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화
긴장 속에서 천천히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옆자리에 앉은 동물 가면의 시선이 이쪽을 향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코끼리 가면 속에 든 갈색 눈동자가 날 지긋이 쳐다봤다.
“이봐요, 노란 곰 신도님.”
“…….”
“신입 신도죠?”
“네.”
얼어붙은 채 가면 속 눈동자를 보고만 있자 코끼리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낙원행으로 가는 막차를 탄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늦었으면 큰일 날 뻔한 거죠. 운이 좋으시네요.”
“아, 네. 그렇죠.”
나는 대충 대답하고 앞을 봤다.
이곳에 오기 전 할머니께 들은 바로는, 주교는 늘 신도들에게 자신이 낙원으로 향하는 길을 알고 있다, 곧 보내주겠다는 식의 말을 했다고 한다.
물론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그 말을 믿지 않았지만.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수도로 오는 동안 많은 것을 빼앗겼다. 내가 준 옷, 식량들 전부를 야금야금.
그리하여 수도에 도착했을 땐 많이 굶주린 상태였고, 그런 두 분이 신의 자비를 말하는 신전으로 홀린 듯 들어온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신을 향한 신실함을 증명한 신관들 외에는 사람이 아니니 동물 가면을 써야 하는 광신도 소굴이란 사실을 알아차린 것은 그 후였고.
“아, 시작하네요”
코끼리 가면의 말에 상념에서 깨어났을 때였다.
“주교야.”
할아버지가 속삭였다.
앞쪽에 난 문을 통해 몇 명이 걸어 들어왔는데, 그중 가운데 선 남자였다.
흘러간 세월이 중년 남자의 얼굴 위로 주름을 남기긴 했으나, 살면서 고생이라곤 단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을 것 같은 온화한 인상의 남자였다.
아마 나는 할아버지가 알려주지 않았어도 그가 주교였음을 짐작했을 것이다.
남자의 머리 위에 뜬 숫자가 다름 아닌, 1이었으니까.
‘가능한 수치냐고.’
어쨌거나 내가 찾는 아이는 주교에게도 낙원으로 갈 수 있는 유일한 열쇠일 테니 허투루 두진 않았을 것이다.
‘분명 아이를 여기로 옮겼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 시간 성가대의 찬양으로 열겠습니다.
제법 성스럽게 들리는 찬양을 들으며 나는 초조한 마음으로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대충 아이를 숨겨두었을 만한 장소를 추측했을 때, 성가대의 노래가 끝났다.
-성가대의 성스러운 찬양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앞으로 나선 건 점잖게 앉아 있던 주교였다.
“오늘 드디어, 제가 신도님들께 드렸던 약속을 이행하는 날입니다. 지금까지 믿음을 증명해 오신 신도님들 덕분에 신께서 길을 내주셨습니다. 바로 낙원으로 가는 길을 말입니다!!”
“우와아아아!!”
주교를 향해 열화와 같은 환호성이 쏟아졌다.
주교 근처에 있던 이들이 예배당 한가운데로 나오더니 카펫을 들춰냈고, 그 아래 숨겨져 있던 것은 지하로 가는 문이었다.
“이 아래 길을 따라 낙원으로 갈 겁니다. 사악한 무리로부터 제가 여러분의 뒤를 지키며 갈 테니, 안심하고 내려가시면 됩니다.”
그때, 한 신도가 물었다.
“주교님, 낙원의 문 앞에 도착한다고 해도 그들이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걸까요? 저는 그 점이 우려됩니다.”
저런 걸 걱정할 정신이 있으면 신이 지하로 길을 뚫어줬다는 것부터 믿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자 주교는 한없이 부드러운 표정을 지으며 한쪽으로 손짓을 보냈다.
두 명이 커다란 상자를 들고 와 주교 앞에 내려놓았다. 기분 나쁜 감이 왔다. 저 안에…….
‘애런이다.’
상자를 열자, 복면을 쓴 어린아이의 형체가 드러났다.
