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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물에서는 남주를 줍지 마세요 (101)화 (101/108)

101화

오가는 동물 가면들 속에서, 나와 세바스찬 할아버지는 자연스러운 걸음걸이를 유지하려 애쓰며 걸었다.

일단 신전을 나가 대기하려 했으나, 문 앞을 지키는 이들이 있었다.

“왜 오늘은 문을 닫은 겁니까?”

“오늘은 특별 예배가 있어서 그렇습니다. 밖에 나갈 수 없으니 예배에 참석하세요.”

우리는 멀리서 그 대화를 듣다 발걸음을 돌렸다.

일단 둘이 대화를 나눌 만한 한적한 장소가 필요했다.

앞서가는 할아버지를 따라 꺾이는 복도를 돌자 불 꺼진 식당이 나왔다.

저녁 시간이 한참 지난 식당은 사망한 지 한참 지난 자의 몸처럼 싸늘하기만 했다.

오라고 손짓하는 할아버지를 따라 배식대를 지날 땐, 청소가 덜 된 건지 바닥에 음식을 까먹고 난 포장지가 즐비했다.

-바삭.

포장지를 밟았을 때 난 소리에 심장을 부여잡는데, 할아버지가 조리실 앞에서 날 불렀다.

“벨.”

“네, 가요.”

우리는 조리실의 안쪽까지 들어가 어두컴컴한 구석에 몸을 숨겼다.

그제야 할아버지가 제대로 목소리를 냈다.

“리븐 신관님은 무슨 생각이 있으신 건지, 우릴 보내주려고 그러신 건지…….”

할아버지는 못내 씁쓸한 표정이다가 고개를 털었다.

“근데 문을 왜 죄다 잠근 건지 모르겠구만. 경비는 세워도 오늘 같은 날은 없었는데. 야간 예배는 늘 있던 거였고.”

그때 문득 가설 하나가 떠올랐다.

“할아버지, 만약에 문을 잠근 이유가요. 밖에서 들어오는 누군가를 막으려는 목적이 아니라, 안에 있는 이들을 나가지 못하게 하려는 거라면요?”

“……!!”

예상치 못했다는 듯 커진 할아버지의 눈동자를 보며 나는 말을 이었다.

문이 다 잠겨서 이쪽도 나갈 수 없게 된 지금, 할머니와 평범한 부녀가 여길 들어오려 애쓰다간 눈에 띄는 것은 물론이고 위험에 처할 게 뻔했다.

“할머니는 거기 계시라고 해야겠어요.”

“그렇다면 플로라는 밖에……!”

거의 동시에 말이 나왔다.

“네, 무전할게요. 일단 여기 소식을 알려야겠어요. 망 좀 봐주실래요?”

“그러자꾸나.”

조리실 밖으로 나가는 할아버지를 보다 무전기를 켰다.

할머니 쪽과 데일 쪽에 동시에 무전이 갔다.

“들려요?”

-들려, 좀만 기다려. 거의 다 갔어.

-들려요, 벨. 어떻게 된 거예요?

-예?

“어, 결론부터 말하자면 함께 있던 신관은 주교실로 끌려갔고, 저랑 세바스찬 할아버지는 신전 식당 안쪽 조리실에 있어요.”

-……신전 안이라고?

-에휴.

데일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었고 플로라 할머니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됐어요. 여기서 데일이 올 때까지 기다릴 거예요. 할머니는 거기 계세요. 안쪽에서 문을 다 잠가서 들어오기 힘드실 거예요.”

할머니는 잠깐 기다려 달라 했다.

이어 들린 목소리는 부녀 중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들립니까?

“네, 들려요.”

-세 분이 신전으로 들어가고 나서 멀리서 계속 신전을 주시했는데 말입니다.

“네.”

-문은 밖에서도 잠겼습니다.

이유를 모르는 상태에서 가설이 맞아가는 느낌이 들자, 불안함이 배가됐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나는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며 대답했다.

이어서 데일의 목소리가 들렸다.

-문을 안에서 막든 밖에서 막든 전혀 문제 될 거 없으니까…….

“…….”

-어르신이랑 떨어지지 말고 있어. 금방 가.

“알겠어요.”

-벨.

이번엔 플로라 할머니였다.

-지금 같은 상황에 이런 부탁하는 게 좀 그렇지만, 세바스찬 목소리 한 번만 들려줄래요?

“그럼요, 잠시만요.”

