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그럼 내보내 줘.”
“…….”
“…….”
내보내 달라는 여자의 말에 문을 지키는 두 남자가 시선을 교환했다.
그리고 아무 대답도 없이 팔을 벌려 여자를 막아섰다.
“XX! X 같은 새끼들아!! 내보내 달라고, 죽어버릴 거니까!”
여자는 체구가 작은 편이다. 키가 150cm를 좀 넘을 것 같은?
마르기도 참 말랐다.
나도 마른 편이지만 쟤는 더 빼빼 말랐다. 마른 몸에 근육이라곤 하나도 안 붙어 있을 것 같다.
호텔 정문으로 나가려는 여자를 두 남자가 겁박했다.
작고 마른 몸을 상대로 저 정도의 제압이라니. 도가 지나쳐도 한참 지나쳐 보였다.
무슨 상황인지 정확히 파악은 안 되는데, 일단 짜증부터 솟구치는 건 내 잘못이냐?
[내용: “말려줘.”]
퀘스트의 말려달라는 말은 이 상황을 예견한 게 아닐까?
그리고 XX 왜 못 나가게 막고 XX인데? 나가서 죽든 말든 쟤 자유인데.
“쟤야.”
“뭐?”
옆에 서 있던 크리스의 목소리였다.
“돌보미조의 결원, 지금 싸우는 저 여자야. 에즈라.”
[돌발 퀘스트
대상: 에즈라
내용: “말려줘.”]
이름을 들은 퀘스트 창이 빠르게 정보를 갱신했다. 퀘스트 내용은 여전히 뭘 말려달라는 내용이었다.
‘에즈라구나.’
“벨?”
나를 부르는 크리스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앞으로 뛰어나갔다.
“저기요!”
“??”
파고든 목소리에 여자를 벽 쪽으로 밀어붙이고 힘으로 짓누르던 두 놈이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이쪽을 돌아보았다.
“안녕하세요? 저 어제 들어온 신입인데요.”
그러자 두 놈은 물끄러미 내 얼굴을 살펴봤다.
“아, 어제……. 그런데?”
존대로 스타트를 끊으면 존대로 받아줘야지, 얘들아.
“어, 그런데 너희도 알겠지만 나도 이제 호텔에서 생활하게 된 만큼 일을 배정받았겠지? 지금 너희가 하는 일 비슷한 거 말이야.”
일인지 폭력인지 구분 안 되는 그거.
“근데 내가 새 일을 산뜻하게 시작하려면 거기 계시는 여자분의 도움이 필요하거든? 인수인계라는 게 있잖냐.”
그러나 놈들은 가만히 듣고만 있을 뿐 여자를 놔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나는 쓱 곁으로 다가가서 빵빵한 주머니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너네 이름이 뭐야? 앞으로 같이 생활하게 된 만큼 잘 지내고 싶다, 얘들아. 동의하니?”
주머니에서 초콜릿 바를 꺼내 놈들의 주머니에 하나씩 찔러 넣어주자,
“어, 그래. 잘 지내볼까?”
“인수인계가 필요한 거면 돌보미조인가? 인수인계는 받아야지.”
주머니에 들어간 초콜릿 바를 바라보며 놈들이 여자를 내 쪽으로 밀었다.
떠밀려 내 앞에 선 에즈라는, 그렇지 않아도 곱슬거리는 머리가 이리저리 엉켜서 아주 봉두난발이었다.
‘어, 상처 났다.’
볼에 생채기가 보였다.
제 몸의 배는 되는 놈들과 몸싸움을 벌이다 난 상처인가 보다.
“어…… 방금 들었겠지만 저는 호텔 신입이고, 돌보미조에 배정받아서 인수인계가 필요한데…….”
“…….”
고맙다는 말을 들을 생각도 없지만, 저렇게 나를 노려볼 만한 상황도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에즈라는 무서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기만 했다.
“음…… 일단 상처부터 치료하러 갈까요? 여기 의무실 있죠? 인수인계는 천천히 하고…….”
가만히 서서 움직이질 않길래, 답답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에즈라에게 손을 뻗었다.
-탁.
뻗은 손이 그녀에게 닿기도 전에 찰싹하는 소리와 함께 떨어져 나갔다.
손등에 빨갛게 난 손자국이 보였다.
