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종말물에서는 남주를 줍지 마세요 (94)화 (94/108)

94화

“비행선이다!!”

사람들의 시선이 하늘로 모여들었다.

무대 위 홀로 서서 노래하는 가수를 비추듯이, 비행선에서 나온 긴 조명이 사람들의 머리 위를 훑고 지나갔다.

저공비행을 하려는 모양인지 하얀 기체가 점점 가까워졌다.

그리고 곧, 무언가를 우리들의 머리 위로 흩뿌렸다.

수천 장의 종이가 팔락이는 소리를 내며 밤하늘을 수놓았다.

‘이게 도대체…….’

나와 데일의 앞으로도 종이가 떨어졌다. 나는 발치에 떨어진 종이를 주워 들었다.

종이는 사건의 용의자를 찾는 몽타주와 비슷했다. 그리고 그려진 사람의 얼굴은…….

‘……애런이야.’

이 아이를 데려오는 무리에게 최후의 낙원은 살아갈 거처를 제공할 것입니다. 아이를 발견한 자는 아래의 주파수로 연락을 하거나…….

종이에 적힌 내용을 다 읽을 필요도 없었다.

애를 데려오기만 하면 낙원에 자리를 마련해 주겠다는 지금까지의 내용과 토씨 하나 다르지 않았으니까.

아이를 찾기 위해 몽타주에서 시선을 뗐을 때, 뛰어노는 아이들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와 사람들의 두런두런하는 소리로 가득 찼던 중앙정원은 연극이 막을 내린 무대처럼 적막하게 변해 있었다.

모두가 입은 열지 않고 침만 꿀꺽 삼키며 서로의 눈치를 봤다.

‘애런 어디 있어!’

애런은 반짝반짝 빛나는 트리 옆에, 지금까지 함께 눈싸움하던 또래 아이들과 같이 서 있었다.

어른들을 따라 멍하니 비행선을 쳐다보던 아이 중 하나가, 눈 쌓인 바닥에 떨어져 젖어가는 종이를 손에 쥐고 들여다봤다.

“야, 이거 너 아냐?”

아이의 목소리는 아주 작은 소리였지만 소름이 끼칠 정도로 모두가 침묵하고 있는 정원을 울리기엔 충분했다.

“나? 어디 봐봐.”

애런은 빨개진 코끝을 손으로 문지르며 종이를 건네받았다.

“어, 내 얼굴이다.”

“누가 너 찾나 보다.”

“왜 찾지? 크리스마스라 선물을 주려는 거 아닐까.”

“야, 그럼 왜 쟤만 찾아.”

상황을 모르고 나불거리는 아이들의 대화 속에서 애런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갔다.

아이가 불안해할까 싶어 자세한 내막을 이야기하진 않았지만, 홀로그램 박스를 모르는 이에게 보여줘선 안 된다, 모르는 이에게 네 이야길 쉬이 말해선 안 된다는 등의 말은 해뒀으니.

어쩌면 영리한 아이는 지금의 상황을 눈치챈 건지도 모른다.

긴장한 기색이 명확한 애런의 까만 눈동자 위로 트리의 화려한 불빛이 어른거렸다.

아이가 침묵 속에서 나를 찾았다.

‘애런! 이리 와, 천천히 내 쪽으로 와.’

아이와 눈동자가 마주쳤을 때 속으로 그리 외쳤는데 들렸을까.

애런이 주변을 신경 쓰며 내게로 한 걸음씩 발을 옮겼다.

천천히 내게로 가까워지는 아이를 보는 시선이 여럿이었다. 아니, 정원의 모두가 이미 몽타주의 주인을 알아보고 아이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애런을 낚아채려는 듯 아이의 사각지대에서 튀어나왔다.

[스킬 ‘자기연민(Lv.6)’이 발동합니다.]

-타앙!

제 발치로 날아든 총알에 남자가 움직임을 멈췄다.

“애한테서 떨어져.”

데일이 기부를 받아 능력을 쓸 수 있는 시간은 고작 3분 남짓이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기부해 능력을 쓸 수 있지만, 그 텀이 짧지 않아 사용횟수는 사실 한 번이라고 봐야 한다.

능력을 쓰기 시작한 순간부터 3분이니까 정말 중요한 순간에 사용해야만 하고.

근데 그 3분 안에 이곳을 탈출할 수 있나? 탈출하려면 어디로 가야……. 에즈라와 레이스는 어디 있길래 보이지 않는 거지? 짧은 순간 답을 내기 위해 머릿속이 엉망진창이었다.

“벨, 기다려.”

데일의 목소리였다.

“괜찮아, 진정해. 내가 알고 지낸 사람들이야. 설명하면 이해해 줄 사람들.”

내게 그리 말한 데일이 사람들 앞으로 나섰다.

그가 흩뿌려진 종이를 그들 앞에 내보였다.

“이건 거짓입니다.”

사람들이 웅성댔다. 거짓이라고? 방금 봤잖아, 지금 비행선을 타고 올 수 있는 이들이 누구야, 낙원에 사는 사람들이라고. 낙원에서 편히 지내는 이들이 괜히 이런 걸 뿌려가며 찾겠어? 다 이유가 있으니…….

그런 말을 지껄이며 애런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무리와.

캐드 대령님을 따라야 해. 다 이유가 있으니 거짓이라고 판단하신 거 아니겠어? 데일을 따라야 한다는 무리.