죽은 듯이 옆으로 누워 있는 아이에게 다가온 주교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복면을 벗겼는데.
‘아니잖아.’
이전까지 평온하기만 했던 주교의 표정이 사납게 뒤틀리는 순간이었다.
기운이 다 빠졌는지 움직이지도 않는 어린아이는 애런이 아니었다.
이내 평온한 표정을 되찾은 그가 질문한 신도에게 답했다.
“신도님께서는 아무 걱정도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 사소한 의심은 낙원으로 가는 믿음에 방해가 될 뿐이죠.”
주교의 측근으로 보이는 이들이, 일어나 줄 선 신도들을 차례차례 지하로 내려보냈다.
혹시 뒤에 서면 불리할까 봐 조금 더 앞에 서려고 다투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끝으로 가 줄을 섰다.
신도들이 다 내려가고, 그들과 우리만 남을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었다.
나는 줄의 맨 끝에서 황급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지시하는 주교를 쳐다봤다.
모든 이가 내려가고 나만 남았을 때였다.
“안 내려가십니까?”
그 말에, 지하 돌계단을 밟고 내려가던 앞의 신도가 위를 올려다봤다.
나는 조용히 지하 문을 닫았다.
“저는 안 내려갑니다. 저 아래 낙원으로 가는 길 따위 없다는 걸 알거든요.”
주교만 살려두면 된다. 아이가 어디에 있는지 다 몰라도 저자는 알 테니까.
11, 21, 9, 15…….
간혹 스킬 대상이 아닌 수치들이 보였지만 남아 있는 이들 대부분이 대상이었다.
속으로 총을 불러내자, 손에 총이 쥐어지는 감각이 느껴졌다.
“뭐, 뭐 해! 쏴!”
-탕!
방금 쏘라고 말한 이가 좌석 뒤에 수그리고 계시던 세바스찬 할아버지의 총을 맞고 뒤로 넘어갔다.
방금의 총성을 시작으로 무차별 사격이 쏟아졌다.
나는 날아오는 총알 세례를 빈 좌석 뒤로 몸을 던져 피한 후, 그들이 총을 장전할 때 하나하나 쏴 맞혔다.
내겐 장전도 필요하지 않았고 빗나가는 총알도 없었다.
쏘는 족족 동물 가면의 이마가 뚫렸다.
“주, 주교님! 이쪽으로……!”
예배당의 앞에 난 문으로 몸을 피하려는 주교 일당이 보였다.
‘도망치게 두면 안 돼.’
“할아버지!”
나는 할아버지께 이곳을 맡긴 후, 앞문을 향해 달렸다.
“그들은 아직 안 온 거야? 아이는! 아이는 어딨어!?”
“아이는…….”
-탕!
대답하던 놈이 쓰러지자 주교는 도망치면서 날 돌아봤다.
“으, 으으. 저거 뭐야!!?”
그가 기겁한 표정으로 흰 복도를 내달렸다.
-탕, 탕, 탕!
나는 흰 복도 위로 쓰러지는 주검을 밟으면서 주교를 쫓아 달렸다.
‘아, 그러고 보니까 힘들게 쫓을 필요가 없네.’
-탕!
“으아악!”
-탕! 탕!
총알 세 개로 양 발목을 못 쓰게 만들자 그가 풀썩 쓰러졌다.
그는 못 쓰게 된 제 발목을 내려다보며 처절한 비명을 내질렀는데, 어찌나 시끄러운지 목젖도 날려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말은 하게 두어야 하니까. 애런이 있는 곳을 말하게 하려면.’
“너……! 너 뭐야!! 뭐길래, 아악!!”
“몰라, 애 어디 있어.”
-철컥.
“우으으아악!!”
입에 총구를 처박자 조금은 생각이 달라지는 눈빛이었다.
“말하면 쏘지 않을게, 말해.”
총구를 빼자, 그가 절규하며 외쳤다.
“나도 모르겠다고! 애가 사라져서 엉망이 되었단 말이다!!”
“…….”
