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까먹고 있었는데, 여기 여객열차용 창고는 일반 잠금장치가 아니야. 마나핵으로 가동하게 돼 있거든?”
그 말에 냉큼 여객열차용 창고로 달려갔다.
창고엔 자물쇠로 보이는 것 대신, 안으로 파인 네모난 공간이 있었다.
에즈라가 지니고 있던 마나핵을 그곳으로 밀어 넣자, 웅 하는 소리와 함께 장치가 가동했다.
그리고 그녀가 몇 번 비밀번호를 시도한 끝에.
“열렸다.”
안으로 쏙 들어가려는 애런을 붙잡고, 데일을 선두로 들여보냈다.
먼저 들어가 창고 안을 확인한 그가 뒤를 돌아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와도 괜찮단 소리.
창고는 ㄱ자 모양이었는데, 안쪽의 상태는.
“여기도 털리긴 털렸네.”
에즈라가 그럴 줄 알았다는 뉘앙스로 혼잣말했다.
선반은 군데군데 비어 있고, 바닥엔 물건들이 어지럽게 떨어져 있었다.
불이 들어온 냉동고 문을 열자.
“닫아.”
문을 다 열기도 전에 뒤에 서 있던 데일이 문을 다시 닫아버렸다.
“윽.”
나도 코를 막았다.
그 잠깐 사이에 냉동고에서 뿜어져 나온 악취가 대단했다.
애런도 나를 따라 코를 잡고 인상을 찌푸렸다.
“오징어 안 먹어.”
“에즈라 냉동고 안에 다 썩었는데? 여니까 지옥이야.”
물론 냉동고라고 해서 음식이 전혀 썩지 않는 건 아니지만, 이건 너무 심한데.
“어? 그 냉동고 오래 꺼져 있었으니까 그렇지. 불이 들어온 건 지금 막 들어온 거야. 방금 잠금장치에 마나핵을 끼워서 충전돼서.”
미리 말을 해주지.
덕분에 지옥의 냄새를 맡았잖냐.
“벨.”
등을 수그렸던 에즈라가 일어서서 날 돌아봤다.
“오징어는 없지만, 수확은 있다.”
그녀의 손에 들린 건 캐비어 통조림이었다.
“나도 찾았다.”
데일이 든 건 트러플 통조림이었고.
“이거 맛있어?”
애런이 양손에 든 건, 각각 철갑상어와 문어 통조림이었다.
저쪽에서 못 먹어본 캐비어를 여기서 먹어보겠네.
‘오징어는 없지만, 문어가 있고.’
나쁘지 않다.
발견한 식료품을 데일이 멘 배낭 안에 집어넣고 창고를 나섰다.
“저녁 메뉴가 변경됐다. 오징어에서 문어 버터구이로. 다들 동의하는가.”
“동의.”
“문어, 문어!”
“…….”
등에 배낭을 진 자 말고는 다들 기쁘게 대답했다.
데일은 통조림 무게로 축 늘어진 배낭을 메고서도 가뿐하게 우리를 앞서 나갔다.
열차로 돌아오니 물탱크는 다 채워져 있었다.
“출발할까요?”
기관실에 자릴 잡은 에즈라가 우리가 있는 1호차를 향해 물어왔다.
“네, 기관장님. 출발합시다.”
“예, 그럼 출발합니다.”
그녀가 돌아앉아 열차를 출발시켰다.
서서히 바퀴가 철로 위를 구르기 시작했다.
다시 출발이구나, 기지개를 머리 위로 쭉 켰다.
그리고 열차가 막 플랫폼을 빠져나가려는 순간.
“저기요! 저기요!!”
다급한 음성이 열차 머리 쪽에서 들려왔다.
급정거였지만 속도가 붙기 전이었기에 열차가 멈춰 서며 몸이 쏠리진 않았다.
‘무슨 일이야.’
열차 밖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급히 창문 가까이 다가가는데.
“아서라, 다친다.”
남자가 나를 뒤로 끌어당겼다.
데일이 제 패딩에 달린 후드를 눌러쓰며 내게도 후드를 씌웠다.
“애런 챙기고 엎드려.”
그가 연달아 기관실로 소리쳤다.
“에즈라도 숙여요!”
“수, 숙였어요!”
