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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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수들이 머문다고 알려진 호수 건너편에 실은 아무도 살지 않는다는 사실을 데일은 호텔에 온 첫날에 알았다.
호텔 인력이 주변을 다 들쑤시고 다녔는데 낙원에 필요한 물건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은, 죄수들의 거주지라 손대지 못한 장소에 물건이 있기 때문일 확률이 높았다.
그러나 무장한 죄수들이 반길 것으로 예상하고 접근한 죄수 거주지엔 아무도 없었다.
현재는 아니라도 예전엔 있었는지 죄수들이 머물렀던 흔적은 남아 있었지만.
그 사실이 아무래도 걸렸던 데일은 호텔에서의 셋째 날, 헨리와 함께 좀 먼 곳으로 수색을 다녀오겠다는 핑계를 대고 호텔 건너편을 다시 찾았다. 그리고 목격한 것은 마나 송신기를 비롯한 통신설비와 불독, 그의 부하 몇 명이었다.
“이왕이면 애를 살려서 넘기는 게 보상이 커지겠지? 대장, 안 그래요?”
“상관없어, 산 채로 넘기든 시체로 넘기든.”
“그래도요. 산 채로 넘기면 낙원행 티켓에 추가 정착금 같은 걸 요구할 수 있지 않을까요? 찾아야 살리든 죽이든 하겠지만.”
“곧 나오겠지. 교도소장이 데리고 가다가 이 근처에서 잃어버렸다면 멀리 가지 못했을 게 뻔한데. 애가 가봤자 얼마나 멀어졌겠어.”
‘가짜 정보였군.’
물건은 애런의 홀로그램 박스가 아닌, 홀로그램 박스를 가지고 있는 아이, 애런이었던 것이다.
놈들과 거리를 벌린 후, 데일은 급하게 몸을 돌려 헨리에게 말했다.
“호텔로 돌아가자마자 짐 챙겨서 스칼렛이랑 나와. 바로 호텔을 뜬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헨리의 의문이 가득한 목소리였다.
“어떻게든 송신기를 챙겨가야 합니다. 송신기가 없으면 낙원 측과 연락할 수 없지 않습니까.”
제 부하의 의도를 의심하며, 데일은 딱딱하게 말했다.
“송신기는 가져가지 않아. 우리는 그쪽과 연락하지 않을 거니까. 애를 넘기는 일 따윈 없어. 알아들었냐, 헨리?”
“…….”
“저걸 가져가서 다르게 이용해 보려는 생각이면 됐어. 오히려 피해만 커질 거다.”
“대령님.”
충분히 얘길 해줬는데?
헨리의 표정이 점점 당혹스러움으로 물들었다.
“낙원에 가야 합니다. 스칼렛에게 여기서 아이를 낳으라고 할 순 없어요. 저는 낙원에 가야 합니다, 대령님……. 애런이란 아이, 안 지 얼마 안 된, 잘 모르는 아이에 불과합니다. 안 그렇습니까?”
“항명이냐?”
데일은 여러 말을 하지 않았다.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스칼렛도 임신한 상태고.
그래서 헨리의 판단력이 흐려진 거다, 그리 믿고 싶었다.
그러니 곧 정신을 차릴 것이다. 죄송합니다. 제가 멍청한 생각을 했습니다, 곧 사과하고 자신을 따를 것이라 생각했는데.
“항명이냐 묻지 않았나, 헨리.”
그러나 반복해서 질문해도 상대에게선 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퍽.
데일이 참다못해 주먹을 날렸다.
‘정신 차려라, 헨리. 이래선 안 돼.’
-퍽퍽퍽.
헨리는 피할 생각도 없어 보였다.
날아드는 데일의 주먹을 눈 쌓인 길바닥에 누워서, 그는 그대로 감내하고 있었다.
“헨리.”
“대령님. 또 저흴 버리시는 겁니까.”
“…….”
“퉤.”
힘겹게 상체를 일으킨 헨리의 얼굴은, 제 상관의 자비 없는 주먹질로 엉망진창이었다.
헨리가 입속에 고인 피를 뱉어냈다.
“저는 어떻게든…… 낙원에 가고 싶습니다.”
“…….”
“항명하겠습니다.”
말을 내뱉은 헨리가 비척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데일은 일어서서, 말없이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총알을 장전했다.
장전한 총을 상대의 이마 높이로 들어 올렸을 때 데일이 마주친 것은, 막 부임했을 때 저를 바라보던 앳된 헨리의 두 눈이었다.
“데일 캐드 대령님이십니까?”
“대령님은 웃으실 때 태양 같습니다.”
“대령님은 왜 군인이 되셨습니까? 저도 대령님 같은 군인이 되고 싶습니다.”
제 이마에 겨눠진 총구를 보며 헨리가 입을 열었다.
“이제 알겠습니다. 저한텐 무립니다. 저는 대령님 같은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래서 당신을 그리도 존경했나 봅니다.”
데일이 헨리를 향해 읊조렸다.
“항명은 즉결처분이다.”
“알고 있습니다.”
그리 대답한 헨리가 주저 없이 몸을 돌렸다.
비틀비틀 걷는 걸음에, 빈 왼팔의 옷자락이 몸을 따라 흔들렸다.
“…….”
불독 일행이 있는 곳으로 걸어가는 제 부하를 보며, 데일은 결국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
그가 곧 저들을 이리로 불러올 것이다.
능력이 사라진 지금의 저로서는 저들을 상대로 도망치기도 버거울 텐데.
그러니까 어서 이동해야 하는데.
“멍청한 놈.”
어쩐지 데일은 온몸의 힘이 다 빠져나가 버린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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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를, 아직 후보지만 어쨌든.
