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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물에서는 남주를 줍지 마세요 (66)화 (66/108)

66화

멈춰 선 열차 옆, 데일이 작게 모닥불을 피웠다.

나는 그가 마련해 준 모닥불 옆자리에 앉아 물었다.

“불 피워도 돼요?”

“이렇게 허허벌판에 갑자기 등장하지는 않겠지. 보고 있으면 뭐, 어쩔 수 없고.”

데일은 심드렁한 얼굴로 훈제 고기를 구웠다.

그래도 걱정이 되어서 나는 자꾸만 저 멀리에 있는 숲을 쳐다보았다.

“통조림.”

“……?”

“난 한밤중에 습격은 받아봤어도 일출 때 습격하러 오는 놈들은 못 봤어. 일출에 습격을 계획했다면 그건 변태라고.”

그러니 알겠지? 편히 있으라고, 하는 눈빛이다.

“밥 먹어.”

라고 데일이 부르자, 천천히 사라져 가는 순록 무리를 지켜보던 애런이 쪼르르 달려왔다.

주홍빛 모닥불 앞이라 그런지, 추위에 얼어붙어서 그런지, 아이는 볼이 더 빨개져 있었다.

나는 하고 있던 목도리를 벗어 애런의 얼굴을 감쌌다.

이미 하고 있던 목도리 위로 내 목도리를 또 감았더니, 아이는 눈만 겨우 나와 있는 모양새였다.

그러자 피식 웃은 데일이, 아까 내가 건넨 목도리를 제가 하지는 않고 아이의 이마에 둘러버렸다.

“풉.”

“푸흣.”

한 아이에 목도리는 세 개.

나랑 데일은 목도리에 파묻혀 얼굴이 사라진 애런을 보고서 킥킥거렸다.

“숨 막……혀.”

“코는 터줄까.”

데일의 제안에 내가 나섰다.

나는 목도리와 목도리 사이를 벌려 숨길을 만들어 주었다.

“이제 숨 쉬어져?”

“에헤헤, 응.”

삼단 목도리를 둘러맨 채 애런은 배시시 웃었다.

생각보다 마음에 드는지, 애런은 벗겨달라는 말이 없었다.

“음~ 맛있는 냄새다.”

아이가 코만 보인 채 모닥불 앞에서 킁킁거렸다.

데일이 다 구워진 고기를 작은 손에 쥐여주며 말했다.

“이 맛있는 냄새는 네가 아까 봤던 순록 친, 읍.”

닥쳐.

나는 급하게 데일의 입을 틀어막았다.

제 입을 틀어막은 내 손 위로 남자의 눈이 샐쭉이 휘었다.

“어? 순록 또 왔어?”

애런이 목도리를 눈에 감은 채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아니, 근데 애런 그 상태로 고기 먹을 수 있겠어?”

“음.”

아이는 고기 꼬챙이를 코앞에 들고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래도 두른 목도리를 건들지 않으면서 고기를 입에 넣고 싶어 하는 것 같았는데.

‘되겠냐고.’

나는 얼른 입 부분의 목도리를 풀어주었다.

“아 바람 차가.”

“그래도 이제 먹을 수 있게 됐잖아.”

“응, 맞아.”

곧 나는 아이가 꼬챙이에 찔릴까, 애런의 눈을 가린 목도리마저 풀고 먹였다.

아이가 행복한 얼굴로 고기를 입에 넣었고, 나도 데일이 건네는 고기를 한 점 입에 넣었다.

‘맛있다…….’

모닥불에 구워서 그런가.

타닥타닥 타들어 가는 모닥불에 데일은 고기를 몇 점 더 굽고 있었다.

애런이 우물거리며 입을 열었다.

“이거 에즈라 누나 거는?”

‘우리 애런!’

여전히 에즈라를 미워하는 줄 알고 내심 걱정했는데.

잠든 이의 몫을 챙기는 아이의 둥근 머리를 모자 위로 쓰다듬었다.

