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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물에서는 남주를 줍지 마세요 (83)화 (83/108)

83화

원래는 녹음이 푸르렀을 공원은 황폐한 모습으로 우릴 반겼다.

공원 입구를 지나 안쪽까지 차를 타고 들어갔다.

곧 정차한 차 몇 대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중 가운데 주차된 차의 문을 열고 누군가 환한 표정으로 내려 뛰어왔다.

그가 내리자마자 연이어 사람들이 우르르 내렸는데, 하나같이 며칠 굶다가 사냥감을 발견한 맹수들처럼 신난 표정으로 모두가 이쪽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뛰어오는 사람들을 확인한 데일의 얼굴 또한 눈에 띄게 밝아졌다.

그가 지체하지 않고 버스에서 내려 그들을 맞이했다.

“캐드 대령님!”

“안 죽었고 살아 있었냐, 아론.”

선두로 달려오던 아론이란 남자와 데일이 뜨겁게 포옹했다.

데일이 아론이라 부른 남자는, 물먹은 에메랄드빛 머리칼을 가진 남자였다.

키는 데일만큼 컸고 체격도 좋은 편이었는데, 데일이 워낙 건장해 상대적으로 왜소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하하, 대령님께 빚도 다 못 갚았는데 죽을 수야 없죠. 빚 갚기 전엔 못 죽는다 하셨지 않습니까.”

“와하하, 진짜 대령님이다악!”

아론 뒤로 차에서 내려 달려온 남자들이 포옹하고 있는 둘을 덮쳤다.

하나, 둘, 셋…… 다섯 명이 둘을 얼싸안고 아주 신이 나서 방방 뛰어댔다.

군인들이 아니라 이사 가서 못 보던 친구와 재회한 유치원생들 같았다.

“대령님! 인물이 좀 상하셨습니다?”

“이 새끼가 상관을 보자마자 하는 말이, 좀 떨어져 있었다고 간이 부었냐?”

“하하하, 요즘 술을 못 마셨더니 태어나서 간이 이렇게 편안할 때가 없는데 부었다뇨, 대령님.”

“대령님께서 당연히 살아 계실 줄 알았습니다. 근데 좀 오래 걸리긴 하셨습니다? 도대체 어딜 돌아다니다 이제 오셨습니까? 아주 지각이지 말입니다!”

“말이 많다, 이놈들아.”

개중 한 놈은 하늘을 향해 소릴 질렀다.

“누가 죽었냐? 누가 죽었냐고! 말이 안 되잖아! 봐라! 살아오셨다고!”

신나서 방방 뛰어대는 남자들 가운데, 우뚝 솟은 데일의 은색 정수리가 보였다.

데일은 제 부하들의 머리를 헤집거나, 안아주거나, 등을 두들겨댔다.

남자들의 머리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데일은 아주 행복해 보여서, 보는 이조차 조금은 뭉클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벨.”

“응, 애런.”

우리는 차마 버스에서 내리지 못하고, 버스 출입문에 매달려 상체만 빼꼼 내밀고 상황을 구경 중이었는데, 애런이 내 옷자락을 잡아끌었다.

“형아랑 형아 친구들을 보니까, 나 기분이 아주 좋아졌는데 이거 왜 이래?”

방방 뛰고 밀치다가 넘어졌는지, 남자 일곱 명은 이제 아주 땅바닥에 앉아서 서로를 얼싸안고 있었는데, 흙먼지 묻혀가며 즐거워하는 그 모습이 꼭 강아지 운동장에서 친구들이랑 엎치락뒤치락 뛰어노는 개들 같았다.

“왜냐하면, 애런이 착해서 그래.”

“그으래? 헤헤.”

착하단 소리에 아이의 입꼬리가 가로로 길게 늘어났다.

“그럼 벨도 여기가 간질간질하고 그래?”

애런이 제 심장 부근을 가리켰다.

“응, 나도 그래. 나도 한 착함 하잖아. 애런은 알지?”

“알지, 알지.”

공원에 도착하기 전에, 긴장이란 긴장은 다 하고 왔는데 남자들이 서로 아무 의심 없이 기뻐하고만 있으니 어쩐지 김이 새버렸다.

남자들의 포옹을 보더니, 차내에 앉아 이쪽을 지켜보기만 하던 저쪽 사람들도 마저 차에서 내렸다.

이쪽을 향해 총을 겨눈 자는 보이지 않았다.

물론 입고 있는 저 옷, 저 차들 내에 당연히 무기는 실려 있겠지만 당장 보기에 우릴 적대시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어 보였다.

‘이렇게 아무 의심 안 하고 있어도 되는 건가?’

호텔에서 배신의 매운맛을 한 번 봤더니, 안에서 의심이 한번 고개를 쳐들면 당최 사그라들려 하질 않았다.

그래서 여전히 버스에서 내리지 못하고 출입문에 매달려 있었는데.

“벨! 이리 와!”

데일이 나를 불렀다.

아니, 저 남자가 난 왜 부르는 거야. 난 아직 마음의 준비가……. 나갔다가 총 맞는 거 아니겠지? 방금까지 데일과 하하 호호하던 사람들이지만 갑자기 얼굴색 싹 돌변해서 나한테 총질하지 말란 법은 없잖아.

물론 패딩을 입고 있으니 죽지는 않겠지만, 맞으면 되게 아플 거라고.

“…….”

“뭐 해?”

