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마켓-30화 (30/277)

#030화

'당황하지 말자.'

나는 놈의 눈을 피하지 않고 마주했다.

크르르르르르….

고양이처럼 바닥에 몸을 납작 웅크린 상태로 슬금슬금 내게 접근하는 늑대는 언제든 나에게 도약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천천히….'

나는 가까스로 마음을 진정시키며 침착하게 상황을 정리했다.

굶주린 짐승은 무섭다.

아무리 놈의 크기가 나보다 작다지만, 발톱과 이빨, 순발력을 생각해 보면 내가 불리할 수밖에 없다.

'다치지 않고 이기려는 생각은 버려야 해. 놈은 이미 목숨까지 걸었어.'

나는 놈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여러 경우의 수를 만들어 보았다.

'놈이 할 수 있는 공격 동선을 생각해야 해!'

예상이 크게 뒤엎어지지 않는다면 놈은 뛰어서 나를 이빨로 뜯으려 할 것이다.

'고블린 같은 거로 생각하자. 낯설 뿐인 거야.'

나는 두려움을 억지로 눌러 내며 마음을 다독였다.

하지만 이론과 실기는 다른 법.

긴장감이 고조될수록 입 안이 바짝바짝 말라 갔다.

'도박이라도 해야 할까….'

그런데 이때,

생각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후욱-!

늑대가 순식간에 뛰어올랐다.

얼마나 빠른지 그 속도는 내가 따라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발차기 따위를 할 여유조차 없었다.

"크…!? 크읍…!"

나는 급히 활을 세워 들곤 앞을 막았다.

절체절명의 위기!

콰악!

다행히 놈의 아가리가 활대를 물었다.

"…!"

어설펐지만 잘 대처했다.

아니었다면 내 목이 물어뜯겼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안심할 순 없었다.

'넘어지면 안 돼!'

놈의 체중이 온몸으로 전해졌다.

예상보다 놈의 힘은 셌다.

"으읏…."

버텨야 한다.

개나 고양잇과 짐승들이 달려들었을 때, 벌러덩 자빠지게 되면 다음 공격이 어쩔지는 뻔하다.

나는 이를 악물며 팔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힘겹게 버티는 만큼 오래 버틸 순 없을 것이다.

쿠웅!

결국 뒤로 밀린 내 등이 현관문에 거칠게 부딪혔다.

'크흡.'

콰악! 콱콱!

놈은 활대에 가로막힌 채였지만, 아가리는 계속해서 날 향해 달려들었다. 그 불쾌하며 살인적인 이빨이 눈앞에 어른거릴 때마다 정신이 아찔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으니.

'아, 아파! 제기랄!'

놈의 앞발!

그게 땅을 파듯 내 가슴을 벅벅 긁어 대고 있었는데, 옷은 이미 칼에 베인 것처럼 넝마가 되었고 나약한 피부는 갈라져서 피투성이로 변했다.

크으으릉.

그 피 냄새에 흥분한 늑대는 더 악착같이 달려들며 고기 맛을 보려고 했다.

'젠장, 어쩌지.'

나는 당연히 늑대와 처음 싸워 본다. 갑옷을 입고 둔기를 들었다면 다른 방법이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활은 써 보지도 못한 채 놈의 아가리에 처박혀 있었고,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활 자루가 놈의 아가리에 계속 물려 있게 노력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계속 시간을 보낸다면 내 가슴이 먼저 박살 날 것이다.

이대론 버틸 수 없다.

결단을 내려야 한다.

"으아아아!"

나는 악을 쓰며 팔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조금이나마 밀려났던 놈의 뾰족한 주둥이가 다시 내게 후욱 다가왔다.

'죽기 아니면.'

나는 팔을 최대한 당기며 얼굴을 놈에게 들이밀었다. 이 시도가 잘못되면 내 얼굴은 놈의 아가리에 처박는 꼴이 되리라.

'까무러치기다!'

몸을 지탱하느라 다리는 쓸 수도 없었다. 양손으론 활대를 안간힘을 쓰며 잡고 있었는데, 놓쳤다간 놈의 아가리에 목덜미가 뜯겨 나갈 것임이 분명했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공격이라곤 아주 원초적이고 기본적인 것이고,

콰악!

나는 젖 먹던 힘까지 턱에 썼다.

"…커엉!"

내가 놈의 코를 물자마자 고통을 느낀 늑대는 얼굴을 옆으로 확! 돌리며 내려섰다. 놈의 코 일부가 아직도 내 입 안에 있었지만, 그걸 뱉을 틈도 없이 나는 놈에게 뛰어들었다.

활을 휘두를 시간조차 없다.

괜히 그랬다간 놈이 반격할 시간을 줄지도 모른다. 이 영 점 몇 초가 이다지도 길다는 건 그만큼 내 정신이 온통 하나에 집중되어 있어서일 것이다.

퍼억-!

