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아이야, 무슨 일이 있었니.
이 도구들을 네게 사용했어?
여기서 고문당했어?
왜 입고 있는 옷은 죄수복이야. 사소한 이유로 너 정도 어린아이를 가두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부모님은 어디에 계시니?
이 중에서 아이가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은 뭐가 있을까.
“있잖아, 밥은 먹었니? 너 마지막으로 밥 먹은 게 언제야.”
나뒹구는 쓰레기 중 음식물 포장지 같은 것들이 보이긴 하는데, 먹을 만한 음식은 보이지 않았다. 이곳에 오래 갇혀 있었다면 무언가를 먹긴 했다는 소린데.
여러 가지가 궁금한 건 나뿐인지, 아이는 내 물음에 답해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이가 엉덩이를 질질 끌며, 공을 안고 바닥을 기듯 내게서 거리를 벌렸다.
어서 대화를 트고 싶은데.
“그 공, 소중한 건가 보네.”
“…….”
“걔 이름이 뭐야.”
“…….”
어떤 식으로든 대화의 물꼬를 트고 싶었다.
이맘때의 꼬맹이들이란, 제 공책에도 이름 붙여주고 제 책가방에 달린 키링에도 이름을 붙여주는 존재들이 아닌가.
“안 알려주면 내가 맞추지 뭐.”
“…….”
“윌슨인가?”
“…….”
“닥터 팀버랜드라든가.”
“…….”
“이것도 아냐? 그럼…….”
아이의 입이 무언가를 뱉어내고 싶은 듯, 오물거리기 시작했다.
“워커 호킨스? 좋은 이름은 다 말했는데 아직도 없는 걸 보면 넌 작명 센스가 없는 앤가 봐.”
“……인데.”
“뭐?”
“공. 그냥 공……이야.”
“아…… 이름을 딱히 지어주진 않았구나. 그럴 수도 있지.”
그거야 뭐 아무렴 어떠니, 네가 내 질문에 대답을 해버렸는데, 라는 생각으로 고개를 끄덕이는데 이번엔 아이가 먼저 말을 붙여왔다.
“이거 이름…… 공 아니야?”
“어…… 원래 이름은 공인데, 그건 만인의 공일 때의 경우고. 내 공이 되면 특별대우 해줘야 하니까 새로운 이름을 붙여줄 수도 있지?”
“……?”
아이가 한 팔로 옆구리에 공을 감은 채로 일어섰다. 방 한구석으로 이동했다가 다시 내 앞에 선 아이의 한 손에는 얼핏 보면 보석함처럼 보이는 상자가 들려 있었다.
오르골인가?
아이가 의문의 상자를 바닥에 내려놓더니.
“공.”
하고 발음했다.
초조하게 무언가를 기다리는 아이의 눈빛을 보며, 나도 꼬맹이가 기다리는 무언가를 함께 기다렸다.
그러자.
“어…….”
상자에서 허공으로 뿜어져 나온 것은 푸른 빛이 도는 홀로그램 영상이었다. 동그란 공 이미지 밑으로 ‘공’이란 단어가 떠 있었다.
아이가 제가 든 실제 공과 홀로그램 영상에 뜬 공 이미지를 열심히 번갈아 쳐다봤다.
“공……. 공 맞는데.”
“…….”
“공…….”
“그러네, 맞아. 똑똑하구나.”
“…….”
똑똑하다는 말 정도는 알아들을 나이로 보이는데. 어쩐지 내게서 똑똑하다는 말을 들은 아이의 표정엔 어색한 안도감이 서렸다.
“똑똑해?”
“응.”
“똑똑해. 똑똑하면 안 맞아도 돼. 똑똑해야 해.”
“…….”
마음이 묵직하게 아래로 가라앉았다.
슬픈 얼굴을 보이지 말자. 별것 아닌 것처럼 웃자.
아이의 눈은 다 볼 수 있으니까. 보고 다 눈치채 버린다. 내가 저를 불쌍히 여기고 있다는 것을.
“너 혼자야? 다른 사람은 없어?”
도리도리 고개를 젓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 아이가 도도도 달려서 방을 빠져나갔다.
나는 일어서서 조용히 그 뒤를 따랐다.
“혼자 아냐. 여기 사람. 이름은 맥스.”
아이는 문 옆에, 제 배꼽을 향해 고개를 처박은 시체를 가리켰다.
“그래, 맥스랑 함께였구나.”
“맥스 말고 다른 사람도 있어. 어디냐면…….”
어두컴컴한 복도 쪽으로 뛰어가려던 아이의 팔을 잡아채 돌려세웠다. 나는 그 앞에 쪼그려 앉았다. 아이가 조금 놀란 듯해 바로 손을 풀고 입을 뗐다.
“다른 사람들도 맥스처럼 언제부턴가 말을 안 해?”
“응.”
“그렇구나. 그럼 혹시 다른 사람 중에 네가 좋아하는 사람 있어? 음…… 부모님이라든가.”
내 질문에 아이는 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은 궁금하지 않아. 나갈까, 우리?”
“나가? 어디로?”
“어디긴, 저기 문…….”
어둠에 잠긴 긴 복도를 바라보았다.
문이 있다면 저쪽일 거라고 생각만 했지, 확인은 안 했지, 참.
“저기에 있는 문?”
“어, 문.”
아이의 반응을 보니 역시 출입구가 저쪽에 있나 보다.
“나가자. 여기는 너무 어둡고……. 나가서 씻고 새 옷도 구해서 갈아입을까?”
“새 옷…….”
“응, 새 옷. 좋지?”
아이가 고개를 숙여 제 겨드랑이를 보더니 대뜸 나를 향해 팔을 번쩍 들어 올렸다.
“여기 구멍 났어!!”
