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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마켓-18화 (18/277)

#018화

'저건 너무… 크잖아!'

거인은 아까 얼음 속에 있던 좀비와 똑같았다. 다른 점이라면 좀비를 가둔 얼음덩이가 없다는 거고, 또 하나는 키가 족히 7미터는 된다는 거였다.

7미터짜리 생물을 본 적이 있는가?

기린이 얼마나 크지?

잘 모르겠지만, 3층 높이는 된다는 거다.

게다가 이놈은 짬을 주지 않았다.

【부패의 주인과 조우했습니다.】

뒤통수를 후려치는 것 같은 소리가 연달아 터졌다.

콰앙!

문이 닫힌 거다.

【미션을 완수하기 전까지 문은 열리지 않습니다. 특정 효과가 있는 아이템으로도 부술 수 없습니다.】

"젠장!"

카아아아아아아아아!

나를 본 부패의 주인이 비명 같은 고함을 지르면서 뛰어왔다.

지금 이 순간, 내가 뭘 해야 할까?

"으아아아악!"

일단 뛰는 거다.

공간이 약 30미터로 넓다지만 놈의 크기를 생각해 보면 내가 도망칠 수 있는 것에 뚜렷한 한계가 있었고, 나는 죽자고 머리를 굴리며 달렸다.

'그렇게 빠르진 않아!'

다행이었다. 좀비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육체를 이루는 나사 몇 개가 빠진 건지 부패의 주인은 뒤뚱뒤뚱 뛰었다. 하지만 어기적거리듯 뛰다가도 다리와 팔이 너무 길어서 쭉쭉 뻗으면 금세 나를 따라잡았다.

'이대론 안 돼!'

몇 분을 뛰었을까?

이대로 뛰기만 할 순 없어 검을 휘둘러 보았다.

서걱!

놈이 팔을 뻗으면 나도 위협적으로 검을 휘두르며 어설프지만 어느 정도 대항은 할 수 있었다. 앞에 나왔던 좀비 다섯 마리로 확실히 수련이 된 모양이다.

'이름만 거창하지, 충분히 해볼 만한 상대야!'

중요한 건 겁을 먹지 않아야 한다는 거였다. 보통 사람이 갑자기 저런 놈을 맞닥뜨렸다면 다리가 굳고 현기증이 나서 그냥 잡혀 죽었을 거다.

하지만 나는 이제 다르다.

끄아아아아아아악! 끄악!

놈이 갈고리 같은 손가락을 쭉 뻗으며 나를 잡아채려고 했다. 고함은 또 어찌나 질러 대는지 귀청이 터질 것 같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내가 검을 휘두르면 움찔하면서 손끝을 오므렸는데, 녀석도 내 검이 범상치 않다는 걸 아는 것 같았다.

'소리만 꽥꽥 지르지, 알고 보면 별거 아닌 놈이야.'

그렇다고 단박에 내가 잡을 수 있는 상대도 아니겠지만, 익숙해진다면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익숙해져야 한다.

'저놈의 팔 길이가 걸리는데.'

물론, 느리다고 해서 세월아 네월아 하며 하품이 나온다는 게 아니다. 큰 통나무가 날아온다고 생각하면 비슷할 거다. 검 한 자루 들었다고 그걸 벨 생각을 하면, 베는 것에 실패했을 때 나가떨어지는 건 이쪽일 것이다.

'공격 자체는 단순하니까 더 지켜보자.'

【화끈 드링크의 지속 시간이 18분 남았습니다.】

벌써 12분이나 지났다는 게 놀랍다. 효과가 떨어져도 당분간은 버틸 수 있겠지만, 추위는 점차 다리를 멎게 할 거다. 기동력이 사라지면 저놈의 손이 내 몸뚱이를 잡아서 뜯어 버릴 거고.

그런데 갑자기 콰앙!