“데일, 동료들이 데일을 만나서 되게 좋고 신나신 것 같은데 먼저 충분히 인사를 더 나눠야 하지 않겠어요? 전 나중에 해도 되는데요~”

남자들의 시선이 내게로 모였다.

“대령님, 저분은 누구십니까?”

“얼굴을 반만 내미셨는데도 미인이시지 말입니다.”

“저도 궁금해 죽겠지 말입니다.”

“전 참을성이 없지 말입니다!”

“우리는 참을성이 없지 말입니다!!”

‘어어…… 어? 저분들 왜…….’

데일과 에메랄드색 머리카락을 가진 분을 제외한 나머지 남자들이 이쪽으로 달려들었다.

정정해야겠다.

아까 데일을 보고 달려들 때, 며칠 굶다가 사냥감을 발견한 맹수들 같다고 했는데 아니었다.

지금이 정말로 맹수들 같았다, 나는 사냥감이고.

그들이 버스에 닿기 바로 전.

나는 급습한 두려움에 몸을 떨며 소리쳤다.

“자, 잠깐만요! 멈춰요! 오면 초, 총 쏠 거라고요!”

물론 데일의 동료들에게 정말로 총을 겨눌 수는 없었기에 말로만 하는 위협이었지만, 이렇게 아무 효과가 없을 줄은 몰랐다.

놈들은 내 말을 귓등으로 듣고 멈추지 않고 달렸다. 달리며 내게 들으란 듯이 외쳤다.

“쏘시면 맞으면 되지 말입니다! 아하하하!”

‘이놈들은 돌았어!’

어느새 버스 출입문 앞에 모여든 사자들은 나를 보고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하하하하.”

“와하하하.”

“이름이 벨이십니까?”

“네, 맞는데 저는…….”

“그렇군요. 그럼 어서 버스에서 내려주시지 말입니다.”

“예?”

“하하하하, 어서 내려주십시오. 급해 죽겠지 말입니다.”

이미 내 이름도 알고 있으니 통성명할 것도 없는데 이분들이 뭐가 급하단 건지 모르겠다.

본인들 이름을 내게 알려주고 싶은 건가?

멀리서 이곳을 바라보고 있는 데일을 쳐다봤다.

그는 반쯤 포기한 표정으로 해탈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어, 이름을 알려주시려는 거면 지금 이 상태로 듣고 싶은데요.”

“그건 안 될 말씀이지 말입니다.”

“그렇지 말입니다.”

“급하단 말입니다아악!!”

한 분이 포효하는 바람에 놀라서 나도 모르게 땅에 발을 디뎌버렸다.

“어? 어어?”

그러자 사람들이 나를 들어 올렸다.

“왜, 왜들 이러시는 겁니까!”

다나까 쓰는 이들에게 둘러싸여서 그런가, 나도 다나까가 나왔다.

그때 내 머릿속에서는, 나를 둥글게 둘러싼 이들이 갑자기 웃는 가면을 벗어던지고 칼로 나를 푹찍 한다든지 하는 잔인한 장면이 재생되고 있었다.

‘그럴 수도 있잖아!’

그러거나 말거나 내 인간 불신을 모르는 이분들은 나를 들고 헹가래를 쳤다.

“오셨다!”

“형수님이다!”

“드디어 만났다!”

환호하는 이들 가운데서 시야가 높아졌다가 낮아지길 몇 번 반복했다.

“아, 어지러워요!!”

그러자 곧바로 내려주셨다.

“죄송합니다, 흥분해서 그만.”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헹가래를 친다는 목적을 이룬 남자들은 광인의 얼굴에서 초면의 정상적인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

휴, 끝났구나.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격하게 환영해 주셔서 감사한데 조금 어지럽네요.”

“하하하, 죄송합니다, 형수님.”

저 댁들 형수님 아니에요, 라고 못 박으려는 순간.

-꼬르륵.

가까이 서 있던 남자에게서 배곯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부끄러운 기색 없이 제 배를 문지르며 슬픈 눈빛을 했다.

“먹은 거 없이 힘을 썼더니 그만…….”

“맞습니다. 오늘 먹은 양에 비해 너무 많이 움직였습니다.”

“큰일입니다. 돌아가면 이제 잘 때까지 누워만 있어야겠습니다.”

“깨어 있으실 생각이십니까? 저는 바로 자겠습니다.”

“빅터 님 오늘 청소 당번인 거 잊으셨지 말입니다.”

“…….”

“가서 청소하시려면 지금부터라도 움직임을 최소화해야 합니다.”

“소위가 대위더러 청소 얘길 꺼내다니 종말이 아주 좋지 말입니다.”

“…….”

놈들은 굶주린 사자들이 맞는 것 같았다.

배가 매우 고파졌는지, 잔뜩 움츠러든 어깨가 된 이들에게 물었다.

“요즘 많이 못 드시고 지내셨어요?”

그때, 허기가 져 등이 굽은 남자들 머리 위로 어떤 수치가 뜨더니 이어서 시스템 창이 떴다.

[집단의 최소 인원 요구치를 만족하였습니다.

인원(15명)

세 번째 메인 퀘스트: 기울어진 시소가 시작됩니다.

종의 요정은 소속된 집단이 절망으로 물드는 일을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당신이 소속된 집단의 희망 수치를 70 이상으로 끌어올리고 절망 수치는 30 이하로 낮추세요.

최대치: 100 최소치 : 5]

[현재 희망감: 55 / 현재 절망감: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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