“에즈라 누나 것도 있으니까, 애런은 걱정 말고 많이 먹어.”

“아니, 걱정은 안 하는데…….”

아이는 그리 말하며 조금 쑥스러워진 표정으로 고기를 한 점 더 입으로 가져갔다.

“해 뜨네.”

데일이 작게 읊조렸다.

정말이었다.

멀리 새카만 어둠 속에 잠겨 있던 숲이 일출에 녹빛을 드러내기 시작했으니까.

고개를 돌리자, 하늘이 분홍빛 기운으로 어스름을 몰아내고 있었다.

‘예쁘다.’

일출을 본 게 얼마 만이지.

“좋네요. 일출도 보고, 아침부터 입에서 훈제 냄새도 나고.”

애런이 맞장구쳤고.

“훈제 냄새 맛있어.”

데일은 다시 그 얘길 꺼냈다.

“꼬맹아. 형아가 훈제가 뭔지 알려주자면, 아까 순록처럼 살이 많은 놈들을 가져다가…….”

“아, 제발 닥치라고!”

어느새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한번 열차를 멈췄다.

에즈라의 운전 아래, 열차가 서서히 속도를 줄이며 플랫폼으로 들어섰다.

출발할 때와 달리, 기적 소리 없는 조용한 진입이었다.

해야 할 일은 간단했다.

에즈라가 필요하다고 말했던 부품을 챙기는 일과, 물탱크를 채우는 일 두 가지인데.

‘오징어 버터구이 먹고 싶다.’

이곳에 와서 내가 이만큼 어떤 음식을 강렬히 먹고 싶어 한 적이 있었던가.

사실 열차가 플랫폼에 정차하기 전부터 입맛이 돌았다.

내리기 전부터 기분이, 놀러 가는 길 중간에 시외버스터미널에 들르는 기분과 비슷했다.

자꾸 터미널에서 파는 간식거리가 떠올랐다.

오징어 버터구이, 마약 옥수수, 두툼한 핫도그, 감자, 어묵…….

버터는 플로라 할머니네서 가져온 게 있으니까 오징어만 구하면…… 아니다.

“이게 무슨 여행인 줄 아냐, 오징어를 찾게.”

내 혼잣말을 들은 모양이다.

기관실에서 플랫폼으로 발을 내딛던 에즈라가 고개를 돌렸다.

“너 오징어 먹고 싶어? 나도 먹고 싶다, 오징어.”

“너도?”

“어, 나도.”

아씨, 먹고 싶은 사람이 나 혼자면 말을 안 꺼냈을 텐데.

둘 이상이면 상황이 다르지 않나.

“너 이 역 잘 알겠네? 오징어, 아니 오징어 통조림이라도 구할 데가 근처에 있나?”

생물 오징어를 바라는 건 미친 짓이니까, 나 통조림이라도 너무 좋을 것 같아.

에즈라는 장갑 낀 손으로 열차에서 꺼낸 마나핵을 들고 내게로 다가왔다.

서서히 식어가는 마나핵은 아직도 푸른빛이 꺼지지 않은 상태였다.

“여객열차용 창고는 귀족들 입맛대로 채워놓기 때문에 통조림은 별로 없을 거거든. 근데 일반 식료품 창고엔 있을 수 있어, 바로 옆이야. 이미 털렸을 확률이 높긴 한데.”

그 말에 내가 눈을 빛냈다.

“그렇다면 이왕 내린 거.”

“가볼까?”

“내 말이.”

내 제안에 동의하며 싱글벙글하던 에즈라가 갑자기 내 뒤에서 내린 누구를 보더니 고개를 홱 돌렸다.

“오징어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데일은 정말 거대 오징어 두 마리를 목격한 모습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오징어 찾으러 갔다가 총 맞으면 구운 오징어처럼 쪼그라들 테니까 뭐, 원하는 게 그건가 봐? 그럼 보내주고.”

“오징어?”

데일 손을 잡고 있던 애런이 타다닥 열차로 다시 들어갔다.

아이가 손에 들고나온 건 홀로그램 박스였다.

