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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마켓-38화 (38/277)

#038화

밤 8시 48분.

현장에 도착한 야마구치 형사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어떻게 된 거라고?"

그가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자 옆에서 사내가 말했다.

"13명이 죽었습니다."

"어떻게?"

"대부분은 관통상이었습니다. 화살에 당한 것 같고요."

"어떤… 미친놈이 활로 이 마을 사람들을 사냥하고 다녔다, 그건가?"

본토엔 과격한 사건 사고가 간혹 일어나긴 했었지만 오키나와는 단 한 번도 이러한 대규모 연쇄 살인이 벌어진 적이 없었다.

"현재까지 정황으로 봐선 그렇습니다."

"허…."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뭐지?"

"사망자들의 상처에 출혈이 없습니다."

화살에 맞아 죽었다면 화살을 뽑아내기 전까진 피를 흘리지 않을 수도 있긴 하다. 하지만 이상한 점이라고 콕 집어 말하는 걸 보면 심상치 않았다.

야마구치가 설명을 더 요구하는 눈빛을 보이자 사내가 이어 말했다.

"몇 구의 시신에선 화살이 뽑힌 흔적이 있습니다. 해당 화살이 다른 사람의 몸에서 발견되었고요."

"화살을 뽑아서 재탕했다, 이건가?"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망자들은…."

사내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참으로 이상한 게 통화 기록 등을 살펴보면 분명 어제까지 살아 있던 사람들이었는데, 시신의 부패 속도가 최소 사망한 지 열흘은 된다는 소견입니다."

"…."

이야기를 들으며 야마구치는 폐가로 걸어갔다.

옆에서 사내가 말했다.

"이 남자가 최초 사망자인 것 같습니다. 여기서부터 족적이 저쪽으로 이어집니다."

사안이 워낙 엄중하다 보니 아직도 사체들은 치우지 못했다.

"이 남자를 살해한 뒤 집 뒷마당을 통해 담장을 넘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그를 마을 사람들이 추격한 것 같습니다. 그것도 이해가 되질 않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때, 야마구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첫 번째 남자의 시체를 자세히 본 것이다.

"열흘… 도 짧아 보이는군. 특수한 약품을 사용한 건가?"

이미 거무튀튀하게 변해 버린 피부만 봐도 그랬다. 특이한 건 이빨과 손톱이었는데, 기괴하다 못해 무섭기까지 했다.

'이빨이 이렇게 변색되려면 뭘 해야 하지?'

그가 일어나며 뒷마당 쪽으로 향했다.

"신원 미상의 살인범이 마을에 왔고, 저 남자를 살해했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이 전부 이리 몰려와서 그 살해범을 쫓아갔고?"

"흔적이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 이 아이가 두 번째로 살해됐습니다."

11세가량의 소녀의 시체가 뒷마당에 있었다. 소녀의 가슴에 화살 하나가 삐죽 박혀 있었고, 귀 위쪽으로 화살이 박힌 채였다.

"신원은?"

"700미터 떨어진 집에 사는 히미코라는 아이입니다."

"그러니까 저쪽 남자가 먼저 죽었는데, 11살짜리 소녀가 살인범을 따라와서 여기에서 죽었다?"

"…그렇습니다."

갈수록 오리무중이었다.

야마구치가 소녀 옆에 쪼그려 앉았다.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한 소녀의 눈동자는 섬뜩했다.

"눈이 왜 이렇게 충혈됐지?"

"모든 사망자들이 보이는 증상입니다."

"단체로 미쳐 버린 건가?"

"식수원이 오염되었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성분 의뢰를 했습니다."

"오염이라…."

야마구치가 일어나서 담장으로 갔다. 살인범이 넘었을 곳으로 추정되는 곳에 표시가 있었고 아래엔 발판을 놓아 두었다.

'대체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야마구치가 발판을 밟고 담장을 넘었다. 사내가 뒤를 따랐다.

"세 번째 사망자입니다."

담장에 몸을 기대고 늘어진 여인은 40대로 추정되었다.

"뒷마당에 있던 히미코의 모친입니다."

역시나 증세는 같았다.

충혈된 눈과 변색된 이빨, 긴 손톱과 시커먼 피부.

'흡사 짐승 같구나.'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나?

"혹시 최근에 주변에서 수상한 사람이 목격됐다는 신고가 있었나? 외지인을 봤다거나."

"아시다시피 이 마을은 외국인은커녕 여기 사람들도 잘 오지 않는 곳입니다."

관광지에서도 한참 떨어진 시골 마을이었다.