‘소설 속으로 들어간 사람이, 엑스트라면 모를까 남주를 죽게 내버려 두는 장면을 난 읽은 적이 없다.’
그러니까 데일을 포기하고 호텔을 떠나면, 나는 소설 속 빙의자와 이동자 중, 남주 후보를 죽게 내버려 둔 최초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겁나 쪽팔리지.’
길잡이 없이 최후의 낙원까지 갈 자신도 없고.
그리하여 칠흑같이 깜깜한 밤.
나는 무기 보부상처럼 무기 보따리를 등에 이고 어둠 속을 걷고 있었다.
왜 낙원 놈들이 애런을 원하는 건지는 알 수 없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는 건 나중으로 미루자. 지금은 등이 무거우니까.
밤엔 작은 소리도 더 크게 들리는 법. 시동 소리도 밤에 들으면 더 잘 들린다.
그래서 차는 멀리 주차하고 내가 이 고생 중이었다.
‘보인다.’
쌓아놓은 바리케이드 너머로 호텔 주변을 경비 중인 이들이 보였다.
경비는 자경단과 용병이 뒤섞여 있다.
‘말이 통할 만한 인물이…….’
면면을 살피다 보니 제일 적합한 인물이 눈에 들어왔다. 호텔 첫날, 방을 안내해 줬던 인물이었다.
자긴 호텔이 아니라 자경단 소속이라며 대놓고 제 호불호를 밝혔던 그놈.
주변에서 막대기 하나를 집어 들어, 경비가 없는 방향으로 인기척을 냈다.
“??”
어리바리한 표정으로 주위를 살피던 남자의 시선이 막대기 끝에 닿았다.
시선이 바리케이드 빈틈으로 사라지는 막대기를 따라왔고.
“???”
곧 그가 마주한 것은 바리케이드 너머로 웃는 내 얼굴이었다.
‘쉿.’
말이 잘 통한다. 내 손짓에 주변을 살핀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쪽으로 좀.’
이곳은 다른 이들과 가까워서 목소리를 내기엔 부적합하다.
내 제스처를 이해한 남자가 입을 열었다.
“뒤에서 소변 좀 보고 올게.”
“냄새나. 귀찮아도 들어가서 화장실에서 싸고 와.”
“걱정하지 마라, 멀리 가서 싸고 올 테니까.”
다른 경비와 얘길 끝낸 남자가 내게 손짓했다.
‘가시죠.’
조금은 벌어진 거리에 안심하며 내가 꺼낸 첫말은 이거였다.
“선택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지만 결국에 선택했습니다.”
“지금 불독이 그쪽 형을 잡아두고 있는 거 압니까?”
“저는 자경단을 선택하겠습니다. 같이 불독을 무찌르시죠. 용병들 몰래 크리스를 만나게 해주세요.”
그러자 내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그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었다.
“따라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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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입구는 하나인 줄 알았는데.
발소리를 죽여 호텔 뒤로 돌자, 판자로 가려놓은 문이 나왔다.
계속 오라고 손짓하는 남자를 따라 호텔 안으로 들어서자, 1층은 텅 비어 있었다.
“불독 패거리는 다 위층에 몰려 있어요.”
덕분에 크리스의 방까지 편하게 왔다.
“벨!”
늦은 밤이라 그런지 크리스의 볼륨감 넘치는 앞머리는 아침에 봤을 때보다 숨이 죽어 있었다.
그가 걱정했다는 얼굴로 나를 맞았다.
머리 위에는 여전히 돌발 퀘스트를 띄운 채로.
[돌발 퀘스트
대상: 크리스
내용: “사라지고 싶다.”]
나는 거두절미하고 본론부터 꺼냈다.
“상황은 알 거야. 형을 구할 수 있게 도와줘, 크리스.”
“…….”
나를 보는 크리스의 브론즈색 눈동자가 잘게 흔들렸다.
가로로 다물린 입은 그 어떤 대답도 내놓지 못한 채 묵묵부답이었다.
“아니면, 형을 돌려받는 대신 에즈라를 밀어 넣길 바라는 거야? 나랑 내 형은 그렇다 쳐도 에즈라는 꽤 오래 함께 생활하지 않았어?”
크리스는 무척이나 곤란한 표정이었다.
쥐구멍이 있다면 당장에라도 숨어들고 말 것 같은.
“벨, 나는…….”
그래, 이런 비난조의 말은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다.
내가 흥분해서 뱉어버린 비난의 말을 삼키고 있자, 크리스의 뒤로, 방 안의 다른 인물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내뱉기 시작했다.
“크리스, 뭘 망설이는 거야. 저쪽은 수적으로 열세라고! 우리가 늘 고민해 왔던 문제잖아.”
“쪽수가 더 많으면 다 돼? 무기고는 저쪽이 쥐고 있는데? 그리고…… 이런 말 하기 뭣하지만 불독 놈들 때문에 우리도 편하게 살고 있잖아. 받는 게 있으면 내어주는 것도 있는 거지.”
“넌 이게 편해? 입에 물고기만 넣어주면 다야?”
“그래! 넣어주면 다지! 불독 놈들이 죄수들을 막아주지 않으면 생선이라고 편히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크리스, 네가 결정해.”
“그래, 네가 자경단의 대장이니까.”
원래는 크리스 퀘스트를 할 생각이 없었다.
불독 퀘스트를 우선해서 깰 예정이기도 했고, 퀘를 클리어하기 위해서 옅게 짐작 가는 바는 있었지만, 정확히 뭘 해야 하는지 뚜렷이 감이 안 왔다.
하지만 에즈라 퀘스트를 클리어하고 난 후인 지금은 알 것 같다.
크리스 퀘를 깨는 방법을.
“크리스.”
“…….”
“너 다친 다리, 다 나았잖아. 언제까지 절뚝거릴 셈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