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3화
저돌적인 눈빛이 참 적응하기 힘들다.
"가야 해서요. 죄송합니다."
게다가 나는 재능마켓으로 곧장 갈 거다. 노래방은 무슨, 지금 내게 놀 시간은 사치다.
"쳇, 초장부터 비싸게 굴면 재미없는데."
"내일 뵙겠습니다!"
"어어? 야? 진짜 가?"
황당해하는 그녈 뒤로한 채 꾸벅 고갤 숙이고 먼저 성큼 걸어갔다.
강남역까지는 10여 분.
지하상가로 연결되는 통로를 이용하면 신호 없이 더 빠르게 달릴 수 있었다.
"이크…!"
물론 이 시간까지도 사람이 많은 강남역에서 뛰어다닐 때는 무척 조심해야 한다.
'가까워지기 전에 예측하고 움직여야 돼. 안 그러면 부딪혀.'
딱히 전투 기술이라고 생각해서 진지한 건 아니었지만 이마저도 익혀 두면 언젠간 쓸모가 있겠거니 여겼다. 인파 사이를 빠르게 이동하면서도 나는 머리를 굴리며 생각했다.
'혹시 알아, 뭐라도 될지.'
다음 어떤 전투가 나를 기다릴지 모른다. 이런 하나하나의 몸놀림에 익숙해지면 어떠한 공격에도 대응하기 수월해질 것이다.
'몸과 표정을 자세히 보면 어느 방향으로 올지 대강 알 수 있어.'
가위바위보 같은 게 아니다. 사람은 이동하려면 반드시 사전 움직임을 행한다. 심지어 전동 킥보드도 많이 다녀서 주의가 필요했다.
"휴, 익숙해지려면 꽤 걸리겠는데?"
매 순간 집중을 하며 달리다 보니 땀이 흥건했다.
이마에 흐른 땀을 닦으며 오피스텔 건물 앞에 섰다.
그런데 전화가 걸려왔다.
"어? 엄마?"
-민준아. 오늘도 늦어?
"막 알바 끝났어. 40분쯤 걸릴 것 같은데? 왜? 무슨 일 있어?"
-학교에서 전화 왔더라.
"아…."
엄마는 내가 새벽에 배달하는 건 모르셨다. 그저 운동하는 줄만 아셨는데….
-무리하지 마, 아들. 돈은 엄마가 벌잖아.
"무리 안 해. 운동하려고 하는 거야. 그냥 뛰는 것보단 낫잖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 엄마는 나를 어른처럼 대하셨다. 아들이 신문 배달하다가 강도를 만났다는데 심장 철렁하지 않을 엄마가 대한민국에 어디 있겠냐마는 엄마는 내색하지 않으셨다.
-그래, 알았어. 근데, 너… 일 등 했다면서?
"그냥 반에서만. 운이 좋았어."
-장하네. 우리 아들…. 일 등도 하고. 그래도 너무 늦게 다니지 말고. 차 조심하고.
"걱정 마. 나, 정말 괜찮으니까."
엄마 생각을 하면 가슴이 아린다. 하루라도 내가 빨리 커서 우리 엄마 고생 좀 안 했으면 했다.
'조금만, 이제 조금만 더 하면 돼.'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아들, 거기까지 나는 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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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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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마켓에 입장하셨습니다.】
일단 들어서자마자 푹 잤다. 처음 해 보는 홀 서빙 때문이었는지 정신적으로 녹초가 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잠은 만병통치약이다.
더해서 일어나자마자 특제 생수로 한 모금 목을 축이면?
"캬아."
모든 피로가 다 날아가 버린다.
"이거…."
나는 생수를 보며 기발한 생각이 들었다.
"희석해서 팔아 봐?"
10포인트로 1병을 살 수 있는데 희석해서 10병 정도로 만들어 팔면 대박 나지 않을까?
'피로 회복에 특효! 기적의 물! 어쩌면 숙취 해소제로도 되겠고….'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근데, 이걸 누가 믿겠나?
"읏차!"
나는 몸을 풀고 활을 잡았다.
오늘부터는 활도 연습하고, 공부도 병행해야 했다. 1등의 희열을 맛본 터라 추락하고 싶지 않았다.
태앵!
시위를 당겼다가 놓아 보았다. 운동으로 다진 체력이 아니었다면 이거 당기는 일도 보통이 아니었을 것이다.
'근력과 체력을 더 올려야 해. 그래야 능숙하게 여러 번 쏠 수 있겠지.'
스탯은 필라테스로 올릴 수 있으니 어서 미션을 완수해야 했다.