‘아니, 왜 날 때려?’
멋대로 닿으려 한 건 미안한데, 너무 과하지 않나?
“하…….”
짤막하게 한숨을 내쉰 후, 에즈라에게 말했다.
“저기요, 왜 저쪽에서 다쳐온 걸 나한테 화 풀어? 난 오히려 구석으로 몰린 당신을…….”
-휙!
올라오는 손바닥을 보고 본능적으로 상체를 뒤로 뺐다.
에즈라의 손이 내 얼굴 대신 허공을 가르고 지나갔다.
‘지금 쟤가 나 뺨 때리려 했던 거지?’
뺨은 피했지만 손톱 끝이 코끝을 스쳤나 보다. 코끝이 따가웠다.
제정신이 돌아오자마자 내 입에서 욕이 나왔다.
“이 미친X.”
“X새끼들.”
내 욕설에 기다렸다는 듯 에즈라가 욕설을 뱉어냈다.
아까 여자를 겁박하던 놈들과 싸잡혀 먹는 욕 맛이 참으로 매콤했다.
“야, 너 돌았어? 무슨 상황인지 파악이 안 가?”
“XX, 모르겠는데?”
“하, XX.”
이 미친X은 뭐지?
이 X은 제대로 미친X이다.
-퉤.
그 사실을 입증하듯, 여자가 내 발치를 향해 침을 뱉었다.
몸싸움을 벌이다 혀를 깨물었나? 아니면 입안에 상처가 난 걸까. 뱉은 침에는 붉은 피가 섞여 있었다.
“벨!”
내 이름을 힘차게 외치며 다다다 달려오는 발걸음 소리에 뒤를 돌자, 우리의 꼬맹이가 에즈라를 향해 정의의 발차기를 날리려 하고 있었다.
“이 나쁜!”
“애런, 안 돼!”
도약하려는 작은 몸을 잽싸게 낚아채자, 애런은 아주 억울하다는 표정이었다.
“놔, 벨! 내가 때려줄 거야!”
들어 올려진 애런은 공중에서 발을 붕붕 찼다.
“안 돼, 애런. 저런 거에 닿는 거 아냐. 지지야, 지지. 광견병 옮아.”
광견병이니 뭐니 하는 말에도 여자는 씩씩대며 날 노려볼 뿐이었다.
[돌발 퀘스트
대상: 에즈라
내용: “말려줘.”]
여자를 거칠게 제지하는 남자들을 말려주면 클리어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머리 위 돌발 퀘스트가 변동 없이 그대로인 걸 보면 퀘스트는 클리어되지 않은 것 같다.
‘안 해, XX. 미친X을 뭘 어떻게 말리라는 거야.’
❅
돌보미조.
그곳은 ‘호텔에선 누구나 일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배식은 없다.’라는 규칙에서 제외된 자들이 모인 곳이었다.
애런과 같은 어린아이들이나 성인이지만 일을 할 수 없는 상태인 사람들. 예를 들면 임신부.
그리고 나는 쉼터에서 그들을 돌보는 데 필요한 모든 잡일을 담당하면 됐다.
아이들을 돌보거나 거동이 불편한 이들을 보조하는 등의 일들.
“벨!”
방 한쪽에서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있던 스칼렛이 읽던 책을 내려놓으며 손을 흔들었다.
“여기서 일해요?”
“네.”
“잘됐다!”
스칼렛이 팔뚝을 장난스럽게 쳤다.
“여기 농땡이 치기 딱 좋거든요.”
농땡이 치기 좋다라. 이곳에 들어오자마자 스칼렛이 그리 말한 지 30분이 채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와! 새 선생님이다!”
“업어주세요. 선생님!”
“선생님, 놀아주세요!”
“선생님, 동화책 읽어주세요!”
“선생님, 곰돌이요 곰돌이.”
‘토할 것 같아…….’
핫한 놀이공원의 신상 놀이기구가 된 기분이었다. 아이들이 놀아달라며 내 옷을 붙들고 주위에서 떨어지질 않았다.
나는 한 발치 떨어져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애런을 가리키며 외쳤다.
“어린이들, 착한 어린이는 저 친구처럼 얌전한 어린이예요.”
그러나 여론은 뒤바뀌지 않았다.
“쟨 뭐야.”
