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2화
퍼억!
"크, 크허어어어억…?"
명치를 정확하게 맞은 남자가 뒤로 나뒹굴었다. 강한 충격에 칼이 바닥에 떨어졌는데, 그는 숨이 턱, 막혔는지 괴로워했다.
"으으으…."
나는 잽싸게 발로 칼을 걷어차 멀리 치워 버린 뒤 그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혹시라도 벌떡 일어나서 도망칠까 봐 대비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쉽게 일어나지 못했고, 그의 골든 타임은 순식간에 막을 내렸다.
끼이이이이익!
경찰차 한 대가 골목으로 빠르게 진입해서 우리 앞에 섰던 것이다.
"학생! 괜찮아?"
"학생이 신고한 거지?"
경찰 두 명이 차에서 내리며 외쳤다. 한 명은 쓰러진 남자에게, 또 한 명은 내게 달려왔다.
"아, 예. 저는 괜찮습니다. 그보다 저쪽에 아주머니가…."
"그쪽으로도 순찰차가 갔으니까 염려하지 말고. 다친 곳은 없는 거야?"
"괜찮습니다."
"휴우, 다행이네. 용감한 일을 했어. 그런데 이 늦은 시간에 뭘 하고 있었던 거야?"
"아!"
나갔던 정신이 돌아왔다.
"저, 배달 가야 해요!"
"배달?"
"네! 신문 배달 중이었어요!"
"아, 그랬구나. 그래도 참고인 조사를 해야 하니까 이름이랑 전화번호는 알려 주고 가야 돼."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빠르게 경찰에게 번호를 알려 주고 돌아섰다.
"저 사람이 어떤 아줌마 물건을 훔쳤거든요. 저기 떨어진 것들이요."
"알았다. 우리가 수습할 테니까 밤길 조심해서 다녀야 한다. 알겠지?"
"네!"
나는 왔던 길로 빠르게 돌아갔다. 다행히 자전거와 신문은 제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아아… 30분이나 지났네."
그 사람이 워낙 빠르게 도망치는 바람에 꽤 멀리까지 갔다 왔다.
"빨리하자."
내가 막 자전거 손잡이를 두 손으로 잡고 끌려는 그때였다.
【축하합니다! 재능을 의롭게 사용하셨습니다!】
"어…?"
딱히 무얼 바라고 나선 것은 아니었다.
【특별한 보상을 재능마켓에서 수령하실 수 있습니다!】
"보상이라고…?"
【추가로 300p를 획득하셨습니다!】
"허얼…."
특별한 보상이 뭔진 모르겠지만, 일단 300포인트만으로도 대단한 거였다. 말도 안 되는 효과가 담긴 생수를 몇 병이나 살 수 있는 포인트 아닌가? 필라테스 이용권을 구매할 수도 있고 말이다.
"우선, 배달부터 마치자."
아직도 돌려야 하는 신문이 수북하다. 예상치 못한 일 때문에 목표로 했던 시간 내에 끝내진 못할 것 같았다. 하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옳을 일을 했다는 게 묘하게 심장을 자극했고, 흥분 가득한 울림이 가슴 안쪽에 가득 퍼져 나갔다.
.
.
.
-도민준 학생?
배달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서 샤워를 마치고 나오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여기 경찰서인데.
"아, 네! 어떻게 됐나요?"
-덕분에 잘 해결됐어. 더 조사해 봐야 알겠지만, 요즘 그 인근에서 계속 강도 사건이 일어났었거든. 새벽의 그 남자가 다 관련된 것 같아.
"아… 그래요?"
-아, 그것 때문에 전화한 건 아니고, 어제 네가 구한 아주머니께서 네 전화번호를 알려 달라고 부탁을 해서 말이야. 사례를 하고 싶다고 하는데, 어떡할까?
"사례는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는데요."
-하도 간곡하게 부탁하셔서 말야. 통화만이라도 해 볼래?
"알겠습니다."
-장하네. 도민준 학생.
통화를 마치고, 집을 나섰다.
강남역으로 향할 생각이다.
그 길에서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도민준 학생이에요?
"아, 네 안녕하세요. 경찰서에서 연락받았습니다. 다친 곳은 없으세요?"
-며칠 회복하면 괜찮을 거라네요. 정말 고마워요. 학생 아니었으면 더 심한 일을 당할 뻔했어요.
아주머니는 병원에 입원했다고 한다. 집으로 가는 길에 뒤에서 공격을 받았고, 머리를 맞자마자 기절하셨다는데, 우리 엄마도 그런 일을 당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니 오싹했다.