“앞의 상황 얘기해 줄 수 있습니까? 고개 내밀지 말고 본 것만 얘기해요.”
“그, 그게…….”
에즈라는 떨리는 목소리였다.
“어떤 남자 한 명이 갑자기 선로 위로 뛰어들었어요!”
“무기는 지녔습니까?”
“아뇨! 손을 위로 들었는데 양손 다 빈손이었어요.”
에즈라의 목소리 뒤로 낯선 이의 외침이 들려왔다.
살짝 열린 창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낯선 이의 목소리는 절박했다.
“차 기름이 다 떨어졌습니다. 이 주변에 버려진 차를 다 뒤졌는데 연료를 찾지 못했어요. 저흴 태워주시지 않는다면 저흰 발이 묶여 여기서 모두 죽고 말 겁니다.”
기관실로 가서 지금 절박하게 외쳐대는 저 남자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내가 벌떡 일어나 기관실로 향하자, 사잇문에 몸을 바짝 밀착해 서 있던 데일이 표정을 험악하게 바꿨다.
“안 앉아?”
“데일, 괜찮아요. 열차 창문에 방탄 효과 발라놨어요.”
그러니 조금은 긴장을 풀라는 뜻으로 남자의 팔뚝을 톡톡 두드렸다.
“언제.”
“열차 탄 당일에요. 그쪽이 한창 슬픔에 빠져 방에 틀어박혀 있을 때?”
“빨리도 말한다.”
그가 이런 반응을 보일 줄 예상했다.
데일은 누군가가 제 앞에 결과물만 달랑 내밀었을 때, 그게 놀랍든 이해되지 않든 과정은 잘 묻질 않았다.
아 그래? 그렇군, 하고 결과만 받아들일 뿐이다.
지금도 데일은 내가 어떻게 했는지에 관해선 일절 질문이 없다.
‘군인은 원래 이런가.’
왜 지금 같은 때에 이런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군.
이 남자의 특성이나 나열하고 있을 때가 아닌데.
나는 데일의 앞을 지나 기관실로 들어갔다.
움츠린 에즈라가 잔뜩 겁먹은 눈동자로 날 올려다봤다.
“벨? 뭐 해, 그러다 총 맞아!”
공포로 굳은 에즈라의 어깨를 부드럽게 잡았다 놨다.
“괜찮아. 방탄유리야.”
혹시 몰라 에즈라를 불우이웃으로 지정하고 시도해 봤는데, 생각대로 열차의 모든 창에 방탄 효과가 부여됐다.
기관실 창을 통해 보이는 낯선 이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한 명이 아니네.”
에즈라가 본 건 일부분이었나 보다.
데일의 시선을 따라가니, 열차 앞에서 양팔을 치켜든 남자를 불안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나머지 일행이 보였다.
‘다들 손을 다쳤나?’
일행이 죄다 손을 주머니에 넣고 있거나 숨기고 있다.
창 위로 고개를 내민 우리를 보고서, 낯선 이가 조금은 반가운 표정으로 외쳤다.
“열차를 타고 수도로 가고 계시죠? 저, 저희 목적지도 수도입니다. 바라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수도까지만 태워주십시오! 제국에 도착하면 저희끼리 떠나겠습니다.”
“어떡해?”
“어떡하긴.”
에즈라의 물음에, 나는 1호차로 돌아가 비품 칸에 정리해 두었던 기름통을 꺼내 들었다.
움직이며 뒤로 젖혀진 후드를 이마로 당겨쓰고서, 기관실 문을 살짝 열었다.
“기름 떨어졌다고 했죠? 여기 있어요.”
내 손을 떠난 기름통이 철로 옆에 떨어졌고.
“그만 막고 철로 위에서 나와요. 우린 그쪽 태워줄 생각 없으니 각자 갈 길 갑시다.”
떨어진 기름통을 향해 남자가 달려왔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기름통을 줍기 위해 허리를 굽혔다 편 남자의 손에는 총이 들려 있었다.
드러나는 얼굴, 좀 전과 다르게 올라간 입꼬리를 확인한 순간 나는 문을 닫았다.
-탕탕탕!
방탄유리라고 소개는 했는데, 나를 포함해 다들 그 효과를 100퍼센트 믿지는 않았나 보다.
