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5화
어린 시절에도 나는 누군가를 도왔었다. 오지랖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도 늘 겪었던 일이기에 남 일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난하냐?"
"이게 뒈지려고!"
"설마 너 혼자냐?"
담배를 물고 위협적으로 다가오는 세 놈은 일반인보다 큰 덩치를 지니고 있었다. 성인 남자도 이 녀석들을 앞에 두면 다리가 떨릴지도 모르겠다.
근데, 그게 뭐?
나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나는 어릴 적부터 이미 기본 깡은 탑재했고, 재능마켓 덕분에 고블린, 좀비 같은 것들과도 목숨을 걸고 싸워 본 사람이다. 고로 애들 싸움은 유치하기 짝이 없단 건데, 근본부터 다른 경험을 해 봤다는 건, 절대적 자신감을 품게 했다.
"애새끼가 겁도 없네?"
"근처 교복이 아닌데?"
"어디 촌구석에서 왔냐?"
가장 앞으로 다가오며 손을 치켜드는 녀석을 보았다. 내 가슴을 주먹으로 치려고 하는 것 같지만, 뻗어 오는 주먹이 어찌나 느린지.
나는 통째로 주먹을 움켜쥐었다.
"…."
그리고 가만히 녀석의 얼굴을 봤다.
"…?!"
녀석은 손이 내게 잡혀 꿈쩍도 안 하자 빨갛게 변한 얼굴로 뭐라고 욕을 뱉으려다가 뿌드드득! 뼈가 부러질 것 같은 고통에 으악! 소리를 지르며 주저앉았다.
"뭔데?"
"야! 괜찮아? 이 새끼가!"
잡았던 주먹을 힘으로 훅! 밀어내자 한 녀석이 중심을 잃고 뒤쪽으로 나가떨어졌다. 꼴사납게 구르는 그 모습에 나머지 두 명도 긴장했는지 상체를 낮췄는데, 요즘 뛰면서 사람들을 관찰하는 버릇이 들어서인지 녀석들이 어디를 노리고 달려들지 대강 보였다.
"개새끼야! 죽어!"
한 녀석이 오른발을 쭉 뻗으며 거릴 좁혔다. 저기에 맞아 넘어지면 그때부터는 집단 린치가 가해질 것이다.
'느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건 공격도 아니야. 상대를 죽이려는 의지가 없잖아.'
말로만 죽으라고 하지, 저런 발차기에 살기가 담길 순 없었다.
'생사를 가르는 건 딱 한순간이었어.'
고블린도, 부패의 주인도, 좀비도 치명상 하나면 끝난다.
고작 저거?
퍼억!
나는 옆으로 돌아서며 팔꿈치로 녀석의 명치를 찍었다.
"…아아아아아악!"
그대로 바닥에 처박히며 데굴데굴 구르는 녀석은 숨도 안 쉬어지는지 컥컥! 거렸다.
'이제 이런 녀석들은 아무것도 아니구나.'
힘 자체가 올라간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간의 경험과 늘어난 체력, 정신력과 눈썰미는 적을 앞에 두고도 평정을 유지할 수 있게 했다.
"…너! 갑자기 우리한테 왜 이러는 거야?"
남은 한 녀석은 앞서 두 녀석이 너무도 허무하게 나가떨어지자 공격할 의지가 없어진 모양이다. 어느새 여자애들도 우르르 나와서 내게 외쳤다.
"너, 누구야?"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는데!"
"경찰 부른다?"
나는 골목 안쪽을 힐끔 보다가 녀석들에게 얼굴을 돌리고 말했다.
"그냥… 앞으로 내 눈에 띄지 마. 너희, 마음에 안 드니까. 또 만나면 이렇겐 안 끝난다."
"그, 그게 무슨 소린데?"
"왜 우리가 그래야 하는데?"
"미쳤어?"
여자애들이 득달같이 소리쳤지만,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여기, 내 구역이거든."
이미 사기가 꺾인 남자들은 감히 내게 다가오지 못했고, 아직도 일어나지도 못한 녀석들은 주춤거리며 뒤를 볼 뿐이었다.
나는 서 있는 남자에게 말했다.
"꽁초 줍고."
"아, 어…. 알았어. 주울게."
녀석은 얼결에 대답했는데 싸움에 익숙한 무리는 아닌 것 같다. 아니, 당하는 게 어색했던 건가?
어느 쪽이든 이제 내 상대는 아니다.
"빨리 가라, 좋은 말 할 때."
내가 사납게 말하자, 녀석은 여자애들을 끌고 골목을 나갔다. 나머지 녀석들도 허둥지둥 쫓아가는데, 끝까지 여자애들이 소리쳤다.
-야!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아?
-너, 가만 안 둘 거야!
꺅꺅대는 여자들을 뒤로하고, 나 역시 골목을 벗어나 번화가를 걸었다.
전엔 누가 저런 말을 하면 찝찝하고 두렵기까지 했었는데, 이제는 저런 놈들 100명이 몰려와도 자신이 있었다.
이길 자신?
아니다. 죽지 않을 자신 말이다.