'어떤 비밀 실험이라도 벌어진 게 아니고서야….'

야마구치는 여인의 얼굴을 보았다. 이 여인에겐 단 한 발의 화살만 보였다.

'살인범의 솜씨가 좋아지고 있어.'

처음엔 세 대.

다음엔 두 대.

이 여인에겐 한 대의 화살로 목숨을 빼앗았다.

'담장에서 내려오자마자 당한 건가?'

야마구치는 흔적을 따라 계속해서 걸었다. 누가 봐도 추격전이 벌어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더 이상했다.

살인범이 있었고 이렇게 많은 희생자가 나왔는데, 되레 살인범을 따라갔다?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걸 보면서도?

30미터쯤 걷던 그가 허리를 숙였다.

"깨끗하군. 회수할 틈이 없었다는 거야."

화살 한 대가 덩그러니 있었다. 사용한 화살까지 뽑아 썼던 범인을 생각해 보면 이 시점에선 여유가 없이 도주했다는 거다.

"용의자는?"

"특정할 수 없습니다. 워낙 시골이라 CCTV도 없고 인접 도로의 차량을 뒤져 보고 있긴 하지만 성과가 없습니다. 오가는 차량이 별로 없었거든요."

"마을 사람들 차량에 숨어들었을 수도 있잖나."

"가능성은 열어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내가 저쪽을 보며 말했다. 감식반이 현장에서 지문을 채취하고 있었다.

"나오는 게 없습니다."

"아무것도?"

"화살에서 지문이 나오긴 했는데, 등록된 지문이 아닙니다."

"체모 같은 건?"

"더 뒤져 봐야겠지만…."

이런 야외에서 털 같은 걸 발견한다고 해도 쓸모가 있을까?

"지금까지 유력한 증거는 족적입니다. 275 사이즈의 신발에 체중이 그리 많이 나가는 편은 아닙니다."

그나마 발자국의 깊이로 몸무게를 가늠해 볼 수 있었다.

"묘하군. 아주 묘해."

야마구치는 몇 구의 시체를 더 보면서 흔적을 따라갔다.

'석궁도 아니고, 활이라니.'

활은 무척이나 다루기 힘든 물건이다. 숙련되지 않으면 코앞의 사과도 맞히기 어렵다.

논을 가로질러 1km쯤 걸었다.

"저게 뭐지?"

"우물입니다. 요즘엔 사용하지 않는 우물인데… 저기에서 일곱 명이 죽었습니다."

지금까지와는 양상이 달랐다. 이전의 사망자들은 누군가에게 향하다가 죽었다면, 저쪽의 시체들은 우물을 등지고 있었다.

"마치 저길 지키려고 한 것처럼 보이는군."

"네?"

"아니야. 가지."

오키나와는 섬이다.

그만큼 물이 귀하고 오래전부터 이렇게 파 둔 우물이 많았다. 물론 현대엔 상하수도가 잘되어 있고, 지하수를 파내는 것도 기술이 늘어서 우물물을 길어 쓰진 않는다.

그래서일까?

줄을 매달아 던져서 끌어 올리는 방식의 우물이었지만, 물을 퍼내는 바구니도 없었다. 깊이는 5미터 정도 되었는데, 이미 안쪽에 뭐가 있는지 확인을 하려고 조명을 매달아 내려 두어서 아래가 훤히 보였다.

사내가 옆에서 말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물도 말랐고."

"네, 아래엔 족적도 없었습니다."

우물 안을 보던 야마구치가 담배를 하나 더 꺼내 물었다.

"그리고 어떻게 됐지?"

"여기서 끊겼습니다. 사방으로 다 확인했지만, 유실물도 없고, 족적도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범인이 이 우물가에서 남은 사람들을 다 죽이고 흔적도 없이 유령처럼 사라졌다, 이건가?"

13명이 죽었다.

벌써 기자들이 냄새를 맡고 달려들고 있었으니, 아침이 되면 일본 전역을 발칵 뒤흔들 만한 사건이었다.

"생존자는… 없나? 목격자라든지."

"이 마을 사람은 13명입니다."

"…그렇군. 통신사 조회는?"

"요청해 뒀습니다."

요즘은 휴대폰이 GPS나 마찬가지기에 마을 사람들 것을 제외하면 침입자를 특정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여기까지 떠올렸을 때 이상한 점이 떠올랐다.

"이 사람들, 소지품은 확인해 봤나?"

"그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아무것도?"