“오징어.”

그러자 홀로그램 박스가 명령어에 맞는 내용을 띄웠다.

심해를 여유롭게 유영하는 오징어였다.

홀로그램 색이 파란색이라 더 바닷속 같았다.

‘오징어 팔자 좋아 보인다.’

뭔가에 쫓기지도 않고, 반드시 가야 할 곳이 있는 것도 아니고, 쟤는 바닷속이 다 자기 집이잖아.

‘아, 생각할수록 부럽네, 오징어.’

부러우니까 더 먹고 싶었다.

“먹을 거야, 오징어. 먹자 오징어.”

“X 같은 소리 한다.”

데일은 그런 날 구박했고, 에즈라는 물탱크 호스를 품에 안고서 분홍 눈망울 안에 다시금 희망을 피워올렸다.

오늘 오징어를 못 먹고 열흘을 더 사는 것보다.

“내일 죽더라도 오늘은 오징어를 먹자. 우리의 오늘 저녁 메뉴는 오징어다.”

“동의.”

에즈라가 작게 맞장구쳤고, 나는 플랫폼 바닥에 배를 대고 오징어 수영법을 흉내 내던 애런을 들어서 옆구리에 꼈다.

“애런, 내가 뭐랬어. 홀로그램 박스는 이제 막 꺼내면 안 된다 그랬지.”

“아.”

데일이 옆에서 티 나게 한숨을 내쉬었다.

“가지가지 한다.”

물탱크에 호스를 끼우고 부품 창고로 가니, 에즈라가 단번에 부품을 챙겨 나왔다.

“에즈라, 물탱크 차려면 아직 시간이 걸리지?”

“응, 그렇지 걸리지. 다 차는 동안 뭘 하면 좋을까.”

“오징어…….”

애런이 정답을 외쳤다.

애런도 이제는 오징어가 먹고 싶단다.

세 명의 오징어 무새 앞에서 데일은 마른 얼굴을 벅벅 비볐다.

“꼭 먹어야겠냐.”

나를 보고 물은 거였는데, 에즈라가 더 빨리 대답했다.

“혹 식료품 창고를 뒤지는 동안 누가 와서 열차를 강탈해 갈까 걱정하시는 거라면, 그 걱정 내려놓으셔도 좋습니다. 마나핵을 빼 왔으니까요. 저 열차는 이 마나핵을 다시 끼울 때까지는 절대 움직이지 않죠. 만에 하나, 마나핵을 가진 도둑놈이 있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마나핵을 가진 도둑놈이 열차 조종법까지 아는 경우가 어디 그렇게 흔한 일일까요?”

“그건 저도 압니다.”

“아셨구나…….”

에즈라는 머쓱해하며 내 팔뚝에 팔을 감았다.

“모르는 게 없으시네.”

입을 다문 세 명의 오징어 무새를 바라보던 데일이 짧게 말했다.

“그 정도면…… 가죠.”

“저기야.”

식료품 창고는 가고 말고 할 것도 없이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기차역 로비까지 나갈 것도 없이 플랫폼 바로 뒤였으니까.

플랫폼 뒤, 몇 개의 창고가 옹기종기 모여 있었고, 그 옆엔 물자를 운반하던 트럭 몇 대가 찾아주는 운전자 없이 풍파를 견디고 있었다.

살금살금 발소리를 죽여 걸었다.

누군가 있을지 모르니까.

그러나 다가간 식료품 창고 앞엔, 부서진 자물쇠가 바닥에 떨어져 있지 뭔가.

부서진 자물쇠를 보는 네 명의 눈빛이 다 똑같은 게, 묻지 않아도 같은 생각 중으로 보였다.

“그래도 왔으니 들어가는 볼까?”

그리고 들어간 창고는 휑하니 비어 있었다.

“오징어 어딨어.”

텅텅 비어버린 창고 선반을 보며 애런이 슬픈 목소리로 오징어를 찾았다.

“아!”

그때 에즈라가 감탄사를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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