【재능을 이롭게 사용했습니다!】
【재능마켓에서 보상을 수령하세요!】
보상을 바란 건 아니었는데?
오, 뭐지?
'끝나고 바로 가 봐야겠어.'
.
.
.
"안녕하세요!"
나는 고깃집에 들어서며 크게 인사했다.
"오! 민준이, 오늘은 홀도 돌아야 한다?"
"네!"
안쪽에 가방을 내려놓고 뒤로 돌아가 불판을 닦을 준비를 했다.
'오늘은 시간당 15개를 목표로 해 보자.'
아무리 불려 놓았다 해도 보통 사람은 5분에 하나도 벅차다. 고로 한 시간에 15개를 닦으려면 개당 4분을 넘겨선 안 되었는데, 내 최종 목표는 20개였으니 말도 안 되는 도전이기도 했다.
기네스북 같은 기록이 남는 것도 아니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지만, 나 혼자만의 도전.
'모든 게 이제 시작일 뿐이야.'
하지만 나는 어느 순간에도 안주할 생각 따윈 없었다.
바바바바박!
'좋아! 이대로면 4분 안에 클리어하겠어!'
시작이 좋다.
막 하나를 끝내고, 다음 거로 넘어가려는데 인기척이 났다.
이어지는 말소리에는 흥분이 가득했다.
"너, 뭔데?"
나는 손을 멈추지 않고 고개만 돌렸다. 불판에는 무겁고 날카로운 부분도 있어서 한눈을 팔면 안 되지만 이미 내겐 눈을 감아도 그려질 정도로 익숙했다.
"뭐가요?"
"아까 나 봤잖아!"
"못 봤는데요?"
"…못 봤다고?"
"저, 바빠요. 이거 다 닦고 서빙도 봐야 해요."
'그냥 가라'라는 기색을 팍팍 풍기면서 다시 고갤 돌렸다. 그런데 도화지가 내 옆에 쪼그려 앉았다.
"…너."
"못 봤다니까요."
"나 좋아하냐?"
"…켁."
하마터면 사레에 제대로 들 뻔했다.
"내가 좀 예쁜 건 아는데 연하는 관심 없거든."
"저기요, 누나…."
"응?"
"물 튀어요. 비켜요."
일부러 나는 수세미를 털었다. 거품이 날아오르며 도화지의 교복 치마에도 조금 달라붙었다.
"꺄아! 너 일부러 그랬지?"
"이래야 잘 닦이거든요. 방해하지 마세요. 저거 다 닦아야 하거든요?"
"얘, 진짜 이상한 애네?"
나는 대답 없이 피식 웃으며 불판 닦기에 몰두했다. 아깐 곤란한 것 같아서 도와주긴 했지만 딱 거기까지. 뭘 바라고 한 일도 아니었으니 더 이어질 필요도 없었다.
뒤에서 3분 넘게 나를 바라보던 시선이 마침내 사라지자 나는 어깨를 으쓱하곤 남은 일을 해 나갔다.
이것들을 잘 말려 둬야 내일 쓴다.
퇴근 시간엔 만석이 되기에 예비용 불판까지 50개는 항상 구비가 되어 있어야 장사에 지장이 없었는데, 이 50개를 닦는 데 보통 5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사람을 잘못 뽑으면 6시간으로도 부족했고, 건성으로 하면 사장 아주머니가 또 닦아야 했다는데….
"후후…."
나는 오늘, 3시간 15분에 끝내 버렸다.
반짝반짝 빛나는 불판을 차곡차곡 쌓고 보니, 이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해냈다는 희열과 누군가는 내일 저 청결한 불판에 맛있는 고기를 구워 먹겠지? 라는 기대감. 이래서 장사를 하는 건가? 싶은 이 묘한 뿌듯함은 다른 곳에선 맛볼 수 없을 것 같다.
"자, 이제 가 볼까?"
고무장갑을 벗고 천으로 된 앞치마로 갈아입고 홀로 향했다. 아주머니께서 시급을 무려 2만 원으로 올려 주셨는데, 놀고 있을 순 없었다.
나는 받은 만큼 확실히 하는 놈이고, 은혜는 똑같이 은혜로 갚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모! 여기 소주 하나 더요!
기다렸다는 듯 저쪽에서 손님이 외칠 때 나는 목청을 높였다.
"네! 소주 하나요! 제가 갈게요!"
금요일 이 시간엔 9시가 넘어도 정신이 없다.
내가 카운터를 향해 손을 들자, 카운터에서 사장 아주머니가 나를 보며 대견하다는 듯 웃었다.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내 주문한 손님에게 걸어가는데 옆에서 누군가가 접근했다. 대부분 술을 마시고 있고 화장실에 가는 사람도 많아 이리저리 피하는데, 그 사이로 다가와 내 허리를 살짝 꼬집은 사람. 다름 아닌 도화지였다.
"…?"
황당해서 바라보는데, 도화지는 혀를 삐죽 내밀더니 미소 지으며 저쪽으로 가 버렸다.
'왜 저래?'
확실히 나랑은 다른 부류의 사람이다.
.
.
.
재능마켓.
