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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물에서는 남주를 줍지 마세요 (55)화 (55/108)

55화

-탕.

복제된 총알이 넘치게 많다 싶었는데, 에즈라의 총 쏘는 꼬락서니를 보면 딱히 많은 것 같지도 않았다.

‘어쩜 저렇게 못 쏠까.’

이 총알을 다 쓰고 나면 쟤가 나아져 있을까?

장담할 수 없었다.

나를 따라 벤치 옆자리에 앉은 애런도 고개를 저었다.

“벨이 엄청 잘하는 편이었구나.”

“그러게. 나도 지금 알았네.”

“저기…… 들려.”

“들으라고 한 얘기야, 누나.”

“…….”

애런의 퉁명스러운 어조에 에즈라는 아무 반박도 못 하고 다시 과녁으로 시선을 돌렸다.

돌발 퀘스트 클리어 직후, 나는 에즈라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애런한테 사과해. 나는 이해할 수 있어도 애는 아냐.”

그러자 에즈라는 사실 자기도 그러고 싶었다며, 어린아이를 상대로 할 소리는 아니었는데 자기가 정말 잘못했다며 사과의 말을 전했다.

눈꼬리에 눈물까지 찔끔 찍어가면서.

상대가 석고대죄를 해도 용서 안 할 것처럼 굴던 애런은, 에즈라가 눈물을 보이자 그녀를 용서해 주었다.

어린아이의 사고로는 눈물 연기일 수도 있단 생각은 전혀 못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용서를 하고 난 후에도 여전히 에즈라가 탐탁지 않은지, 애런은 저렇게 틱틱거렸다.

“너 오늘 안으로 맞추냐?”

“…….”

“저녁까지 돌아오랬으니까 아직 시간 있거든? 인간적으로 진짜 한 발은 맞추고 가자.”

“흐아…… 좀 쉬자.”

낮게 한숨을 내쉰 에즈라가 다가와 벤치 빈자리에 앉았다.

가운데 앉아 있던 애런이 엉덩이를 비벼 내 옆으로 더 찰싹 달라붙는 것은 덤이었다.

“약혼자가 떠났다며. 나 물어봐도 돼?”

“누구한테 들었어.”

“스칼렛.”

“그 언니 그렇게 안 봤는데 입이 가볍네.”

“…….”

입술을 몇 번 적시고서 에즈라는 말문을 열었다.

“뭐가 얼마나 궁금한데.”

나는 내내 궁금했던 것을 주저 없이 물어봤다.

“어떻게 비행선에 탈 생각을 한 거야?”

“스칼렛한테 어디까지 들었는지 모르겠네. 내가 여객열차의 기관사였다는 것까진 안다는 거지?”

그녀가 이야길 풀어놨다.

에즈라의 연인은 조종사였다.

직업은 달랐지만 둘 다 제국 소속이라 우연히 마주치곤 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우연한 만남은 정기적인 만남으로 바뀌어 갔다.

에즈라의 연인인 제스퍼가, 비행기의 항로가 이쪽일 때면 빠지지 않고 이곳, 종착역을 들렀기 때문이었다.

둘은 그렇게 연인이 되었다.

2년간의 행복한 연애는 둘 모두가 결혼이라는 단꿈을 꾸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리고 약혼 후 이 사태가 벌어졌다.

‘제국은 빙하기가 올 것을 먼저 알고 생존할 수 있는 거처를 준비했다더라.’, ‘날씨가 추워진 것은 이 대륙뿐이지, 바다 건너 사막 건너에 있는 신비로운 동방의 국가는 평화롭다더라.’ 등 출처를 알 수 없는 소문들이 사람들 사이에 퍼졌다.

사람들은 저마다 믿고 싶은 소문을 붙들고서 길을 떠났고 둘은 호텔에 남았다.

그리고 어느 날, 호텔에 비행선이 내려왔다.

“에즈라, 저 비행선 내가 아는 모델이야. 만들어진 지 얼마 안 됐는데, 중요한 건 성능이 월등하지만 조종사의 실력에 따라 크게 운행의 질이 달라지는 모델이라는 거야. 그래서 각 비행선마다 배정된 소수의 조종사가 있는데 내가 아는 사람일 가능성이 있어.”

제스퍼의 말에 따르면, 비행선 내부로 들어가는 것 또한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라 했다.

뒤쪽에 엔지니어들이 이용하는 입구가 따로 있는데 그쪽은 아는 사람도 몇 없어 경비도 허술할 거라고.

그래서 둘은 비행선이 이륙하는 날, 몰래 탑승할 계획을 짰다.

“에즈라, 내가 경비들의 이목을 끌 테니 먼저 가 있어.”

그러나 먼저 가 있으라던 장소엔 경비들이 있었다.

그날 경비들에게 붙잡힌 상태로 에즈라는 보고 말았다.

몰래 비행선에 탑승하는 자신의 약혼자를.

어둠 속에서, 멀리서 본 뒷모습이었지만 에즈라는 알아볼 수 있었다.

그가 늘 입고 다니던 조종사 제복 차림을 그녀가 몰라볼 리가.