겨드랑이가 마치 제일 자신 있는 부위인 양 들이대는 아이 덕에, 나는 터지려는 헛웃음을 조용히 삼켜야 했다.
“응, 그러네. 겨드랑이 다 보이네.”
“근데 안 돼. 나가면 안 돼.”
“왜? 같이 나가면 겨드랑이 막힌 옷 구해줄 건데, 갈아입고 싶지 않아?”
그러자 아이는 오작동이 난 로봇처럼 고개를 좌우로 까닥거렸다.
“잘 모르겠어? 아니면 겨드랑이를 그대로 노출하고 싶은 거니?”
아, 노출이란 단어는 좀 어려웠으려나.
“노출이 뭐냐면.”
“밖에 그거 있잖아. 그래서 안 돼.”
“그거?”
“그…… 그…….”
떠오르지 않나 보다. 아이는 발을 동동 굴렀다.
“잠깐만.”
방 안쪽으로 사라졌던 아이가 들고 나온 것은 아까의 그 상자였다. 이번에도 아이는 그것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전투기.”
전투기란 단어를 듣고 상자가 보여준 홀로그램 영상은, 몇 대의 전투기가 지상을 폭격해 지역을 초토화시키는 장면이었다.
아이가 천장으로 고개를 들더니, 내게 속삭였다.
“밖으로 나가면 안 돼. 지붕 아래가 안전하댔어.”
“음…….”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쓴 입맛을 다시던 나는 벽에 세워둔 종이봉투를 가져와 안에서 종이를 한 장 꺼냈다.
“이거 봐봐.”
종이접기 오랜만에 해보네.
나는 바닥에 종이를 놓고 꾹꾹 눌러가며 종이를 접었다. 내 손에 들린 종이비행기를 아이는 신기하단 눈으로 보고 있었다.
“이게 뭐 같아?”
“…….”
그때까지도 떠 있던 홀로그램 영상엔 전투기 한 대가 천천히 360도 회전 중이었다.
영상과 종이비행기 사이에서 아이의 눈이 요동쳤다.
“엄청 작은 전투기?”
“응. 맞았어, 전투기. 봐봐.”
긴 복도를 향해 종이비행기를 날렸다. 살짝 벌어진 입 모양을 하고서, 아이는 복도를 날아가는 종이비행기의 꽁무니를 홀린 듯 쳐다보다가,
“어…….”
따라가란 말도 하지 않았는데 종이비행기를 향해 달려 나갔다.
-툭.
짧은 활공을 마친 종이비행기가 바닥에 툭 떨어졌다. 껌벅거리던 전등 아래였다.
어느새 그 옆에 선 아이는, 이제는 움직이지 않는 종이비행기를 유심히 바라보다 날 쳐다봤다.
❅
“해봐.”
아이는 제게 권유하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서, 만져봐.”
귀를 간질이는 목소리가 보드랍고 연하다.
“괜찮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방금 내가 한 것처럼 잡아서 날려봐.”
“…….”
잡아서 날려보고 싶다. 덕분에 마음이 쿵쿵거렸다.
근데 그래도 되는 걸까. 내 손이 닿아도 괜찮나?
“짐승 새끼가 어디서 손을 대!”
작은 손을 펴 손바닥을 바라봤다.
멋대로 손을 뻗었다가 손바닥에 붉은 줄이 가도록 맞았었는데.
“…….”
제 손과 비행기를 번갈아 바라보던 아이는 다시금 여자의 얼굴로 시선을 옮겼다.
‘잡아서 날려보기를 바라고 있어.’
왜? 왜 자기가 만들어낸 물건을 내가 만지길 바랄까.
여자가 손으로 꾹꾹 눌러 접은 종이비행기는 접힌 선이 너무 반듯하니 예뻤고, 표정은 감추려고 애를 쓰는 중이었지만 숨소리에선 다 티가 났다. 긴장하고 있다는 게.
‘긴장까지 할 정도로 내가 이걸 전투기로 여겼으면 하는 모습이.’
어쩐지 매우 바보 같지만 싫지 않았다.
아이는 종이비행기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여자가 한 것처럼 손을 뒤로 뺐다가 휙, 종이비행기를 날렸다.
-툭.
비행기가 여자가 날린 것처럼 멀리 날아가지 못하고 발밑으로 추락했다.
“너 전투기 어디 잡고 날렸어?”
여자가 다가와 제 옆에 쪼그려 앉는다.
“여기.”
종이비행기의 우측 날개를 가리키자 여자는 귀엽다는 듯이 웃었다. 껌벅거리는 전등 아래, 쪼그려 앉아 제게 시선을 맞춘 여자에게서 기분 좋은 냄새가 났다.
‘바깥 냄새인가.’
새벽녘이면 철창을 타고 불어오던 기꺼운 냄새들. 숨통을 트이게 해주던 맑은 공기와 젖은 풀 냄새 비슷한 류가 여자에게서 풍겼다.
더 짙게 맡고 싶지만, 철창이 너무 높아서 항상 발꿈치를 드는 것으로 만족했던 향.
가까이 가고 싶다.
그 냄새가 반갑고 기꺼워, 무의식적으로 여자의 품속으로 파고들려다가 아이는 행동을 멈췄다.
‘나랑 닿으면 싫어할 텐데.’
싫어하는 걸 넘어서 때릴지도 몰라. 반복됐던 익숙한 패턴에 몸이 굳고 눈은 질끈 감겼다.
‘…….’
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 이상하다 생각이 드는 무렵에, 머리 위로 따듯한 무언가가 내려앉는다.
“허락 없이 만져서 미안해. 근데 지금 내 기분이 너무 이러고 싶은 기분이라.”
조심스럽게 살살 제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손길에 어쩐지 손가락, 발가락을 가만두기가 힘들었다.
이 사람에게 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