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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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들른 곳은 우리 차를 숨겨놓은 장소였다.
필요한 물건을 챙겨 돌아오자, 차에 묶인 채 에즈라는 반쯤 포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묶어놓으려고 나 끌고 왔니?”
“써먹으려고 끌고 왔는데 신뢰는 안 해서.”
“…….”
“다시 이동할 건데, 네가 잘 아는 장소로 갈 거니까 길 안내해 줘.”
묶였던 손목을 돌리며 그녀가 날 쳐다보았다.
“여기 기차역 있잖아. 거기로 안내해 줘.”
“뭐?”
“너 세상 망하기 전엔 기관사였다며. 가는 길을 벌써 까먹은 건 아니겠지.”
체념한 그녀에게선 거기 가서 뭐 하려고 같은 질문은 나오지 않았다.
에즈라는 흐린 눈으로 조용히 입술을 뗄 뿐이었다.
“직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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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신나 하며 기차역 로비로 이어지는 돌계단을 먼저 뛰어올랐다.
계단 아래서 기차역을 올려다봤다.
이 세계에선 나름대로 신축 건물인 모양인데, 내 시선으로 보기엔 고풍스러운 맛이 있다.
옆에 선 에즈라는 잔뜩 추억에 잠긴 옆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다지 좋은 추억은 아닌가.’
표정으로 유추하건대, 살짝살짝 찌푸려지는 걸 보면 그리 아름다운 추억은 아닌가 보다.
직장이라는 것이 대부분 그렇지 뭐.
애런이 로비로 들어가는 입구 앞에서 손을 흔들었다.
“기차역 멋있다.”
“…….”
“너 말고 기차역이 멋있다는데 그렇게 인상 쓸 일인가.”
보면 볼수록 에즈라, 얘는 포메라니안 견종을 닮았다.
몹시 나쁜 견주를 만나서 며칠 못 씻고 며칠 빗질도 못 해 꼬질꼬질 털이 잔뜩 엉킨 포메랄까.
“왜 온 거야.”
“이유를 이제야 묻네. 어차피 다 왔는데 들어가서 얘기하자.
“…….”
앞장서 계단을 오르자 등 뒤에서 꼬질한 포메가 앙 하고 짓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멋스러운 로비를 지나 플랫폼으로 들어서자 마주한 광경은, 인상파 화가의 그림에서 봤던 기차역을 떠올리게 했다.
강하게 내리쬐는 햇볕이 유리천장을 통과하면서 조금 애를 먹었는지, 플랫폼 안은 뭉그러진 햇살로 가득했다.
“…….”
원래도 말이 없었지만 플랫폼에 들어선 이후로 핑크 포메는 한층 더 입을 다문 상태였다.
“야.”
“…….”
“무슨 생각 하는데.”
에즈라가 바라보는 플랫폼 입구엔 기관차가 멈춰 있었다.
‘귀족용인가.’
칙칙한 까만 기관차를 예상했는데 서 있는 기관차는 파란색과 금색을 두른 화려한 열차였다.
“아무 생각도 안 해. 그냥…….”
“…….”
“소리가 들려. 저 멀리서 철로를 타고 기차가 달려오는 소리가.”
나는 에즈라가 바라보는 쪽을 함께 보다가, 그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탐색해.’
그러자 핑크 포메의 머리 위로 돌발 퀘스트 창이 아닌 다른 창이 떴다.
[불우이웃을 발견하였습니다.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불우이웃에게 희망의 종소리를 울려주세요.
탐색된 불우이웃: 에즈라]
‘이럴 줄 알았다.’
얘한테 내가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을 줄 알았다고.
‘나 생각보다 마음이 넓구나?’
나랑 애런한테 그런 소리를 지껄였는데 말이야, 이 정도면 호구라 불려도 반박할 여지가 없겠는데.
내가 내 선함에 도취해 있을 때 에즈라가 뒤를 돌았다.
“그래서 여긴 왜 온 건데.”
“어? 아…… 이러려고. 애런, 이리 와.”