벽에 처박히는 놈의 주먹에 이곳 전체가 진동했다. 약이 오른 건지 놈이 주먹을 날린 것이었는데, 아무래도 키만 큰 게 아니라 힘도 무시무시한 것 같다.

'이판사판이다!'

그걸 보며 나는 옆으로 돌아 뛰면서 놈의 뒤를 주시했다. 팔이 방어하는 앞면보다 뒤쪽은 상대적으로 빈틈이 많은 것 같다. 하지만 거기까지 내가 한 번에 도달할 순 없을 것 같다.

그르르르륵!

이상한 소리를 목구멍에서 뽑아내며 휙 돌아서는 녀석이 팔을 다시 이쪽으로 뻗었다. 저 팔꿈치에 맞으면 내 가녀린 뼈는 산산조각이 날 게 뻔하다.

'다리를 노리는 건 위험하고.'

결론은 저 팔을 먼저 잘라 내야 했다.

'잘못 치면 내가 위험해. 정확한 타이밍을 재야 해.'

검이 튕기기라도 하면 멱살을 잡힌다. 아니, 그럴 필요도 없이 주먹질 한 방이면 나는 끝장날 것이다.

콩닥을 넘어 쿵쾅거리는 심장을 뒤로하고, 전력으로 뛰면서 놈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동안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화끈 드링크의 지속 시간이 8분 남았습니다.】

이제 진짜 여유가 없었다.

'해보자.'

놈은 마치 자석처럼 나를 향해 팔을 뻗었다. 내가 방향을 틀면 그걸 보고 따라왔는데, 그걸 보니 먼저 자릴 선점하거나 할 지능은 없어 보였다.

하긴, 그랬다면 상황은 이보다 훨씬 악화했겠지.

'팔꿈치가 다 펴지는 그 시점에서.'

내가 거리를 좁히지 않아도 놈의 팔이 내게 가장 근접한 그때!

"지른다!"

나는 돌아서면서 두 손으로 잡은 검을 힘껏 내리그었다.

화아아아악!

입은 우의가 펄럭이며 바람 소리를 낼 때, 검의 날은 정확하게 놈의 손바닥을 잘랐다.

서걱!

검이 아래로 빠르게 떨어졌다.

"이크!"

하지만 놈은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지 그대로 나를 덮쳐 왔다. 이건 예상에 없던 돌발 행동이었다. 놈을 생물로 인식하면 안 된다는 걸 간과했다!

'바보같이! 그 정도 정보는 아까 다섯 마리 좀비를 처리하면서 알았어야 했는데!'

자책할 여유 따윈 더 없었다.

나는 몸을 구르면서 바닥을 딛고 일어나서 옆으로 뛰었다. 하지만 완전히 피하지 못했는지 놈의 발이 내 등에 스쳤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타격'에 대한 가장 강력한 고통을 느껴야 했다.

"크윽…!"

너무 아프면 비명도 안 나온다고 했나?

'미친!'

내가 6미터 넘게 주르륵 밀려날 정도로 엄청난 힘이었다. 아무리 빙판이라서 잘 미끄러진다지만, 이렇게 두 방이면 혼절 각이다. 이 와중에 검을 손에서 놓지 않는 나를 칭찬해야 할 정도였으니, 말 다 했다.

갸갸갸갸갹!

기세등등하게 달려오는 놈을 피해 다시 달려야 했다.

"으으윽…."

간신히 몸을 일으켰는데, 다리가 후들거렸다. 정통으로 맞는다면 공격 한 번에 게임 끝이라는 예감이 확실히 들었다.

'도망쳐? 어디로?'

놈이 아가리를 쩍 벌리며 뛰어들고 있었다. 옆으로 뛴다고 해도 저 긴 팔에 잡혀 버릴 것 같다.

【화끈 드링크의 지속 시간이 5분 남았습니다.】

시간은 없고, 생수 마실 틈도 없다.

'원거리 무기를 가져왔어야 했는데.'