어느새 우리 셋은, 누구랄 것 없이 창문 아래 쪼그려 있었다.
셋이서 사이좋게 금이 간 창문을 올려다봤다.
“오…… 효과 제대로네.”
“예쁘게 삼각형으로 박혔어.”
“저 새끼 저럴 줄 알았다. 가자, 이제.”
“출발하고 바로 문어 굽자.”
“어, 애 놀랐겠다. 문어부터 먹이자.”
일어서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이, 이봐! 미안해!”
총을 쏜 남자가 떠나는 열차를 두드리며 따라왔지만 얼마 가지 않아 힘이 빠진 듯했다.
탕탕탕, 다시 격발음이 들렸다 사라졌다.
나는 창문 너머로 멀어지는 허망한 표정의 남자와 그 일행을 바라봤다.
불안요소를 태울 생각은 없어서요.
‘안녕히 가세요.’
“벨, 그런데.”
에즈라가 짐짓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어왔다.
“기름통을 줬으니 차 타고 따라와서 해코지하는 거 아닐까?”
“아…… 괜찮아, 저거 비었어.”
대뜸 총만 안 갈겼어도 기름통 정도는 정말 줬을 텐데.
응, 정말 그랬을 거라구.
그리고 그날.
데일의 말대로 많은 이들이 제국으로 모여들고 있기 때문일까.
이후로도 열차에 탑승하고 싶어 하는 이들을 우리는 여럿 만났다.
낮에도, 밤에도.
❅
-덜컹, 덜컹, 덜컹.
1번 객실에선 나와 애런이 지냈다.
호화열차의 일등 객실엔 넓은 침대, 두 사람이 앉을 정도의 소파와 테이블, 간이 샤워부스 등 필요한 모든 게 갖춰져 있었다.
저녁을 먹고 포만감에 잠든 아이를 데일이 데려다 놓은 덕분에, 침대 위에서 잠든 애런의 숨소리가 새액새액 들려왔다.
테이블에 앉아, 아직 치지 않은 커튼 너머로 보이는 열차의 밤 풍경을 바라보는데.
“어!”
아이가 화들짝 놀라며 잠에서 깨어났다.
“왜? 왜 애런, 악몽 꿨어?”
“아, 아니.”
애런은 다급하게 침대에서 내려와 제 발에 맞지도 않는 성인용 슬리퍼를 신었다.
“그거 신지 말라니까. 그거 신으면 넘어져.”
“으응. 나 형한테 다녀올게.”
“데일? 왜.”
객실을 나서려는 아이를 잡아 세우자 애런이 급하게 입을 열었다.
“오늘은 형아랑 자야 해.”
“…….”
열차에 올라탄 뒤로 데일은, 위험하므로 한방에서 자야 한다는 원칙을 깬 상태였다.
그는 오늘도 옆방인 2번 객실에서 혼자 잠을 청하고 있었다.
애런이 건너간다면 오늘은 편히 잘 수 있겠군, 하는 생각과 늘 내 옆에서 자길 원하던 아이가 갑자기 다른 사람을 찾으니 묘한 질투심이 들었다.
“형이랑? 왜?”
“형 악몽 꿔서 지켜줘야 해.”
“악몽을?”
“응, 형 악몽 꿔.”
한방에서 잘 때, 중간에 깨서 잠든 데일의 얼굴을 들여다본 적이 있었다.
‘매번 얌전히 자던데.’
그때마다 그는 효율적으로 숙면하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나는지 가끔 옆으로 뒤척이긴 했어도 보통은 정자세로, 옆에서 소릴 내도 세상모르고 잠을 잤다.
‘악몽이라.’
“그럼 같이 가서 지켜줄까?”
“응.”
아이를 따라 객실을 나오는데 사잇문을 닫고 2호차로 들어오는 에즈라가 보였다.
‘아, 에즈라랑 교대하기로 했었지.’
“어, 나왔네. 나 눈 붙일게.”
그리 말하고 3번 객실로 사라지는 에즈라를 뒤로하고 나는 애런에게 두 손을 모았다.
“애런 미안. 할 일을 깜빡해서 형을 지켜주는 건 애런 혼자 해야겠다.”
아이는 실망하는 내색 없이 제 가슴을 두드렸다.
“맡겨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