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차 보닛 위로 허리를 숙여 차 안을 들여다보던 남자가 천천히 차 주위를 돌며 꼼꼼히 안쪽을 살폈다.
차 안쪽에 사람이 없음을 확인한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후…….’
나는 급하게 몸을 더 낮췄다.
마치 어두운 밤바다를 밝히는 등대의 조명처럼, 낯선 이의 시선이 쇼윈도 창을 훑고 지나갔다.
애런도 내 긴장감을 눈치챘는지 편안해 보였던 얼굴은 그새 사라진 상태였다.
“벨…….”
“애런, 저 앞에 모르는 사람이 우리 차를 들여다보고 있거든. 저쪽은 아직 우리가 여기 있다는 걸 모르는 것 같아.”
만약 놈한테 들킨다면 나만 들키는 편이 낫지 않을까.
내게 아이를 신경 써가며 무장한 놈을 상대할 수 있을 만한 실력은 없다.
혹여 애런이 인질로 잡히기라도 한다면 골치 아파진다.
“애런. 일단, 가게 뒷문 보이지.”
“응.”
“안쪽에 숨어 있어.”
“하지만 벨 혼자…….”
“애런!”
“…….”
“친절히 설명을 늘어놓을 수 있는 상황 아니야. 말 들어. 안으로 들어가서 내가 부를 때까지 나오지 마.”
“……응.”
애런이 조용히 가게 뒤로 걸음을 옮겼다.
저 남자 혼자인 건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거리의 상황을 살피던 남자가, 이제는 트렁크를 열려는지 차 뒤에 쪼그려 앉아 애를 쓰고 있었다.
트렁크에서 식량 조금 훔쳐가는 정도야 내겐 아무 타격도 없다.
오히려 그걸로 끝내주면 다행인데.
“…….”
트렁크 키박스 앞에서 고군분투하던 남자가 다시 한번 주위를 둘러보더니.
‘열었네.’
열린 트렁크 안쪽 내용물을 확인하는 남자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다시 주변을 살피는 남자의 얼굴엔 헤벌쭉한 웃음이 걸려 있었다.
그와 동시에 내 입꼬리가 아래로 처졌다.
‘적당히 가져가라.’
적당히 몇 개 가져가는 정도야, 내 하해와 같은 마음으로 눈감아 주도록 하지.
하지만 트렁크 문을 닫은 남자는 바로 운전석으로 향했다.
열쇠 없이 트렁크를 연 것처럼 기어코 문을 따고 운전석에 앉았지만.
‘시동 안 걸리는 차다, 이 새끼야.’
그러자 남자는 화가 치민 듯 애꿎은 핸들을 주먹으로 쳐대더니 운전석에서 나와 차 보닛를 열었다.
그는 차를 고쳐보려는 듯 엔진 룸에 고개를 처박고 고민 중인 것 같았다.
가만히 엔진 룸을 바라보는 남자는 움직임이 없다.
즉, 고정된 표적. 어쩌면 내가 쏴서 맞출 수도 있다는 소리다.
‘하지만 못 맞추면?’
총을 쏘면 내 총알이 1차로 깨부수는 건 쇼윈도의 유리창이다.
남자를 맞추면 상관없지만 못 맞춘다면 와장창 깨지는 유리창 소리에 놈에게 위치를 드러내게 된다.
잡화점 문틈으로 쏘는 방법도 있지만, 문을 열다 도어벨이 울려버리면 첫 발을 쏘기도 전에 발각될 거고.
엔진 룸을 살피는 놈의 등엔 기관총으로 보이는 총기류가 매달려 있었다.
저거 몇 연발이지.
위치가 드러나는 순간, 놈의 연발 화력이 내가 있는 이곳으로 쏟아질 게 그려졌다.
‘XX, 맞추면 되지.’
맞춘다.
한 놈 정도는 혼자 처리해.
나는 놈의 머리를 가늠쇠 위에 올렸다.
타깃이 흐릿해질 때까지, 가늠쇠가 선명해질 때까지.
‘지금이다.’
그러나.
‘왜 안 움직이는데 내 손가락? 미쳤나?’
나는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
일말의 가능성이 내 검지를 붙들고 늘어졌다.
