 아주 드문 확률로 희귀한 아이템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5,000포인트….'

꿀꺽.

침이 절로 삼켜졌다.

지금까지 만난 그 어떤 괴물보다도 가장 많은 포인트를 받을 수 있는 녀석. 하지만 기쁘다기보다는 공포가 더 컸다. 표범을 실제로 본 것도 처음이었고, 놈은 토끼 따위와는 비교조차 불가능한 위압감을 품고 있었다.

게다가 내가 다큐멘터리 같은 곳에서 본 표범과는 본질적으로 달랐다. 더 컸고, 멀리서 보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려 왔다.

'저게 보스인가.'

처억.

나는 활을 들었다.

놈을 쏘려고 든 활이 아니다.

이건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본능적으로 치켜든 거다.

"…."

이런 내가 보이지도 않는다는 듯 표범은 나무 아래에서 빙 돌다가 훌쩍 뛰어올랐다.

'미친…!'

근 4미터를 가볍게 뛰어오른 표범이 토끼가 있는 가지에 착지하더니, 토끼의 목을 물었다. 그리곤 훌쩍 뛰어내렸다.

'사냥이고 뭐고, 저놈이랑 붙었다간 내가 죽겠는데?'

내 토끼였다.

고생고생해서 잡은 내 첫 사냥감. 하지만 놈이 그걸 물고 갈 때까지 나는 오히려 한숨을 내쉬며 다행이란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아직은 안 돼.'

저걸 상대하려면 더 강해져야 했다. 단 한 발의 정확한 화살을 날릴 정도가 되지 않으면 놈은 순식간에 나와 거릴 좁혀 올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나는 죽는다.

'전의 늑대랑은 차원이 다른 괴물이야.'

지금은 토끼고 뭐고, 안전한 곳으로 이동해야 할 것 같다. 토끼를 물고 갔으니 한동안은 배를 채우겠지만, 놈은 다시 나타날 것이 분명했다.

"…."

놈이 사라지자 토끼를 들고 오두막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타악!

문이 닫히는 걸 보며 나는 숨을 내쉬었다.

"후우…."

생각하자.

토끼와 표범.

이 두 종류로 이뤄진 생태계인가?

토끼는 표범의 먹이일까?

'그렇다고 하면 저 정도 토끼로는 표범이 삶을 유지할 수 없을 거야.'

어딘가에 토끼굴이 더 있을 거란 얘기다.

'아까 거긴 너무 노출돼 있었어. 놈이 달려들면 도망칠 구석이 없고.'

표범의 포스는 장난이 아니었다. 차라리 좀비나 구울은 상대할 마음이라도 들었지, 표범은 본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질려 버린 느낌이다.

'이건 보험으로 일단 챙겨 두자.'

놈은 내가 아닌 토끼를 물고 갔다. 그렇다는 건 이 토끼도 놈과 조우했을 때 던져 주면 위기를 모면할지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그쪽은 피하자.'

하지만 이것도 어디까지나 가정일 뿐이다. 놈이 토끼 대신 내게 달려들 수도 있었고, 그 최악의 상황을 피하려면 놈과 마주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았다.

머릿속이 정리되자 오두막에 더 있을 이유가 사라졌다. 놈은 지금 배를 채우고 있을 것이다. 지금이 정찰하기엔 절호의 기회란 생각이 들었다.

휘이이이이잉.

밖으로 나오자마자 나는 정면이 아닌 반대로 돌아갔다. 시야에 잡히는 산등성이가 꽤 많았다. 이렇게 넓은 산맥인데 하필 놈과 마주했다는 건 그곳이 토끼들 서식지였기 때문일 것이다.

'오두막을 고집할 필욘 없어. 더 안전한 곳으로 가야 돼.'

먹이가 있으니 포식자가 오는 거다. 힘을 기르기 전까지는 표범이 오지 않을 곳을 찾아야만 했다.

다다다닥!

발걸음이 빨라졌다.

토끼를 가져갔으니 한동안은 나타나지 않을 거라 생각이 들었지만,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것도 그냥 내 바람일 뿐이지 않나? 언제 불쑥 튀어나올지 모르니 최대한 멀어지는 것이 상책일 것이다.

"훅! 훅훅! 후욱!"

그래도 뛰는 거 하난 자신이 있다는 게 다행이었다. 순식간에 20분 남짓 뛰어왔다. 그러면서 주변을 눈으로 다 훑었는데, 아까 그런 토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작은 동물이 꽤 많다는 걸 알았다. 도마뱀 비슷한 것도 있고, 큰 거미도 있었으며 메뚜기같이 생긴 것들도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어쩌면 저것들이 그 육식 토끼의 먹이가 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면 되려나?'

