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잘 지내!”
“다 가지신 형님도 잘 가십쇼!”
나도 둘을 향해 힘차게 팔을 흔들었다.
돌아서는 등 뒤로, 저 여자가 물건을 만들어내는 걸 보지 않았느냐며, 이렇게 보내도 되느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크리스와 올리버에 의해 제압되는 것 같았다.
우리는 다시 빠르게 내려가려 했다.
그러나 아래에서 점점 가까워지는 발소리가 있었다.
데일이 발소리의 주인을 확인하려 계단 아래로 얼굴을 내밀었다.
“불독이다.”
그가 내려가는 걸 멈추고 호텔 복도로 향하는 문을 열어 젖혔다.
“이쪽!”
“데일!”
“어!”
문을 열자 나온 건 3층 복도였다.
“지금 불독한테 잡히면 어떻게 돼요?”
“둘 다 죽어!”
“아닛!”
어떻게 남주 후보 입에서 악당한테 죽는다는 말이 그렇게 쉽게 나와요!
남주 후보의 간지는!
남주 후보란 누구를 죽인다는 말은 입에 담아도 누구한테 쉽게 죽임을 당할 거란 말은 안 하는 존재라고요!
“역시 그쪽은 진남주가 아닌가 봐!”
“뭐라는 거야, 시끄러워!”
앞을 보고 달리느라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눌 수도 없었지만, 뒤에서는 불독이 빠르게 우릴 따라붙었다.
내가 느린 탓이었다.
결국 우리가 멈춰 선 곳은 엘리베이터 앞이었다.
궁지에 몰린 우릴 따라 멈춰서는 불독을 배경으로 떠 있던 시스템 창이 눈에 들어왔다.
[미확인 알림 1개.]
‘확인해.’
[돌발 퀘스트 2개 이상 클리어 조건을 만족하였습니다.
첫 번째 메인 퀘스트 보류권이 지급됩니다.]
[첫 번째 메인 퀘스트가 보류됩니다. 두 번째 메인 퀘스트가 오픈됩니다.]
[두 번째 메인 퀘스트: 최후의 낙원으로 향하는 험난한 여정을 위해 새로운 일행을 합류시키셨나요? 잘하셨습니다. 하지만 합류시켰다면 지켜내야 하는 책임도 따르는 법, 동료를 지켜내세요. (0/1)]
동료를 지켜내라고? 저 엄청 강해 보이는 불독한테서?
야, 지킬 무기나 주고 말해!
이 시스템 새끼가 자기가 하는 거 아니라고 말 쉽게 하네.
“데일, 불독이 등에 멘 저 무기로 보건대.”
우리를 막아선 불독은 등에 손잡이가 긴 거대 해머를 메고 있었다.
해머를 등에서 꺼낸 불독이 해머 손잡이를 단단히 고쳐 쥐었다.
마치 떡방아를 찧기 전의 준비 자세 같았다.
자칫하다간 우리가 떡이 되어 오늘 밤 세상을 떠날 확률이 몹시 커 보였다.
“무기 특화 각성자다. 무기가 뭔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매우 잘.”
“저 해머에 넌 한 대도 못 버텨. 내가 놈의 시선을 끌 동안 도망가.”
“혼자 도망가라구요? 나도 총 있어요!”
-탕!
나는 다급하게 대화를 나누는 우리를 여유로운 미소로 보고 있던 불독을 향해 총알을 발사했다.
그가 방심하고 있다고 여겼기 때문에 날린 회심의 한 방이었다.
무기 특화 각성자가 뭐? 저놈도 사람이잖아, 사람은 총 맞으면 간다.
라고 생각했는데…….
-팅!
입이 벌어졌다.
불독이 가볍게 해머를 휘둘러 총알을 튕겨냈기 때문이었다.
‘사람 아니구나!’
“흐하하하, 뭔가 했더니.”
가소롭다는 웃음과 함께 놈이 입을 열었다.
“벨 양, 뭐 대단한 준비를 해오나 했더니 고작 이거야? 자경단을 끌어들이면 될 줄 알았어?”
“…….”
확실히 크리스가 이끄는 자경단이 불독 패거리는 소탕할 수 있어도 불독을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일반인이 물리 계열 헌터의 상대가 될 수 있을 리가.
