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
❅
“무슨 문제 있어요?”
데일이 키박스에 꽂혀 있던 차 키를 뽑았다 다시 찔러넣었다.
키를 돌려 시동을 걸어보지만 여전히 걸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있어 봐.”
운전석에서 내린 그가 앞으로 가 차 보닛을 열었다.
엔진 룸을 한참 들여다보던 그가 보닛을 닫고 내가 앉은 조수석 창문을 두드렸다.
“간단한 공구만 있으면 해결될 문제 같거든. 상점가에서 구할 수 있을 거야.”
“없으면요.”
“없으면…….”
그가 주변을 둘러봤다.
버려진 차량이 한가득이었다.
그러나 그는 다른 차에 비해 트렁크가 넉넉한 지금의 차를 포기하기 싫은 눈치였다.
차를 옮겨 탄다면 트렁크에 들어 있는 짐의 일부는 버려야 할 테니.
“저 중에서 골라 타야지.”
“오래 걸리지 말아요.”
“총은.”
내가 소지하고 있던 총을 넘기자 그가 총구에 소음기를 돌려 끼웠다.
애런을 발견했던 교도소 지하에서 찾아낸 물건 중 하나였다.
“자. 한 놈이고, 상대할 수 있겠다 싶으면 이걸로 조용히 처리.”
내게 총을 건넨 남자가 창문으로 쑥 상체를 들이밀었다.
조수석 서랍을 연 그가 서랍에 들어 있던 여분의 총을 내 비어 있던 한 손에 쥐여줬다.
“둘 이상이면 바로 소음기 없는 걸로 아무 데나 갈겨. 듣고 뛰어올 테니까.”
“갈기면 바로 와요? 100미터 몇 초 나와요?”
“네 목숨 살려줄 만큼은 빠르니까…….”
하긴, 이 사람 겁나 빠르지.
그가 조수석에 앉아 있던 내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머리를 헝클어트리는 거랑, 사람 안심시키는 게 뭔 상관관계가 있는지 모르겠네. 난 이걸로는 안심이 안 된다고.
“안심하고 여기 있어. 다녀올 테니까.”
“다녀와, 형.”
떠나려는 데일을 향해, 뒷좌석에서 애런이 작은 손을 방방 흔들었다.
흔들리는 애런의 사과머리를 귀엽다는 표정으로 보던 그도 아이를 향해 손바닥을 보였다.
“뭐 해. 너도 흔들어라.”
“하하…….”
떨떠름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자, 그가 영혼 없이 흔들리는 내 손바닥에 제 손바닥을 겹쳤다.
손가락 사이 사이로 쑥 들어온 남자의 손이 힘차게 내 손을 좌우로 흔들었다.
“하하하하. 더 정성껏 못 흔드냐?”
“아, 예예…… 그러죠. 그래야죠. 부디 무사 귀환하여 주시옵소서. 제 동아줄이시여.”
“그러마.”
특유의 비웃는 웃음을 날린 그가 돌아서 뛰어가기 시작했다.
예, 제발 빨리 와주세요. 빨리. 근데 진짜 여기 가만히 있어도 되나? 안전한지 잘 모르겠는데.
그때 애런이 차 맞은편 가게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간판에 쓰인 가게 이름이 ‘더이슨 잡화점B’였다.
“저기 봐, 벨. 오…….”
애런의 눈동자가 쇼윈도 뒤로 보이는 마네킹에 달라붙어 떨어질 줄 몰랐다.
나는 주위를 살폈다.
“애런, 저기 가서 구경할까.”
“그래도 돼?”
“응. 대신 목소리 낮춰서 조용히 구경해야 해. 애런 할 수 있어?”
데일은 차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게 덜 눈에 띌 거라 판단한 모양이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이렇게 차 안에 앉아 있다가 상대가 먼저 우릴 표적으로 삼으면 나와 애런은 도망칠 곳이 없었다.
여럿이 몰려와 차를 에워싸면 차 안에서 벌집 되는 것밖에 더 있어? 차라리 밖에서 기다리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가자.”
“응.”
잡화점 쇼윈도에서 차를 주시하다가 데일이 도착하는 것을 보고 나가면 될 것이다.
나는 애런의 손을 잡고 잡화점을 향해 길을 건넜다.
❅
-딸랑.
도어벨 소리에 순간 멈칫했지만 잡화점 안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은 없었다.
피난 가는 와중에 도어벨을 챙겨갈 사람은 없겠지.
“종소리…….”
“어, 오랜만에 손님이 와서 종이 반가운가 봐.”
“오, 나도 반가워.”
도어벨을 향해 인사를 건넨 애런이 잡화점 안쪽으로 곧바로 튕겨 나가려는 걸 낚아챈 나는 아이를 돌려세웠다.
이 잡화점, 문 옆이 통창으로 된 쇼윈도다.
밖에서 보이지 않게 문 뒤로 자리를 잡은 후, 애런과 눈을 맞췄다.
악의 없고 호기심 가득한, 그래서 문제인 선한 눈동자다.
“애런.”
“응.”
“잡화점을 구경하기 전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어.”
“응. 할게.”
“뭐냐면 한 가지 문장을 외우는 거야.”
“응.”
“좋아. 내 말 복창, 아니 따라 해. 알겠지?”
“응응.”
나는 똑 부러지게 대답하는 아이의 작은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준 후 또박또박 외쳤다.
“나 말고 개새끼다.”
“응?”
“따라 하기로 했잖아. 어서 해. 이 세상엔 나 말곤 다 개새끼들뿐이다.”