한참을 달리던 나는 멈춰 섰다. 저 멀리 높은 산이 보였지만 저기까지 가려면 얼마나 더 걸릴지 몰랐고, 오두막과도 지나치게 멀어질 것 같았다.

우선 여기를 기점으로 삼자.

'사방이 다 내려다보이니까 표범이 접근하면 알아차릴 수 있을 거야.'

이 주변에선 가장 높은 봉우리였고, 만일 놈이 나타난다면 화살 몇 발은 대응할 수 있으리라.

'그 뒤가 문제겠지만.'

일단은 자리를 잡았다.

"후우…."

문득 올려다본 하늘은 참으로 푸르렀다.

'여긴 어딜까.'

들어온 지 꽤 된 것 같은데, 밤이 오진 않았다.

'하층이라고 했는데.'

이제까지 모은 정보론 이곳에서의 시간은 내가 있던 세계와 다르다. 아까 그 육식 토끼처럼 현실의 생태계와도 다른 것 같고, 좀비 같은 것이 버젓이 있을 정도로 비현실도 공존한다.

'그뿐이 아니지. 두 세계가 겹쳐지기도 했었어. 그게 균열로 통하는 것 같고…. 그것으로 이쪽이 저쪽을 공격할 수도, 그 반대일 수도 있는 거야.'

재능마켓의 의도나 용도가 무엇이든 간에 나는 이 판에 뛰어들었다. 작은 단서라도 있다면 다 모아서 움켜쥐어야 생존 확률이 올라간다.

'어쨌든 시작하자.'

나는 내 한계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게 중요했다. 처음부터 일류 궁사가 될 순 없다. 내가 사냥할 수 있는 사냥감을 정확히 노려서 최대한의 효율을 내는 것, 그게 지금의 내가 할 일이었다.

처억.

활을 들었다.

시위에 화살을 먹이면서 한 곳을 응시했다.

찌르륵.

5미터 거리에 작은 벌레가 보였다. 저걸 여치라고 부르던가? 잘은 모르겠지만 엄지손가락만 한 곤충이 더듬이를 움찔거리고 있었다.

'활을 내 몸처럼 다룰 수 있어야 돼.'

내가 여기에 터를 잡은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표범이라는 포식자가 오지 않을 곳을 찾으려면 토끼굴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지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내가 훈련할 장소가 필요했다. 이런 개활지에서 연습해야 돌발 상황에서 써먹을 수 있을 것이다. 오두막 안에서 계속 버티고 있어 봐야 달라질 건 없을 테니까.

다행히 주변엔 움직이는 것들이 많았다.

티잉.

첫 번째 화살이 날았다.

퍼억-!

화살촉이 곤충 앞에서 고꾸라지며 땅에 처박혔다.

"쳇…."

놀란 곤충이 펄쩍 뛰며 저쪽으로 이동했다.

저것도 못 잡다니….

나는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활을 돌렸다. 그러면서도 눈으로 주변을 멀리까지 훑는 걸 잊지 않았다.

'활이란 게 정말 어려워.'

근력을 얻은 뒤론 시위를 당기는 힘은 모자라지 않았다. 체력도 이만하면 훌륭하다. 그러나 활은 거리를 계산해야 했다. 직선으로 쏜다고 하지만 그게 5미터일 때와 10미터일 때 각도를 완전히 달리해야 했다.

'그래서 위력적이겠지만.'

실패에 아쉬워하지 않고 두 번째 화살을 놓았다. 이번 목표는 손바닥만 한 도마뱀이다. 바위에 붙어 있었는데 피부가 바위와 비슷한 색이라서 얼핏 보면 눈에 띄지 않았다.

사아아악!

날아간 화살촉이 도마뱀의 꽁지 부분에 박혔다가 바위에 맞고 튕겼다.

"…!?"

화들짝 놀란 도마뱀이 바바바박! 도망갔다. 이번에도 실패. 상처를 내긴 했지만, 명중했다곤 볼 수 없었다.

그래도 나는 포기하지 않는다.

'100번, 1,000번이라도 쏜다.'

내 훈련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

.

.

밤을 여섯 번 봤다.

우물우물.

나는 지금 도마뱀 고기를 먹고 있었다. 불을 피울 수도 없으니 별수 없이 날것으로 씹었다. 처음엔 역하고 비리고 비위도 상해서 정말 고민을 많이 했지만, 가진 건 최대한 아껴야 했고 토끼 미끼는 쉽게 낭비할 수 없었다.

