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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마켓-41화 (41/277)

#041화

내가 첫 번째 만두를 받은 건 5일 전이었다. 하지만 나는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참아 내며 하나는 끝까지 남겨 뒀었다. 다음 만두가 나올 때까지 버티느라 힘들었다.

왜냐고?

'안 상했군.'

이 말도 안 되는 냉장고를 연구해 보고자 말이다.

도대체 이 냉장고는 어떤 구조로 되어 있는 건지 여전히 만두는 모락모락 김을 피워 내고 있었는데, 이건 그냥 갓 찐 만두였다. 표면이 마르거나 속이 상하지도 않았는데, 5일째 냉장고에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스윽.

나는 냉장고에 손을 다시 넣었다.

'분명 그냥 냉장고인데.'

기묘한 일이다.

나는 오래된 만두를 다시 접시에 올려 두고, 이틀 전에 받은 다른 만두를 집었다. 그리곤 냉장고 문을 닫았다.

"추릅."

일주일 동안 만두만 먹으면 질릴 만도 한데, 이거 한 입 베어 물면 그딴 생각은 저 우주로 날아가 버린다.

"크으으…."

한 100번에 걸쳐서 야금야금 나눠 먹고 싶다. 아니면 껌처럼 1시간 정도 계속 씹고 싶다. 그러나 그 어떤 꼼수도 통하지 않았고, 입에 넣는 순간 내 턱이 알아서 움직이고 목구멍이 블랙홀처럼 내 의지를 배반하고 만두를 삼켰다.

【포만감이 극대화되었습니다.】

쪼옥.

나도 모르게 손가락을 입으로 빨았다.

"죽을 때까지 이것만 먹고 살아도 되겠네."

이건 진심이다.

그만큼 이 만두는 인간 세상의 맛이 아니었다.

배고파서인가?

"후, 아쉽지만."

어쨌든 배도 채웠으니, 다시 운동해야겠지?

나는 밸런스 볼로 가서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500번."

씨익, 미소가 지어졌다.

"한 방에 간다."

최고 422번까진 해 봤었다.

이제 일정한 패턴과 흐름을 잃지 않으면 밸런스 볼 오르기에서는 고수였고, 쉽사리 볼에서 떨어지지도 않았다. 500번이라고 한다면 10분도 채 안 걸릴 수 있다.

뭐, 이론상으로 그렇다는 거다.

정확한 비교군을 말할 수 없지만, 내 주관적인 판단으론 10분 전력 질주하는 쪽이 더 쉬운 것 같기도….

"흐으으으읍."

나는 숨을 크게 들이켰다.

며칠 하다 보니, 숨을 조절하는 법을 익혔다.

터억.

오른발로 정확히 볼의 중앙을 밟았다. 처음엔 뭣 모르고 살짝 오른쪽을 디뎠었는데, 하다 보니까 첫발이 가운데에서 중심을 잡는 게 볼의 팽창을 균등하게 한다는 걸 깨달았다.

"…."

올라선다.

숨은 내쉬지 않는다.

그러면서 왼발을 오른발 바로 옆에 붙였다. 양쪽 복숭아뼈가 닿을락 말락 할 정도로 서면 1초를 버틴다.

그리곤 다시 왼발부터 내려온다.

【밸런스 볼 오르기 499회 남았습니다.】

이어 숨을 내쉬고 다시 들이마시며 오른발부터 오른다.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빠르게 숫자를 줄여 나가는 이 순간은 무아지경에 빠진다. 자칫 잡생각에 심취했다간 균형은 순식간에 무너진다. 몸은 마음의 창이라던가? 여하튼 내가 이걸 하면서 안 건데, 마음이 어지러워지면 몸의 균형도 망가졌다.

【밸런스 볼 오르기 400회 남았습니다.】

이제 100개.

흐름이 좋다.

실수도 없었고, 체력도 괜찮다.

【밸런스 볼 오르기 300회 남았습니다.】

200개를 한 큐에 끝냈다.

그래 봐야 걸린 시간은 5분 정도다.

"후… 후…."

이 운동이 보기엔 쉬워 보여도 아주 빠른 속도로 몸을 써야 하는 유산소 운동이었다. 느릿느릿하게 하면 모르겠지만, 내게 그럴 시간은 없었다.

【밸런스 볼 오르기 200회 남았습니다.】

숫자가 빠르게 줄었다.

지난 일주일.

여기서 가장 힘든 건 의외로 고독하다는 거였다. 40년을 여친 없이 살고, 20년은 가족도 없이 살았지만, 그래도 배달을 하든가 TV를 보면서 사람을 보고 살았었는데…. 이 오피스텔은 정신 병동에 갇힌 기분이었다.

아, 거기에도 사람은 있지 않나?

【밸런스 볼 오르기 100회 남았습니다.】

'어머니….'

