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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물에서는 남주를 줍지 마세요 (30)화 (30/108)

30화

“크흡.”

콧물 먹는 소리에 고개를 들자, 여자의 눈코입이 얼굴 가운데 몰려 있었다. 코를 잔뜩 찡그려 콧등에 주름마저 졌네.

“왜 그런 얼굴이야?”

“어른은 애 앞에서 참는 거거든.”

“잘 참아? 싫은 것도 잘 참아?”

“경우에 따라서?”

그럼 나도 참아주길.

“나도 허락 없이 만지고 싶어.”

그러자 여자가 픽 웃었다.

“이미 허락을 구하고 있잖아. 만져, 얼마든지.”

“…….”

볼에 손을 갖다 대자 손바닥으로 전해져 오는 온기가 따듯하다. 감긴 눈두덩이 위로, 코끝으로, 마지막으로 도톰한 입술도 한번 꾹 눌러봤다.

“풉.”

손바닥 아래서 입술이 웃는 바람에 놀라 손을 뗐다.

조금 전의 잔뜩 찡그린 이상한 표정은 온데간데없고, 눈을 뜬 여자는 방금 제 손에 닿았던 입술로 예쁜 둥근 선을 그렸다.

“다 만졌어?”

“응.”

“그럼 이제 비행기 날려보자. 여기가 몸체야. 여기 잡고 다시 해봐.”

“응.”

몸체를 똑바로 쥐고 다시 종이비행기를 던졌다. 조종사가 바뀐 종이비행기는, 여자가 날렸던 거리보다 더 먼 거리를 활공했다.

복도를 나는 비행기를 좇는 여자의 얼굴 위로 생동감이 피어났다.

“와, 잘했어. 진짜 멀리 날았다. 그치?”

되게 좋아하네. 떨어진 비행기를 집어 다시 날렸다.

-팅.

비행기를 날리며 앞으로 나아가는 자신을, 라이터를 손에 든 여자가 뒤따랐다.

“꼬마야. 천천히 가.”

비행기를 날리다 말고 복도 끝에 서서 여자의 빈손에 손가락을 감았다.

“응?”

계속 전투기와 종이비행기를 구분하지 못하는 양 굴면, 저렇게 다정하게 언제까지고 쳐다봐 주는 걸까?

“아무것도 아니야.”

다시 비행기를 날렸다.

날아오른 비행기가 툭, 바닥이 아닌 계단 위에 떨어졌을 때였다.

-쾅!

무언가 박살 나는 소리에 여자의 손을 꽉 움켜쥐었다.

-쾅! 쾅! 찰그랑, 철컥.

지상으로 나가는 계단 위, 문이 열리더니 빛이 침입했다. 서서히 열리는 문틈으로 들어온 빛이 한 칸 한 칸 천천히 계단을 내려와, 중간에 떨어진 종이비행기를 비췄다.

이내 빛이 아이의 발끝에 닿자, 불에 덴 듯 화들짝 놀란 아이가 내 등 뒤로 몸을 숨겼다.

활짝 열린 문 사이로 삐져나온 남자의 긴 그림자가 보였다.

“데일, 들어와도 돼요.”

그러자 손도끼를 한 손에 쥔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너 도대체 어떻게 된…….”

계단 위에 서서, 언짢은 얼굴로 타박부터 해대던 남자가 모로 고개를 기울였다.

“잠깐, 뒤에 그 작은 건 뭐냐.”

옆으로 살짝 비켜서자, 아이가 나를 따라 움직였다. 경계하는 눈빛을 띤 아이는 데일의 손에 들린 손도끼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급히 종이비행기 한 대를 더 만들었다.

“와, 흰머리 괴물이다! 전투기 들어!”

“전투기 들어?”

“어, 전투기 들어!”

그러자 아이가 쪼르르 나가서 재빨리 떨어진 비행기를 주워왔다.

“괴물을 향해! 공-격!”

“공겨억!”

두 사람이 날린 종이비행기 1호 2호가 각각 데일의 발등에, 그리고 배에 맞은 후 땅에 떨어졌다.

그는 제 몸을 맞고 떨어진 비행기를 보더니, 입 안쪽 살을 씹는 듯싶었다.

“와, 너무 강한 상대다. 멀쩡하네, 어쩌지?”

“너무 강해…….”

데일의 몸에 맞고 앞코가 찌부러진 비행기를 보더니, 날 따라 말을 뱉은 아이가 다시 내 등 뒤로 몸을 감췄다.

“데일, 그 손도끼 좀 안 보이는 데 치워봐요.”