나는 그대로 죽을힘을 다해 뛰어가며 놈의 옆구리를 향해 다리를 뻗었다.

깨앵!

놈의 단말마 같은 비명이 터졌다.

제대로 명중한 것이다.

발끝에서 느껴지는 묵직함은 그저 가죽이 터지는 소리가 아니라 무언가 으적 부러지는 것 같은 느낌까지 났으니 놈에게 대미지를 제대로 입혔을 것이다.

"…!"

하지만 이렇게 쉽게 이길 상대가 아니었나 보다. 주르륵 뒤로 물러나던 놈은 사람이 절대 할 수 없을 것처럼 몸을 휘익 뒤집더니 그대로 도약하며 아가리를 쩌억 벌렸다. 이미 코는 반쯤 떨어져서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지만, 놈의 눈빛은 더 사납게 변했다.

그리곤 놈이 숨돌릴 틈도 없이 내게 돌진했다.

"젠장!"

나는 빠르게 자세를 낮추며 활을 두 손으로 아주 단단히 잡고 옆으로 꺾으며 어깨를 내밀었다.

별수 있나.

목을 내줄 순 없지 않은가!

콰악!

어깨에 박혀 들어가는 놈의 이빨이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몸을 경직시켰다. 끔찍할 만큼의 고통이 밀려왔지만, 놈이 대가리를 흔들며 내 어깨를 뜯어내기 전에 반격해야 한다.

"아프다고, 새끼야!"

나는 있는 대로 악에 받쳐 외쳤다.

그리곤,

쑤우우욱-!

활이란 무기는 가까운 거리에선 쓸모가 전혀 없다. 타격으로도 두꺼운 몽둥이만 못하고 뭔가를 칼처럼 벨 수도 없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상황에선 딱 하나가 된다.

"…커어어억?"

놈이 내 어깨를 물고 있었고, 주둥이가 뾰족하게 튀어나와 있었으며 활 끝부분이 두껍지 않다는 모든 조건이 맞아떨어졌기에 가능했던 공격!

'됐다!'

목구멍으로 깊이 들어간 활대 때문에 놈이 고통스러워하며 내 어깨에서 이빨을 뗐다. 그렇게 강하게 찔러 박았으니 자력을 뽑아내긴 힘들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끝낼 때가 아니었다. 1초라도 기회가 있을 때 낭비하면 안 된다는 걸 이 재능마켓에서 뼈저리게 배우고 있지 않은가?

"죽어!"

나도 이제 맹수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놈에게 달려들어 최대한 대미지를 줄 수 있는 부분을 공략해서 걷어찼다.

퍼퍼퍼퍼퍼퍽!

몇 번은 빗나가고 효과도 없었다. 하지만 멈출 수 없다. 놈이 죽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그렇게 얼마나 했을까?

어느덧 놈의 눈 하나가 뜨이지 못했고,

"끄으으으으으…."

놈이 엉거주춤 물러났다.

아직도 활대가 목에 박혀 있어 안쓰럽기까지 했지만 이미 나도 정상은 아니다. 가슴은 걸레짝이 되었고, 어깨는 으깨진 것같이 감각이 없었다.

"하악, 하악…."

'시간을 줘선 안 돼.'

나는 놈에게 다시 몸을 날렸다.

목숨을 걸었으니, 무엇이든 못 할쏘냐.

그리곤 와락!

놈의 목덜미를 두 팔로 감싸 안고 필사적으로 조이기 시작했다.

"죽어! 죽어!"

나는 개 목줄을 한 칸 한 칸 조이듯이 있는 힘껏 놈의 목에 팔을 감고는 힘을 주었다. 물어뜯긴 어깨에서 피가 줄줄 흘렀지만 개의치 않고 온 힘을 쏟아 낸다.

으득, 으드득!

놈의 목과 얼굴 뼈 근처에서 섬뜩한 소리가 났다.

카악! 칵! 카악….

아직도 활대를 뱉어내지 못한 놈이 목까지 졸리자 고통에 몸부림쳤지만, 나는 이를 악물며 더 힘을 주었다. 흘러내린 피가 놈의 것인지 내 것인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저항이라도 하듯 벅벅 내 등을 모든 발로 긁어 대며 발버둥 쳐 대는 늑대.

"으으으윽…."

칼로 등을 잘라 대는 것 같다.

놈의 발톱이 나를 찌르고 밀어낼 때마다 움찔, 움찔! 팔에서 힘이 풀릴 것같이 아프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강하게 팔에 힘을 주고 놈의 대가리를 내 옆구리에서 절대 빠져나가지 못하게 했다.

버버벅! 버벅, 버버버벅….

미친 듯이 할퀴던 놈의 앞다리가 점차 느려졌다.

'제발 좀 그만….'

생물이 죽기까진 꽤 시간이 걸린다. 칼로 베고 찔렀다고 1초 만에 즉사하는 건 영화에서나 나오는 거다. 현실에선 총을 맞고도 사람이 버티는 경우도 있다.

