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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물에서는 남주를 줍지 마세요 (106)화 (106/108)

106화

‘뭐?’

바닥으로 넘어지는 나를 보며, 꼬맹이는 뒤돌아 무언갈 말하고 있었다.

‘애런?’

키 작은 남자는 이미 방문 앞에 도달해 있었다.

-키잉.

금속이 서로 부딪히는 날카로운 음이 들렸고, 넘어진 후 바닥에서 고개를 들었을 땐, 처음 보는 남자가 맨손으로 송곳같이 긴 칼날의 각도를 틀고 있었다.

내게 닿기 전, 남자의 손에 막혀 휘어진 긴 칼날이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벽을 뚫고 들어갔다.

나는 재빨리 굴러 옆으로 빠져나왔다.

뱀 같은 소리를 내며, 칼날은 제 주인을 향해 다시 짧아지고 있었다.

애런은 어디 있지?

설마 그 찰나에 누군가 채 간 건가?

우리를 공격한 키가 작은 남자는 아주 놀란 얼굴이었는데, 그 얼굴은 곧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바뀌어 갔다.

“각성하다니…….”

-쉬익, 쉬익.

그의 손에 들린 손잡이에는 평범한 검날 대신 뱀처럼 흐느적거리는 날이 달려 있었다.

마치 먹이를 앞에 둔 뱀처럼 칼날이 요동쳤다.

그 앞에 선 남자가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뭐야?’

쟤는 어디서 나타난 거야?

의문의 남자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입을 벌렸다.

어쨌거나 막아준 걸 보면 적어도 적은 아니라는 건가?

키 작은 남자가 갑자기 거리를 벌렸다. 그는 귀에 달린 장치를 통해 동료들에게 연락을 취하는 듯 보였다.

“실험체가 각성했습니다. 어쩌죠? 네, 철수하겠습니다.”

그가 천천히 새로 나타난 남자에게서 거리를 벌렸다.

키 작은 남자는 더 이상 싸울 의지가 없어 보였지만 새로 나타난 남자는 아니었다.

방문 앞에 서 있던 남자가 천천히 키 작은 남자 쪽으로 다가갔다.

“지, 지원을 와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혼자 빠져나가기가…….”

공포로 얼굴이 얼룩져 가는 키 작은 남자를 보며 나는 방을 나가 반대편 복도로 튈 생각을 했다.

아이가 갑자기 눈앞에서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쉬익, 쉬익.

키 작은 남자가 휘두르는 검은 움직이는 모양뿐만 아니라 내는 소리조차 뱀을 닮아 있었다.

이리저리 휘며 움직이는 칼날이 쉬익 거리는 뱀 같은 소리를 냈다.

그리고 그 칼날의 끝이 향하는 대상은 의문의 남자였다.

둘 다 능력자인 모양이니 싸움은 능력자들끼리 하라고 하고.

순식간에 애런이 사라진 것으로 보아 주변에 다른 능력자가 있는 걸까.

이상한 능력을 쓰는 놈들이 한둘이어야지.

“으악.”

나는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는 둘 뒤로 몰래 튀려다가 그만 비틀거려 넘어지고 말았다.

일어서자 머리가 핑그르르 돌았기 때문이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렸어.’

그때, 의문의 남자가 뒤돌아선 채 말을 건넸다.

“방에 들어가 있어.”

왜 나를 아는 것처럼 말하지?

아직 어지러워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내가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자, 그는 키 작은 남자에게로 거리를 좁혔다.

그리고 방 밖의 계단 아래서 소리가 들려왔다.

“애런!?”

그러자 손아귀에 요동치는 칼날을 붙잡은 채로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걜 왜 밖에서 찾아.”

그리 말하며 남자는 칼날을 쥔 손아귀를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시선은 내게 둔 채 갑자기 끌어당기는 힘에, 복도에 서 있던 키 작은 남자가 제 무기에 끌려와 바닥에 고개를 처박은 것은 그다음 벌어진 일이었다.

“네 애런 여기 있잖아.”

“뭐…… 뭐라구요?”

핑핑 돌아가는 시야 속에서 처음 보는 남자의 얼굴은 어째선지 내 새끼의 얼굴을 닮아 있었다.

“으으.”

끌려와 바닥에 눈코입을 처박은 능력자가 끙끙대는 틈을 타, 나는 내 새끼라 주장하는 남자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봤다.

‘애런의 눈코입이야.’

왜 쟤한테 내 새끼의 눈코입이?

동그랗고 커다란 눈매, 그런 눈매와 잘 어울리는 둥그스름한 얼굴형, 복슬복슬한 머리카락에 늘 호기심 가득하게 웃고 있는 표정까지.