저 남자 며칠이나 굶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저 남자에게 딸린 일행들 모두가 굶주린 상태일지도 모르지.
음식 좀 넘겨주고, 죽이지 않고 보낼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저자 역시 음식 좀 더 얻자고 사람을 해하는 것은 꺼리는 사람일지도 모르고.
그렇다면 내가 차 주인이라고 나선 후에…….
‘뭔 개똥 같은 소리냐.’
나는 권총을 쥔 자세를 바로 했다.
이 세상에 주인 있는 물건이 어딨어. 우리 차를 봐라. 그냥 길가에 세워진 사람 없는 차일 뿐이다.
내가 차주라고 나서면 그걸 과연 믿겠냐?
웃기지도 않는 소리지.
‘쏜다.’
아까 애런한테도 말하지 않았나.
나는 개와 사람의 그 어딘가가 되기로 했다.
그렇다면.
“쏴야지.”
그런데 그때, 인기척이 느껴져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우측 시야에 익숙한 형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빨간 공구 상자를 피크닉 바구니처럼 옆구리에 끼고 팔랑대는 걸음걸이로 걸어오던 데일은, 웬 놈의 등짝이 보이자 걸음을 멈췄다.
그의 상체가 옆으로 기울었다.
낯선 이의 등에 가려 보이지 않는 차 내부를 확인하려는 것 같았다.
차 내부에 있어야 할 인간 둘이 없다는 걸 알았겠지.
그가 상체를 기울인 채 아랫입술을 검지로 문질렀다.
그리고 빠른 걸음으로 순식간에 거리를 좁혔다.
엔진 룸을 보던 놈이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을 땐, 데일의 손에 들린 몽키스패너가 낯선 이의 머리 위를 선점한 후였다.
-퍽.
공구로 정수리를 가격함과 동시에 데일이 놈의 무릎 뒤를 걷어찼다.
놈이 비틀거리며 몸을 가누지 못하는 동안, 그가 잽싸게 상대의 몸에서 빼낸 기관총을 저 멀리 던져버렸고.
이어지는 행동은, 자신의 총구를 차 위로 엎어진 놈의 뒤통수에 갖다 대는 행위였다.
행동에 군더더기가 없달까.
나는 살짝 입을 벌리고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총구를 대고서 데일이 뭐라 뭐라 말하는 것 같은데, 문 닫힌 잡화점 안까진 잘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어지는 낯선 이의 목소리는 쩌렁쩌렁하게 거리를 울렸다.
“모른다고!! XX, 빈 차였다고 했잖아!!!”
허나 그 답변이 만족스럽지 않았는지, 데일은 놈의 볼살이 총구에 밀려날 정도로 총으로 거세게 놈의 얼굴을 짓눌렀다.
일그러진 남자의 표정이 고통스러워 보였다.
‘생각보다…….’
많이 당황하네, 데일.
그가 빈손으로 거칠게 머리를 쓸어넘겼다.
드러난 이마 아래 보이는 푸른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아 있음에도 언뜻언뜻 당황한 기색이 삐져나왔다.
‘동료가 사라지면 저렇게 되는구나, 저 남자.’
좌우로 흔들리던 데일의 눈동자가 다시 낯선 이에게 향했다.
몇 대 더 때리면 낯선 이가 우리의 행방을 불 것이라 여겼는지, 데일은 맨주먹으로 억울해 보이는 놈의 얼굴을 구타했다.
주먹질에 놈의 얼굴이 삽시간에 울긋불긋해졌다.
눈코입마저 사라지기 전에 나가야 할 것 같았다.
데일의 표정도 점점 나빠졌고.
나가서 자초지종을 말해야지.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마음이 미안한걸.
그래도.
‘말 안 하고 사라져서 미안하다고.’
그렇게 말해야겠다 생각하며 그때까지도 낮게 숙이고 있던 상체를 일으킨 순간.
-탕!
내 손에 들린 권총에서 화약 연기가 피어올랐다.
❅
대상을 발견한 건 일어서자마자였다.
데일이 나타났던 상점가 우측 거리에서 웬 낯선 놈 2가 모습을 드러냈다.
놈이 질린 표정으로 길바닥을 향해 총구를 겨눴다.
총구 끝엔 다른 놈을 반죽하는 데일이 있었다.