'아….'

나도 시야가 점차 가물가물해지고 있었다. 일단 피를 너무 많이 흘린 것 같았는데, 가슴에서 나온 게 다리까지 흘러내린 느낌이 든다.

등? 어깨? 어디서 나는 걸까?

그때였다.

"끄르르륵…."

'끄, 끝났나?'

놈의 몸이 축 늘어졌다.

하지만 나는 긴장을 놓지 못했다. 혹시 다시 번쩍 눈을 뜨고 날뛰는 거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행히 메시지가 울렸고,

【난입! 미션을 완료했습니다.】

【1,700포인트를 얻었습니다.】

"아…!"

나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스르륵.

순식간에 늑대의 몸이 가루처럼 빛으로 변해 사라지자 나는 옆으로 고꾸라졌다. 바닥에 얼굴을 처박으면서도 살았다는 이 순간이 믿기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치열하게 싸웠던 모든 것이 마치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리니 현실감이 뚝 떨어졌다.

"하하…. 해냈다…."

너무도 기진맥진해서 누운 자세에서 실성한 사람마냥 웃었다.

그런데, 음?

'…이게 뭐지?'

조금도 움직이기 싫다.

너무도 지쳐 자세조차 바꾸는 것도 싫다. 하지만 돌 같은 게 입 안에 걸리적거려 불편했고, 손을 입으로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 손가락을 넣어 이물감이 든 것을 빼내자,

"아…."

반짝이는 작은 돌 하나가 나왔다.

이어 띠링.

메시지가 울렸다.

【투지의 링을 얻었습니다.】

그리곤 순식간에 돌은 은빛 반지로 변했다.

'투지의 링?'

하마터면 하하… 웃음이 나올 뻔했다. 너무 어이가 없는 거다. 설마, 내가 아까 베어 문 놈의 코 일부가 아이템으로 변한 건가? 생각해 보니 그걸 뱉을 찰나의 틈조차 없었다.

【투지의 링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전사들의 보물.

성인이 됨을 증명하는 시험을 이겨 낸 어린 전사에게만 주어진 약속의 증표이다.

착용 시 귀속.

사용 효과: 투지를 끌어올리면 1분간 2배의 힘을 발휘할 수 있다. 24시간에 1회 사용 가능.】

'하, 성인식이라니.'

이런 시험이라면 어른이 되는 순간 절반은 죽어 나가겠다.

'그래도 이거 대박인데?'

투지의 링은 굉장히 쓸모가 있어 보였다. 1분이라곤 해도 힘을 늘릴 수 있다면 그건 절체절명의 순간에 필살기처럼 사용할 수 있다는 뜻 아닌가? 게다가 나는 필라테스로 여러 스탯을 올릴 수 있다. 그렇다는 건 힘을 1 올리면 이 스킬로 2를 사용할 수 있고, 그게 높아지면 4가 8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건 싸우기 전에 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반지를 손가락에 끼우며 나는 다시 바닥에 그대로 벌렁 누웠다. 빨리 생수를 마셔야 하는데, 일어날 힘조차 없었다.

【투지의 링이 귀속되었습니다.】

내가 얼마나 다친 거지?

모르겠다. 살면서 이렇게 만신창이가 된 적은 없었다. 일진들한테 맞는다고 해서 이런 형태로 죽을 만큼 당하진 않으니까.

"으으…."

이대로 자고 싶다.

근데 그러면 진짜 위험할 거라는 본능이 내게 경고하고 있었다.

'일어나야 해….'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기운이 다 빠져서 그렇다.

'저기까지만 가면….'

결국, 나는 현관을 향해 조금씩 기어가기 시작했다. 현관에 떨어진 가방까지만 가면 생수가 있었다.

"크윽…."

몸을 움직이자 그제야 한쪽 어깨가 박살 난 걸 뇌가 인식했는지 고통이 엄습했다.

그런데….

'생수로 외상도 치료가 되나?'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거 아니면 당장 방법이 없었다.

'해 봐야지, 이대로 죽을 순 없잖아.'

나는 한 팔로 꾸역꾸역 기어가기 시작했다. 엄청난 고통이 몰려오니 벌레처럼 꿈틀대며 조금씩밖에 이동할 수 없었다. 1미터가 1킬로미터로 느껴져서 환장하겠다.

그런데 그때였다.

【난입 미션을 성공적으로 방어했습니다. 이제 샤워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뭐? 뭘 이용해…?'

【샤워실에선 모든 육체적, 정신적 부상을 치료할 수 있습니다. 또한 물리적으로 파괴된 것도 복구할 수 있습니다.】

"복구라고?"

너무 놀라서 되물었다.

하지만 대답 대신,

벌컥!

화장실 문이 열렸다.

【샤워실은 하루 1회 이용할 수 있습니다.】

솨아아아아아아아.

그리곤 마치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것처럼 청아한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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