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아이템 ‘자선냄비’에 포인트를 넣어 대상에게 기부해 보셨나요? 자선냄비는 기부받은 대상의 능력 빈곤 상태를 해결해 줍니다.
해결된 빈곤: 염력
지속 시간: 00:01:49]
“아니, 선생님 1분 49초 남았다구요. 데일 선생님, 48초요!”
에이 XX, 진짜.
안 닿으면 던지면 되지.
나는 운동화를 벗어 던졌다.
날아온 운동화에 이마를 직방으로 맞은 데일은 눈을 싹 감았다 뜨더니 이내 불쾌한 미소를 그렸다.
“야.”
“또 맞기 싫으면 내려라.”
“…….”
“어 내리라고, 데일 캐드. 확 씨 그냥.”
여전히 꿈적도 안 하는 데일 뒤로, 불독이 서서히 상체를 들어 올리는 모습이 보였다.
“어? 어? 쟤 일어난다, 쟤 일어나잖아요!”
그 순간 몸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눈을 질끈 감았다 떴을 땐, 남자의 품속이었다.
그가 나를 품에 안은 채 뒤돌아섰다.
-쾅! 콰지직.
다시 한번 바닥에 처박히는 불독과 함께 주위 바닥이 갈라지며 더 깊이 내려앉았다.
무언가에 거세게 짓눌리는 사람처럼 불독은 고개도 들지 못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데일이 총을 꺼내 들었다.
“낙원에선 왜 애를 찾는 거지?”
“너, 크흑, 넌 뭐야. XX.”
-콰직.
불독 주변의 땅이 아래로 더욱 꺼져 들며 갈라졌다.
그를 짓누르는 힘이 더욱 세진 것 같았다.
“대답해. 누가 네게 공수표를 날린 건지, 왜 애를 찾는 건지.”
“내가 알 것 같아? 그딴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 난 낙원에 가기만 하면 그만이었으니까.”
데일이 장전하기 위해 총에 시선을 돌리자, 그를 짓누르는 힘이 조금은 약해진 모양이었다.
그가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장전되는 총을 보며 그도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듯 보였다.
“네놈들 이제 에즈라한테 가는 건가? 그 X한테 전해.”
“…….”
“그 X이 좋은 말로 할 때 나한테 왔으면 그놈도 안 죽었을 거라고 말이지.”
“말이 길다, 가라.”
“잠깐만요, 데일. 당신 그게 무슨 말이야?”
놈의 머리에 총을 쏘려는 데일의 손을 잠시 저지했다.
“흐히히힛.”
정신 나간 사람처럼 원 없이 웃어젖히던 그가 숨겨왔던 사실을 토해냈다.
“오랜만에 연애란 걸 해보고 싶었어. 그래서 죽였어. 연애하고 싶은 상대에게 약혼자가 있으면 안 되잖아? 배신당해 갈 곳이 없어지면 와서 안길 줄 알았는데 고집 센 X.”
“야, 불독.”
“…….”
“이건 내가 쏘는 게 아니라 에즈라가 쏘는 거야.”
-탕!
볼에 피가 팍 튀었다.
뜨겁고 질척한 덩어리 감이 사람의 기분을 뒤집히게 했다.
“부, 불독이 죽었어.”
누군가는 기뻐하고 누군가는 어쩔 줄 몰라 했다.
[지속 시간: 00:00:00
자선냄비 종료]
[돌발 퀘스트
대상: 불독
내용: “물건을 찾아야 해. 그래야 낙원으로 갈 수 있을 테니까.”]
[돌발 퀘스트 클리어에 실패하였습니다.]
“가자.”
데일이 내 볼에 튄 피를 손등으로 문질렀다.
“굳었네, 벌써. 씻고 갈래?”
데일을 쳐다보았다. 얼굴이 엉망인 건 그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둘 다 세수만 하고 가죠. 애런이 보고 기겁하겠어요.”
화장실로 향하는 날 따라오며 그가 말을 붙였다.
“근데 에즈라는 뭐야, 너 또 뭐 주웠냐?”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세수만 간단히 하고 나와 주변을 둘러보니, 난장판이 된 1층을 정리하는 인원들 가운데, 이야길 나누는 데일과 크리스가 보였다.
어차피 이제 불독은 없으니 애런과 에즈라를 불러와, 호텔에서 하루 이틀 더 묵으며 지친 몸을 풀고 가도 되지만 데일은 원치 않는 것 같았다.
나 역시 마찬가지고.
크리스가 감사의 표시로 우리에게 마나핵을 넘겼다.
“얘길 들었어. 가는 길에 필요할 거야.”
“중요한 에너지원인데, 우리한테 줘도 돼?”
“불독이 눈에 불을 켜고 모은 덕에 호텔에 꿍쳐 놓은 게 여러 개라, 괜찮아.”
“고마워, 크리스.”
감사의 표시로 그를 덥석 끌어안았다.
오늘 밤 네가, 내 편에 서주지 않았다면 나는 혼자 어찌해야 했을까.
겁쟁이가 되지 말라며, 조금은 무례하고 거만한 어조로 한 설득을 그는 웃으며 받아주지 않았나.
“조심해서 가, 낙원까지.”
“응.”
마지막 인사를 마치고, 호텔에서 빠져나와 주차장에서 적당한 차를 골라 달렸다. 열차 플랫폼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애런과 에즈라를 생각하면 마음이 급했다.
“휴.”
어두운 눈밭 위를 차는 미끄러지듯 달렸다.
나는 뒤를 돌아 작은 점이 되어가는 호텔을 바라보았다.
다 끝났구나.
가야 할 길은 멀고, 모르는 것투성이지만 어쨌든 오늘은 다 끝난 거야, 생각하며 운전하는 데일을 살폈다.