-듣기론 신문 배달을 한다고 하던데.
"네! 운동 삼아서요."
-조금이라도 내가 돕고 싶은데… 혹시 식사라도….
"아닙니다! 정말 괜찮습니다! 크게 다치지 않으신 것만으로도 저는 충분해요! 제가 바쁜 일이 있어서요! 푹 쉬시고 빨리 쾌차하시길 바랄게요!"
-학생! 도민준 학생…!
나는 전화를 급히 끊었다.
더 붙들고 있다간 병원으로 찾아오란 말을 들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
누군가를 도왔던 기억은 거의 없었다. 초등학교 다닐 땐 짓궂은 애들한테 괴롭힘 받는 아이들을 몇 번 구해 준 적은 있었는데, 조금씩 세상을 알아 갈수록 내 호의가 칼날이 되어 내게 돌아올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 버렸다.
하지만 아까의 일은 다시 생각해도 잘한 것 같다. 그 남자가 계속 동네를 돌아다닌다고 생각하면….
'남의 일이 아닐 수도 있어.'
칼까지 들고 다니던 남자 아닌가?
"후우…."
남자가 잡혀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목적지로 향했다.
.
.
.
재능마켓.
이 대로변 오피스텔에 재능마켓이 있다는 걸 이 많은 사람들은 절대 모를 거다. 나조차도 여전히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분명히 내게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었다. 재능마켓의 물건이 평범할 리 없었으니 '특별한 보상'이란 것에 호기심도 일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으로 향했다.
인적 없는 복도.
511호로 걸어가자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문손잡이를 잡고 돌리자 문이 스르륵 열렸다.
"…."
여전히 안엔 아무도 없었다.
내가 현관으로 들어서자 문이 닫히고, 벽이 그그그긍 소음을 내며 유리 벽이 나타났다.
【재능마켓에 입장하셨습니다.】
【냉장고에서 보상을 수령하세요.】
【누적 포인트 740.】
【보유 포인트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나는 유리 벽을 보며 찬찬히 걸어갔다. 포인트가 740이나 생겼으니 혹여 어떤 물건이 가시권에 있는지 보려는 거다.
"아직 한참 멀었네."
그러나 재능마켓의 문턱은 높았다. 쓸 만한 아이템은 최소 2,000p는 있어야 살 수 있었다. 그렇다고 고생해서 모은 포인트를 아무거나 사는 데 쓸 순 없지 않은가?
"꾸준히 모으다 보면 언젠간 되겠지."
입맛을 다시며 냉장고로 향했다.
이제 그 특별한 보상이란 걸 확인해 볼까?
덥석 잡은 냉장고 손잡이.
고작 이게 뭐라고 이렇게 흥분되냐.
스르륵.
열리는 문 안쪽으로 생수들이 보였다. 한데 낯선 것이 하나 끼어 있었다.
드링크. 이전엔 없던 거다.
"…?"
피로 회복제처럼 생긴 갈색 병이었다. 작은 병엔 어떠한 라벨도 붙어 있지 않았는데, 그것에 손을 뻗어 쥐자, 효능과 효과를 파악할 수 있었다.
【집중력 드링크
복용 시 집중력을 극한까지 끌어낸다. 또한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드링크를 마시면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다. 육체에 이상이 있다고 해도 드링크 효과가 지속하는 한 정신력으로 이겨 낼 수 있다.
지속 시간 1시간.
소모품.
1회분이기에 적게 흡수하면 효과는 떨어진다.】
"아아…."
나는 신기하다는 듯 병을 돌려 보며 미소 지었다.
"시험 볼 때 좋겠는데?"
당장 쓸 일이 없다고 해도 이런 아이템은 언제든 쓸모가 있을 것이다. 재능마켓의 물가를 생각해 보면 이거 한 병에 적어도 몇백 포인트는 할 거다.
병을 주머니에 잘 넣고 오피스텔 안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빨리 운동하고 싶다…."
과거의 내가 들었다면 미친 소리를 하고 있다고 욕할 거다. 세상 어느 누가 그 혹독한 훈련을 하고 싶어 하나? 무식하게 1만 번씩 같은 동작을 반복하고, 그걸 완수하지 못하면 여기서 나가지도 못하는데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 고생의 끝에서 맛볼 수 있는 달콤한 과실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체력이 +1 되었을 때 나타나는 놀라운 일들. 지력, 근력, 회복력 등 아직 내가 얻어야 할 것이 너무도 많았고, 여기서 한 단계씩 더 레벨 업 했을 때 벌어질 일들이 기대되지 않을 수 없었다.