평범한 오피스텔을 가장한 기괴하고 신비로운 공간.
나는 오늘도 이곳에 들어와 있었다.
마약을 해 본 적은 없지만, 그 중독성은 아마도 이쪽이 더 높지 않을까?
"이거 하나 있으면 진짜 편하겠다."
나는 오늘도 침을 줄줄 흘리며 진열장 안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이동 팔찌
24시간에 한 번, 원하는 장소로 이동할 수 있다.
100만 포인트.】
"100만 포인트라니…. 크큭."
너무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다 나왔다.
그간 내가 알아낸 정보는 이 진열장 안의 물건들이 가끔 바뀐다는 거였다. 지능이 더 오른다면 어떤 물건이 언제 출현하는지까지 절로 파악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제라도 변한다는 걸 알아챈 것만으로도 어딘가.
"그래도 언젠가…."
꼴깍, 침을 삼켰다.
너무도 아득한 포인트였지만 그렇다고 벌써 포기할 필요 있나? 언젠간 이 안의 모든 물건을 다 가질 기회가 오지 않을까?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근데 이걸로 뭘 하지?'
지금도 뭐가 되겠다는 생각은 정확히 할 순 없었지만, 이전과 지금은 하늘과 땅 차이다.
전엔 무엇도 할 수 없어서 꿈을 꿀 수 없었다면, 지금은 뭐든 할 수 있어서 특정하지 못하는 것이었으니까.
'의사, 판사, 공무원?'
아니….
"만능…."
절로 든 생각에 미소가 번졌다.
그래, 나는 다 할 거다.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최고가 되어서 이제까지 단 한 번도 없었던 큰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만능이 될 거다!"
마치 해적왕이라도 될 듯 크게 두 팔을 벌려 외치며 나는 나 스스로에게 약속하듯 그렇게 한참을 진열장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아무도 없지?
"크흠!"
.
.
.
신문 배달을 마치고 돌아와서 잠을 잤다.
오늘은 토요일.
학교엔 가지 않아도 되지만, 최근 몇 주 방송국으로 출근 도장을 찍고 있었고, 이것도 오늘이 마지막.
예원이의 오디션이 막을 내리는 날이었다.
"키가 더 큰 건가?"
거울 앞에서 머리를 말리던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교복 말곤 마땅하게 입고 갈 옷이 없어서였는데, 알바비 받은 게 있었지만 키가 얼마나 더 클지 모르는 상태에서 함부로 옷을 살 수도 없었다. 새로 교복을 맞춰 준다는 엄마를 만류한 이유도 그것이었다.
'그만 커도 될 것 같은데….'
남들이 들으면 욕을 해 대겠지만 내 마음은 진짜였다. 이미 185cm 정돈 되는 것 같은데, 이 정도면 어디 가서 기죽진 않을 거다.
"…."
나는 거울 속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대부분의 남자가 샤워 후 거울을 보면 자신이 잘생겼다고 느낀다고 하던가?
"으음."
스윽.
얼굴을 훑어보니, 제법 잘생기지 않았나? 훗!
솔직히 내 평생 동안 외모가 괜찮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최대한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바라봐도 전과 많이 달라졌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우선, 얼굴 크기는 그대로인데, 키가 훌쩍 커서 비율이 나왔다. 운동을 꾸준히 해서 그런지 어깨도 넓어지고, 요즘 계속 뛰어다녀서인지 군살도 빠져 볼과 턱선이 갸름해졌다.
나름 준수해졌달까?
"…."
그러다 팔을 들곤, 푸핫 웃어 버렸다.
몸이 나아지면 뭐 하나?
셔츠가 작아져 목 단추를 두 개나 풀어야 했는데. 이전보다 얼마나 컸는지 부쩍 작아진 교복 덕에 쑤욱 올라가 버린 팔다리가 우스꽝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어라? 근데, 피부는 더 하얘졌네?'
코어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진 모르겠지만 내 변화는 아직도 진행 중인 것 같다.
나는 가방을 들었다.
오늘은 예원이의 꿈이 걸린 파이널 무대다.
"다녀오겠습니다!"
집에 아무도 없었지만 활기차게 외치며 나섰다. 가방 속에 어제 재능마켓에서 수령한 비장의 무기도 들어 있겠다, 발걸음이 가벼울 수밖에 없다.
"아자! 아자!"
예원이를 향해 나 혼자만의 응원을 뱉으며 방송국을 향해 뛰었다.
.
.
.
-와아아아아아아아아!
-와아아아아!
엄청난 함성이 울려 퍼졌다.
-이제 이 열기를 그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사회자의 목소리도 그 어느 때보다 들떴다.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파이널 무대에서 이제 세 명의 참가자가 우승을 놓고 격돌합니다! 1억 원의 상금과 음반 제작의 영광까지!
뭐어? 상금이 1억?
허얼, 스케일 봐라. 나는 짝짓기인지 뭔지 그거 하면 500만 원 준다던데! 이 어마어마한 차이는 뭐냐!
-마침내! 오늘!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가 탄생합니다! 대국민 문자 투표! 바로 시작합니다! 당신만의 주인공에게 투표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