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데일과 애런이 벌컥 문을 열고 들어간 나를 동시에 쳐다봤다.
“무슨 일이에요?”
5호차는 라운지와 바로 이용되는 칸이라, 비좁은 복도도 없고 넓어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러니까 침입자가 있다면 숨을 만한 공간은 거의 없는 장소.
“어디 있어!”
“뭐?”
“침입자요! 벌써 잡았어요?”
애런을 향해 앉아서, 비딱하게 고개만 돌려보던 데일은 눈살을 찌푸렸다.
“침입자라면 널 말하는 거야?”
“내가 침입자일 리가 있어요!?”
뭔 소리야.
침입자가 있으니까 나한테 기부를 요청한 거 아니냐고!
지금 이렇게 네가 요청해서 허공에 지속 시간 창이 떠 있는데!
[지속 시간: 00:02:29]
“으으.”
죽어가는 신음이 들리길래 고개를 내렸더니 애런이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아니, 다시 보니 플랭크 자세다.
아이의 가녀린 팔뚝이 부들부들 떨렸다.
“으으, 벨.”
엎드린 자세로 고개만 들어서 나를 올려다보는 애런의 얼굴이 시뻘겠다.
“중력 엎드려뻗쳐야.”
뭐?
“설마 애런한테 능력 쓰고 있어요, 지금?”
“어, 훈련 중이다.”
“…….”
왜 애한테 엎드려뻗쳐를 시키는데.
그냥 엎드려뻗쳐도 아니고 중력으로 눌러가며 왜 시키는데!
“헤, 헤헤.”
점점 더 힘들어지는지, 이제 애런은 내가 아닌 바닥 어딘가를 흐린 눈으로 보고 있었다.
사람이 힘들면 눈앞이 흐려지고 초점도 안 맞는다.
애런은 그 상태가 왔는지 자꾸만 눈을 끔벅거렸다.
“내, 내가 해, 해달라고.”
“애런, 상체 내려간다.”
데일이 자비 없는 군 교관처럼 차갑게 중얼거렸다.
“으, 으응.”
그 말에 아이가 바닥에 닿을락 말락 했던 가슴을 부들거리며 끌어 올렸다.
“끄으으.”
이를 악물었는지 통통한 두 볼이 더 볼록했다.
“애런 그러다 다쳐. 이거 왜 하는 거야. 힘드니까 그만해.”
“아, 안 돼…… 끄합.”
“애 말 시키지 마. 더 힘드니까.”
“…….”
저이씨.
데일은 아랑곳하지 않고 초를 셌다.
“5, 4, 3, 2.9, 2.8…….”
“형 나 주거!”
“적당히 하죠.”
남자의 뒷덜미를 손가락으로 꾹 누르자 그가 그제야 정상적으로 수를 셌다.
“2, 1, 끝.”
“흐, 흐아아아.”
끝 소리와 함께 아이는 젖은 빨랫감처럼 바닥에 널브러졌지만, 허공에 띄운 건 행복하다는 창이었다.
[대상이 행복해합니다.
획득한 행복 포인트를 생명력으로 변환하여 저장합니다.]
“헤헤, 해냈다아.”
나는 긴 바 테이블에 놓여 있던 수건으로 땀이 잔뜩 흐른 아이의 이마를 톡톡 닦아냈다.
애런은 아직도 붉은 기가 가시지 않은 얼굴로 밭은 숨을 몰아쉬며 해맑게 웃었다.
“애런 뭐가 그렇게 신나?”
“나 성공했잖아, 벨. 조금 더 강해졌어.”
“네가 강해져서 뭐 하게.”
나랑 데일이 지켜줄 건데.
그냥 안 강해져도 되니까 이런 거 안 하면 안 돼?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해서 뱉은 말이었는데, 애런은 나의 사랑스러운 꼬맹이답지 않게 아주 상처받았단 의미로 눈썹을 팍 치켜올렸다.
“어떻게 그런 말을…….”
