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마켓-42화 (42/277)

#042화

고깃집 알바를 끝내고, 곧장 집으로 왔다. 어머니껜 미리 연락을 해 둬서 오늘은 둘만의 오붓한 치킨 파티가 열렸다.

재능마켓에서의 8일.

그 안에서 운동을 하며 많은 생각을 했는데, 그중 내 첫 번째 할 일은 바로 이것이었다.

"엄마."

오늘은 일부러 어머니를 이렇게 불렀다. 어머니에게 아직은 고1 아들이었으니, 이런 게 더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응?"

"건강 검진받았어?"

"아직. 나라에서 해 줄 때 되면 받지."

2년에 한 번이던가?

'그거론 안 됐었어.'

두고 볼 일이 아니다.

"늘 가던 병원만 갔지?"

"호호호! 얘가 갑자기 왜 이래?"

"요즘 무서워져서. 아빠도 그렇게 갔는데 엄마마저 없으면 나, 어떻게 살아."

"어이구, 걱정도 팔자야. 절대 그럴 일 없어!"

어머니는 웃으며 콜라를 내 컵에 따라 주었다. 그러면서 화제를 돌린다.

"학교는 어떠니?"

"좋아."

"문젠 없고?"

"응."

"다행이네."

근데, 뭔가 할 말이 더 있는 것 같았다.

"민준아."

"응?"

"너무 노력하지 않아도 돼. 네 나이 때는 친구들하고 놀고 그러는 것도 중요해."

요즘 정신없이 다니는 내가 안쓰러우셨던 모양이다.

나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어머니를 보았다.

"엄마 모르는구나?"

"뭘?"

"나, 친구 많아."

"진짜?"

"그렇다니까."

박인성도 있고, 예원이도 있고, 도화지도… 음, 많진 않네.

"여자 친구는? 있어?"

"…아마도?"

"호호호호! 거짓말하면 못써!"

"진짠데? 있다니까?"

"어떤 앤데?"

"같은 반 애야."

"예뻐?"

"그럴걸?"

어머니가 흐뭇하게 웃었다.

"보고 싶네. 우리 아들이 어떤 친구가 마음에 들었는지."

"나중에 보여 줄게."

아, 당장 데려오라면 곤란하다.

우선 후퇴.

"엄마, 이거 맛있다!"

"호호. 그래, 어서 먹어."

사람이 참 간사하다.

재능마켓 만두가 그렇게 맛있었는데, 이렇게 바깥 음식을 앞에 두니 또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치킨 한 마리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먹은 잔해들을 정리하려 어머니가 일어나셨다.

"엄마."

"응?"

"나랑 오래오래 살아, 오래오래…."

가족이라고 할지라도 표현하지 않으면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없다.

"그래, 아들. 그러자."

어머니의 저 미소를 지켜 드릴 거다.

.

.

.

재능마켓에서 나오자마자 고깃집 알바, 이어 어머니와 야식 타임을 마친 뒤 곧장 잠자리에 들었다. 이렇게 긴 하루를 보내는 사람이 또 있을까?

하지만 수면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새벽 2시.

이제 나가야 한다.

신문 보급소로 걸어가면서 나는 어제의 일을 떠올렸다.

"…."

밸런스 볼 오르기 10,000회 클리어로 순발력+1 획득. 철봉 10,000회 클리어로 근력+1도 얻었다.

순발력도 그랬지만 근력 또한 내 예상을 훌쩍 넘는 능력을 보여 줬는데, 단순히 팔심이나 좀 강해지려나 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말 그대로 '근'력이었다. 온몸의 근육이란 근육이 죄다 레벨 업 해 버린 거다.

뿐인가?

2개의 미션을 하면서 포인트도 차곡차곡 쌓아서 무려 4,100포인트나 모였다. 그 비싼 양말을 사고서도 이만큼이다.

이제 재능마켓 남은 체류 시간은 고작 7시간 20분.

우선 기다려 볼 생각이다.

이제까지의 패턴으로 보면 오늘 안에 반드시 새로운 미션이 나올 테니까.

"안녕하세요!"

"오! 민준이 왔어?"

이 보급소에서 하루 800부를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은 내가 유일했다. 당연히 소장님에겐 가장 중요한 자원이자 인력이었다.

'그렇지만 이제 이 일도 그만둬야 할 것 같아.'

돈만 보면 계속하는 게 맞다. 그러나 신문 배달은 500만 원 벌기 미션과 달리기 미션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어서 선택한 것이었다. 그것들을 해결한 이상 이것보다 수월하고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일은 얼마든지 있으리라.

'다음 미션이 뭐가 나오는지만 보고 결정하자.'

전엔 대학 등록금이라도 마련하려고 했었다면, 이제는 3년 후의 일보다 당장 오늘의 생존율을 높여야만 했다. 내게 100만 원이 있다면 그걸 저금하는 게 아니라 기회를 사서 뭐라도 더 익혀야 한다. 간절함과 절박함이 달라졌다고 해야 하나?

또한, 고민도 든다.

내가 대학을 꼭 가야 할까?

지금 의미가 있을까?