나는 그렇게 재능마켓에서 70시간을 썼다. 피곤하면 자고, 체력이 회복되면 일어나서 공부했다. 그러면서 활도 쏘고 졸리면 스쿼트나 팔 굽혀 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부패의 주인을 상대하려고 사 놨던 생수들도 이제 슬슬 바닥을 보였다. 시간상 근 3일을 재능마켓에 있다 보니 여길 들어올 때가 아득하게까지 느껴진다.
【누적 포인트 2,080. 체류 가능 시간 528시간 01분.】
게다가 벌써 체류 시간의 절반을 사용했다. 이게 다 떨어지면 나는 또 무언가와 싸워서 시간을 쟁취해야 할 것이다.
'아까워하지 말자.'
나는 계속 나아가고 있으니까.
'뭐, 그래도 이 정도면 아직 미숙해도 자세 정돈 그럴듯하게 잡을 순 있어.'
하지만 전략은 필요할 것 같았다. 남은 체류 시간을 다 쓰기 전에 미션부터 끝내고 필라테스를 해서 스탯을 확보하면 뭐가 나와도 낫겠지.
오피스텔을 나와 스마트폰을 보았다. 엄마와 통화한 게 고작 몇 분밖에 지나지 않았다. 내겐 3일 전 이야기인데.
'오늘은 지하철을 타자.'
본랜 미션을 위해서 가면서도 뛰어야 했지만, 엄마가 눈에 밟혔다. 다시 나오더라도 일단은 집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여 줘야 할 것 같다. 평소에 전화도 자주 안 하시는 분인데….
서둘러 지하철에 올랐다.
그런데 이때, 지이이잉-.
갑자기 울리는 스마트폰에 깜짝 놀랐다. 재능마켓에 있다 보면 누구한테 연락 올 일이 없었으니 이렇게 스마트폰이 반응하면 어색하다.
【자니?】
예원이었다.
【아니.】
【오늘 못 가서 미안.】
뭐가 미안하다는 건지 잠깐 생각을 들춰야 했다. 오늘 일이 내겐 너무도 까마득하다.
【나한테 미안할 게 뭐야.】
【기다리지 않았어?】
순간적으로 '내가 왜?'라고 쓸 뻔하다가 가까스로 참았다. 이 녀석도 여자다. 지능도 올라갔는데 멍청하게 굴 순 없지 않나?
【연습 있었다면서.】
【응, 근데 민준이 너, 일 등 했다며?】
【그렇게 됐어.】
【축하해! 완전 대박이다!】
녀석과 톡을 주고받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다. 예원이는 내일도 학교에 나오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 녀석도 꿈을 위해 가장 중요한 지점을 통과하는 중이었으니 학교는 잠시 거리를 두어도 괜찮은 선택이었다.
"왔니?"
집으로 들어가자 엄마가 기다리고 있었다.
"에? 뭐야? 미역국 끓였어?"
"배고프지! 어서 앉아."
평범한 고딩이라면 '누구 생일이야?'라고 퉁명스럽게 물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오늘의 나는 아니다. 내가 일 등 했다고 준비한 진수성찬이 바로 저것이리라.
'재능마켓에 들어갔다가 나오길 다행이네.'
고깃집에서 배불리 먹고 바로 왔다면 넘기기 힘들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매우 허기진 상태였다. 70시간을 빵이나 초콜릿 같은 거로만 버텼으니까. 무엇보다 생수가 있으니 가능했겠지만, 그것도 허기를 달래진 못한다.
"엄만?"
"아까 먹었지. 어서 앉아."
흐뭇하게 웃으며 맞은편에 앉으시는 걸 보면 오늘은 할 얘기가 많은가 보다.
'그러고 보니 그간 엄마한테 너무 소홀했네.'
울컥.
미안함이 밀려왔다.
"혹시 엄마."
"응?"
"건강 검진 같은 거 해?"
"2년에 한 번씩은 하지. 나라에서 나오잖아."
그런데도 어머니는 암으로 돌아가셨다. 그게 정확히 5년 후다.
'대비해야 돼.'
어떤 방식으로든 이번엔 무력하게 당하진 않을 것이다.
"천천히 먹어."
"그러려고 했는데 너무 맛있네. 한 그릇 더 먹어도 돼?"
"그럼! 우리 아들 먹성이 이렇게 좋았나?"
"요즘 키 크느라 그런가 봐."
"아…."
엄마가 나를 보며 아차, 한 표정을 지었다. 실제로도 나는 '코어'가 생긴 뒤로 한 뼘 정도 키가 자랐는데, 당연히 교복은 작아졌고 바짓단은 한참이나 올라갔다.
"엄마가 우리 아들한테 신경도 못 썼네. 언제 이렇게 컸대?"
"아직 앤가 봐. 더 자랄 것 같은 걸 보면."
"호호호! 그런 말도 할 줄 알고? 다 컸는걸?"
이날 엄마의 미역국은 내가 살면서 먹어 본 것 중에 가장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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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수, 목, 금.