혹시 몰라 무전기를 끄고 어둠 속에서 몸을 슥 일으켰다.

조리실 밖에서 망을 보고 계실 할아버지를 불러와야 했다.

그때, 조리실 문이 소리 없이 열렸다.

들어온 이는 세바스찬 할아버지였다.

‘쉿.’

할아버지는 조리실 문 옆 벽에 몸을 바싹 붙였고, 그를 따라 나도 숨소리를 죽이고 벽에 몸을 붙였다.

-뚜벅, 뚜벅, 뚜벅.

‘두 사람?’

들리는 소리의 거리감으로 보아 누군가 복도를 지나고 있는 듯했다.

발걸음 소리가 식당으로 들어왔다.

-끼익.

의자 끄는 소리가 들렸고, 이어 남자들의 대화 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오늘 밤 처리한다고?”

“그렇다니까. 지하에서.”

“망하기 전에야 쥐어짤 신도들이 있는 게 좋았지만, 지금은 뭘 더 짤 것도 없잖아.”

“그래도 그렇게까지? 여기 내버려 두고 가면 될 일을? 번거롭다.”

“자기 흔적을 남기는 게 싫으시다는데 내가 뭘 어쩌겠어. 괜히 거역했다가 가실 때 버림당하게?”

둘의 의미심장한 대화를 들으며 할아버지와 내 눈이 마주쳤다.

-뚜벅, 뚜벅, 뚜벅.

한 사람이 추가됐다.

“여기서 뭐 하고들 계십니까?”

“방황하는 신도님들이 계신가 해서 찾고 있었죠. 대예배당으로 보내야 하니까. 아이는 옮겼습니까?”

‘아이!’

나는 아이라는 소리에 귀를 세웠다.

“네, 방금 예배당으로 옮기고 오는 길입니다. 신도들에게 얼굴 정도는 비칠 생각인가 봐요.”

“주교님도 참 보여주기식 행사를 좋아하세요?”

“뭐 한두 번인가요……. 이 시간에 식당에 누가 있겠어요? 갑시다.”

-끼익.

의자를 뒤로 빼는 소리에 조금 안심했다.

“근데…….”

“…….”

“조리실 문이 닫혀 있네요?”

벽에 등을 대고 계신 할아버지를 살폈다.

총은 아까 다 넘겼으니 지금 우리 수중엔 무기가 없다.

‘저들은 무기를 가지고 있겠지.’

“그럼 닫혀 있죠. 저기가 열려 있겠어요? 조리할 게 뭐가 있어야 조리실을 쓰죠. 저기 가도 먼지밖에 없어요.”

“그렇긴 하죠.”

할아버지가 조심스럽게 벽에서 등을 뗐다.

무기 대용으로 쓸 만한 것을 찾으려는 심산으로 보였다.

“세바스찬 목소리 한 번만 들려줄래요?”

할아버지가 훌륭한 사격 실력을 갖추고 계시다는 걸 알지만, 대인전에도 능하실까?

게다가 상대는 무기를 갖췄을 텐데? 복제해서 바로 드리면? 늦어.

‘지켜보기만 하는 일은 관두자.’

할아버지를 기다리는 할머니한테 슬픈 소식을 안기는 일, 해서 되겠냐고.

‘탐색해.’

[‘종의 요정’의 명령을 수행합니다. 주변 탐색에 들어갑니다.

로딩……

탐색 완료.]

탐색 완료라는 창과 함께, 내 손에는 황금빛 총이 들려 있었다.

‘할 거면 제대로 해. 소음기가 안 달렸잖아.’

그러자 총구에 긴 소음기가 추가됐다.

어쨌거나 총이 생겼다는 건 저들 중에 스킬 대상이 있다는 얘기인가.

“그래도 살펴봐서 나쁠 건 없잖아요?”

벽 너머로 그들이 가까워지는 걸 느꼈다.

할아버지에게 손짓하며 나는 옷 속에 감췄던 모자를 빼 썼다.

‘할아버지 모자요, 모자. 모자 쓰세요.’

“혹시 모르니 확인만 하고 가겠습니다.”

-끼익.

“계십니까?”

조리실 문을 열고 들어선 남자의 머리 위에 뜬 수치는 13.

[대상을 연민하십니까?]

‘응.’

[스킬 ‘연민-삭제(Lv.6)’가 발동합니다.]

-탕!

들어온 가면이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 황금빛 총알이 날아가 상대의 머리를 맞췄다.

“히익!!”

