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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물에서는 남주를 줍지 마세요 (40)화 (40/108)

40화

“새로 오신 분이니 딱 한 번만 봐드리죠.”

망했네. 총 없으면 진짜 난 무용지물인데.

“이건…… 종?”

바깥 주머니에 들어 있던 종까지 찾아 빼든 그녀는 의아한 눈길로 종을 흔들었다.

-딸랑.

“흔들어보니까 어때요?”

“종……이네요?”

“그걸로 사람 해칠 수 있을 거 같아요? 종인지 알았으면 그만 내놔요. 내 물건에 남의 손 닿는 거 그리 좋아하지 않으니까.”

여자는 기분 상했다는 얼굴이었지만 별다른 말 없이 내게로 종을 내밀었다.

종을 주머니에 찔러넣으며 뒤따라오는 데일을 슬쩍 보니, 그는 외투 안에 무기고가 있나 싶을 정도의 무기를 쏟아내고 있었다.

“데일.”

“어.”

“무기 다 넘긴 거 아니죠? 한두 개 꿍친 거 있죠?”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물었지만 돌아온 답은 절망적이었다.

“아니, 다 털렸어. 정 없는 자식들.”

그는 아무 생각 없는 얼굴로 제 빈 주머니를 까뒤집어 보였다.

“이런, XX.”

작게 탄식했다.

놈들은 수십이고 우리는 세 명인데 총도 없다니.

헨리의 말에 따르면 신입을 들이는 과정에서 놈들이 하라는 대로만 하면 별문제 없을 거라 했지만.

‘그 자식이 한 말 다 허풍이었잖아.’

자기가 대장에게 따로 말하면 별다른 과정 없이 받아줄 거라더니 개뿔 되지도 않았고, 우리는 신입을 들이는 1차 관문 앞에 서 있었다.

저들이 순조롭고 평화롭게 우리 셋을 받아들여 준다면 문제없지만, 일이 틀어지면…….

그렇다고 다시 총을 달라고 떼를 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걱정하지 마. 네 목숨은 내게 아주 소중하니까.”

“…….”

“몸 어디 한 군데가 망가져도 이 사슴같이 예쁜 모가지 위로는 어떻게든 어깨 위에 붙어 있게 해줄게.”

“XX.”

이 자식이? 끔찍한 말은 입에 담지도 말라 이거야.

“데일, 근데 헨리는요?”

호텔 입구로 들어올 때만 해도 곁에 있던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

-삐이.

날카로운 마이크 노이즈 소리가 공연장을 울렸다.

-아아. 하하, 여러분 죄송합니다. 마이크 상태를 확인하고 켜야 했는데.

마이크를 잡은 남자는 원형 단상 위에 서 있었다. 그 뒤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몇 명의 사람이 보였다.

-마이크를 잡은 이유는 이미 알고들 계시겠지만 신입이 있기 때문입니다. 총 세 분인데, 3형제라고 하네요.

마치 공연 시작 전 자리를 잡는 관람객들처럼 사람들이 저마다 동그랗게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거기.

마이크를 잡은 남자가 우리를 불렀다.

-예, 위로 올라오세요. 아하하, 얼굴들이 너무 굳으셨네. 따로 설명을 못 들으셨나? 누구 신입분들께 설명 드린 사람 안 계십니까?

작게 키득거리는 소리가 언뜻 들려올 뿐, 대답하는 이는 없었다.

-이런 없었군요. 그럼 제가 설명 드리겠습니다.

“호텔이 신입에게 행하는 통과의례가 있습니다. 물론 제가 신분을 증명할 테니 겪지 않으시겠지만. 그래도 설명을 하자면 식료품 등 가진 모든 것을 걸고 도박에 참여하게 강제할 겁니다. 이길 확률은 없습니다. 사기도박이니까요. 그렇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를 하진 않습니다. 얘기했다시피 도박을 좋아하는 불독의 취향이 반영된 이벤트일 뿐이니까요. 그냥 도박에서 패하고 내려오시면 됩니다.”

이어진 사회자의 설명은 헨리가 앞서 해준 이야기와 같았다. 그러니까 이길 확률도 없거니와 있어도 깔끔하게 져주라는 소리다.