“…….”

순순히 손도끼를 옆으로 내던진 그가 군화로 돌계단을 밟으며 지하로 들어섰다. 아이가 원하는 상황은 아니었던 모양인지, 뒤에서 내 옷깃을 잡아당기는 미약한 힘이 더 세지는 게 느껴졌다.

-바스락.

“으어…….”

“…….”

계단을 내려오던 데일이 종이비행기 2대를 모조리 밟으면서 내려오자, 등 뒤에서 안타까운 신음이 흘렀다.

하, 성격이 참 한결같은 놈이라니까.

“뭐야, 이건.”

데일이 제 군화 밑창에 붙어 납작해진 종이비행기를 들어 올렸다.

“야, 네 뒤에 꼬맹이가 초면에 인상 쓰는데 내가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냐.”

“아, 말을 할 거면 좀 쓸 데 있는 말 중에서 골라봐요.”

“하, 그새 둘이 편 먹었어? 너 잘 선택해야 해. 나야, 저 비리비리해 보이는 애새끼야.”

“어휴, 됐고. 내려와서 벽에 붙어 서봐요. 애가 무서워하니까.”

심기 불편한 기색을 풀풀 풍기긴 했지만 그는 비교적 말을 잘 따랐다. 내려와 복도 벽에 기대선 그가 아이에게 제가 밟아 망가트린 종이비행기를 던졌다.

“자, 선물.”

-툭.

제 발치에 떨어진, 한때 종이비행기였던 그것을 보는 아이의 눈에 대번에 슬픈 기색이 차올랐다.

“잘~ 한다. 잘~ 해. 아주 도움이라곤 하나도 안 되는구나.”

“…….”

“에휴. 꼬마야, 전투기 또 만들어줄까?”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 옆에서 나는 바닥에 쭈그려 종이비행기 3호를 접었다.

“짠. 새 전투기.”

“…….”

“날리고 싶어?”

“응.”

“그럼 내가 한 번만 날릴 테니까 그다음부턴 네가 날려.”

“응.”

나는 계단 위 지상으로 열린 문을 향해 힘차게 비행기를 날렸다. 툭, 의도한 대로 비행기가 문밖 근처에 떨어진 모양이다.

내가 밖을 향해 비행기를 던질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는지, 비행기가 제 시야에서 사라지자 아이가 계단 앞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데일은 벽에 어깨를 기댄 채, 가만히 그 상황을 관조하고 있었다.

“네 차례야. 밖으로 나가서 날리고 싶은 만큼 날려.”

“…….”

“무서워?”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도 전투기가 무서워? 이상하네.”

데일이 밟아 구겨버린 종이비행기 1호를 집어, 나는 아이 앞에 내밀었다.

“네가 말한 전투기, 이렇게 약해. 근데 무서워?”

“……어…… 그게…….”

구겨진 종이 뭉치와 문밖을 번갈아 보던 아이가 이내 계단을 박차고 올랐다.

그 뒤를 따라 계단을 오르자, 종이비행기를 주워 날리는 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내 짐덩이가 또 다른 짐덩이를 주웠다는 생각이 드는데, 맞아?”

“맞아요.”

“너무 당당하게 대답하는 거 아냐?”

“선택지가 없잖아요. 애를 버리고 간다, 라는 선택지가 존재해요? 짜증은 나도 나요. 내가 기대했던 건 이런 게 아니라서.”

일행 후보라며, 기준치 이상의 전투력을 가진 일행을 영입하면 히든 보상도 있다며. 그럼 적어도 조건에 맞는 후보를 소개해 줘야 하는 거 아니야? 저런 어린애라니, 그럴 거면 처음부터 히든 보상이고 뭐고 말을 말았어야지.

종한테 엿 먹은 기분이었다.

“찾던 물건은요?”

“아직. 내일까지만 찾아보게. 오늘은 근처에서 자자.”

“그래요.”

-툭.

종이비행기 3호가 내 발치에 떨어졌다. 그러자 망아지 같은 모습으로 뛰어다니던 아이가 포르르 내 앞에 와 섰다.

“어? 또 눈이네.”

하늘에서 포슬 눈이 날리기 시작했다. 비행기를 집으려다 말고, 아이는 멍한 얼굴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러던 아이가 이내 방금 빠져나왔던 지하 문으로 달려가더니 나를 향해 손짓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건 다 위험한 거랬어. 빨리 이리 와.”

“너 눈 본 적 없어?”

“눈?”

“이거. 지금 하늘에서 내리는 작고 하얀 거.”

