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마켓-5화 (5/277)

#005화

"이런, 젠장…."

욕이 막 튀어나온다.

내가 너무 만만하게 본 걸까?

스쿼트.

발을 양쪽으로 벌리고 팔을 쭉 뻗은 채 무릎을 구부렸다 폈다만 하는 거 아니냐고!

【허리를 더 꼿꼿하게 펴야 합니다.】

【무릎이 굽었습니다. 상체를 뒤로 하세요.】

【무게 중심이 앞으로 쏠렸습니다. 자세를 바로 하세요.】

하지만 내 생각에 기다렸다는 듯 개입하는 알림이 울렸다.

'장난 아닌데?'

360도 사방에서 나를 관찰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가령….

잠깐 고개만 돌려 옆을 보아도,

【자세를 바로 하세요.】

【척추에 무리가 갑니다.】

이렇게 바로 간섭한다.

애초에 내 척추 걱정을 할 거면 스쿼트 10,000번을 시키질 말았어야지!

"알았어, 알았다고."

나는 메시지에 맞게 자세를 조금씩 바로잡으며 스쿼트를 배워 나갔다. 하지만 고작 10번 만에 나를 시험에 들게 했고, 나는 금세 지쳐갔다.

'아, 젠장. 힘들어….'

이렇게 어려운 운동이었던가?

어디선가 여자들이 쉽게 하는 걸 본 거 같은데, 잘못 봐도 한참 잘못 본 것 같다.

'이걸 만 번 하라고…?'

마른침이 절로 넘어갔다.

"하아…. 일단…."

나는 빛의 원을 빠져나오며 현관 쪽으로 걸어갔다.

도망치려고 문을 열어 보거나 하려는 건 아니다. 싱크대 옆에 냉장고가 있었기에 마실 거라도 있나? 열어 보려는 거다.

'설마 이것도 안 열리는 건 아니겠지?'

하지만 다행히도 벌컥 냉장고 문이 열렸다. 그리고 냉장고 안에 빼곡하게 들어찬 생수가 보였다.

"오오…."

마침 목이 탔기에 하나 덥석 집어 마개를 땄다.

그런데….

【회복 효과가 있는 생수를 구매하셨습니다. 10p 차감됩니다. 환불 불가.】

"뭐, 뭐어?"

이런 망할!

물도 포인트를 받는 거였어?!

'침착하자. 이제 고작 열 번 했어. 만 번을 하려면 이 한 병으로 버텨야 할 수도 있어.'

무를 수도 없다는 말에 어이가 없었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조금씩 아껴 마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지나진 않았지만, 포인트 벌기가 쉽지 않다는 건 직감하고 있었다.

'이렇게 비싼 물이라니….'

딴 김에 입술을 대고, 조금 마셔 보았다.

그냥 물맛이었다.

하지만 들려오는 메시지는 놀라웠다.

【피로가 회복됩니다.】

"하하…."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이게 된다고?'

갑자기 허공으로 떠오를 것 같은 개운함과 함께 느껴지는 이 기분을 뭐라 설명해야 할까? 이런 걸 실제로 판다면 가치가 얼마나 할까? 누군가에겐 굉장한 물이 아닌가?

당장 생각나는 것만 해도 꽤 있었다. 종합 격투기나 복싱 대회에서 중간중간 이 물만 마셔 줘도 상대보다 월등해질 수 있지 않을까?

좋지도 않은 머리였지만, 퍼뜩퍼뜩 몇 가지 아이디어들이 떠올랐다.

"…."

하지만 그건 나중 일.

지금은 내 일부터 해결해야 했다.

혹시나 해서 싱크대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수도를 틀어 보았다.

"쳇…."

수돗물이라도 콸콸 나왔다면 그걸로 대신할까 했건만, 뭐 하나 공짜로 주는 법이 없나 보다.

다시 빛나는 원으로 들어온 나는 물병을 옆에 잘 놔두고 스쿼트를 시작했다. 확실히 아까보다는 몸이 가벼워진 느낌이다.

"열하나… 열다섯… 열아홉…. 크흡."

그러면 뭘 해.

다시 10개를 하니, 다리에서 반응이 미친 듯이 올라왔다.

이제 깨달았다.

내 한계는 스쿼트 10개다.

연속으로 그 이상을 할 수 없다.

【미션 완수까지 스쿼트 9,980번 남았습니다.】

"으으…."

물을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지만, 꾹 참았다. 이런 식으로 10번마다 물을 마실 순 없었다. 그렇게 하면 순식간에 물이 동이 나게 될 것이 분명했고, 다 먹고 난 후도 생각해야 했다.

"아자! 할 수 있다. 할 수 있어!"