목적은 호텔에 들어가 낙원행 티켓의 존재 여부를 확인하는 것뿐, 어차피 물건을 빼앗기는 건 상관없었다.

우리는 이 도박에서 지기 위해 이곳에 서 있었다.

-참여하길 원치 않으신다고요? 그럼 나가시면 됩니다.

“그럴 리가요. 재밌을 것 같네요.”

사기도박이란 사실은 꿈에도 모른단 얼굴로 외쳤다.

여기 다들 아무것도 모르는 뉴비가 도박으로 가진 걸 다 빼앗기고 절망하는 과정을 즐기려고 앉아 있는 거잖아?

아, 걱정 마라. 그 기대치 충족시켜 줄 테니.

오랜만에 게임 속 플레어이가 된 기분이었다.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기분.

-좋은 결정입니다.

내가 관심을 보였다고 판단한 사회자가 미끼 상품을 내밀었다.

-가지고 계신 캔이 좀 많던데, 그래서 저희도 그에 합당하게 준비했습니다.

테이블 위 좌측엔 우리 물건이, 우측엔 놈들이 준비한 물건이 쌓여 있었다.

-설명해 드렸다시피 이긴 측이 다 가져갑니다. 하시겠습니까?

“와아, 정말 엄청나네요. 하지 않을 수가 없겠는걸요! 해요, 해요!”

쌓인 물건들을 바라보며 과장되게 황홀한 표정을 짓자, 데일이 소름 끼친단 듯이 어깨를 움츠렸다.

“왜 이래, 너.”

“어차피 짜여진 판이라는 걸 안 이상 이렇게라도 안 하면 재미가 없잖아요. 우리나 보는 놈이나.”

“어. 봤냐?”

“네. 봤어요.”

나는 티 나지 않게 시선을 위로 들어 올렸다.

‘저 자식이다.’

불 베이팅 도박을 좋아해서 불독이라더니, 암만 봐도 불독을 닮아서 불독인 것 같다.

3층 박스석에 불독처럼 생긴 남자가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데일.”

“어.”

“왜 데일의 일행이 그렇게나 당신이 계속 무리의 리더가 돼주길 바랐는지 알 것 같아요.”

“뭔데.”

“무리의 리더가 당신만큼 잘생긴 경우가 흔치 않은가 봐.”

슬쩍 위를 보고 웃은 그가 내 뒤에서 목을 조르듯 팔을 둘러왔다.

“아이, 똑똑해라.”

-저기…….

우리끼리 속닥거리자 사회자가 눈치를 줬다.

-그럼 돌려주시겠습니까?

몇 가지 도박이 적힌 원형 돌림판이었다. 뭐가 나오든 상관없다. 나는 힘차게 돌림판을 돌렸다.

-야바위네요! 이거 어쩌죠. 신입분들에겐 좋지 않은 선택지인데요. 안 그래도 손이 빠른 모론이 제일 잘하는 종류이기 때문입니다.

사회자가 한 남자를 가리켰다. 그 주위로 바람잡이 담당으로 보이는 놈들도 몇 놈 어슬렁거렸다.

첫인상부터 개판이었던 레키란 놈 포함이었다.

야바위라. 파리에서 야바위꾼들에게 된통 당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놈들이 어떻게 나올지 뻔했다.

우선, 참가자가 몇 번을 맞추게 해 이길 수 있을 거란 확신을 심어준다.

-바로 본 게임에 들어가면 신입분들에게 너무 불리할 테니 연습 게임을 해볼까요?

야바위꾼의 손이 움직였다.

느릿느릿, 공이 세 개의 컵을 옮겨 다니는 모습이 다 보였다. 일부러 맞추게 하기 위험이었다.

“가운데 컵이요.”

야바위꾼의 손이 가운데 컵을 들추자, 아래에서 노란 공이 모습을 드러냈다.

-맞췄습니다!

“와우.”

-또 맞았습니다!

“아닛?”

-세 번을 다 맞추다니!

“형, 나 천잰가 봐!”

연습 게임은 총 세 번이었다.

연습 게임을 모두 맞춘 것처럼 본 게임에서도 이길 거란 기대로 들뜬 내 얼굴로 구경꾼들의 시선이 몰렸다.