“몰라, 이상해. 차가워.”

서서 대화를 듣던 데일이 찌뿌둥한 얼굴로 목을 한 바퀴 돌렸다.

나는 문 앞에 쪼그려 앉아 손바닥을 폈다.

“봐봐. 눈은 무서운 거 아니야.”

손바닥에 내려앉은 눈이 사르륵 녹는 것을 유심히 보던 아이가 나를 따라 손바닥을 폈다.

“사라졌어.”

“눈 무서워?”

“아니.”

“전투기는? 무서워?”

종이비행기 3호는 제 몸 위로 쌓이는 눈을 감당하지 못하고 쭈글쭈글해져 있었다. 그것을 가만히 보던 아이가 대답했다.

“안 무서워.”

“그럼 나가자. 우리랑 가자.”

“…….”

무섭냐는 질문엔 잘만 대답하던 아이는 정작 같이 가자는 질문엔 대답이 없었다.

그렇다면 얘를 뭘로 꾀어야 하지…….

마른침을 삼키며 입술을 깨무는데 내 옆으로 커다란 그림자가 드리웠다. 데일이었다.

“야, 꼬마. 너 여기 친구 있어?”

“…….”

“좋아하는 사람은? 보니까 너 괴롭힌 놈들만 잔뜩이었던 것 같은데 왜 미련 있어? 그놈들한테 애정이라도 생겼어? 맞으면서 사랑을 싹틔우는 타입이야? 애새끼 취향이 싹이 노랗네, 아주.”

“아, 데일!”

“넌 조용히 해. 아니면 너 왜 그렇게 슬픈 얼굴을 하고 있어?”

데일이 쭈그려 앉은 내 옆에 와 똑같이 쭈그려 앉았다. 그리고 여전히 높낮이 없는 목소리로 막말을 갈겨댔다.

“엄마는, 아빠는 어디 있어? 여기 있어? 아니면 너 부모 없어?”

“아 데일, 진짜 애한테 막말할래요!?”

“왜 막말이야. 얘가 여길 뜨려면 부모가 있는지 여부보다 중요한 게 더 있어?”

“……없어. 엄마, 아빠…… 없어.”

취조하듯 몰아치는 질문에 아이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끝내 답을 하고 말았다.

그러자 세 명 사이로 침묵이 감돌았다.

데일은 짐짓 한 톤 쾌활해진 목소리로 다시 말을 꺼냈다.

“됐네, 그럼.”

“되긴 뭐가 돼요, 저기요…….”

“나도 없어서 물어본 건데.”

“…….”

“…….”

“나도 아빠 없어. 엄마는 예전부터 없었고.”

“…….”

“…….”

“아마 얘도 없을걸?”

내게 시선을 고정한 채, 그리 묻는다. 남은 가족이 없는 것으로 되어 있는 나는 어떠한 대답도 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봤지? 우리 부모 없는 인간들 모임이야. 너도 껴야 돼.”

더 이상 잔소리할 힘도 없어서 가만히 있으려니까, 남자의 말이 묘하게 설득력 있었다.

“차라리 애를 설득하려면 아빠처럼 대해줄 테니 같이 가자고 하든가, 그런 말이 낫지 않아요?”

그러자 데일은 나를 개무시하는 표정으로 콧방귀를 뀌었다.

“내가 얘 아빠야? 야, 꼬마. 내가 네 아빠야?”

“…….”

아이는 도리도리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빠면 아빠고, 아빠가 아니면 아닌 거지. 아빠 같은? 아빠 같은 게 어디 있냐, 세상에.”

“아, 열 뻗쳐.”

“킥, 많이 뻗쳐라. 가자.”

말이 끝남과 동시에 데일은 허락도 없이 아이의 몸을 멋대로 들어 올렸다. 아이를 한 팔로 안아 든 그가 빈 한 손으로 코를 틀어막았다.

“야, 너 냄새 죽인다. 와.”

“데일, 애가 아직 간다고 대답도 안 했는데.”

그러자 그가 휙 나를 향해 돌았다. 어쩐지 안겨 있는 아이의 표정이 그리 거북해 보이진 않았다.

“그럼 애가 거절하면, 예 그러십쇼, 여기 계십쇼, 하고 두고 갈 거야? 애를 버리고 간다는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

“안 그러냐? 아, 냄새.”

다시 코를 쥐어짜듯 막은 데일이 아이를 향해 물었다.

“꼬마야, 너 이름이 뭐야.”

“짐승 새끼.”

“…….”

“…….”

오늘 여러 번 할 말을 잃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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