“뭐, 뭐야!?”

들어간 놈이 주검이 되어 문을 타고 흘러내리자, 질겁한 두 놈이 빠르게 도망쳤다.

‘놓치면 안 돼.’

나는 조리실 벽을 잡고 빠르게 턴을 돌았다.

‘제발, 제발 양심 없는 놈들이었으면 좋겠어!’

속으로 그렇게 빌었다. 그래야 스킬을 써서 맞출 수 있을 테니까.

도망치는 가면들 위로 수치가 보였다.

19와 14.

-탕! 탕!

막 식당을 빠져나가려던 놈들이 그 자리에 풀썩 쓰러졌다.

그들을 쫓아 달리던 할아버지가 주검이 되어 쓰러진 이들을 내려다보다 내게로 고개를 돌렸다.

[삭제시킨 대상의 생명력이 게이지에 저장됩니다.

‘자기혐오’ 포인트가 적립되었습니다.]

걸어가서 식당 밖 복도를 살폈다.

‘다행히 아무도 없구나.’

“다치신 데는 없죠?”

“벨…….”

총을 쏘는데 갑자기 할아버지가 튀어나와서 좀 놀랐다.

아마 스킬의 힘을 빌리지 않은 내 실력이었다면 할아버지를 다치게 했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할머니를 무슨 낯으로 뵌단 말인가.

“……괜찮은 거니?”

“네, 그럼요.”

나는 불이 들어온 할아버지의 무전기를 가리켰다.

“할머니가 할아버지 목소리 들려달랬어요. 계속 기다리고 계실 거예요.”

할아버지는 불이 들어온 무전기를 가만히 내려보다가 할 말이 있는 사람처럼 머뭇거렸다.

나는 빈 복도를 주시하다가 할아버지를 한쪽으로 끌어당겼다.

“지금 안 받으세요? 그럼 우선 이동할까요? 여길 치우고 갈 시간은 없으니까……. 어차피 가면을 쓰고 있어서 서로가 서로를 모르는데, 그냥 가면 쓴 사람들 속에 섞여서 기다리는 게 더 안전할지도 모르겠어요. 할아버지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무래도 저보다는 여기를 더 잘 아시니까, 애런이 대예배당에 있는 것 같으니 일단 그 주변으로…….”

할아버지는 내 어깨 위에 손을 얹으려다 만 것인지, 빈손을 거둬갔다.

“벨, 내가 너무 이상적인 생각만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

“손녀딸 같은 벨이 이런 일을 겪는 걸 보고 싶지가 않아. 그러니까 웬만하면 뒤로 숨고 어른인 나한테 의지를…….”

“할아버지, 필요한 일이었어요.”

나는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그렇잖아요. 그 상황에서 숨었으면요? 그러다 할아버지가 죽었으면요. 할머니께 그 말을 전해야 하는 건 저예요.”

“…….”

“너무 겁이 나고 무서워서 뒤에 숨어 있다가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는 걸 봤어요, 그렇게 말해야 할까요?”

말을 하면서도 이 장소에 머무는 게 내내 신경 쓰여 집중이 되지 않았다.

“이동해요, 일단.”

식당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채 자리를 떴다.

괜히 행적을 감추겠다고 그곳을 정리하다 현행범으로 잡힐 수 있으니까.

대신 할아버지와 나는 가면 쓴 군중 속으로 파고들었다.

‘탐색해.’

[‘종의 요정’의 명령을 수행합니다. 주변 탐색에 들어갑니다.

로딩……

탐색 완료.]

사람들 틈에 끼어 걸어가면서 탐색을 명하자, 시스템이 바로 수치를 띄웠다.

‘생각보다…….’

중간중간 벗어난 이들이 있었지만, 아주 많은 대상이 스킬 사용 대상으로 떴다.

안타깝게도 데일이 도착하기 전, 할아버지와 둘이서 전투를 벌여야 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나는 최악을 가정하며 대예배당으로 들어가는 행렬에 합류하여 걸었다.

‘그렇게 되면 언제 총으로 일일이 맞히고 있는담.’

조금 더 효율적인 방법이 있지 않을까를 생각하며 자리에 앉았다.

대예배당은 맨 앞 무대를 향해 좌석이 길게 늘어진 일반적인 모습이었다.

내 오른쪽엔 할아버지가 앉아 계셨다.

‘애런을 옮겼다 했는데 어디에 있는 걸까.’

그때, 옆에서 누가 내 어깨를 툭툭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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