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7화
이건 또 무슨 일인가?
"하…?"
나는 구글 맵을 열었다.
믿기진 않았지만, 지금 내 위치를 확인하기에 이만한 게 없었다.
그리고 폰 화면이 떴을 때,
【오키나와, 일본.】
"말도 안 돼…. 일본이라고?"
나는 경악했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해외여행을 해 본 적이 없던 나다. 해외는커녕 제주도도 못 가 봤다. 그런데 갑자기 일본이라고? 게다가 시간이 흐르고 있지 않나?
【오후 5시 21분.】
"망했다."
제일 먼저 든 생각은 고깃집 알바를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직 한 달도 안 됐는데, 벌써부터 무단결근이라니!
일단 뒤로 돌아서 다시 문을 열고 들어갔다.
【미션을 수행하지 않았습니다.】
【미션 수행 가능 시간까지 23시간 42분 남았습니다.】
'못 나가?'
환장하겠다.
알바도 알바지만, 이대로라면 학교도 못 간다. 아니, 집에도 못 간다면? 어머니가 많이 걱정하실 거다.
'카톡은 되나?'
어떻게든 둘러댈 수 있다면 하루쯤은 넘어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흐를 거라곤 생각도 못 했어. 더 신중했어야 했는데.'
와이파이를 떠올리면서 다시 밖으로 나갔다.
'여기가 오키나와라고?'
너른 들판이 보였다.
지나치게 한적했고, 저 멀리 듬성듬성 주택이 눈에 띄었다.
"…."
나는 내가 나온 곳을 돌아보았다. 시골에 흔히 있는 농막처럼 생긴 창고처럼 보인다. 저것도 아마 강남역 오피스텔처럼 불가사의한 공간인 걸까?
'뭐가 뭔진 모르겠지만, 미션을 빨리하면 돌아갈 수 있어. 그것만 생각하자.'
왜 일본으로 왔는지는 몰라도 '균열'이라는 것부터 찾으면 뭐라도 방법이 나올 것이다.
나는 우선 기준을 잡고 이동했다.
'내 첫 해외여행이 이런 식이라니….'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지만, 전처럼 설원 같은 곳이 아니라서 한결 마음이 편하긴 했다. 어찌 됐든 여긴 사람 사는 곳 아닌가?
'균열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당황스럽기도 하다.
이런 곳에 뭐가 있다는 것도 이상하고, 어쨌든 처음 보는 풍경이 낯설기도 하다. 게다가 내 손에 커다란 활까지 들려 있으니 누가 보면 얼마나 이상할까?
우선, 어떻게 될지 모르니 민가와 멀리 떨어져서 이동해야겠다.
'어딘가 단서가 있을 건데….'
좀 더 걸었다.
논두렁을 따라 계속 걸었다.
일본이라곤 했지만 우리네 시골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차라리 뛰자.'
산책을 나온 것도 아니고, 시간은 계속 흐르니 초조해졌다.
보폭을 넓혀 뛰다 보니, 휙휙 풍경이 빠르게 변해 갔다. 이렇게 뛰면 정보를 놓칠 수도 있었기에 더 주의를 기울여야 했지만 걷는 것보다 나으리라.
그런데 이때,
【미션 완수까지 180.911km 남았습니다.】
"…!"
남은 거리가 빠르게 줄어갔다.
'이게 된다고?'
뭐, 의외긴 했지만, 동시에 되면 일석이조였으니 나쁠 게 없었다.
한참 달리다 보니 민가가 보였다.
'빈집인가?'
오래 방치된 것 같은 집.
사람의 흔적은 없었다.
그냥 지나칠까 하다가 급히 몸을 숙였다.
'뭐지?'
안쪽에서 뭔가가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착각인가?
'아니야. 뭐가 있어.'
자세를 낮추고 기다렸다.
혹시 몰라서 활을 앞으로 두고 화살 하나를 꺼냈다.
"…."
좀 더 기다렸다.
3분쯤 지났을까?
'…어?'
처음엔 동물이라고 생각했었다. 들개나 뭐 그런 거 있지 않나? 좀 더 과하게 생각하면 고블린 같은 괴물이 나올지도 모르니 마음의 준비를 했다. 재능마켓에 뒤통수 맞은 게 한두 번이 아니지 않나?
뭐가 나와도 이상할 게 없었다.
'사람?'
그런데 뭔가 묘했다.
집 안에서 얼쩡거리다가 밖으로 나온 것은 분명 '사람'이었지만, 굉장히 이상했다. 외모가 그렇다는 게 아니라 느낌이 그렇달까?
40대 중년 남자.
'뭐지?'
그의 어깨는 축 늘어져 있었다. 얼굴을 꼿꼿하게 앞으로 향하고 있었고, 전체적으로 상당히 부자연스러운 동작으로 느릿하게 걷고 있었다.
'아픈 사람인가?'
내가 너무 예민한 것일 수도 있다. 이 마을 사람일지도 모르지 않나?
