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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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마주쳤을 때 기분이 이상했다.
뭐가 고맙다는 건지도 알 수 없었다.
스칼렛은 웃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눈을 하고서 입으로 웃고 있었다.
“스칼렛!!”
그녀가 무어라 지껄이며 운전대를 꺾었다.
갑자기 꺾인 운전대에 바퀴가 돌았고, 차는 비탈길로 굴러떨어졌다.
아무 말도, 대응도 없이 차의 속도를 올리는 일에만 집중하던 데일이 차를 급정거시켰다.
-쾅, 콰쾅, 펑.
눈앞에서 폭발이 일자, 순간 까만 밤이 대낮으로 둔갑했다.
운전자석에서 내려 비탈길을 미끄러지듯 내려갔던 데일이, 펑펑 터지는 폭발에 더 이상 다가서지 못하고 그 자리에 멈춰 섰다.
폭발이 펑펑 불을 튀길 때마다 밝아지는 불빛에, 남자의 얼굴이 드러났다 숨기를 반복했다.
나는 그가 짓고 있는 저 표정이 무슨 표정인지 잘 모르겠다.
설명하기 어려운 표정이었다.
‘이런 걸 바란 적 없었는데.’
왜 이렇게 되었지.
나는 바란 적이 없었는데 누군가 바란 사람이 있어서 이리되었나.
그렇다면 그자를 얼른 데려와 이 자리에서 흠씬 두들겨 패고 싶다.
그러면 기분이 나아지려나.
‘데일.’
죽었다고, 이제 그만 산 사람들에게 가자고 말해야 하는데 남자의 이름이 목에서 나오질 않았다.
그의 하얀 은발이 타오르는 불길 앞에서 주홍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돌발 퀘스트
대상: 스칼렛
내용: “남편을, 우리 가족을 지키고 싶어.”
클리어까지 남은 시간: 15시간 37분 15초]
[대상 스칼렛 사망, 대상 헨리 사망]
[돌발 퀘스트 클리어에 실패하였습니다.]
나는 그가 내려갔던 비탈길을 따라 아래로 내려갔다.
여전히 폭발 앞에서 펑펑 튀기는 불꽃을 눈에 담고 있던 데일을 돌려세웠다.
남자의 커다란 몸이 내 손길에 힘없이 돌아섰다.
파란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렸다.
“통조림?”
“미안해요. 지금 움직여줘요.”
저들은 죽었어요, 되돌릴 수 없어요. 여기 계속 서 있다 한들 스칼렛과 헨리가 돌아오진 않아요.
애도할 시간조차 주지 않고 떠나자 말해서 미안해요. 하지만…….
데일의 손을 꽉 쥐며 마음이 전해지길 바랐다.
그 순간, 폭발 차량에서 튄 불꽃이 내게로 날아들자, 그가 내 머리를 감싸 쥐며 내 몸을 제 품으로 끌어당겼다.
“살아 있지?”
“…….”
죽었다는 말을 차마 입에 담을 수가 없어 망설이고 있자, 그가 연달아 같은 질문을 던졌다.
“넌 계속 살아 있을 거지?”
“…….”
“죽지 않을 거지?”
“…….”
“대답해.”
나를 안은 남자는 팔을 떨고 있었다.
나는 그의 품으로 깊이 파고들어 그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떨지 마요.’
“응.”
“…….”
“절대 안 죽어요, 나는.”
❅
각자 트롤리에 짐을 잔뜩 싣고 열차 플랫폼으로 들어서자, 대합실에 숨어 있다가 인기척을 듣고 나온 에즈라와 애런이 손을 흔들었다.
“벨! 형아!”
그 모습에 데일이 트롤리를 내팽개치듯 버리고 애런에게로 달려갔다.
‘아니, 우리의 소중한 짐을!’
나는 도르르 굴러가는 트롤리를 허겁지겁 따라가, 선로 아래로 떨어지기 직전에 멈춰 세웠다.
트롤리 손잡이를 잡고 뒤돌았을 땐, 무릎을 꿇고 앉은 데일이 이미 아이를 품에 넣은 후였다.
손을 흔들다 데일에게 잡혀 버린 애런은 여전히 팔을 위로 든 채였다.
애런은 만세를 하고서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형이 왜 이러는 걸까?’
하는 표정이었다.
아이에게로 굽어 버린 남자의 등을 보며 나는 무언의 메시지를 보냈다.
‘지금 형이.’
양 검지로 눈 아래 볼을 죽죽 그어 내린 후, 오른손으로 심장 근처를 꾹 눌렀다.
‘울고 싶을 정도로 슬퍼서 그래.’
라는 의미였다.
무언의 메시지를 보내고서 애런의 표정을 살피자, 아이의 까만 눈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커져 있었다.
‘형이 울었어?’