그러면 좀 더 쉬웠으려나?

'좀비를 다 죽이지 말고, 한 마리 정돈 살려 두고 익숙해질 때까지 연습했어야 했어.'

이런 후회는 나중에.

"…."

지금은 선택해야 했다.

"난…."

디딤발을 굳게 찍었다.

"도망치지 않아!"

가진 건 없었어도, 뭐 하나 잘하는 건 없었어도 쫄보란 소린 듣지 않고 살아왔다.

피눈물로 버틴 그 세월이 작용한 걸까?

쩌어어어어엉!

놈의 주먹이 내 머릴 부술 것처럼 다가왔지만 나는 눈을 감지 않고 놈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쩌어어어어엉-!

그리고 이때, 수호 부적이 발동했다.

파란색 막이 놈의 주먹과 내 귀 사이에 생겼다. 그게 가루처럼 터져 나가면서 놈이 휘청했는데,

【수호 부적 효과가 사라졌습니다.】

내 다리는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내 팔은 더욱 빠르게 검을 찔러 갔다.

푸우우욱!

놈의 배에 검이 박혀 들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면 바보다. 아까 실수하지 않았나?

콰앙.

나는 두 발로 바닥을 강하게 찍어 중심을 유지하며 두 손으로 검을 힘차게 위로 뻗어 올렸다.

촤악!

배부터 가슴 언저리까지 뚫고 나온 검이 내장 비슷한 조각을 사방으로 뿌릴 때, 나는 팽이처럼 몸을 돌리면서 무릎으로 빙판을 훑으며 검을 가로로 그었다. 하지만 간이 큰 나라도 이때만큼은 검 끝을 볼 수 없었다. 만약 이게 잘못되었다면 나는 끝이 날 테니까.

댕강!

'됐어!'

성공했다!

세 번의 연이은 공격.

그제야 놈의 정강이가 깔끔하게 잘린 것을 확인할 때, 뭔가가 나를 와락 덮쳤다.

퍼억!

놈이 따귀를 치듯 내 몸을 때린 거다.

"크흐으윽!"

산 정상에서 떨어진 바위에 맞은 것 같았다. 아찔하게 날아가는 정신과 함께 눈동자에서 불똥이 튀었다.

주르르르르르륵!

밀려난 나는 벽에 처박혔는데, 여기서 정신을 못 차리면 죽는다는 걸 알았다.

'버텨야 해! 아직은 내가 유리하다고!'

배와 가슴을 가른 건 치명적이지 않을지 모르지만, 다리를 잘라 냈으니 아까처럼 뛰어다니진 못할 거다.

'역시!'

쿠웅-!

나는 비록 볼썽사납게 벽에 처박히고 있었지만, 놈이 바로 따라붙지 못하고 웅크리고 있는 걸 봤다.

"하아, 하아, 하아…."

나는 억지로 몸을 일으키면서 놈을 보았다. 놈은 잘린 발을 손으로 잡아 정강이에 붙이려는 동작을 반복하고 있었는데, 그게 우습다기보다는 애간장이 녹았다.

설마 저게 딱 붙는 건 아니겠지? 라는 최악의 가정이 들었지만, 천만다행으로 다리는 붙지 않았다.

갸아아아악!

놈은 짜증이 났는지 잘린 다리를 던져 버리고 일어났다. 정강이로 빙판을 쿠웅 디디며 서자 오른쪽과 왼쪽의 높이가 맞진 않았지만 나를 향한 적개심은 더욱 늘어났다.

바드득 이를 간 녀석이 나를 향해 걸어왔다.

아가리에선 얼음 조각인지 이빨인지 모를 게 우수수 떨어져 나왔는데, 차마 보기 힘들 광경이다.

쿠웅!

게다가 잘린 발의 단면이 바닥을 찍을 때마다 소리를 냈다. 나는 그걸 보며 왼손에 침을 뱉었다.