“선생님! 착한 어린이는 잘 먹고 잘 노는 어린이예요!”
“착한 어른은 애들이랑 잘 놀아주는 어른이에요!”
여긴 지옥이었다. 지금이라도 전투조로 다시 가겠다고 말해야 할까를 고민하는데.
-끼익.
마치 사람이 아니라 머리 산발한 귀신이 입장하는 장면 같았다.
‘에즈라?’
조용히 문을 열고 귀신처럼 소리 없이 입장한 에즈라가 발 없이 떠다니는 유령처럼 앞을 지나갔다.
그러더니 방구석에 툭, 벽을 보고 누워버렸다.
‘원래 아이들을 돌보는 게 저 애 일이라고 했지.’
근데 왜 나한테 인수인계도 안 해주고 냅다 누워버리는 거지? 아니, 일단 자기 몫의 일을 할 생각이 있긴 한 건가?
자기가 안 하면 내가 두 사람 몫을 해야 하는데? 양심 어디 갔어.
“얘들아 가까이 와 봐.”
나는 아이들을 모아 속삭였다.
“저 선생님한텐 왜 놀아달라고 안 해?”
그러자 아이들이 누운 에즈라 쪽을 힐끗 쳐다보고선 입을 열었다.
“저 누나는 선생님이 아니래요.”
“누가 그래?”
내가 듣기론 아니었는데.
“저 언니는 놀아달라고 해도 안 놀아줘요.”
‘처음부터 안 놀아주는 걸로 강하게 밀고 나가서 애들을 포기시킨 건가?’
현명하군, 생각해 버리고 말기엔 쟤가 일 안 하면 내가 일을 두 배로 해야 했다.
‘빡치네.’
그렇지 않아도 아까 태도가 짜증 났는데.
“저 언니는 신경 쓰지 마요, 선생님. 선생님이 곰돌이 입고 놀아주세요.”
새 선생님이 아니라 새 노예겠지.
“곰돌이가 뭐야?”
“이거요.”
칙칙한 갈색 이불인가 싶었는데, 아이의 손에 들린 것은 갈색 곰 인형 탈이었다.
어째서 인형 탈이 있는 거지.
“직접 곰이 되어보는 경험을 해보는 건 어떨까?”
“싫어요, 선생님. 일은 어른이 하는 거예요.”
이 자식들…….
아이들은 협상의 여지가 없었다.
“그건 뭐야?”
곰 인형 탈을 들고 선 아이 뒤로, 다른 아이의 손에도 누런 무언가가 들려 있었다.
“이건 사잔데요. 저는 곰돌이가 더 좋아요.”
빛바랜 누런 것은 사자 인형 탈이었다.
나는 두 인형 탈을 바라보며 곰곰이 생각하다 말했다.
“얘들아, 곰이랑 사자랑 싸우면 누가 이기게?”
❅
“야.”
“…….”
“야, 씹냐.”
“…….”
이불을 뒤집어쓰고 등을 돌려 누워 있던 에즈라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왜 자는 사람을 깨, 우윀.”
던져진 사자탈을 얼굴에 직방으로 맞고서 여자는 인상을 구겼다.
“이 XX, 뭐 하는 짓이야.”
“그러게, 뭐 하는 짓일까.”
“뭐?”
“일하라고, 네 일.”
에즈라는 내 뒤로, 우리가 어서 사자와 곰이 되어 나타나 주기를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보고 있는 아이들을 보더니 다시 벽으로 고개를 돌렸다.
“기운 없으니까 건들지 마라.”
“거 참, 말 못 알아먹네.”
나는 그녀의 등 뒤에 쭈그려 앉아서 귓가에 속삭였다.
“네가 기운이 있는지 없는지는 내 알 바 아닌데, 네가 일을 안 하면 내 기운을 두 배로 써야 하니까 헛소리 그만하시고 일어나서 할 일을 하시라고요.”
“XX, 꺼지라고.”
“…….”
하…… 진짜 말 안 통하네. 강제로 통하게 해줘야 하나?
도대체 얘가 왜 이러는 걸까, 잠깐 생각에 빠졌다가 생각을 접었다.
미친X이 왜 미친X이 됐는지는 내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 내게 중요한 문제는 바닥에 붙어 있는 미친X을 일으켜 세워 일을 시켜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