사이드미러를 흘깃거리는 시선이 보였다.
“하…….”
그가 답지 않게 깊은 한숨을 내쉬길래, 그도 오늘 많이 힘들어서 그런가 보다 여겼는데.
-탕!
들려온 격발음에 두 귀를 막고 뒤를 살폈다.
차 한 대가 우리를 뒤따르고 있었다.
헤드라이트 불빛에 얼굴을 드러낸 이들은 다름 아닌 스칼렛과 헨리였다.
운전하는 스칼렛 옆으로 조수석에 탄 헨리가 우리 뒤에서 총을 갈겨댔다.
‘역시 화해의 의미로 쫓아온 건 아니었군.’
나는 운전하는 데일을 대신해, 위협 사격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총구를 창문 밖으로 내밀었다.
어차피 이 거리에서 움직이는 차량을 내가 맞출 리 없다.
그러나 쏘기 전, 나는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고 데일에게 물었다.
“데일, 어떻게 해요? 쏴요?”
“…….”
그도 대답하지 못했다.
망설여지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헤드라이트 불빛에, 파랗게 질린 스칼렛의 얼굴이 언뜻언뜻 보였으니까.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건데.’
-탕탕!
그러나 상대는 진심인가 보다.
나는 쏘려고 내밀었던 고개를 안으로 들이며 외쳤다.
“밟아요!”
[돌발 퀘스트
대상: 스칼렛
내용: “남편을, 우리 가족을 지키고 싶어.”]
내게 이런 퀘스트를 줘 놓고, 내게 상대를 쏘게 하는 건 정말 예의가 아니지 않나.
나는 뒤에서 들려오는 격발음에 귀를 덮으며 눈을 질끈 감았다.
❅
“뭐 해! 멀어지잖아! 밟아, 스칼렛!”
조수석에 앉아 앞으로 총을 겨눈 채, 헨리는 악을 써댔다.
“불독이 죽었대도 상관없어. 애를 데려올 거야. 애만 넘기면 돼!”
스칼렛은 그의 말대로 조용히 액셀을 밟았다.
거리가 좁혀지자 헨리는 다시 앞차를 맞추는 데 집중했다.
“헨리.”
-탕탕!
그녀가 남편의 이름을 불렀지만 돌아온 것은 총성뿐이었다.
‘배가 아파.’
배가 옥죄듯 아파왔다.
앞으로 절로 몸이 굽자, 덩달아 발에도 힘이 들어갔다.
점점 가속이 붙은 차는 눈밭 위를 미친 듯이 질주해 앞차를 따라붙었다.
눈 바닥에 타이어가 언제 미끄러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헨리, 나 배가 아파.”
남편의 시선은 앞차에 쏠려 있었다.
캐드 대령님과 벨이 탄 차.
점점 앞차를 따라 잡아가자, 대령님과 벨의 옆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벨은 겁에 질렸는지 눈을 꼭 감고 귀를 막고 있었다.
“이 정도면 맞출 수 있겠어.”
“헨리.”
“낙원에 가자. 낙원에 데려가 줄게, 스칼렛.”
헨리는 예전부터 허풍이 심했다.
남들은 그런 그를 비웃었지만, 스칼렛 눈엔 다 보였다.
헨리의 허풍은 약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그만의 방법이었다.
첫 아이를 가지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헨리가 대령님을 초대했다.
식사하면서 그를 바라보는 남편의 눈엔 존경심이 그득했다.
“스칼렛, 나 저 사람처럼 되고 싶어. 대령님 같은 남자면 자기 아내와 아이를 지키기 위해 뭘 해야 하는지 모르겠는 일 따윈 없을 거야. 저런 사람이 되어야 나와 내 가족을 지킬 수 있어.”
데일 캐드란 남자는 스칼렛 눈에도 그리 보였다.
좋은 사람, 좋은 상관 같다.
무엇보다 자신이 사랑하는 남편이 저리 존경해 마지않는 사람이 아닌가.
그렇다면 그녀 역시 좋다.
그래도 헨리, 그렇지만 헨리.
네가 꼭 저 남자 같은 사람이 되지 않아도 나는 지금의 널 사랑해.
너는 사람을 미워하지 않고 작은 것들을 사랑하는 사람이잖아.
헨리가 팔을 잃었고 자신은 임신을 했다.
우리는 소중한 아이를 지킬 수 있을까. 이런 세상에서 아이를.
헨리는 점점 날카로워져만 갔다.
사람을 죽이는 일도 서슴없이 저질렀다.
헨리, 이런 세상이지만 우리가 우리를 잃어버리면, 아이에게 당당한 부모가 되어줄 수 없어.
그간의 일들을 떠올리며 스칼렛은 헨리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내가 원치 않는 선택을 헨리가 했다고 해서 나는 헨리를 버릴 수 있나? 아니, 그럴 수 없다.
이 사람이 날 지키려 하는 것처럼 이 사람을 지키는 게 내 일인걸.
-탕탕!
그새를 참지 못하고, 헨리가 또 총알을 갈겼다.
날아드는 총알을 피하느라 옆 차가 심하게 요동쳤다.
더불어 캐드 대령님과 벨의 표정도.
총알을 피해 쑥 내려갔던 벨이 허리를 곧추세우며 이쪽을 바라봤다.
보는 사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벨의 흑단 같은 까만 눈망울이 헨리 때문에 겁을 잔뜩 집어먹은 상태였다.
그녀와 눈이 마주쳤을 때, 스칼렛은 입을 벙끗거렸다.
‘고마웠어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벨은 미간을 찌푸렸다.
스칼렛은 마지막으로 헨리를 불렀다.
“헨리,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