이것저것 구경하다 호다닥 달려온 아이의 귀에 나는 미리 만들어 온 귀마개를 끼웠다.
그러곤 유리문이 투명한 대합실 쪽을 가리켰다.
“저기 가서 잠깐 놀고 있을래?”
“응.”
유리문이 천천히 닫히는 것을 보고 있다가 주머니에서 문제의 물건을 꺼내 들자.
“……너.”
예상대로 핑크 포메는 놀란 모양이었다.
그럴 만했다.
내가 갑자기 꺼내 든 것은 다름 아닌 권총과 탄창이었으니까.
아이에게 미리 귀마개를 끼워 멀리 보낸 것까지, 그녀는 완벽히 자신을 사살할 계획의 일부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거기까진 모든 것들이 예상대로 흘러갔다.
“너 완전 또라이구나? 내가 좀 심하게 말했다고 날 죽이려는 거야?”
“뭐…… 갑자기 총을 꺼내 들면 누구나 너 같은 상상을 할 거야.”
핑크 포메의 상상이 도를 넘기 전에 어서 그녀에게 권총과 탄창을 건네려 했다.
그러나 나는 건네려던 물건을 전하지 못하고 그만 멈춰 버렸다.
내 앞에 선 에즈라가 너무 편안히 눈을 감아버렸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이제 내 편은 없어.”
“…….”
“총살로 편하게 가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갑작스럽긴 하지만.”
얘 속이 많이 곯았네.
나는 한 걸음 더 다가섰다.
허벅지 옆에 둔 에즈라의 주먹이 오들오들 떨리고 있었다.
“??”
떨리는 손을 잡아당겨, 손바닥에 탄창과 권총을 올려놓자 그녀가 천천히 눈을 떴다.
“나 살인마 아냐, 널 왜 죽여.”
“…….”
“네가 원했던 거잖아, 근데 너 총 쏴본 적은 있어?”
에즈라는 그때까지도 내가 하는 말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다시 그녀에게서 탄창과 총을 가져왔다.
“봐봐.”
“…….”
“지금은 실탄을 미리 빼놓은 상태거든? 바로 장전된 총으로 하면 위험하니까 일단 빈 총으로 자세부터 잡아보자.”
에즈라의 홀린 듯 멍한 표정을 무시하고 나는 계속 설명을 이어나갔다.
설명을 듣다 보면 알아서 정신이 돌아와 있겠지.
“권총을 손으로 잡는 방법을 파지법이라고 하는데, 제대로 된 파지가 무엇보다 중요해.”
파지법 시범을 보인 후 그녀의 손아귀에 권총을 넘겼다.
멍한 표정으로 보긴 봤는지 에즈라는 내 손 모양을 똑같이 흉내 냈다.
“그렇지, 그렇게 밀착해서 잡아봐.”
“…….”
“야야, 아직 방아쇠엔 손가락 걸지 말고. 명심해. 쏘기 직전에 손가락을 거는 거야. 평소에 무턱대고 방아쇠에 손가락 넣고 있으면 큰일 나.”
“…….”
“팔이 구부러져선 안 돼.”
에즈라는 내 말을 잘 따르다 갑자기 행동을 멈추고 물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사격 연습하잖아.”
“…….”
“네 몸을 지킬 수단 하나쯤 너 갖고 싶어 했잖아. 네가 잘 쏠진 나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스킬 ‘연민(Lv.3)’이 발동합니다.]
나는 일부러 꺼놨던 이펙트를 켰다. 원래 이럴 땐 연출이 좀 들어가 줘야 맛이지.
에즈라의 머리 위에 뜬 금빛 별이 빠른 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빙글빙글 도는 별 아래로 금가루가 뒤섞인 바람이 몰아쳤다.
홀린 사람처럼 에즈라의 시선이 부는 바람을 쫓아다녔다.
그리고 바람이 잔잔해진다 싶어졌을 때.
-투둑, 투두둑.