두 남자의 몸이 겹친 탓에 조준이 어려운지, 낯선 놈 2의 총구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이번에 망설이면 후회할 일이 생긴다.
나는 즉시 놈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탕!
쇼윈도의 유리창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맞췄다, 맞췄어.
내가 쏜 총알이 대상의 왼팔을 뚫고 지나갔다고.
그런데.
“??”
놀란 표정의 대상이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놈은 무슨 로봇처럼 일말의 고통도 못 느낀다는 얼굴이었다.
저거 사람이 아닌가?
내가 맞춘 그의 왼팔을 노려봤다.
마치 속이 빈 듯, 옷자락이 바람에 흔들거렸다.
놈이 오른손에 든 총으로 이쪽을 겨누었다.
‘XX.’
나는 재빠르게 잡화점 카운터 뒤로 기어들어 갔다.
“……??”
탕탕탕탕탕, 이런 식의 따발총 소리가 들려올 거라 예상했는데 사위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나는 슬그머니 카운터 위로 고개를 들었다.
“저게 뭐람.”
왜 갑자기 우리 편 흰 머리와 총을 맞고도 멀쩡했던 방금 그놈이 포옹을 하고 있는 걸까.
나는 총을 얼굴 높이로 올려 쥐고서, 잡화점 문을 뻥 찼다.
-딸랑딸랑딸랑.
들려오는 소리라고는 먼지 섞인 바람 소리뿐인 거리 위로, 잡화점 도어벨 소리가 시끄럽게 울렸다.
서로 가슴을 맞댄 두 남자의 고개가 동시에 이쪽으로 꺾였다.
“너…….”
날 발견한 데일의 눈이 가느스름해졌다.
뭐요. 생사를 모르던 동료가 살아 있는 걸 봤으면 좋다고 웃기나 할 것이지 야리긴.
“이거 뭔 상황이에요. 데일, 안전해요? 10초 내로 안전한지 설명 안 해주면 저 녹색 머리 쏠 거예요.”
“안전해, 나 안전하다고.”
“저 녹색 머리 새끼가 계속 나한테 총 겨누고 있는 거 안 보여요? 근데 안전하다고? 어디서 굴러다니는 말똥이라도 집어 먹고 왔나…….”
“…….”
그러자 데일이 총이 들린 녹색 머리의 오른손을 지그시 아래로 눌렀다.
나를 노려보는 녹색 머리의 얼굴은 아주 억울해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대령님, 저 여자 뭡니까? 저만 내려요?”
“괜찮아. 쟤 초보야.”
에이 씨.
무시하는 소리에 김이 확 빠졌다.
대령님이니 뭐니 반말하는 거 보니 둘이 이전에 알던 사이인 것 같기도 했고.
총을 내리자, 녹색 머리가 기다렸다는 듯 총을 버리고 데일의 몸통을 한 손으로 더 힘껏 끌어안았다.
“대령님!!”
“어, 그래그래…….”
데일의 부관이었을까.
녹색 머리의 남자에게 한 손으로 안긴 데일의 시선은 바람에 하늘거리는 그의 왼팔 옷자락에 가 있었다.
옷자락이 바람에 나풀거릴 때마다 그의 눈이 씁쓸함을 더해갔다.
“헨리!”
차 옆 가로등에 두 손이 묶인 남자가 녹색 머리를 불렀다.
“아는 사람들이야? 네가 부둥켜안고 있는 그 새끼가 내 얼굴을 이렇게 죽사발을 만들어놨다고, XX!”
“야…… 내가 설명할게.”
그제야 데일에게서 떨어진 녹색 머리가 그의 동료로 보이는 놈에게 다가갔다.
자유의 몸이 된 데일이 길 건너 서 있는 내게 손짓했다.
‘이리 와.’
벙긋거리는 입 모양이 날 부르고 있었다.
그가 연이어 제 가슴을 가리켰다.
‘비었잖아.’
나는 데일을 따라 소리 없이 ‘꺼져’라고 입을 벙긋거리려다가, 그가 나랑 애런이 사라진 정황을 확인하고 지었던 표정을 떠올렸다.
기분이 이상하네.
가슴께가 조금 따끔따끔한 것 같기도 하고.
왜 이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