나흘간 나는 학교, 신문 배달, 고깃집, 재능마켓을 오가며 미친 듯이 몰입했다. 실제론 4일이 지났을 뿐이었지만 중간중간 재능마켓에서 200시간을 넘게 소모한 탓에 실제론 열흘 가까운 시간이 흐른 것이다.
물론 그만큼 내가 재능마켓에서 체류할 수 있는 시간은 빠르게 줄었다.
'이제 300시간 남았어. 당분간은 아껴야 돼.'
'1,000km 달리기 미션'과 '500만 원 벌기' 미션을 끝내기 전에 체류 시간이 동나면 곤란했다. 객기로 '한 판 더 하지 뭐!'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나는 체류 시간을 늘리려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
'그래도 다음 주면 월급날이야.'
월. 급. 날!
이 얼마나 대견한 단어인가? 초반엔 800부씩 해내지 못해 예상보단 적었지만 그래도 200만 원 가까이 받을 수 있을 터. 그거면 다음 달 들어올 것과 고깃집 알바까지 해서 여윳돈을 뺄 수 있을 거다.
'그러면 양궁 필드에 가 봐야지.'
활 쏘는 재미?
솔직히 아직 모르겠다. 그저 지금은 생존이 걸린 문제고, 일종의 강박 증세까지 보이는 것 같았다.
재능마켓이 왜 내게 돈을 벌라고 시키는지, 왜 뛰게 하는지 역시 모르겠지만, 이미 활을 쥔 이상 이걸 잘 다루지 못하면 나조차 속상할 것 같았다.
'미션은 500만 원 모으는 거니까 좀 남는 돈은 투자할 수 있을 거야.'
그렇게 생각하고 오늘도 보람찬 신문 배달을 끝냈다.
토요일은 이제 방송국에 가는 게 당연시되고 있었다. 이것도 예원이가 탈락하면 끝나 버리겠지만, 그게 아니라도 이제 몇 회차 남지 않았다.
'다음 주가 결승전이라니까 그때까진 와야지.'
오늘은 패자 부활로 올라온 참가자들과 경합을 벌인다. 그래서 3명이 최종적으로 가려지면 다음 주엔 대망의 파이널 무대가 펼쳐진다. 근데 이럴 거면 저번엔 톱 3 대결을 왜 했던 거야? 시청률 때문인가? 잘은 몰라도 참가자들은 더욱 긴장하고 있을 거다.
'와…. 이게 다 뭐야?'
지난주와는 비교도 안 될 인파가 방송국 앞에 모여 있었다.
-진예원! 진예원! 우주 최강 진예원!
다른 참가자의 팬도 많았지만 내 눈엔 예원이 팬들만 보였다.
'인기 정말 많구나.'
전이었다면 거리감이 느껴질 수도 있었겠지만 재능마켓 덕분에 자존감이 올라서일까? 티끌 하나 없이 흐뭇한 마음으로 예원이를 응원하게 된다.
방송국 안으로 들어갔다.
조금 일찍 왔는지 아직 한산했는데 나를 먼저 발견한 사람이 있었다.
"여어?"
"안녕하세요."
막내 PD는 웃으며 내게 다가왔다.
"자세히 보니 마스크 괜찮네?"
"네?"
"훈훈하게 잘생겼다고. 키가 얼마야?"
"잘 모르겠어요."
어느새 180이 넘은 것 같은데, 코어가 계속 자라고 있어서 더 컸을지도 모르겠다.
"그 나이엔 키 1cm로도 죽고 살지 않나? 넌 별로 관심이 없나 보네? 아, 말 편하게 해도 되지?"
"그럼요."
"예원이랑은 사촌이라고?"
"아, 네."
"흐음, 그래? 그런데 매주 혼자 온단 말이지?"
"…."
더 엮이면 곤란해질 것 같다.
고개를 꾸벅하며 참가자 대기실로 가려는데, 그가 급히 말했다.
"참, 이름이 뭐라고?"
"도민준이요."
"도민준이라…. 이름 좋네! 민준아, 혹시 방송해 볼 생각 없어?"
"방송요? 하하, 제가 뭐로요?"
"저번에 보니까 힘이 좋더라고. 기럭지도 이만하면 됐고. 내가 이거 끝나면 들어가는 예능 하나 있는데, 고등학생하고 대학생이 대상이거든. 어때?"
"뭐 하는 건데요?"
"짝짓기!"
"…."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모르겠다. 짐승도 아니고 짝짓기라니. 내가 워낙 TV를 안 봐서 잘 모르겠지만 그리 끌리는 단어는 아니었다.
"예원이, 기다려요. 먼저 가 보겠습니다."
"잠깐!"
그가 비장한 표정으로 외쳤다.
"1등 하면 상금 500만 원이야!"
"…?!"
뭐? 500만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