여기서 나가면 무조건 어머니와 밥이라도 먹을 거다. 정작 과거로 돌아왔는데, 내 일이 바쁘단 핑계로 어머니와 시간을 자주 보내지 못한 것 같다.

"흐으으읍, 하아아아. 흐으으으읍, 하아아아아."

【밸런스 볼 오르기 50회 남았습니다.】

운동에서 따라오는 고통과 싸우고, 고독을 이겨 내며 보냈던 시간. 이제 그게 오늘로 끝날 거다.

그 첫 단추가 이제 50번 남았다.

그렇다고 서둘면 안 된다. 이럴수록 냉정해져야 했다.

'넷.'

셋, 둘, 하나.

씨익.

절로 지어지는 미소와 함께 나는 밸런스 볼에서 내려왔다.

【축하합니다! 밸런스 볼 오르기 미션을 완료했습니다.】

【순발력+1을 얻었습니다.】

【코어가 성장했습니다.】

"하! 하하!"

해냈다!

【대단한 도전에 성공했습니다!】

【밸런스 볼 오르기 500회 연속 성공으로 500P를 얻었습니다!】

보너스까지!

"나이스!"

하지만 쉴 때가 아니었다.

나는 성큼성큼 철봉으로 걸어갔다. 그리곤 매달려서 50개를 향해 또 움직였다. 내가 쉴 때는 근육이 더 움직일 수 없을 때만이다.

'몸이 더 가벼워졌어?'

순발력 덕분인가? 아니면 코어의 영향인가?

'이러면 70개도 되겠는데?'

놀라운 몸의 변화에 나는 자신감이 더 붙었다.

'아니야, 80개도 할 수 있어!'

원래는 50개 언저리에서 내려왔었다.

그런데 지금은 75개째인데도 팔이 움직였다.

"와… 뭐지?"

80개를 넘기고도 나는 철봉에 매달려 있다.

'더 해 보자.'

호승심이 생겼다.

호기심도 일었다.

85개.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것 같아.'

90개.

코어가 자랐다고 이렇게 될 리 없었다. 이건 확실히 순발력+1의 영향이었다.

95개.

'대박…. 100개는 하겠어!'

그랬다.

아까까진 모래주머니를 주렁주렁 매달고 철봉을 하는 기분이었다면 지금은 그 모래주머니가 죄다 깃털로 바뀐 것 같았다.

'100!'

【축하합니다! 대단한 도전에 성공했습니다!】

【철봉 오르기 연속 100회 성공으로 500P를 얻었습니다!】

"하, 하하하…!"

일단 철봉을 놨다.

연달아 500P를 두 번이나 얻었다. 고블린 20마리 사냥과 동급의 포인트다.

【철봉 오르기 1,000회 남았습니다.】

"멋지다."

내가 했지만 이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아직도 내 팔엔 여유가 있었다는 거다.

"좋아."

눈이 번뜩였다.

남은 횟수는 1천 개.

그걸 그냥 무력하게 날려 버리긴 아까웠다. 나는 옆으로 나와서 생수를 마신 뒤 팔을 충분히 풀었다. 스트레칭을 하면서 시간을 계산했다.

'200개, 할 수 있을까?'

한다고 반드시 보상을 주는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도전하고 싶다.

'순발력이 단순하게 내 몸을 가볍게 만든 것만은 아닐 거야.'

체력이나 지력은 쉽게 체감할 수 있었지만, 순발력은 이런저런 걸 해 보면서 파악해야 할 것 같다.

몸이 가벼워진 기분.

이런 기분은 살면서 쉽게 경험하지 못하는 것이 분명했고, 그만큼 만족감은 컸다. 일주일간 변비로 고생하다가 속 시원하게 다 비워 낸 것 같달까?

'간다….'

오랜만에 머릿속이 투지로 가득 차올랐다.

.

.

.

퇴근 시간 전이라 아직 홀은 한산하다.

도화지는 멍하니 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며칠 굶은 사람처럼 왜 저래?'

출근한 민준이가 밥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 벌써 3그릇째다.

'근데….'

도화지가 얼굴을 붉혔다.

'또 느낌이 달라졌네.'

민준인 참 이상한 애였다. 분명 나이는 더 어린데도 어른스러웠다. 그게 참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게, 그냥 경험하지 않으면 절대 나올 수 없는 그 뭐랄까… 아저씨 같은(?) 뭔가가 있었다.

'키가 더 큰 건가?'

민준이가 입은 교복도 우스꽝스럽다. 고등학생이 중학교 때 교복을 입고 있는 것 같달까? 하지만 민준이가 입고 있으니 그것도 묘하게 잘 어울렸다.

'운동한댔지?'