지금은 능력 좋은 일반인에 불과한 데일도 마찬가지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그냥 여자랑 애를 넘기고 둘은 살아 돌아가는 게 어때.”
“정말 안 늦었어?”
나는 데일의 얼굴을 쳐다봤다.
이 남자가 저 괴물을 상대로 얼마나 시간을 벌 수 있을까.
“야, 나는 어때.”
그러자 불독과 데일, 둘이 동시에 잘못 들었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남자보다 네가 더 세 보이는데. 난 강한 사람이 좋더라. 에즈라 말고 나는 어때? 에즈라는 약혼자도 있던 몸인데.”
“흐하하핫.”
“돌았구나, 통조림. 너 유통기한이 지났던가?”
내가 일부러 대화를 끌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데일이 말을 거들었다.
한참이나 해머를 지팡이처럼 붙들고 웃어대던 불독이 눈물을 훔치며 답을 내놨다.
“이거 안타까워서 어쩌지. 너도 얼굴은 마음에 드는데 나는 더 작고 앙증맞은 타입을 좋아해서.”
“X새끼가 감히 날 거절해? 죽어! 뒤져, 그냥!”
나는 말과 동시에 옆으로 뛰어들어 박스석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젖혔다.
-탕탕, 타다탕, 탕탕탕탕!
내가 잠시 시간을 끄는 사이 우릴 따라 계단을 내려온 크리스와 자경단원들이 불독의 등으로 총알 수십 발을 쏟아부었다.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불독과 함께 벌집이 되어 하직했으리라.
온통 붉은 벨벳으로 장식된 박스석 안에서 잠시 숨을 돌렸다.
“데일, 괴물이라도 저 상황에선…….”
-쾅!
사는구나, 괴물은 괜히 괴물이 아니구나. 응.
문장을 다 끝맺지도 못 했는데 박스석의 문이 두 쪽이 나 갈라졌다.
“XX. 지겨운 새끼, 진짜.”
데일도 동의했는지 욕을 내뱉으며 날 안아 들었다.
“꽉 잡아라.”
목을 조르듯 끌어안자, 그가 나를 안고 날랐다.
정말 나는 듯이 뛰어 박스석과 박스석 사이를 뛰어넘었다.
‘확실히 데일도 사람은 아닌데.’
더 무서운 새끼 앞에서는 무용지물이구나.
박스석 사이를 뛰어넘을 때마다 아래로 아찔한 3층 높이가 보였다.
“데일 저기요! 저놈한테 가야 해요!”
“누구?”
죽을 위협에 처하면 초인적인 능력이 발휘된다더니.
내 시력이 이렇게 좋았던가?
데일에게 냄비와 쪽지를 전달해 주기로 했던 그놈이 1층에 있었다.
뛰고 뛰어 다시 계단으로 진입해 그대로 아래로 향했다.
데일이 나를 안았음에도 불독이 우릴 따라잡지 못하는 걸 보면 놈은 파워형인가?
-쾅!
그러나 그가 가진 게 비단 파워만은 아니었나 보다.
1층에 도착하자마자 우릴 따라잡은 그가 해머를 내려쳤다.
피하느라 데일에게서 구르듯 떨어져나온 나는 곧장 도둑놈을 향해 내달렸다.
“야! 이 도둑놈 새끼야, 내 물건 내놔!”
“뭐? 난 아무것도 안 훔…….”
-탕탕탕!
냅다 놈이 서 있는 곳으로 총을 갈겼다.
지금은 너와 훔쳤니? 안 훔쳤니? 오 그랬구나, 사이 좋게 대화로 풀어나갈 상황이 아니다, 이 말이야.
발뺌도 상황을 봐 가면서 해야지, 이 도둑놈 새끼가.
“내놔, XX!”
물건을 되찾자마자 데일이 있는 쪽으로 돌아섰다.
달려서 피하고, 굴러서 피하고, 다리를 찢어서 피하고.
능력이 사라진 상태라 반격은 못 해도 데일은 용케 잘 피하고 있었다.
“데일, 받아요!”
“뭔데 지금 받아! 지금 아무것도 못 받아!!”