방실방실 웃어줄수록 패배 후 표정에 대한 기대감이 상승할 것이다.

자, 불독인지 뭔지 하는 이 무리의 우두머리도 그걸 기대하며 이 도박을 집중해서 보고 있겠지?

그러나 고개를 들었을 때 마주친 장면은 찢어지게 하품을 하는 불독이었다.

‘지루해하고 있어?’

이제 남은 것은 본 게임. 져서 놈들에게 물건을 다 빼앗기는 관례를 거친 후, 호텔의 일원으로 들어가는 일만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이게 맞아? 이 내기 도박에서 지는 게 맞냐구. 차라리 이겨버리면?’

통과의례라길래 순순히 따라주려 했는데, 갑자기 의심이 들었다.

불독이란 자는 낙원행 티켓까지 상품으로 걸면서 물건을 찾고 있다. 그건 아마 본인의 낙원행도 그 물건에 걸려 있기 때문일 거다.

그리고 호수 너머에 있다는 방해꾼들. 그들 때문에 자유로운 수색이 어려운 지금 불독이 가장 원하는 자는 누구일까.

자기들이 깔아놓은 판에 얌전히 순응해 결국 패하는 자?

아니면 뛰어난 전투력을 가진 자?

‘불독의 눈에 띄는 게 이득이겠어.’

나는 가능하면 호텔에 머무는 시간을 줄이고 싶다고.

-자, 드디어 본 게임입니다. 모론, 시작해 주세요.

우리를 향해 노란 공을 들어 보인 야바위꾼이 컵을 섞기 시작했다.

“데일.”

“어.”

“우리 이 게임 이기죠.”

“이유는?”

“생각해 보니까 지는 게 성미에 안 맞아요.”

“하.”

그는 어이가 없단 듯이 웃었다.

“가장 큰 이유는 우릴 내려다보는 불독의 표정이 저딴 지루하단 표정인 게…….”

“…….”

“짜증이 나네요?”

우리가 들릴 듯 말 듯 대화를 주고받는 와중에도 야바위꾼은 신나게 컵을 섞고 있었다.

전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빠른 손놀림이다.

-신입분들께서 소곤거리는 모습을 보니 맞추기 어려운 모양인데요?

“이기는 건 상관없어. 문제는 그 후야. 우리가 이기면 저쪽에서 무력으로 제압하려 들 수도 있는데, 내가 너희 둘 보호하면서 싸우기엔 무리야.”

데일의 말이 맞다.

아무리 출중한 그라 해도 이렇게 다수를 상대로 무기도 없이 우릴 보호해 가면서 싸우는 건 무리겠지.

하지만 무기가 없는 것은 저쪽도 마찬가지다.

“데일, 그럼 무기가 있다면요.”

그의 하늘색 눈동자에 광채가 돌았다.

“네 기대치만큼은 하겠지?”

“그래요? 내가 과대평가한 게 아니었길 바랄게요.”

-탁.

야바위꾼이 손을 멈췄다.

-기회는 한 번뿐. 신입분들은 과연 어느 컵을 고를까요?

답은 알고 있다.

저 세 개의 컵 중, 그 어느 컵에도 공은 들어 있지 않다.

야바위꾼이 컵을 섞으며 공을 제 손아귀로 옮긴 것은 한참 전이다. 노란 공은 딱딱해 보이지만 사실은 스펀지처럼 말랑해 쉽게 구겨지는 재질이다.

공은 야바위꾼의 손을 거쳐 지금은 그의 발아래 깔려 있을 것이다.

그러니 세 개의 컵 중, 어느 컵을 선택해도 우리는 패배하는 게임이었다.

원래라면 머저리같이 확신에 찬 표정으로 세 개 중 하나를 골라줄 예정이었지만.

“음, 어디에 있냐면 으음~ 어디일까?”

이곳 모두의 시선이 내 입에 집중되어 있었다. 3층에 앉은 한 놈을 빼고.

나는 데일의 옷을 끌어당겨 귓속말했다.

“데일, 당신이 지금 필요한 데 없는 물건이 뭐랬죠?”

“…….”

“네, 그거. 그걸 떠올려봐요.”

그러자 데일의 머리 위로 별 모양 커서가 떴다.

[스킬 ‘연민(Lv.2)’이 발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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