아이의 입 모양은 그리 묻고 있었다.
울지는 않았지만 뭐, 비슷하니까.
애런에게 있어서 데일은 이 세상에서 가장 센 사람인데, 그런 사람이 울었다는 사실을 아이는 즉각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모양이었다.
잠시 침묵하던 애런은 팔을 내려 데일의 목을 끌어안았다.
“벨, 스칼렛이랑 헨리는?”
애런 옆에 서서, 데일을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던 에즈라가 내게 물어왔다.
예, 타이밍 아주 좋구요.
그 소리에, 데일이 애런의 작은 어깨 속으로 더 파고들려 하는 모습이 눈이 밟혔다.
커다란 몸이 작은 것 안으로 숨고 싶어 하는 모습이 애처로웠다.
“둘은…… 나중에. 일단 타자.”
“…….”
그제야 뭔가 실수했다는 걸 깨달은 얼굴을 한 에즈라에게 마나핵을 넘겼다.
그녀의 손에는 여객열차의 기관실 열쇠가 들려 있었다.
“핵을 진짜 가져왔네. 훔친 거야?”
“아니, 원래는 그럴 생각이었는데 주더라구.”
에즈라를 기관실로 보내고 돌아서자, 어느새 데일이 애런을 안고 일어서 있었다.
“…….”
“…….”
애런은 데일이 지금도 울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지, 그의 마른 얼굴을 자꾸 손으로 문지르고는 제 손바닥을 확인해 없는 눈물을 찾았다.
“짐 줘.”
버릴 것처럼 놔버릴 땐 언제고 이제는 달래.
나는 짐이 실린 트롤리를 그에게 밀고 기관실을 향해 움직이며 말했다.
“난 열차 움직이는 데 필요한 거 더 없는지 가서 확인할게요. 1호차에 타 있어요.”
이 열차는 제국령을 통과해 수도에 있는 종착역까지 우리를 데려다줄 것이다. 데일의 흩어진 일행이 살아 있다면, 그들 역시 수도로 향했을 터.
거기서 그들과 합류해, 수도의 1시 방향에 있는 항구에서 배를 구해 데일이 말한 섬을 찾을 예정이었다.
그리고 최후의 낙원이라는 그 섬을 찾으면…….
‘근데 그 많은 섬 중에서 최후의 낙원을 어떻게 찾지.’
낙원으로 향하는 이 거지 같은 여행길은 뭐 하나 쉽게 내어주는 법이 없었다. 최후의 낙원일 거라 예상되는 섬은 군도였다.
그러니까 수십 개의 섬 중 어느 곳이 낙원일지 알 수 없다는 것.
‘일일이 다 뒤져서 찾아야 하나?’
배를 타고 내려, 그 섬들을 하나하나 뒤질 것을 상상하니 벌써 때려치우고 싶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나중에 생각하자, 하기 싫은 걸 지금부터 생각하니까 더 하기 싫어지는군.’
에즈라의 말에 따르면, 제국에서 운행하는 이 여객열차는 오로지 마나핵으로만 움직이는 열차라고 했다.
달리기 위해서 예열에만 꽤 많은 시간을 잡아먹는 석탄 차량과 다르게 가동이 아주 간단하다고 말하긴 했지만, 혹시 옆에서 도와주면 더 빠르게 출발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열린 기관실 문으로 올라서자, 에즈라는 장치 안에서 빛나는 마나핵을 바라보고 있었다.
“에즈라, 혹시 도와줄 거 있어?”
“없어.”
마나핵 덕분인가, 기관실 내부가 점점 따듯해졌다.
“용케 구해왔네, 그 불독한테서.”
그녀가 기관실에 난 원형 창 너머로 1호차의 두 사람을 건너보며 말했다.
“응.”
“설명할 기분이 아니구나.”
“응. 좀 그렇네.”
“그래. 그렇다면 설명을 듣는 일도, 위로하는 일도 나중으로 미루자. 출발하면 되지?”
“응, 부탁해.”
무의식적으로 열차의 기적을 울리려던 에즈라가 손을 멈췄다.
“기적을 울려도 들을 사람이 없겠네.”
나는 에즈라의 뒤에 서서, 성에 낀 기관실 창을 손바닥으로 쓱 문질러냈다.
안 그래도 열기에 녹기 시작한 성에가 물이 되어 묻어났다.
대충 닦은 원형 창 너머로 1호차에 있는 둘을 살폈다.
데일과 애런이 정방향으로 난 좌석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에즈라.”
“어?”
“기적 울리자.”
“…….”
“내가 듣고 싶어.”
내 말에 그녀가 경쾌하게 대답했다.
“내 승객이 원한다면.”
에즈라가 기적 장치를 당겼다.
-뿌우.
작은 덜컹거림과 함께 열차가 기적 소리를 내며 나아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