사람이 안 되는 일이 어디 있나.

지금은 막막해도 언젠간 이 또한 이겨 내리라.

그렇게 나는 나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주저앉아 버릴 것 같았으니까.

.

.

.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혹시나 해서 핸드폰을 꺼내 보니, 역시나 시간은 전혀 흐르지 않았다.

나는 여기서 얼마나 있었는지 모르는 거다.

【미션 완수까지 스쿼트 8,862번 남았습니다.】

그래도 스스로를 칭찬해 마땅할 일을 해냈다. 잔여 개수의 앞자리가 9에서 8로 바뀐 것이다. 그건 내가 이 빌어먹을 스쿼트를 1,000번 넘게 했다는 뜻이다.

물병엔 어느새 물이 절반쯤 남았다.

나름 아끼고 아껴 마셨지만 죽을 것 같을 때는 한 모금씩이라도 마셔야만 했는데, 수분 보충도 할 겸 피로를 해소해야 그나마 버틸 수 있었기에 별수 없었다.

"땅땅해진 것 같은데…."

게다가 어느 지점부터는 허벅지에서 종아리까지 근육이 뭉친 것 같았다. 단순한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스쿼트 천 번을 넘게 했는데 멀쩡하면 그게 더 이상할 것 같기도 하다.

"그나저나…."

나는 그대로 벌렁 드러누웠다.

만약 여기서 시간이 흘렀다면 집에서 걱정하실 어머니와 학교에 가야 하는 것 같은 걱정거리가 있었겠지만, 그쪽으론 생각하지 않아도 되니 다행이다.

"배가 고프네."

하지만 배꼽시계란 말이 있듯 몸이 밥을 달라고 비명을 질렀다.

"뭐라도 싸 올 걸 그랬어."

이런 일이 생길 줄은 상상도 못 했기에 가방엔 과자 부스러기 하나 없었다.

"으차-!"

나는 벌떡 일어났다.

후회는 나중에.

지금은 더 체력이 떨어지기 전에 하나라도 스쿼트를 해야 했다.

"후-욱, 후우우."

배운 적은 없었지만 천 번쯤 하다 보니 이제 호흡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연스럽게 익혀 갔다. 카운트는 알아서 해 주니 할 필요도 없었고.

【미션 완수까지 스쿼트 8,856번 남았습니다.】

【미션 완수까지 스쿼트 8,844번 남았습니다.】

숫자가 줄어드는 것을 듣다 보니, 힘을 내도록 격려하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미션 완수까지 스쿼트 8,841번 남았습니다.】

그런데 이때였다.

【미션 완수까지 스쿼트 8,840번 남았습니다.】

【축하합니다!】

【완벽한 자세! 완벽한 스쿼트 10회 성공으로 추가 포인트 50p를 얻었습니다!】

"정말?"

아싸! 대박이다!

그런데,

【돌발 미션!

스쿼트 연속 50회를 성공하라.

보상: 회복 효과가 있는 생수 1병.

영양 만점 군만두 3피스.

추가 포인트 50p.】

"돌발 미션?"

막 50포인트를 얻었는데, 또 50p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심지어 물과 군만두라니?

꼬르르르르.

배가 벌써부터 요동을 쳤다.

나는 무의식중에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다리가 후들거리는 게 보인다.

"후우우우우. 하아아아아…."

나는 심호흡을 하며 굳은 표정으로 물병을 손에 꽈악 쥐며 바라보았다.

누가 보면 이게 뭐라고 이렇게 진지하냐? 라고 코웃음을 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지금 도박이라고 해도 좋고, 모험이라도 해도 좋을 중대한 기로에 섰다.

"한 방에 간다."

남은 물을 모두 소비하더라도 새로운 물과 군만두를 얻어 내고 말겠다는 의지!

'예정에 없던 포인트 50을 얻기도 했으니까, 이 정도 사치는 괜찮겠지?'

어떤 일을 하려면 원동력이 아주 중요하다. 지금 내겐 물과 군만두가 그랬고!

"추릅…."

만두 생각에 벌써 입 안에 침이 고였다.

"집중하자! 집중!"

두 손으로 가볍게 따귀를 치며 나는 자세를 단정하게 했다.

그리곤 단번에 꿀꺽, 꿀꺽.

이제까지 입술만 축이며 고이 아껴 온 물이었지만, 원샷 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피로가 회복됩니다.】

마시는 양에 비례하는 건지 이전보다 월등하게 몸의 비명이 사라져 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꼭 따내고 만다."

효과를 보고 나니 더 욕심이 생겼다.

슥슥.

나는 옷을 다 벗기 시작했다.