그 와중에 나는 애런에게 손짓했다.

‘이리 와, 애런!’

내 신호를 알아챈 애런이 투다다다 정원을 가로질렀다.

달리는 아이의 모습 위로 계속 로딩 중이던 시스템 창이 떴다.

[메인 퀘스트 ‘최후의 낙원을 찾아서’ 파트1의 마지막 퀘스트를 클리어하셨습니다.

파트2가 오픈됩니……

⚠오류 발생

파트1의 모든 퀘스트를 클리어해야 파트2가 오픈됩니다. 보류 상태로 들어갑니다.]

새로운 일행을 합류시키라던 첫 번째 메인 퀘스트가 끝까지 내 골치를 썩게 했다.

어쨌거나 지금은 퀘스트에 신경 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벨!”

그사이, 열심히 달려온 애런이 내 품으로 뛰어들었다. 나는 무릎을 굽혀 뛰어드는 아이를 향해 팔을 벌렸다.

나는 아이를 품에 안고 데일과 사람들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대령님과 함께 온 저 여자가 먼저 총을 쐈습니다!”

내가 좀 전에 총을 갈긴 남자가 날 가리키며 소리쳤다.

사람들의 시선이 애런과 애런을 안아 든 내게로 모였다.

“그래서요. 사과가 필요해요? 사과하면 이 어린애를 팔아먹는 일에서 모두가 손을 뗄 건가요?”

내 물음에 모두의 입이 얼어붙었다.

“나는 내 애한테 손을 대려 했던 사람에게 할 사과 따윈 없어요.”

그러자 남자가 버럭 소릴 질렀다. 내게 총을 맞을 뻔한 그는, 트리를 장식할 때 애런이 타고 올랐던 사다리를 내내 아래에서 든든히 잡아주던 남자였다.

“당신 애도 아닌 거로 아는데…….”

“다시 말하지만 사과하지 않아.”

나는 품속에서 오들오들 떠는 애런을 끌어안은 팔에 힘을 주며 말했다.

“그 대신 내 애를 어딘가로 보내자는 말을 지껄이는 놈 머리에 총알을 박아주는 법은 알지. 당신이 어떤 얼굴로 애런한테 손을 대려 했는지 내 눈으로 똑똑히 봤으니까 머리에 구멍 나기 싫으면 입 다물어.”

“…….”

내 거친 발언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나는 많이 화가 나 있었다.

이 사람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신의 이름을 외치며 서로서로 챙기면서 희망을 잃지 말고 버티자고 그렇게 말하던 이들이 아닌가? 그 서로서로에 나랑 애런은, 새로 온 우리는 당연히 없었나?

‘정말 설득이 가능해?’

설득해서 오늘을 지난다 해도, 이들 중 누군가가 몰래 애런을 빼돌리려고 시도하지 않을 거란 보장이 있나?

‘나는 이곳에서 머물 수 없을 거야. 아니, 머물지 않을 거야.’

이 많은 사람 중 누군가가 도둑일지, 아니면 모두가 도둑이 되어버릴지. 언제 도둑이 들지 모르는 이곳에선 결코 눈 감고 잠들 수 없을 거다.

“데일.”

나는 조용히 남자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어디로? 애런의 몽타주가 여기에만 뿌려진 걸까? 수도 전역에 뿌려졌다면 오히려 이곳 사람들을 설득해서 여기 머무는 게 더 안전한 거 아냐?

“…….”

내게 쏠린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며 나는 아주 천천히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인파 중 몇몇이 덫에서 도망치려는 쥐를 잡으려는 눈빛으로 몸을 움찔거렸다.

누군가는 정말 내게로 달려들었는데, 아론이 그를 저지하고 나섰다.

“그만하세요!”

‘XX. 여긴 글렀어.’

또 누군가는 이미 눈이 멀어버린 사람들을 향해 짐승이 아닌 사람이 되라며 소리쳤지만, 눈이 먼 자들이 돌아올 기미는 적어도 내 눈엔 보이지 않았다.

여기 사람들의 보호 따윈 없어도 돼.

데일과 레이스, 에즈라만 내 곁에 있어준다면 얼마든지 애런을 숨긴 채 지낼 수 있을 거다.

그리고 숨어서 낙원으로 통하는 길을 조금씩 찾아 나가는 거지.

나는 다시 데일을 찾았다.

“데일, 설득하지 않아도 돼요. 난 여기 있을 생각이 없으니까.”

“…….”

저 멀리, 총성을 듣고 온 건지, 정원에 나타난 레이스와 에즈라가 보였다.

‘뜨자.’

둘에게 눈짓을 보내고 데일에게 말을 이었다.

“방에서 짐만 가지고 내려올 테니까 내가 기부하면 여기 사람들 못 움직이게 묶어놔요. 알겠죠?”

“벨, 잠깐만 기다려.”

“기다릴 시간 없어요.”

[스킬 ‘연민(Lv.6)’이 발동합니다.]

나는 그 즉시, 내 동료들의 손아귀에 쥐어졌을 총을 확인했다.

레이스의 손에도 생겼고, 에즈라…… 쟤는 있으나 마나 하지만 어쨌든 생겼고, 데일은…….

‘왜 없어?’

둘의 손엔 생겨난 총이 데일의 손엔 없었다. 왜?

데일 설마…….

‘이자들을 공격할 생각이 없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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