+1이 이런데 만약 10이 된다면?
"…."
생각만으로도 몸이 가늘게 떨릴 지경이었다. 그러나 아직 미션을 완수하지 못했기에 여기서 더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이 안에선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곤 해도 정신력이 고갈되는 건 막을 수 없으니까, 괜히 지칠 필욘 없어.'
꼭 필요하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정신력이든 체력이든 잘 안배를 해야 할 때였다.
터억.
재능마켓의 문이 닫혔다.
.
.
.
나는 갈증을 뒤로하고 오피스텔을 나와 다시 지하철을 탔다.
상암에 도착했을 때 나 외에도 여러 사람이 방송국 쪽으로 걸어가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는데, 삼삼오오 뭉친 그들의 손엔 피켓이 보였다. 그런 사람들은 건물에 가까워질수록 더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굉장하네.'
열기라고 해야 하나? 사람들의 얼굴엔 홍조가 가득했다. 이미 K스타 오디션의 인기는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드디어 톱 텐 서바이벌이 시작되었으니 응원하는 사람들이 죄다 몰린 것 같았다.
'시청률이 10%가 넘었다고 했던가?'
이쪽으론 관심이 없는 나였지만, 학교에 가면 자연스럽게 이 오디션에 대한 얘기가 들렸다. 예원이가 살아남았으니까 당연한 관심이었겠지만 이제부터가 진짜 승부이기도 할 것이다.
-와아아아아아아!
-나영웅! 나영웅!
-박채린! 채린아! 우승하자! 파이팅!
중년의 사람들도 보였다. 아마 참가자의 가족일 것이다.
나는 그들을 피해 방송국으로 들어갔다. 예원이에게 받은 모바일 방청권을 보여 주자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는데, 워낙 많은 사람이 왔기에 줄이 길었다.
앞에서 두 사람이 말하는 소리가 자연스럽게 귀에 들어왔다.
-오늘부턴 떨어지면 그냥 끝이지?
-응. 패자 부활전도 없대.
-살벌하네. 아아, 심장아, 그만 나대자!
-우리도 이런데, 가인이는 어쩌겠어.
-그러게. 긴장하지 않아야 할 텐데.
가인이라는 참가자 지인들인가 보다.
이야기가 계속됐다.
-그래도 오늘은 가인이에게 유리하지 않을까? 참가자가 가장 잘하는 곡으로 승부하는 거니까.
-다른 사람들도 가장 잘하는 거 할 테니까 마냥 마음을 놓을 순 없어.
-그건 또 그렇겠네. 아, 떨려. 오늘만 잘 넘기자! 가인이 파이팅!
'나도 왠지 긴장되네.'
나는 고개를 돌려 다른 곳을 보았다. 이미 팬클럽까지 생긴 참가자도 있는지 저쪽엔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같은 색의 풍선을 들고 있었다.
-우주 최강! 한민!
-한민아! 누나가 격하게 아낀다!
-한민 최고! 꺄아아아!
생방송까지 시간이 꽤 남았는데도 방청석이 순식간에 들어찼다.
지이이이잉.
자리에 앉을 무렵 스마트폰에 진동이 느껴졌다.
-민준아, 혹시 왔니?
-어, 방청석이야.
-일찍 왔네?
-응, 준비는 잘돼 가?
-음… 그게… 그래야 하는데….
-왜? 문제라도 있어?
-괜찮으면 잠깐 대기실로 와 줄래?
-내가 가도 되는 곳이야?
-친척 오빠라고… 말해 둘게. 그러면 들어올 수 있을 거야.
-알았어. 잠깐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무대 뒤쪽을 보았다. 방송국은 처음이었지만, 스태프로 보이는 사람들의 동선이 보였다.
"실례합니다. 지나갈게요."
생각보다 대기실로 향하는 복도가 좁았다. 바삐 오가는 사람들을 피해 안쪽으로 들어가서 수많은 문 중의 한 곳을 찾았고, 조심스럽게 열어 보았다.
'안에도 사람이 꽤 많네.'
여성 참가자들이 대기하는 곳 같았는데, 좁은 복도완 달리 안쪽은 꽤 넓었다.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참가자, 그 주변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 가족이나 지인 같았다.
나는 예원이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왜… 혼자 있는 거야.'
예원이는 황량한 바다에 혼자 뜬 섬처럼 그렇게 홀로 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