무슨 말인지 잘 이해되지 않는 눈치였지만, 제 앞에 여자가 귀신같이 무서운 얼굴로 따라 하라고 요구하니까 아이는 일단 시키는 대로 복창했다.
“나 말곤 다 개새끼다.”
“응. 이해돼? 무슨 말이냐면 네가 앞으로 누군가를 만나잖아? 그럼 일단 그놈은 개새끼인 거야. 개새끼를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해?”
“쓰다듬어 줘야 해.”
“아니이……. 그건 진짜 강아지고.”
여전히 모르겠다는 얼굴로 눈을 댕그랗게 뜬 아이를 보자,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싶었다.
어려운 비유였나.
“사람답지 못한 사람이라는 의미였어. 앞으로 누굴 만나면…… 처음엔 그저 나쁜 사람이겠거니 생각하다가, 상대가 사람다운 행동을 보이면 그때 가서 사람 취급을 해줘도 된단 말이야.”
“그 반대로 행동하면?”
“반대? 뭐 만나는 사람마다 좋은 사람이겠거니 생각하고 싶다는 말이야?”
“응.”
애가 은근 고집이 있다.
“그렇게 살면 일찍 천사 돼.”
“천사가 되면 날개 생겨서 좋은데.”
“날개 생기면 어? 날개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날개 없는 사람보다 일 두 배로 해야 해. 천사 일 엄청 많아. 그냥 허리가 휠 정도로 많아서 이렇게 잡화점 구경하고 밥 먹고 그럴 시간도 없이 노동해야 해. 그게 좋아?”
“날개가 생기면 날개가 없는 사람들을 돕는 게 당연한 거라 괜찮아.”
“엇…….”
될성부른 아이가 밝혀오는 소신에 나는 순간 말을 잃었다.
멀쩡한 세상에 태어났다면 큰일을 하고도 남았을 재목이 아닌가.
어쨌거나 때 탄 놈과 때 안 탄 어린이가 대화하려니까 대화가 원활하지 않았다.
나는 그냥 우기기로 했다.
“어쨌든, 이 세상에 아무 목적도 없이 선한 사람은 다 사라졌다는 말이야. 이건 좀 이해돼?”
애런은 내 말을 음미하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다,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다 사라졌으면…… 벨이랑 데일은? 벨도 개새끼야?”
태어난 지 10년도 채 안 된 어린 생명체한테 너도 개새끼야? 라는 질문을 받으니 어휴, 이거 타격이 크네.
길에서 마주친 동네 아저씨랑 소새끼네 말새끼네 서로 욕 박으며 싸웠을 때보다 더한 타격감이었다.
나는 말라오는 입술을 깨물어 적셨다.
“개새끼가 안 되려고 발버둥 치는 중이야.”
“그럼 좋은 사람이야?”
“음…….”
즉각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에 나는 잠시 망설였다.
“아니. 사람으로도 안 살 거야.”
“그럼?”
“개와 사람의 그 어디 중간쯤이 내가 목표로 하는 지점이야.”
“개와 사람의 중간이라고??”
아이가 고운 미간을 찌푸렸다.
호기심이 그득한 두 눈이 크게 껌뻑껌뻑하는 것을 보니, 뭔갈 상상하는 눈빛인데.
내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개와 사람이 반반 섞인 생명체 같은 것을 상상하는 건 아니겠지? 오, 제발.
“벨.”
“응.”
“잘 모르겠는데…… 나는 벨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 데일 형도.”
“……응.”
“그래도 벨이 중요하다고 했으니까, 나랑 벨, 데일 빼고는 다 나쁜 사람들이라고 생각할게.”
“응, 고마워.”
대화를 마친 애런은 잡화점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관심을 보였던 마네킹 앞으로 달려갔다.
마네킹을 가운데 두고 이리저리 돌아보는 아이를 두고, 나는 잡화점의 가려진 공간들을 살폈다.
피팅룸이라든가, 손님에게 보여지는 공간이 아닌 가게 주인만을 위한 뒷공간들.
‘별건 없네.’
가게 안쪽 공간을 살피고 나오자, 애런은 두 손에 아기자기한 털장갑을 끼고 만세를 부르며 좋아하고 있었다.
“벨! 이거 봐! 따갑고 따듯해!”
“풉. 따가우면 벗고 싶지 않아?”
“아냐, 따듯하니까 참을래.”
아이가 착용한 장갑을 보니 까슬까슬한 털실로 짠 장갑이었다.
나는 그득 쌓인 장갑들 중에서 속은 얇은 털로 되어 있고, 겉은 가죽으로 된 장갑을 찾아냈다.
“이건 어때.”
“이건 안 따갑고 따듯해! 더 좋아!”
“그치?”
“응!”
해맑게 웃는 얼굴을 보니 역시 좋다.
애런은 내가 제 장갑을 찾아낸 곳을 마저 뒤지고 있었다.
“이건 형 손에도 맞겠다.”
“아…… 데일?”
그 남자는 이미 애용하는 장갑이 있는 모양이던데.
“그럴까? 형한테 줄까?”
“응.”
“그래.”
이제 슬슬 남자가 공구를 손에 들고 올 때가 되지 않았나…….
아이가 건넨 장갑을 손에 쥐고 일어섰다.
나는 쇼윈도 뒤편, 마네킹과 마네킹 사이에 서 있었다.
두 마네킹 사이로 시동이 걸리지 않는 우리의 차가 보였다.
‘XX.’
“벨?”
“애런 숙여.”
아이를 잡아끌며, 바닥 가까이 몸을 낮췄다.
우리 차 옆으로 낯선 남자 한 명이 어슬렁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