금빛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 그녀가 든 총과 같은 모양의 권총과 총알이 쌓이기 시작했다.
계속 만들어진 총과 총알이 마침내 산을 이뤘다.
‘도대체 얼마나 바라왔길래.’
복제되는 양에 놀라 나도 좀 멍해지는 기분이었달까.
-툭, 투둑.
산더미처럼 쌓여버린 총알들이 서로 몸을 부딪다 선로 아래로 하나둘 굴러떨어졌다.
“네가 아무리 사격에 재능이 없다 해도, 이 정도 양이면 충분히 연습할 수 있겠다.”
“…….”
“호텔에서 좀 멀리 나오는 게 좋을 것 같았어. 들키면 곤란하니까.”
그녀가 제 발치에 쌓인 총알 더미를 바라보다 느리게 입을 열었다.
“이거…… 네가 만든 거야?”
“음, 네가 한 10퍼센트 보탰고 나머지는 내 능력.”
에즈라가 무릎을 굽혔다.
총알을 하나 집어 든 그녀는 총에 총알을 장전하려는 것 같았다.
처음엔 조금 헤매는가 싶더니 에즈라는 내가 가르쳐준 대로 총알을 장전했다.
이제는 과녁을 찾는 모양이다. 그녀가 이리저리 주변을 살폈다.
그러다 한 곳으로 방향을 틀었다.
누가 벗어두고 잊어먹은 걸까. 벤치 위에 까만 중절모가 보였다.
모자를 향해 팔을 들어 올리는 것을 보니, 역시 모자를 맞춰볼 생각인가 보다.
나는 그녀가 방해받지 않도록 조금은 숨소리를 죽였다. 첫발부터 잘 쏘기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탕!
격발음이 울리고서 나는 구멍이 뚫렸을 중절모를 바라보았다.
‘모자가 멀쩡하네?’
그래도 그 언저리에 총알 자국이 있지 않을까 했는데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야, 너 어디로 쏜 거야. 모자 맞추려던 거 아니었어?”
“…….”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에즈라가 쏜 탄환은 중절모가 있던 벤치와 정확히 45도 각도의 장소에서 나왔다.
정면을 보고 쐈는데 왼쪽으로 날아간 격이었다.
‘사람이 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너무 무서웠다. 얘한테 계속 총 쏘게 해도 되는 건가?
총이랑 총알이 지나치게 많이 복제된다 싶더라니.
‘재능이 너무 없다. 그래서 저렇게 많이 만들어진 건가?’
나도 모르게 그만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가, 손으로 슥슥 미간을 눌러 피며 말했다.
“많이…… 연습해라.”
에즈라는 말없이 제 손에 들린 권총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자기도 어이가 없겠지.
쟤라고 자기가 쏜 총알이 저리 날아갈 줄 알았겠냐고.
“아, 그리고.”
“…….”
“나 너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조금 많이 오글거리지만 하긴 해야겠다.
“죽을 생각은 하지 마. 너를 어디다 팔려는 생각도 하지 마. 이왕이면 살자.”
여전히 고개 숙인 그녀에게서 대답이 돌아왔다.
“너 이름이 벨이랬나.”
“…….”
“있잖아, 너 되게 재수 없는데…… 방금 그 말이 내가 너무 듣고 싶었던 말이야.”
에즈라의 총 위로 눈물이 몇 방울 똑똑 떨어졌다.
[스킬 사용 대상이 감사해합니다.
획득한 감사 포인트를 생명력으로 변환하여 저장합니다.]
‘아니, 도대체.’
저 차갑고 무뚝뚝한 얼굴로 얼마나 감사해하는 거야?
눈앞에서 게이지가 쭉쭉 올랐다.
그러더니 결국.
[클래스 ‘종의 요정’의 레벨이 상승합니다.
‘종의 요정(Lv.3)’
⇒ ‘종의 요정(Lv.4)’]
[클래스 레벨 업에 따라 아이템 ‘자선냄비(크기: 소형)’를 획득합니다.]
내 레벨을 올리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