나 실수했나.
아직도 벌어진 아이의 입을 보며 눈치를 보는데, 데일이 어김없이 끼어들었다.
“눈치는 길바닥에 뿌렸냐.”
“…….”
“애런, 이번엔 공중훈련이다.”
데일이 말과 함께 애런의 몸을 공중으로 띄웠다.
“꺄하하핫.”
애런은 언제 실망했냐는 듯 열차 내부를 수영하듯 날아다녔다.
그러곤 다시 행복 포인트를 띄웠다.
덩달아 내 몸도 붕 떴다.
데일을 바라보자, 그가 애런을 향해 눈짓했다.
‘애랑 놀아주라는 말이구나.’
허공을 휘저어 다가가 아이의 발을 잡고 돌렸다.
“꺄학.”
양말 신은 발바닥에 손이 닿자 간지러움에 몸을 떨던 애런은, 내가 팔을 돌리는 대로 허공에서 공중제비를 돌았다.
신이 났는지 아이는 까르르 웃어댔다.
그러다 데일과 눈이 맞았다.
뭘 봐, 라는 저 뻔뻔한 표정.
나는 애런이 공중제비를 몇 바퀴 더 돌 수 있도록 힘있게 아이를 돌려놓고 데일을 향해 다가갔다.
애런이 갸핰거리는 웃음소리를 내며 공중에서 천천히 멀어졌다.
그가 다가온 날 아래서 올려다봤다.
‘돌아온 건가?’
공중에서 팔을 뻗어 남자의 두 볼을 감쌌다.
얼굴을 잡고 이리저리 돌려보는데도 표정의 변화라곤 없이 그가 날 올려다봤다.
“왜.”
“…….”
“아래에서 보니까 꽤 못생겼네.”
‘돌아왔군.’
또 조용히 슬픈 눈, 젖은 파란 눈 따위를 했으면 걱정했을 텐데.
데일은 어느 정도 평소 모습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너 못생겼다고.”
“알겠어요. 대견해요.”
“뭐?”
“벨!”
애런이 열차 반대편 문을 발로 찍고 돌아오고 있었다.
냄비의 지속 시간이 거의 끝나갔다.
애런이 내게 다다랐을 때쯤, 데일이 나와 애런을 부드럽게 바닥에 내려주었다.
‘다행이다.’
아이의 표정을 보아하니, 애런은 공중제비 몇 바퀴와 함께 내가 한 말은 싹 잊은 모양이었다.
“애런, 재밌었어?”
“응, 나 또 할래!”
“많이 움직였으니까 간식 먹고 좀 쉬었다 할까?”
“응!”
나는 애런의 손을 잡고 식당칸으로 가는 문을 열며 데일을 돌아보았다.
“왜 자꾸 그렇게 보냐, 너.”
‘걱정과 염려의 눈빛이다, 이 자식아.’
“농담을 하면 웃기나 하든지.”
“…….”
“농담이 아니라 못 웃나?”
너무 측은하게 쳐다보면 더 짜증 낼 것 같지?
나는 자꾸만 축축 처지는 눈꼬리를 갈무리했다.
“왜, 뭘 해달라고 조르고 싶어서 그렇게 보는데.”
“벨도 돌고 싶어서 그런가 봐!”
그러자 남자가 평소 잘 짓던 웃음을 입에 걸었다.
“애 둘을 동시에 놀아주는 건 나도 힘드니까 넌 이따 밤에 놀아줄게.”
‘정말 돌아왔군.’
지껄이는 헛소리를 보니 거의 돌아왔다, 저거.
저 정도면 이제 걱정할 필요 없겠어.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예예, 대견하세요.”
❅
내가 상상했던 기관실은, 보일러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나면 그 옆에 작게 마련되어 있는 협소한 공간이었는데.
“기관사님, 기관실이 아주 좋습니다?”
“그렇지?”
에즈라는 기관실 좌측에 난 창문을 열어 바람을 맞으며 대답했다.