남자는 부정하려야 부정할 수 없게 아이와 똑 닮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적색 눈동자를 가졌다는 큰 차이가 있다는 점을 빼면 말이다.

“네가 이 몸에 붙여준 이름이 애런이잖아.”

남자는 왜 네가 해놓고 몰라, 하며 능청맞게 웃었는데…….

그 웃음이 너무 날 소름 끼치게 했다.

분명 평소 아이가 잘 짓던 웃음이었는데, 마치 속에 든 것이 달라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당신이 왜 애런이야?”

그는 여전히 해맑게 웃는 상으로 바닥에 누운 키 작은 남자의 목을 밟아 누르며 대답했다.

“커헉.”

“내가 애런이니까 애런이지.”

어린아이가 잠자리의 날개를 한 장, 한 장 떼며 재미있어 하는 것처럼 그는 장난을 치고 있었다.

바닥의 키 작은 남자와 나, 동시에 둘을 상대로.

‘이 사람 위험해.’

해야 하는 일과 해선 안 되는 일의 구분은 되는 사람인가? 남자에게선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내 애런은 어리지만 정직하고 정의감 넘치는 꼬맹이란 말이다.

왜 애런의 얼굴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건 분명 애런이 아니었다.

“벨!!”

건물 밖에서 나를 찾는 데일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가려고 일어났을 때.

“못 가지.”

그가 날 낚아채 팔로 허리를 휘감았다. 손에 들린 총구를 놈의 머리를 향해 겨눴지만.

“왜, 쏘게? 방금까지 나더러 어디 갈 생각 말고 여기 있으라더니 왜 태도가 달라졌어?”

“…….”

XX 진짜.

쏘지 못하고 총을 내렸다.

그가 너무 애런의 얼굴을 하고 있어서 그런가, 도저히 쏠 수가 없었다.

단순히 얼굴을 복사하는 능력을 가진 타인일 수도 있지만 혹시나 애런이라면?

“역시 넌 날 엄청 아끼는구나.”

휘어지는 입꼬리와 빨간 눈동자엔 만족감이 그득 담겨 있었다.

“그래서 그런가, 나도 네가 마음에 들더라.”

이미 실신한 듯 보이는 능력자의 숨통을 가볍게 끊어내며 남자는 그리 말했다.

건물 안으로 진입한 군인들의 발소리가 들렸다.

그가 나타난 군인들을 보며 가볍게 웃고선 한 손을 들어 올렸을 때였다.

“하지 마요!”

“…….”

하려던 행동을 멈춘 그가 날 내려다보며 싱긋 웃었다.

“그럴까 그럼.”

남자는 날 품에 안더니 복도를 빠져나갔다.

품속의 무전기에 계속해서 빨간 불이 들어와 있었다.

무전을 받을 타이밍만 재고 있었는데.

“오네? 널 찾나 봐. 그럼 멀리 벗어나자.”

그가 거칠게 내게서 무전기를 빼앗아 맨손으로 부쉈다.

사람 손에서 쿠키처럼 부서지는 무전기를 보며 생각했다.

‘사람의 완력이 아니야.’

[아이템 ‘자선냄비(크기: 중형)’]

[불우이웃이 당신께 기부를 요청합니다.]

[포인트를 자선냄비에 넣어 대상에게 기부해 보세요.]

데일이 다시 한번 내게 능력을 쓰게 해달라고 요청해 오고 있었다.

[대상이 기부를 받았습니다. 기부 대상의 능력치를 일정 시간, 일부분 활성화합니다.]

[기부 대상: 데일 캐드

활성화 정도: 50%

지속 시간: 00:15:00]

“벨!! 숙여!!”

신관 숙소 입구에 도달했을 때, 복도 저편에서 데일의 목소리가 들렸다.

숙이라니 일단 있는 힘껏 고개를 숙였다.

-슈욱.

무언가가 빠르게 날아온다 싶었는데 이어 들려야 할 타격음이 들리지 않았다.

살짝 위를 보니.

“애한테 너무한 거 아냐? 얘는 나름 당신을 아빠처럼 생각한다고. 이 정도면 학대지.”

적안의 남자는 푸른 빛에 둘러싸인 채, 그에게 날아온 모든 물건을 막아내고 있었다.

“애를 학대하는 부모는…….”

“…….”

“혼나야지.”

적안의 남자가 앞으로 뻗는 가벼운 손길에, 그의 주위에 둥둥 떠 있던 물건들이 복도 반대편으로 날아갔다.

옆으로 몸을 피하는 데일의 모습 뒤로 무너져 내린 벽 때문에 막힌 복도가 눈에 들어왔다.

“저 아빠는 안 되겠네. 아빠 실격.”