50회를 연속으로 해 본 적이 없었기에 땀을 많이 흘릴 것 같기도 하고, 어차피 보는 사람도 없는데 어떤가 싶기도 하다.

"…."

밖이 훤히 보이는 창가에서 팬티 바람으로 서 있었지만, 부끄러움 따위는 없다. 내겐 이런 조잡한 감정보다는 만두가 더 중요했으니까.

필라테스 기구에 옷을 걸쳐 두고 다시 빛의 원형으로 걸어갔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내가 얼마나 비장하고 진지한 표정인지 예상이 된다.

"가자…. 후우우우…."

나는 자세를 바로 하고, 두 팔을 앞으로 뻗으며 천천히 다리를 굽혔다. 50회를 해야 하니, 처음부터 조급하게 서둘러선 실패할 확률이 높다.

'신중하자!'

나는 차분히 스쿼트를 시작했다.

내가 전문적으로 운동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이 순간만큼은 그 누구보다 스쿼트를 진지하게 하고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을 거다.

'십….'

몸은 마음가짐을 따라간다고 하던가? 아까까지는 무의식에서 10회를 기준으로 두고 있었는진 몰라도 이제 그게 50회로 늘어나니, 10이란 숫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졌다.

'이십….'

물을 다 마셔 버린 효능이 있는지 20회까지도 다이렉트로 왔다.

'이십오….'

하지만 첫 번째 관문이 곧 찾아왔다.

"으으…."

입술을 비집고, 신음이 절로 삐져나왔다. 마음 단단히 먹고 시작했지만, 육체적 한계는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삼십….'

무려 30회 스쿼트를 쉼 없이 해내다니!

이건 헬스 트레이너들도 쉽게 못 하지 않을까?

아, 모르겠다. 그게 뭐가 중요한가!

허벅지는 쥐가 나기 시작했고, 사람이 자의로 자신을 극한까지 몰려면, 설 수 있는 공간과 5분이면 충분하다는 걸 오늘에야 알았다.

'삼십오…. 이제 열다섯 개 남았어!'

다섯 개가 오십 개처럼 느껴졌다.

드디어 사십 개를 넘어갈 때쯤, 이제 내 정신은 무아지경이 되어 버렸다. 허벅지가 찢어질 것 같은 고통조차 익숙해져 버릴 지경이다.

【허리를 펴세요.】

움찔!

메시지에 몸이 반응했다.

다 된 밥에 재를 빠뜨릴 순 없다. 아직 해야 할 스쿼트가 무려 8,000번 넘게 남았다고 해도 지금은 남은 10개가 더 중요했다.

'사십오….'

어금니를 어찌나 세게 악물었는지 턱이 얼얼했다. 그러나 이 턱의 고통도 잠시 후 만두를 영접하면 씻은 듯 사라질 것이다.

'넷….'

"크으…."

위기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상체가 뒤틀렸다.

'세엣….'

너무 힘을 줬는지 오줌까지 마려운 느낌이 들었지만, 젖 먹던 힘까지, 그래 그런 기억을 떠올려야만 이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으로 빠득, 이를 갈며 다리를 폈다.

"지지 않아!"

결승점에 거의 다 왔다는 생각에 고함처럼 소리를 지르며 몸을 낮췄다.

"하아, 하아, 하아…."

스쿼트라는 게 내려갈 때는 그나마 쉽다. 하지만 몸의 무게와 중력을 이겨 내며 자세까지 바로 한 상태로 일어날 때는 그 잠깐 사이에 '다 때려치울까?'라는 생각이 수만 번 스쳐 간다.

이제 라스트!

대망의 하나를 남겨 두었다.

괜히 시간을 끌었다가는 리셋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엄습했기에 나는 곧장 무릎을 굽혔다.

"크흡…."

생각 같아선 단박에 영차! 일어나고 싶었지만, 그게 내 마음대로 안 됐다.

부들, 부들, 부들….

무릎이 사시나무처럼 떨어 댔다.

하지만 포기할 순 없다.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만…."

고작 몸을 일으키는 동작.

나는 그것에 태산을 들어 올리는 심정으로 기합을 넣었다.

"만두!!"

마침내!

【축하합니다!】

【돌발 미션을 완수했습니다!】

"으아아아아아아아!"

두 주먹을 쥐고 태어나서 가장 큰 목소리로 소리를 쳤다. 이 성취감을 감히 그 무엇과 비견하리!

"하하하하하하!"

웃음이 절로 나왔다.

스쿼트 연속 50번의 장벽을 첫 시도에 해낸 것이다!

"만두 내놔라! 만두!"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축하합니다!】

【올바른 자세와 지고지순한 노력, 인내와 끈기로 '코어'가 생성되었습니다.】

"코… 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