그럼 죽이면 되나? 아닌가. 거짓말일 가능성이 있으니까 아직은 살려야 하나?
고민하는데 허공에 여러 개가 겹쳐 뜬 시스템 창이 보였다.
[삭제시킨 대상의……
[삭제시킨 대상의……
[삭제시킨 대상의……
[삭제시킨 대상의 생명력이 게이지에 저장됩니다.
‘자기혐오’ 포인트가 적립되었습니다.
총 17포인트]
‘원래 이렇게 색이 붉었던가?’
늘어난 자기혐오 게이지가 새빨간 색을 띠고 있었다.
경고하듯 창에서 붉은색이 일렁거렸다.
“그러니까 모른단 말이지.”
그러면 여기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을 이유가 없지. 눈앞의 주교를 죽이고 다른 장소로 이동하려 했을 때였다.
누군가 내 어깨를 짚었다.
놀라서 몸을 돌리며 총을 겨눴는데…….
“벨.”
돌아본 곳에는 할머니와 데일이 서 있었다.
“어, 언제 오셨어요.”
플로라 할머니는 나를 보며 말을 잇지 못했는데, 아무래도 할아버지가 이 장소에 보이지 않자 안 좋은 상상을 하신 모양이었다.
“할머니, 세바스찬 할아버지는 예배당에 계세요. 대부분 그 자리에서 처리를 했고 남은 놈들은 여기 주교를 따라와서요……. 할아버지는 무사하실 거예요. 그래도 혼자 두면 안 됐는데 죄송해요. 아이의 행방을 알고 있는 자가 저자라서 놓치면 안 됐거든요.”
“벨, 괜찮아요. 세바스찬은 괜찮을 거야. 방금 대령님 일행이 예배당 쪽으로 갔어요.”
“네…….”
“이 복도를 혼자…….”
다가온 그녀가 내 얼굴에 묻은 핏방울을 손으로 훔쳐냈다.
“아.”
얼굴에 뭐가 많이 튀었다는 느낌이 그제야 들었다. 나는 소매를 끌어당겨 손등으로 쓱쓱 얼굴을 닦았다.
“정신없이 뛰었더니, 헤헤.”
농도 짙고 끈적한 것들이 땀에 섞여 묻어 나왔다.
손등과 소매가 붉은 물이 들어 얼룩덜룩했다. 문지르고 문질러도 닦이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분명 싸늘한 공기가 감도는 복도였는데, 나 홀로 한여름의 습기를 뒤집어쓴 느낌이었다.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눅눅하고 찝찝한 것들.
“데일, 애런은 찾았어요? 이자가 자기가 데려가 놓고 모른다고 말해서 황당해하던 중이었는데, 그래도 신전 어딘가에 있을 테니 빨리…….”
데일은 주검들 사이로 뚜벅뚜벅 걸어오더니 날 안아 들었다.
무서운 표정을 한 남자는 말이 없었다.
왜 저렇게 화난 얼굴을 하고 있담.
“대단하지 않아요? 할아버지랑 둘이서 살아남았고 여기 내가 다 혼자 한 거예요. 혼자 애썼다고 칭찬해 줘야 하는 거 아닌가.”
그는 내 말이 더 화를 돋우는지 아예 고개를 돌렸는데, 그 모습에 나도 좀 화가 났다.
“데일, 그래도 나 많이 애썼는데요. 아무 말도 안 하는 건 좀 그렇지 않아요?”
“사람들이 아이를 찾고 있어. 금방 소식이 올 거야.”
그가 끝끝내 고개를 돌리고 있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외면당할 일을 했던가……. 아닌데…….
“데일.”
남자의 옷깃을 당겼다. 당기는 내 손등 위로 툭, 눈물방울이 떨어졌다.
‘설마 울어? 왜?’
턱 끝에 매달려 점점 무거워지던 물방울이 한계에 도달했을 무렵에 똑, 똑 내 위로 떨어졌다.
남자의 어물거리던 입술이 목소리를 냈다.
“……늦어서 미안하다.”
“…….”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