도화지는 살면서 저렇게 비율이 좋은 애는 처음 봤다. 작은 얼굴에 넓은 어깨, 긴 다리와 큰 손까지. 무심코 보고 있자니 가슴이 콩닥 뛰었다.

'분명히 어제도 봤는데.'

하루 만에 어떻게 이렇게 사람이 달라 보일까?

물론, 그녀는 모를 것이다.

민준에게 그 하루는 8일이었고, 살인적인 두 가지 운동을 마친 시간이라는 것을.

철봉과 볼 오르기로 생겨난 근육은 이전과 다른 핏을 만들었고, 성장한 코어는 장인이 조각을 깎듯 민준의 체형을 다듬었으니 그걸 하루라는 시간으로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잘 먹었습니다!"

민준이 그릇을 들고 일어났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을 먹은 사람처럼 웃는 그 얼굴을 보면 나도 먹어 봐야 하나? 생각이 들었지만, 민준이 먹은 밥이라곤 그냥 흰밥에 셀프 코너 반찬들을 슥슥 비빈 것뿐이었다.

'까탈스럽지 않아서 좋아.'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생각하다가 깜짝 놀랐다.

'좋다니! 누가!'

애써 부정하지만, 입덕 부정기처럼 눈으론 계속 민준이 설거지하는 걸 좇고 있었다.

'뭐, 좋은 일이라도 있었나?'

해맑게 웃는 민준을 보며 입꼬리가 절로 올라가는 그녀였다.

식사를 마친 민준이 고기 창고로 갔다.

거기서 주방 아저씨와 뭔가 쑥덕거리는 것 같더니 30분쯤 지나서 가게 뒤로 이동했다. 불판을 닦으려는가 보다.

도화지는 자연스럽게 민준을 따라갔다.

앞치마를 매고 물에 불려 놓은 불판이 담긴 통을 끄는 게 보였다.

'힘은 또 왜 저렇게 쎄?'

김장할 때 쓰는 저 큰 통은 물만 담겨 있어도 어마어마하게 무거울 거다. 근데 거기에 더해 불판이 가득하니 무게가 만만치 않을 게 뻔하다. 하지만 민준이는 힘든 것 같지도 않았고, 모르고 보면 가벼운 의자 따위를 끄는 것 같기도 했다.

민준이 앉아 불판을 닦기 시작할 때, 그녀는 냉큼 옆에 앉아 물었다.

"로또라도 맞았어?"

뭐가 그리 좋냐는 뜻이다.

"아, 네. 뭐…."

민준이 활짝 웃었다.

확실히 기분이 좋은 것 같다. 저렇게 웃는 건 처음 보는 것 같다.

화끈!

도화지는 차마 더 보지 못하고 얼굴을 돌렸다.

'고맙다고 말하려고 했는데, 어색해서 못 하겠어!'

민준이한테 깨진 일진들이 그녀에게서 멀어졌다. 할머니도 요즘 정신을 차리는 일이 많아졌는데 설명할 수 없지만, 확실히 상태가 호전된 것 같았다.

"저기…."

"네?"

"주말엔 뭐 해?"

"일해요."

"계속?"

"네."

둘러대는 것 같진 않다.

"쉬는 날 없어?"

"네."

민준의 비밀스러운 스케줄까지 안다면 아마 그녀는 기막혀 입을 못 다물 것이다. 하지만 표면적으로만 봐도 민준인 고1의 생활이 아니었다. 얼핏 듣기론 공부도 잘한다던데.

'무슨 애가 일만 해….'

"왜 그렇게 살아?"

그녀는 울컥해서 물었다.

사정은 잘 모르지만, 아직 우린 어리지 않은가? 저렇게 일만 하고 산다고? 그녀로선 안타까운 마음까지 들었다.

그러나 민준인 티끌처럼 작은 어둠조차 묻지 않은 표정으로 그녀를 보며 웃었다.

"후회하지 않으려고요."

"무슨 후회?"

"지나간 날들에 대한, 할 수 있었는데 안 한 시간에 대한… 그런 거요."

"너, 진짜 이상한 거 알지?"

민준인 웃으며 고갤 돌렸다.

그리곤 불판 닦는 데 열중했다.

"…."

그런 민준을 보다가 그녀가 일어났다.

"혹시라도… 내가 도울 일 있으면 말해."

민준이 그녀를 보며 또 웃었다.

"그럴게요. 고마워요."

"고맙긴…."

내가 너한테 그 말 하려고 왔는데.

"치잇."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돌아섰다. 왜 민준이 앞에선 계속 툴툴거리게 되는지 모르겠다.

"…."

그녀가 사

라지자 민준은 손을 멈췄다.

"로또라…."

아까 도화지가 했던 말.

민준이 미소 지었다.

"로또라면 로또겠지?"

그 의미심장한 표정 안엔 아주 많은 것들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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