꿀꺽.
침을 삼키며 좀 더 지켜봤다.
그런데 마당을 서성이던 남자가 돌연 웅크렸다.
'땅을 파?'
그는 어기적거리던 몸짓처럼 어색하게 땅을 손으로 벅벅 긁어 대고 있었다.
'뭘 하는 거지?'
거리가 멀어 자세히 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땅을 파던 그의 손이 입가로 몇 번이나 움직였다. 괴이한 일이었지만 그가 무언가를 먹고 있다는 걸 부정할 수 없었다.
'제길….'
화살을 시위에 걸고 자세를 낮춰서 그쪽으로 조금씩 이동했다. 이렇게 지켜만 봐선 시간만 낭비하는 꼴이었다. 죽이 됐든 밥이 됐든 확인하는 게 옳았다.
흐으으으으으….
가장 먼저 들려온 것은 매우 불쾌한 숨소리였다.
버버버버벅!
그는 계속해서 땅을 파고 있었는데, 가까이에서 보니 상의는 온통 흙투성이였다.
그와의 거리가 200미터쯤 남았을까?
【균열에서 나온 구울을 발견했습니다.】
【균열에서 나온 구울은 아직 최상층에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매우 굶주린 구울은 포식을 할수록 힘이 강해집니다.】
'구… 울?'
최상층은 또 뭐야?
'모르겠어. 하지만 저게 사람이 아니란 건 확실하단 거지.'
나는 좀 더 접근했다.
이 거리에선 화살을 명중시킬 자신이 없었다. 팽팽한 긴장감이 활시위에 고스란히 녹았다.
'이건 실전이야. 마음이 약해지면 안 돼.'
이미 사람의 모습을 한 괴물과는 싸워 본 경험이 있었다. 저들의 포식이 뭘 의미하는진 본 적 없었지만 그게 결코 좋은 일은 아닐 거란 확신도 들었다.
'지렁이라도 먹고 있는 건가?'
150미터까지 접근했다.
더 뚜렷하게 보이는 남자의 행동은 여전히 기이했다. 흙이 잔뜩 묻은 손을 거침없이 입으로 가져갔다.
'바람은 없어.'
다행이었다.
내가 활 연습을 해 봤다지만, 주로 오피스텔에서 했었다. 끝에서 끝이라고 해 봐야 10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 바람이라는 장애물 따위도 없던 곳. 바람이라도 불었다면 낭패였을 거다.
'더 가까워야 해.'
하지만 거리가 또 너무 멀었다.
이런 장거리 과녁은 내게 상당한 부담이 된다.
70미터, 50미터.
접근할수록 긴장 때문에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저 남자가 아직 나를 발견하지 못했을 때 최대한 치명상을 입혀야 했지만, 별수 없었다. 못 맞히면 활은 꽝이다.
어느새 30미터까지 줄었을 때 나는 그의 눈을 볼 수 있었다.
'으음….'
충혈돼서 터질 것 같은 붉은 눈동자.
표정은 없고, 피부는 죽은 것처럼 검다.
구울이란 게 뭔진 모르겠지만, 더 조심해야겠다.
문득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까보다도 어둑해진 풍경엔 땅거미가 내려앉고 있었다.
'밤이 되면 더 힘들어질 거야.'
선택은 빠를수록 좋다.
사사삭!
낮은 자세로 속도를 높였다. 그리곤 어느 시점이 되었을 때 나는 허리를 쭉 펴고 활을 들었다.
"흐으… 으으으으?"
남자가 나를 발견한 것도 거의 동시였다.
"으으읏-?"
잠깐 당황하는 것 같더니, 처음으로 그의 얼굴에 표정이란 게 생겼다.
"하아아아악!"
그건 두려움이 아니었다.
환희와 기쁨이었다.
"하아아아아아악!"
남자가 입을 떡 벌리며 나를 향해 걸었다. 그의 표정만 보면 전력으로 뛰는 것 같았지만, 마치 고장 난 로봇처럼 느릿느릿 나를 향해 걸어왔다.
'침착하게.'
그으으으그그그그극!
팽팽하게 당겨진 시위.
핑!
마침내 화살이 날았고,
사아아악! 날아간 화살은 그의 배에 푹 박혀 들었다.
젠장. 가슴을 노렸는데 배에 맞았다.
"…!"
그런데 어떻게 된 거지?
그는 신경도 안 썼다.
고통은커녕 화살이 박혔는지도 모르고 계속해서 나를 향해 걸었다.
'젠장.'
또 하나의 화살을 빠르게 뽑아 들었다. 이제 남은 거리는 고작 10미터도 안 됐다. 움직이면서 활을 쏠 실력은 안 됐기에 기회가 몇 번 남지 않았다.
'고통을 못 느끼나?'
설원에서 싸웠던 좀비도 그랬었다. 같은 부류인 것 같으니 더 확실하게 노려야겠다.
'셋에 놓자.'