하지만 다 소득 없이 낭비한 것만은 아니었다.

쏴아아악!

날아간 화살이 메뚜기의 몸통을 갈랐다.

【2p의 사냥 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미션 완수까지 8,810p 남았습니다.】

벌레나 곤충도 '활'을 써서 잡으면 포인트를 적게나마 줬는데, 그간 1,000포인트를 획득할 정도로 나는 피나는 연습을 해 왔다.

이런 것들을 잡아서 1,000p를 얻으려면 얼마나 노력해야 하는지 아는가? 오죽하면 4일 전부터는 화살 세 개만 돌려썼다. 촉이 무뎌져서 정작 필요할 때 사용할 화살이 없을까 봐 아끼는 거다.

"…."

화살을 회수하면서 나는 베이스캠프로 갔다. 그래 봐야 천막 하나 없는 노상이었지만, 지난 일주일간 내가 잡은 생물들이 주변에 가득했다. 쥐, 벌레, 곤충, 도마뱀부터 그냥 뱀이나 정체불명의 생물까지 다양하다.

'꼭 표범을 사냥하지 않아도 이렇게 하다 보면 미션을 완수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한데.'

문제는 넉넉히 3달은 잡아야 한다는 거다. 3개월 동안 벌레나 도마뱀을 먹으며 버텨야 나간다?

모르겠다, 내가 그렇게 할 수 있을는지. 오피스텔에서 마냥 운동하며 버티는 것과는 또 다른 시험이었다.

'승부를 봐?'

발치에 일주일 전 잡은 토끼 사체가 있었다. 부패가 진행되는지 고약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는데, 버리긴 아깝고 어딘가 써먹을 곳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나는 건 하나밖에 없었다. 이렇게 진한 냄새라면 그놈을 유인할 수 있지 않을까?

'완벽하다곤 할 수 없겠지만, 전보단 확실히 늘었는데.'

이 주변엔 표적이 큰 게 없었다. 작은 것은 엄지손가락만 했는데, 일주일간 그런 것만 계속 겨냥해서 맞혀 왔으니 자신감이 붙을 만도 하잖은가?

'아니야, 자만하다 죽는 건 한순간이라고!'

내가 그간 쏜 화살이 몇 발일까? 잠을 거의 자지 않았으니까 단순히 계산해도 1분에 5발이라고 치면 10분에 50발. 1시간이면 300번인 거다. 그런데도 불안한 건 내 훈련량을 압도하는 놈의 피지컬이었다.

또한, 그날 분명 봤다.

그 높은 나무를 도약 한 번에 올라타는 걸. 그것도 전력이 아니었을 거다. 놈이 죽을 각오로 달려들면 그 속도와 위압감은 도대체 얼마나 될지 상상도 안 된다.

'한 일주일만 더 해 보자. 이제 이것도 먹을 만해졌으니까.'

이 사이에서 작은 뼛조각을 빼내 던지며 나는 그렇게 결정했다. 언젠가 놈과 붙어야 하겠지만, 그게 일주일 더 늘어난다고 해서 놈이 더 강해진다거나 하진 않을 거다.

'놈과 나는 다르니까.'

그리고 놈은 그대로라 할지라도 나는 그 일주일이면 폭풍 성장은 아니어도 지금보단 확실히 나아져 있을 것이다.

'급한 거 없어. 이게 맞아.'

오늘도 밤이 깊어지면 오두막에 돌아가서 잘 것이다. 처음엔 그곳도 안전하지 않을 것 같아서 표범이 슬그머니 들어와 내 목을 물어뜯는 악몽을 꾸기도 했지만, 일주일간 지켜보니까 안전지대가 맞는 것 같다.

'더 단련하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쉴 틈이 어딨나?

그런데 그때였다.

…바바바바바바박!

"어? 무슨 소리지?"

이 근방에서 이런 소리를 들은 적은 일주일간 단 한 번도 없었다.

"뭐, 뭐야? 저게?"

저쪽 능선에서부터 무언가가,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어떤 무리가 떼를 이뤄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놈들이잖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여우처럼 늘씬한 몸과 길쭉한 네발로 미친 듯이 달려오고 있는 놈들. 분명 그 토끼들이었다.

'저것들이 왜?'

의문이 들었을 때, 나는 봤다.

"흐읍…!"

토끼들이 내리막길로 우르르 뛰어가고, 능선 위에선 시커멓고 큰 놈 하나가 그 뒤를 쫓아가고 있었다.

'놈이다!'

회색 산맥 표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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