“그런 일이 있었고, 오늘에 이른 거야.”

“그랬구나.”

안타까운 사연에 나는 괜히 에즈라의 한쪽 어깨를 꾹 눌렀다 뗐다.

그녀가 적응 안 된다는 눈빛으로 날 쏘아봤다.

헤헤, 왜. 이제 화해도 했는데.

“그럼 다들 그 비행선을 떠올리면서, 불독에게 잘 보이면 낙원에 데려가 줄 거라 생각하는 건가.”

“몇몇은 그렇게 생각하더라.”

“넌?”

“그런 일이 일어나겠니.”

지금 내 가방 속엔 낙원측 사람들이 찾는 홀로그램 박스가 들어 있다.

그러니 직접 연락해도 되는데, 문제는 송신기가 불독의 방에 있을 거란 사실이었다.

“너…… 불독 방에 들어가 본 적 있어?”

민감한 문제다. 나는 질문할 때 조금 조심스러웠다.

“거의 문턱까지 끌려갔던 적은 있지.”

“그럼 나랑 같이 들어가 보자, 라고 말하면 나 죽이고 싶을까?”

“꼭 그런 말 안 해도 넌 이미 그런 구석이 있어.”

그런 구석이면 죽이고 싶은 구석이란 뜻인가.

“거길 왜 들어가려고 하는데.”

“어, 왜냐하면.”

나는 결의에 찬 표정으로 답하려 했다.

갑자기 무전기에서 들려온 데일의 목소리에 답을 못 하고 말았지만.

-치직, 통조림.

“에즈라, 잠깐만.”

나를 따라 일어나려고 하는 애런을 다독이며 무전기를 들고 벤치에서 멀어졌다.

그사이에도 무전기의 목소리는 계속 나를 찾고 있었다.

-받아, 통조림. 급해. 5, 4, 3, 2…….

“카운트 끝나고 받으면 어떻게 돼요?”

성질도 급하지, 숫자부터 세는 데일에게 느긋하게 대답했는데.

-호텔로 돌아오지 마, 떠나.

“뭐라고요?”

놀랄 겨를도 없이 남자가 다급하게 말을 이어갔다.

-놈들 목적 애런이야. 살려서 넘겨도 되고 죽여서 넘겨도 되고. 자식 잃어버린 부모가 아이 찾는 눈시울 뜨거워지는 그런 상황 절대 아니니까…….

그렇다면 데일의 말대로 떠나야 했다.

낙원행 티켓을 정말 준다 해도 애를 넘겨서 받아낼 생각 따윈 없으니, 마나 송신기로 직접 연락을 하고 나발이고 다 필요 없고 떠나야지.

그것까진 바로 이해가 됐는데 데일의 말이 어딘가 이상했다.

“알겠어요, 오늘 당장 떠나죠.”

왜 떠나자가 아니라 떠나, 라고 말하는 거지?

-…….

“차에서 기다릴게요. 필요한 물건은 차에 대부분 있으니까 그 뭐냐, 분말 우유랑 새 칫솔, 초콜릿만 챙겨서 나와요.”

-통조림, 여기까지다.

“…….”

-분말 우유는 못 가져가. 내가 낙원 위치 얘기했던 거 기억하지?

이게 무슨 소리지?

“이번 농담은 정말 재미없는데. 그쪽이 지금 나랑 애런 버린다는 소리로 들려요. 적당히 해요 재미없으니까.

-통조림.

화난 나를 달래는듯한 데일의 목소리가 들렸고.

-치지지직, 치직.

잡음이 이어지더니.

-벨 양.

무전기 너머의 상대가 소름 끼치는 목소리로 바뀌어 있었다.

-용병으로 일해도 아주 손색없을 것 같던 이가 말이야, 연약한 여성분일 줄은 정말 몰랐어.

불독의 목소리 뒤로 데일의 목소리가 배경음처럼 작게 들렸다.

멍청한 선택하지 말라는.

-애도, 에즈라도 함께 있지? 데리고 와. 남자랑 교환해야지, 응? 여자랑 애보다는 이 남자가 훨씬 쓸모 있을 텐데.

“…….”

-오늘 안으로 오지 않으면 멀쩡한 상태로 교환하는 건 어려울 거야.

데일이 자꾸 뭐라고 하는 모양이다.

한마디 하고 처맞고 한마디 하고 처맞고.

그래서 그런가.

온전한 문장으로 연결이 안 돼서 그의 말이 무슨 내용인지 이해가 안 됐다.

‘우리 남주 후보님 가오 무슨 일이야.’

어쨌거나 이거 지금, 진짠가 보네?

“후…….”

너무 아무 일 없이 조용히 흘러간다 싶었다. 이 망할 놈의 세계.

“자기가 내 보호자랄 땐 언제고 왜 처맞고 있냐고.”

하…… 참, 어이가 없어서 웃음도 안 나왔다.

무전기를 다시 입에 댔다.

“가요. 내가 그 남자 보호자거든. 보호자가 가야지.”

-킥킥킥, 보호자란다.

킥킥거리는 웃음소리가 높아지더니.

-좋아, 기다리지.

그것을 끝으로 무전이 끊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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