그의 움직임이 매우 불규칙했기에 동작을 예상해야만 했지만, 다행히 느리다.
'어설픈 곳에 맞아 봐야 타격을 줄 수 없어.'
살아서 움직이는 사람 형체를 과녁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하지만 저 얼굴을 보라.
당장에 나를 산 채로 뜯어 먹겠다는 강한 의지가 보이지 않나?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하나, 둘.'
셋.
투욱.
다시 놓은 시위에 힘을 받은 화살은 빠르게 공간을 이동해 남자에게로 날아갔다.
퍼억!
이번엔 정확하게 목 바로 아래에 화살이 박혀 들었다. 그러나 절반 이상이나 화살이 뚫고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눈썹조차 미동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때,
이번 공격엔 나조차 예상하지 못했던 효과가 터져 버렸다.
쩌엉-!
"하아악?"
화살에서 갑자기 푸른 기운이 화악! 터져 나간 것이다. 그게 남자의 전신으로 퍼져 나갔는데, 한기가 여기까지 뿜어나왔다.
'빙 속성?'
그러고 보니 이런 효과가 가끔 터진다고 했었다.
무려 '레어' 활 아니었나?
하지만 여전히 부족했는지,
"흐으으으으으…."
아까보다 더 느려진 동작으로 계속해서 나를 향해 걸어왔다.
'좋았어. 뭐든 돼라.'
나는 남자를 보면서 또 하나의 화살을 시위에 걸었다.
'몸은 아니야.'
독하게 마음을 먹어야 했다.
'노릴 곳은 하나다.'
이미 두 번을 쏴 봤고, 남자는 더욱 느려졌으니 시간을 끌 이유가 없었다.
투욱.
세 번째 화살은 곧장 날아갔다. 이제 거리가 멀지 않아 맞히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화살은 곧장 나아가 남자의 이마에 닿았고,
콰곽!
신경을 거스르는 소리를 냈다.
사람의 두개골은 무척이나 단단하다. 어설프게 맞으면 피부만 찢고 화살은 옆으로 튕길 것이다. 그러나 제대로 박히면 화살촉은 안으로 파고들어 뇌를 직접 찌른다.
"흐아아아아악-?"
이제까지 어떤 반응도 없던 남자가 비명처럼 소릴 지르더니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돼, 됐나?"
주륵.
이마에 맺혀 있던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무언가를 죽이는 게 익숙하진 않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거리를 두고 남자를 바라보는데,
【구울을 사냥했습니다. 100p를 얻었습니다.】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메시지가 나왔다.
그건 곧 저 남자가 죽었다는 뜻이다.
"휴우."
그제야 나도 큰 숨을 내쉬며 활을 내렸다. 긴장이 풀어진 것이다.
그러다 문득,
묘한 이질감에 번뜩 정신이 들었다.
'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
본래라면 신기루처럼 사라져야 하지 않나?
시체가 없어지지 않는 건가?
"으음…."
나는 조심스레 남자에게로 가서 살펴본 뒤 화살을 뽑아냈다. 이렇게 뽑는 게 싫긴 하지만 이거 하나가 다 돈이고, 앞으로 얼마나 소모해야 할지 알 수 없었으니 재활용할 수 있다면 해야 한다.
'100포인트라…. 근데, 아직 끝이 아니라 이거지?'
죽은 남자를 보며 생각했다.
'확정 3,000포인트에 사냥할 때마다 100포인트를 받으면 이 미션이 끝날을 때 상당히 많이 모을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뭐가 더 남은 거지?
나는 고갤 들어 폐가를 바라보았다. 인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게 더 오싹하다.
'저기 뭐가 더 있으려나?'
막 몸을 돌려 더 살피려는데….
"어, 언제…?"
나는 나무토막처럼 굳었다.
산 그림자가 덮인 어둑한 풍경엔 그림자처럼 이상한 것들이 녹아 있었다. 그리고 그건 모두 사람의 형태를 했지만, 이질감이 강하게 느껴졌고, 나에게 경고하고 있었다. 위험하다고.
노인, 아이, 여자….
건장한 남자까지 대충 봐도 열 명은 넘는 사람들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다르다.'
방금 상대했던 남자는 이지가 없었다. 그런데 저들은 나를 보면서도 움직이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게 의미하는 건 죽은 남자보다 훨씬 영리하고 강하다는 뜻일 거다.
"흐으으으."
"하아아아아아아…."
평범한 옷차림의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의 얼굴은 세상에 절대 없을 것 같은 종류였고, 살짝 벌어진 입 속엔 시커먼 이빨이 있었으며 손톱은 기이하리만치 뾰족하게 길었다.
"…."
나는 경각심을 높이며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그리곤 화살을 활에 먹였다.
'집에 들어가? 아니야. 그러면 내가 더 불리해져.'
놈들이 나를 향해 천천히 걸어왔다. 서둘지 않는다는 게 더 섬뜩하다.
가로등 하나 없는 시골.
더 어두워지면 나는 죽을지도 모르겠다.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