퉤!

그리곤 검을 두 손으로 강하게 쥐었다.

"누가 이기나 해보자고."

이제 나도 독기만 남았다.

어차피 너 아니면 내가 죽는 싸움이다.

후우우우웅!

놈이 풍차처럼 팔을 휘둘렀다. 두 다리가 성할 때보다 균형이 맞지 않아서 그런지 변칙적이었고, 마구잡이 같지만 파괴력은 대단해서 허투루 볼 순 없었다.

【화끈 드링크의 지속 시간이 사라졌습니다.】

갑자기 추위가 화악! 몰아쳤다.

한기에 입술이 파르르 떨렸지만, 그걸 질끈 물면서 검을 앞으로 내질렀다.

까앙!

놈이 후려친 검이 아래로 곤두박질쳤지만, 가까스로 검을 놓치지 않았다. 체력+1이 없었다면 아귀가 견뎌 낼 수 없었을 거다. 손바닥이 찢어졌는지 미끈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쉴 수 없었다.

"다시!"

다리가 잘려서 빠른 접근이 안 된다는 게 천만다행이다. 검을 꼬나쥐며 놈의 팔을 한 번 피하고, 머리칼을 스쳐 가는 놈의 팔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스아아악!

이번엔 성공이다!

투욱 잘린 놈의 손이 바닥에 나뒹굴 때, 나는 검을 회수하는 즉시 다시 내뻗으면서 도약했다.

"죽어!"

저게 사람이었다면 이리도 잔인하게 내뱉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괴물이지 않나?

진심을 다한 살심이 내 검에 담겼다. 살아오면서 무언가를 이토록 전력을 다해 죽이고 싶다는 감각 역시 처음이었다.

"…?!"

녀석도 무언갈 느낀 걸까?

놈의 눈이 크게 뜨였을 때, 내 검이 놈의 허리에 박혀 들었다. 그리곤 그와 동시에 사선을 갈랐다.

가아아아아아아아악-!

아까 이미 반쯤 잘렸던 몸뚱이였다. 잘리지 않고 붙어 있는 부분 덕분에 아직까지 움직이고 있었지만, 그 접점을 내가 잘라 버렸다.

쿠웅!

놈의 상체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런데 이 와중에도 팔이 살아 움직였다.

"젠장!"

그래서 나는 또 한 번 도약해 놈의 손을 피해 낸 뒤 앞으로 뛰어 검을 내리그었다.

콰악!

놈의 목에 검이 박혀 들자마자 작두처럼 잘라 버렸다.

그리고 드디어.

끄윽-!

놈은 억울한지 가래 끓는 소릴 내더니, 놈의 눈동자에서 빛이 사라졌다.

【축하합니다! 최초로 필드 보스를 살해했습니다!】

"하아… 하아… 하아…."

아까 맞은 곳곳이 아팠다.

추워서 숨쉬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나는 해냈다.

몸을 일으키며 먼지처럼 변하는 거대 좀비를 바라보자 알림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부패의 주인을 물리쳤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2,000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보스는 보스였다.

2,000포인트라니? 수호 부적과 이것저것 사며 썼던 포인트가 한 방에 복구되었다.

【무엇이든 벨 수 있는 용사의 검이 소멸합니다.】

생명 줄처럼 쥐고 있던 검이 바스스 사라져 갔다. 진한 아쉬움을 느꼈지만, 여기서 나갈 수 있다는 환희가 더욱 컸다.

【재능마켓 체류 시간 1,000시간을 획득했습니다.】

"됐어!"

한데,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반짝!

부패의 주인이 사라지며 놈의 잔해에서 아이템이 나왔다.

그런데 그건 이제까지 보던 밝은 빛깔이 아니었다.

'뭐… 지?'

피처럼 붉은빛.

【축하합니다! 레어 아이템이 출현했습니다!】

【보상을 확인하고 재능마켓으로 돌아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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