물론, 서울대라도 가면 어머니께서 무척 기뻐하시겠지만, 3년 후 내가 과연 학벌이 필요할까 싶다. 지력이 +3 정도만 되어도 이미 스티브 잡스 저리 가라일 텐데? 체력은? 근력은? 올림픽에 나가서 아무거나 해도 금메달은 딸 거다.

뭐든 될 수 있다는 자신감.

이전과 내가 확연히 달라진 점이었다.

"다녀오겠습니다!"

자전거를 끌고 보급소를 나섰다.

"오…."

확실히 근력+1은 미쳤다. 산처럼 신문을 쌓았는데, 무게감조차 없었다. 그러면서도 순발력 덕분에 내 몸은 가벼웠다. 체중은 그대로인데 내가 느끼는 건 깃털이니, 이런 사기가 또 있나?

'아이템들도 그렇지만, 확실히 제일 탁월한 건 스탯이야. 힘들어도 필라테스는 무조건 해야 돼.'

양말이나 투지의 링 같은 건 하루에 한 번밖에 못 쓴다. 그런데 스탯은 일단 얻으면 영구적이다. 이게 일상에 적용되는 걸 맛볼 때는 그 어떤 쾌감보다도 짜릿했다.

자전거를 끌고 이동하다가 전자 제품 가게 유리에 비친 내가 보였다.

"후…. 이게 정말 나인가."

가끔 잠에서 깨어 세수하고 거울 보면 낯설기도 하다. 휴대폰 애플리케이션으로 보정을 한 500%쯤 하면 만들어지는 그런 완성된 얼굴이 거울 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거야 기술로 했다지만, 이 키는? 몸은? 고작 2달간 일어난 변화에 주변 사람들도 놀라는 것 같지만, 정작 가장 놀라운 것은 나였다.

'뭐, 까놓고 말해서 기분은 좋지.'

40년을 유령처럼 살았던 설움이 울분으로 쌓여 있었던 것 같다. 만약 이 또한 꿈이라면 제발 깨지 않길.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어느새 신문 배달이 끝났다.

어제까지 800부를 돌리면 오전 7시 20분쯤 됐었는데, 오늘은 6시 50분이 되었는데 끝났다. 무려 30분을 단축해 버린 것이다. 근력과 순발력, 코어의 성장은 이런 불가능을 너무도 쉽게 깨 버린다.

하지만 오늘, 이 놀라운 변화를 체험하면서도 더 날 흥분하게 하는 것이 있었으니,

"들어가겠습니다!"

나는 다급히 외치며 돌아섰다.

아까 6시가 되자마자 받은 메시지!

【재능마켓에 입장하세요.】

【마감 시간까지 11시간 11분 42초 남았습니다.】

오랜만에 들려온 메시지는 나를 재촉하고 있었다.

'어떡하지?'

나는 고민됐다.

학교가 끝나고 가야 할지 아니면 곧장 가야 할지….

【마감 시간까지 11시간 10분 5초 남았습니다.】

하지만 알림은 끊임없이 울렸고,

'왜 또 이렇게 재촉하는 거야?'

결국, 나는 집으로 가 바로 가방을 챙겼다.

'또 뭐가 나오려고 이러나.'

나는 온갖 상상을 하며 이동했다.

재능마켓의 변수는 언제나 예상할 수 없었다. 벌써 여러 번 겪지 않았나? 매번 비현실에서도 아득하게 경계를 넘어 버리니, 부딪혀 보는 수밖에. 그래도 전과 달라진 점이라면 그게 막연히 두렵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거다.

오직 최선을 다할 뿐!

이제 양말도 있고, 넉넉한 포인트도 있으며 순발력과 근력까지 축적했다. 거기에 스킬까지 2개나 추가했으니, 초보 딱지는 좀 뗀 게 아닐까?

호기심 반, 두려움 반을 품은 채 나는 강남역으로 향했다.

"후우…."

오피스텔 앞.

어제 여기서 나왔는데, 꼭두새벽같이 바로 또 여기에 서게 될 줄은 몰랐다.

'난입 미션 같은 거만 아니면 할 만할지도.'

5층으로 올라갔다.

아이템들도 있고, 가방엔 칼도 있다.

지이이이익.

곧장 활을 꺼낼 수 있도록 하드 케이스 지퍼도 열어 두었다.

두근두근.

【마감 시간까지….】

알았다고!

"후우!"

뛰어대는 가슴을 큰 숨으로 부여잡고, 문을 열었다.

【재능마켓에 입장하셨습니다.】

"…."

여전히 기척은 없다.

참 신기하기도 하지.

8일이나 내가 머물렀었건만, 그 흔적도 없다. 깨끗하게 누가 정리라도 해 놓은 것처럼.

재능마켓으로 진입하면서 나는 긴장을 더 끌어올렸다.

【초급 미션을 모두 수행하셨습니다.】

'초급?'

그 힘겨웠던 미션들이 고작 초급이라니.

【자격을 갖췄습니다. 사용자에 맞춰 마켓이 다음 단계로 진화합니다.】

"진화… 한다고?"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전개에 나는 현관문에 바짝 붙었다.