"네, 저도 그 점이 이해가 안 됩니다. 칼 같은 무기도 없고, 다급했다고 해도 휴대폰 하나 챙긴 사람이 없습니다. 게다가… 저 사람은 신발도 안 신었습니다."

"범인으로 추정되는 사람은 한 명이고?"

"네, 공범의 족적은 보이지 않습니다."

"…."

'그런데 왜 이 우물을 지키려고 한 걸까?'

대체 이게 뭐라고?

흔하디흔한 오래된 우물일 뿐이지 않은가?

야마구치는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허리를 폈다.

'마약이라도 재배했던 건가?'

실상은 모르겠지만, 시체의 모습을 보면 그렇게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최초 신고자는?"

"도시에 사는 모리 씨의 딸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전화를 받지 않자 직접 왔는데."

"그가 집에 없었군."

"그렇습니다. 그리곤 여기까지 온 겁니다. 마을에 사람이 하나도 없었으니까요."

"충격이 컸겠어."

"…그 누구라고 해도 그럴 겁니다."

사내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하지만 그건 살인범에 대한 분노가 아니었다. 닭살이 우수수 돋아날 것 같은 괴이함. 이 시체들을 보면 불쌍하다는 생각보다 무섭다는 기분이 먼저 들었기 때문이다.

"뭐였을까."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마약상과의 트러블인가?'

외진 마을에서 마약을 길렀다? 그런데 어느 순간 마을 사람들이 약에 손을 댔고, 이렇게 피부가 변색될 정도로 중독됐다. 그걸 안 마약상이…?

'마약을 이 우물에 감춰 뒀었나?'

그래서 이 사람들이 목숨 걸고 지킨 거고? 계속해서 물음표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었다.

"일단… 수사는 공개 수배로 전환하지."

"벌써 말입니까?"

야마구치가 담배를 거칠게 구둣발로 비벼 껐다.

"자네라면 여기서 속 시원하게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 같나?"

"…모르겠습니다."

"그래, 이건 우리가 감당할 사건이 아니야."

사망 추정 시각을 보면 시간이 많이 지나지 않았으니 범인이 아직 오키나와를 떠나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한 야마구치였다.

.

.

.

【누적 포인트 8,800.】

"…."

불판을 닦는 손길이 평소와는 다르게 자연스럽지가 않다. 내 머릿속이 너무 복잡해서 그렇다.

【고기 불판이 광택을 머금었습니다!】

그래도 세척 스킬이 발동했다.

그래, 스킬.

나는 새롭게 스킬을 얻었다.

게다가,

【수호자 포인트 지정

균열에 포인트를 지정할 수 있고, 해당 포인트까지 재능마켓을 통해 이동할 수 있다. 24시간 1회 한정.】

이런 희한한 능력까지 더해졌다.

내가 찾은 균열이란 건, 폐가 뒤쪽 우물에 있었는데 거기서 뭐가 넘어왔는지 사람들이 당했고, 구울이 된 것 같았다. 나를 잡아먹을 것처럼 쫓아오던 사람들은 내가 우물을 발견하자 돌연 균열을 지키려는지 우물가에 모여 격렬하게 저항했고, 나 역시 필사적으로 그들을 처치했다.

열셋이었나?

이미 그들이 인간이 아닌 것을 깨달은 나에게 죄책감은 없었지만, 씁쓸함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어쨌든, 그들을 무력화시키고 균열에 손을 대자 순식간에 나는 강남역 오피스텔로 이동해 있었다.

【수호자의 권능

수호자의 의지로 균열을 닫을 수 있다. 접촉해야만 발동한다.】

그와 동시에 내 앞으로 작은 돌멩이들이 후두둑 떨어졌고,

【필라테스 이용권.】

【시력 향상 드링크.】

【은신 드링크.】

【수호자의 오래된 기록 78페이지.】

그것들이 아이템으로 변한 것도 순식간이었다.

이벤트 미션으로 3,000포인트.

구울 처리로 1,300포인트까지. 이것만 해도 내가 이제까지 모은 4,500포인트에 필적했다. 게다가 스킬도 두 개나 얻었고, 실전에서 활을 쏘는 경험도 축적했으니 어마어마한 보상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가장 수상한 건 바로 '수호자의 오래된 기록 78페이지.'라는 거였다. 그게 바로 이벤트 미션에서 얻을 수 있다던 '정보'였던 것 같은데….

지금, 내가 혼란스러운 이유였다.

【수호자의 오래된 기록 78페이지

균열을 통해 넘어온 하층민들은 본래의 힘을 되찾기까지 반드시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반대로 상층민이 하층에 진입하였을 때는 그러한 간극이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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