“콜록, 콜록.”

내가 무너진 건물 잔해 때문에 기침하자, 그가 입으로 바람을 불어 먼지를 날렸다.

“빨리 나가는 게 좋겠다.”

방해꾼도 사라졌겠다, 남자는 여유롭게 발길을 돌렸다.

사실 난, 애런과 너무 닮은 이 남자가 자신을 애런이라 주장했을 때부터 계속 한 가지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게 사실일 것 같단 생각이 들지만 인정하기 싫은 것.

그제야 남자의 정체를 물어볼 용기가 생겼다.

“왜 당신이 애런이라는 거예요? 내 애런은 작은 꼬맹이라구요. 당신과 얼굴은 닮았지만 작고 약한 꼬맹이요. 내 애런은 어디 있어요? 당신은 알고 있죠? 아는 것 같아.”

“벨.”

그가 마치 애런이 평소 나를 부르듯 내 이름을 불렀다.

나이만 먹었지 아이와 똑같은 얼굴, 똑같은 말투였다.

“나도 벨 지켜줄 거야.”

“…….”

“자, 어때. 똑같지? 난 좀 큰 것뿐이야, 벨. 너의 애런.”

“지켜줄게, 꼭.”

“응! 나도 벨 지켜줄 거야.”

“아니, 아니…… 아니야…….”

내가 부정하자, 그는 어느새 흉내 내길 그만두고 본래의 말투로 돌아왔다.

“뭐가 아니란 건지 모르겠는걸. 더 좋아지지 않았나? 어린 몸으로는 여러모로 불편한데.”

그 순간, 예전에 데일과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애런이 실험체라죠. 실험체란 뭘까요.”

“어린아이를 데려다가 능력자로 만드는 실험?”

“그렇다면…….”

말을 꺼내는 입술이 덜덜 떨렸다.

나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남자의 팔뚝을 억세게 붙들어 맸다.

“애런은, 애런은 어디, 어떻게…….”

남자는 이제 지루하다는 얼굴이 되어있었다.

“해줄 수 있는 건 똑같은 대답뿐이야.”

그는 무덤덤하게 대답하며 입구 문을 열었다.

-철컥, 철컥, 철컥.

이곳의 모든 총기류가 한 곳을 겨누는 소리가 들려왔다.

“안에서 죽었어, 꼬맹이는. 이제 없어 세상에.”

“…….”

“네가 죽을 것 같으니까 널 살리기 위해 내게 양보하고 사라진 거야. 그렇게 참더니만.”

남자의 팔뚝을 붙든 내 손에 힘이 들어갔다.

“쏘지 마! 벨이 다쳐!!”

그 어느 때보다 절박한 데일의 목소리가 들렸다.

힘이 들어간 손끝으로, 손톱이 남자의 살을 파고들었다.

“아파. 이거 몸은 꼬맹이 몸 맞아. 좀 소중히 다뤄주지그래?”

목이 꽉 틀어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붉게 충혈된 눈으로 남자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항상 네가 꼬맹이를 안아줬잖아. 반대의 경우가 나쁜 기분은 아닐 거라 생각하는데, 아닌가?”

정말 모르겠다는 얼굴의 빨간 눈동자 위로 창이 떴다.

[첫 번째 메인 퀘스트: 최후의 낙원을 찾는 길은 멀고 험합니다. 여정을 위한 새로운 일행을 합류시키세요. (1/1)]

[보상에 대한 부가 정보: 기준치 이상의 전투력을 가진 일행일 경우 히든 보상이 있습니다.]

[퀘스트 조건을 만족하였습니다.

첫 번째 메인 퀘스트가 클리어되었습니다.]

대치 상황 속에서 움직이는 이도, 소리를 내는 이도 없었다.

조금 전, 그의 능력을 확인했기 때문에 데일은 쉽사리 행동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가 조금씩 거리를 좁혀왔다.

“이봐, 갑자기 나타났으면 남의 동료를 안아 들기 전에 이름 정돈 밝히는 게 먼저 아냐?”

다가오던 데일의 발이 멈췄다.

적안을 가진 남자의 얼굴을 이제야 가까이서 본 데일의 동공이 커지고 있었다.

“애런?”

“여기 다 눈썰미가 없는 분들만 계신가.”

“…….”

“내가 여기 있는 이들에게 손대지 않는 건 한 몸을 공유하던 꼬맹이에 대한 마지막 배려야.”

[메인 퀘스트 ‘최후의 낙원을 찾아서’ 파트1의 마지막 퀘스트를 클리어하셨습니다.

파트2가 오픈됩니다.

로딩 중………….]

나는 속으로 나만 들을 수 있는 비명을 내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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