드드드드드드드득!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오피스텔 전체가 흔들렸기 때문이다.

'이, 이럴 수가….'

10평 정도 되던 복층 원룸이었다.

그런데 이건 뭔가?

마치 이곳 전체가 살아서 꿈틀거리는 것처럼 움직였다.

화악!

넓어진 공간감이 가장 먼저 느껴졌다.

'5배는 넓어졌어!'

분명 옆집, 윗집, 아랫집이 있을 텐데도 그것들을 죄다 무시한 것처럼 오피스텔은 확장되었다.

그리곤 이어.

그그극!

더 넓어진 한쪽 벽면이 아이템 진열장으로 변했다.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종류가 많아진 아이템들이 그 수를 셀 수도 없을 만큼 늘어섰다.

뿐만이 아니다.

필라테스 기구도 늘었다.

뭐에 쓰는지도 모를 만큼 커다란 것도 있었다.

"하…."

정말 한순간에 모든 것이 바뀌었다.

쪽방촌에서 대궐로 점프한 것만 같았는데, 눈을 뜨고 보고도 믿을 수가 없다.

"하하…."

여기가 내 집은 아니지만 최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인 것도 사실이다. 나를 제외한 누구도 사용하지 않으니 뭐랄까 내 집처럼 느껴졌었는데, 이렇게 업그레이드가 되니 놀라움과 함께 감동이 밀려왔다.

쪽방살이에서 30평형 아파트로 이사 간 기분이랄까?

진동이 멈추자, 나는 안으로 조금씩 이동했다.

그러면서 뒤를 돌아보았고 경악했다.

"미, 미친…."

계단을 오르면 복층 공간이 나왔었다. 그런데 그 계단이 3배는 길어졌고, 천장도 도서관처럼 높았다. 더 황당한 건 2층을 넘어서 3층 공간까지 보인다는 거다.

【수련장이 추가되었습니다.】

【다양한 가구를 마켓에서 추가할 수 있습니다.】

"이게 말이 되냐고…."

넓고 쾌적하게 변한 건 분명히 좋은 일인데 하도 놀라서 반응도 못 하겠다. 그러나 이어진 메시지에 곧장 현실로 돌아왔다.

번뜩!

정신을 차릴 수밖에 없다.

【미션: 전용 무기를 선택하세요.】

【전용 무기를 선택할 시 해당 무기군에 대해 추가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전용 무기 선택 시 무작위로 '호칭'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전용 무기라면….'

내겐 활이 전부였다.

문득 되물었다.

"나중에 바꿀 수 있나?"

【전용 무기는 언제든 교체할 수 있고 추가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부여받은 호칭은 사라질 수 있습니다.】

"사라진다고…?"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될 일.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지정하시겠습니까?】

"그래."

【지정하신 무기군에 따라 해당 스테이지로 이동합니다.】

'스테이지? 연습하러 가는 건가?'

【전용 무기로 활이 지정되었습니다.】

【해당 스테이지로 이동해 주세요.】

길을 안내라도 하듯 점점이 빛이 이어졌다.

나는 그걸 따라 계단을 올랐다.

2층은 전보다 훨씬 넓은 공간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 옆엔 3층으로 이어진 계단이 있어 다가가 보니, 예전처럼 밀어내는 힘이 느껴졌다. 아직 내게 허락된 곳은 여기까지인 것 같다.

'어디로 가려나….'

들어가 보기 전까진 무엇도 알 수 없었다. 그래도 몇 번 해 봤다고 두려움은 덜하다. 반투명한 공간 안으로 들어가자 언제나처럼 풍경이 급격하게 변했다.

"여긴…."

주변을 둘러보니 산장 같았다.

집 전체를 통나무로 만들었고 가구는 없었는데, 커다란 바구니가 있었고, 그 안에 몇 가지 물건이 들어 있었다.

나는 휴대폰을 꺼내 보았다.

'시간이 흐르지 않아.'

몇 가지 가정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바구니의 물건들을 확인해 보았다. 신발과 옷, 말린 고기로 보이는 것과 바닥엔 화살이 가득했다.

'급할 필욘 없단 얘기지.'

구울을 상대했을 때는 빨리 미션을 해결하려고 조급했었는데, 여기선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교복을 벗고 바구니 속 옷을 입었다. 신발도 갈아신었다.

【방한복을 착용했습니다.】

하드 케이스에서 활을 꺼내 들고, 가방에 물건을 넣었다. 활을 꺼내서 남는 공간엔 화살을 최대한 담았다. 그리곤 문으로 걸어가서 슬쩍 열어 보았다.

휘이이이이이잉.

찬 바람이 후욱! 안으로 들어왔다.

【추위 내성이 발동합니다.】

"아우, 또 춥네."

지난번처럼 눈보라가 치는 설원은 아니었지만, 한기가 덮쳤다. 주변은 온통 산봉우리였고, 지리산 한복판에 떨어진 것 같았는데, 지난번과는 다른 곳이라는 것은 확연히 느껴졌다.

【전용 무기 훈련을 시작합니다.】

【10,000p의 사냥감을 획득하세요.】

"만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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