“배신당해서 슬픔에 찬 동료에게 보내는 내 응원과 사랑이에요!!”
“농담도 정도껏…….”
-콰직!
“해!!”
빨간 자선냄비가 데일을 향해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졌다.
‘받았다!’
남자가 냄비를 손에 쥐었다.
냄비를 손에 쥔 데일은 달리며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뭔가 뜬 건가?’
내 앞에도 시스템 창이 떴다.
[아이템 ‘자선냄비(크기: 소형)’]
[포인트를 자선냄비에 넣어 대상에게 기부해 보세요.]
‘기부, 기부, 기부, 기부!’
그러자 생명력 게이지의 일부가 소모되었다.
데일이 든 자선냄비가 붉게 빛났다.
허공을 보며 달리던 그가 나를 향해 의미심장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대상이 기부를 받았습니다. 기부 대상의 능력치를 일정 시간, 일부분 활성화합니다.]
[기부 대상: 데일 캐드
활성화 정도: 20%
지속 시간: 00:03:00]
‘활성화된 능력치의 세기는 20퍼센트에 고작 3분?’
데일을 향해 소릴 질렀다.
“데일! 3분이요, 3분! 3분 안에 끝내야 해요!! 그리고 당신 능력 다 열린 거 아냐! 20퍼센트야!!”
달리던 데일이 한 손으로 땅을 짚고선 미끄러지듯 불독을 향해 돌아섰다.
멈춘 대상을 박살 낼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불독이 크게 도약하며 해머를 머리 위로 들어 올렸을 때였다.
“중력 조작.”
데일이 작게 중얼거렸다.
마치 공중에서 시간이 멈춘 듯, 불독이 그 자리에 떠 있길 잠시.
-쾅! 콰직, 콰지직.
바닥에 내리꽂히듯 떨어진 불독은 데일 앞에서 이마를 땅에 처박았다.
그 모양이 꼭 절을 올리는 사람 같았다.
“으, 으악!”
“아악, 뭐야!”
‘어?’
고꾸라지는 건 불독 하나로 끝날 줄 알았는데?
사람들이 절하듯 바닥에 고꾸라지는 현상이 무대 중앙을 기점으로 외곽으로 퍼져 나갔다.
-쾅, 쾅, 쾅, 쾅!
‘20퍼센트 활성화된 건데 이 정도라고?’
눈앞에 서 있던 사람들이 절하듯 엎드려 하나둘 시야에서 치워지던 순간.
무릎이 절로 굽어들며 가슴이 조여들었다.
“허억.”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감에 숨이 막혔다.
목 끝까지 차오른 갑갑함에 크게 들숨을 들이켜보는데, 거짓말처럼 몸을 짓누르던 무게감이 사라지며 몸이 붕 떠올랐다.
공중에 떠서 주위를 바라보자 모두가 바닥에 납작 붙은 상태로 데일만이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숨 쉬어진다.’
폐 안 가득 숨을 불어넣자 드디어 살 것 같았다.
내게 걸어오는 데일 주위로, 하나둘 일어나는 사람들이 보였다. 잔뜩 충혈된 눈으로 이쪽을 노려보는 불독을 제외하고서.
“나한테 사용하라고 능력을 열어준 줄 알아요??”
기가 찬 얼굴로 화를 내자, 그가 짓궂은 얼굴로 내게 손을 뻗었다.
“오랜만에 사용하려니까 조절이 잘 안 됐어. 내려와.”
“아, 어떻게 내려가요! 내려줘야 내려가지!”
허공에서 팔다리를 흔들었다.
이 자식, 재밌지 아주?
그도 그럴 게 데일은, 공중에 날 띄워놓은 채로 아주 멀찍이서 손만 찍 내민 상태였다.
“응? 내 손 여기 있잖아, 뭐 해.”
적어도 팔꿈치는 펴고서 말을 해야 하지 않냐.
“…….”
“잡아야 내려주지.”
이러라고 내가 자선냄비에 포인트 기부한 줄 알아?
“이럴 거면 회수해! 기부 취소!”
허공에서 그의 이마를 향해 발길질 했지만 운동화에 차이는 건 공기뿐이었다.
제 이마로 분 바람에 머리카락이 휘날리자 데일이 큭큭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