찬 바람이 들어오는데도 기관실은 열기로 후끈했다.
“원래는 네 말대로 협소했는데, 동력 공급을 석탄에서 마나핵으로 바꾸면서 보일러실이 차지하던 공간이 팍 줄어서 기관실이 넓어졌어.”
설명하는 에즈라의 분홍 곱슬머리가 바람에 춤을 췄다.
나는 조용히 뒤로 가서 손가락으로 엉킨 머리카락을 한 가닥씩 풀며 이야길 들었다.
에즈라는 체구가 참 작은데, 목소리는 나보다 낮고 조금 더 중성적인 톤이었다.
마치 대형견의 울음소리를 가진 포메랄까.
“정말 좋아진 거야. 석탄을 때면 연기가 얼마나 많이 나는 줄 아니? 승객들이 창문을 열었다가 인상을 찌푸리며 닫게 된다고. 터널이라도 통과할 때면 연통에서 올라온 연기가 터널 안에 뿌옇게 들어차서…….”
오랜 역사를 가진 이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 같아서 흥미롭게 듣고 있었는데.
“그 XX 진상들. 석탄으로 가는 열차를 타 놓고 연기가 많이 난다고 불만을 늘어놓는 건 뭐야 XX. 그게 기관사의 능력으로 되는 건 줄 알아? 내가 안내방송을 안 했으면 또 몰라. 터널로 진입하기 전에 미리미리 방송을 돌린다고. 터널에선 창문 열지 말라고. 근데 꼭 여는 새끼가 있어요. 그래 놓고 막 기침을 해. 승무원을 괴롭혀 XX. 그리고 창문 열면 연기를 지만 마시냐고. 내가 진짜…….”
“…….”
역시 좋은 기억보다는 나쁜 기억이 더 선명하게 남는 걸까.
눈앞에 연기 들이마시고 기침하는 진상 승객이 보이기라도 하는지, 에즈라는 아주 생생하게 설명을 늘어놨다.
“에즈라, 혹시 지금 승객 중에 마음에 안 드는 승객이라도 있는 건 아니지?”
“어?”
지금 이 열차의 승객은 총 셋.
나, 애런, 데일.
“없지.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은 없는데 그 ㄷ…….”
‘ㄷ?’
-벌컥.
“얘길 좀 할까.”
애런의 손을 잡고 기관실 문을 박차듯 열고 들어온 이는 데일이었다.
데일 옆에 서 있던 아이가 쪼르르 달려와 내 옆에 섰다.
“거 노크 좀 합시다.”
“여기가 욕실이었던가? 아니면 욕실 아닌 곳에서도 발가벗고 돌아다니는 취향을 가진 이가 있던가?”
“그건 그쪽이시고요.”
“그럼 아무 문제 없군.”
“…….”
데일은 전혀 타격 없는 얼굴로 우리 맞은편에 자릴 잡았고, 에즈라는 조금 그늘진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ㄷ이 데일이구나.’
그러고 보니 둘이 대화를 나눴던 적이 있던가?
“벨, 뭐 하고 있었어?”
옆에 선 애런이 에즈라의 풍성한 곱슬머리를 손바닥으로 눌러보며 물었다.
“에즈라 누나랑 얘기하면서 누나 머리카락 엉킨 거 풀어주고 있었어.”
“에즈라 누나는 머리카락이 살아 있어.”
“…….”
“형이랑 벨은 이렇지 않은데.”
“애런 내 머리카락은…….”
“응, 나 궁금하지는 않아.”
애런은 그러면서도 손바닥으로 누르면 다시 튀어 오르는 에즈라의 머리를 누르는 걸 멈추지 않았다.
에즈라는 아직도 애런한테 미안한 마음을 느끼는지, 아무 반박도 못 하고 서글픈 눈이 되어 애런을 쳐다봤다.
“열차가 제국령을 통과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습니다. 수도까지 경로가 어떻게 됩니까.”
드디어 어제, 열차는 제국령으로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