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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물에서는 남주를 줍지 마세요 (10)화 (10/108)

10화

나는 달빛이 비추는 손가락을 맞잡고 꼬물거렸다.

“일행이 있었어. 그날 마침 먹을 게 다 떨어져서 남자들 몇이 함께 음식을 구해오려고 밖을 나섰지. 난 어린아이를 한 명 데리고 있었는데 당연히 밖에 나가는 건 위험하니까 애를 은신처에 있는 사람들에게 맡기고 나갔어.”

“…….”

“근처 마을은 이미 다 쓸어갔던 터라 그날은 하필 조금 멀리까지 나가야 했어. 필요한 물건들을 다 구해서 돌아왔는데 은신처가 난장판이었어. 사냥꾼이 들이닥쳤던 거야.”

남자의 목소리가 점점 짙은 어둠 속으로 잠겨 들었다.

“가뜩이나 물자가 부족했는데 그나마 있던 것들도 다 강탈당하고……. 더 큰 고통은 은신처를 지키던 일행이 몇 죽었다는 사실이었어. 그리고 아이의 이름을 불렀는데…….”

그가 말을 망설이던 그 순간에 나는 숨을 참았다.

“답이 없었어. 그때 누군가가 조심스레 나서서 말하더라고. 사냥꾼들에게 아이가…… 끌려간 것 같다고. 근데 그건…… 차마 죽었다는 표현을 쓰기가 힘들었던 거야. 사실 뻔한 이야기잖아.”

“…….”

“이제 돈은 가치가 없으니까. 예전이라면 돈이라도 받아내기 위해서 아이를 살려둘 가능성이 있었다면 지금은……. 지금 같은 세상에 아이의 목숨은 아무런 가치가 없지. 근데도 참을 수가 없더라고. 시체라도 내 눈으로 봐야겠다 싶었어.”

남자가 제 입가를 손으로 덮었다. 어두워 잘 보이지 않았지만, 제 입가에 어린 자조의 빛을 감추려는 것 같았다.

“그래서 만류하는 일행을 두고 몰래 무리를 나왔어. 나와서 사냥꾼들에게 갔지. 다행히 내 얼굴은 알려지지 않은 터라…… 힘 좋은 남자는 쓸데가 많으니까, 바짝 엎드리고 들어가니까 받아주더라고. 그래서 거기서 지내면서 아이가 어떻게 된 건지 정보를 모으고 있었는데 오늘 낮에 네 무전이 온 거야.”

아이를 잃은 자의 담담한 서술에 가슴이 아리게 조여왔다.

그랬던 거구나. 그래서 그 동료들이랑…….

“널 보는 순간 고민했어. 아직 아이의 행방을 찾을 만한 정보를 모으지 못했으니까. 네가 그놈들에게 유린당하는 모습을 못 본 척 지나가기만 하면 나는 사냥꾼 무리에 좀 더 머물면서 아이에 관한 정보를 더 찾아볼 수 있잖아. 처음엔 그래야지 했는데…….”

“…….”

“두려움에 떠는 네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생각하니까 내가 좀 우스운 새끼더라고. 시체를 찾기 위해서 눈앞에서 또 시체가 만들어지는 걸 지켜봐야 하나? 뭐…… 대략적인 상황 설명은 여기까지야.”

얘기를 듣는 동안 목이 막혔길래 나는 꿀꺽 침을 삼켰다. 꿀꺽 삼킨 침과 함께 묵직한 무언가가 안으로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널 죽이고 싶다가 아니라, 정확히는 널 죽여야만 하는 이유가 95퍼센트 정도지.”

남자가 했던 말을 기억해 냈다. 그래서 그때 그런 말을 했던 거구나.

“나 하나 물어봐도 돼요?”

“말해.”

“왜 날 버렸다가 다시 돌아왔어요?”

달빛이 조금은 저쪽을 비춰주길 바랐는데.

어둠 속에서 들려온 것은 얕고 나지막한 한숨이었다. 그 끝에서 그가 답을 꺼냈다.

“당연히 죽을 거 같아서지.”

“너무 직설적으로 물어서 미안한데, 처음엔 죽어도 상관없으니까 버린 거잖아요. 근데 왜 바뀐 거냐구요.”

“방금 애를 잃었다고 고백한 사람한테 물고 늘어지는 거 봐라. 너야말로 배려심을 길바닥에 버리고 온 거 아냐?”

“…….”

아무 대꾸 없이 말을 기다렸더니 이번에도 남자는 끝에 가서 답을 내놨다.

“잃어버리는 기분은 언제 겪어도 X 같은 거야.”

자신에게 아무것도 아닌 자가 하는 위로의 말 같은 건, 아무런 힘도 가지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간결한 인사의 말만 전했다.

“말해줘서 고마워요.”

“그래.”

“…….”

“그러니까 고마운 줄 알면 짐 같은 건 되지 마. 바로 버릴 거니까.”

성격대로라면 왁 했어야 하는데 조용히 잠자코 있었다. 까부는 것도 분위기를 봐가면서 해야지.

“내일도 이동할 거야. 일행이 이동했을 거라 만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가봐야지.”

“네.”

“자.”

“그래요.”

그렇게 우리는 서로 돌아누웠다.

등 뒤에서 부스럭부스럭, 남자가 잠에 들지 못하고 뒤척이는 소리가 들렸다.

아…… 배긴다 배겨.

다락의 나무 바닥에 누워 자는 게 영 적응이 되질 않아 나 역시 몸을 뒤척였다.

“그런데 있잖아.”

“??”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돌아눕자, 그의 몸이 이쪽을 향해 있었다.

“왜 동생이 해님이고 오빠가 달이 된 거야?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어…… 그건.”

전래동화에 그 이유는 안 나왔던 거 같은데.

“동화가 그 이유도 설명하고 있진 않아서.”

“…….”

“이건 내 생각인데요. 그건 하느님이 정해준 게 아니라 하느님은 그냥 너희 둘이 해랑 달이랑 맡아서 해라, 했는데, 오빠가 동생을 걱정해서 더 따듯한 곳에 보내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

“밤은 이렇게나 어둡고 춥고 외로우니까, 달은 내가 하고 동생은 환하고 따듯한 곳에 보내야지 하면서.”

“…….”

“그럼 동생은 그런 오빠 마음도 모르고 그러는 거죠. ‘아 오빠는! 달이 더 예쁜데, 내가 달 할래!’ 그러면 오빠가 동생을 어르고 달래서 해를 시킨 게 아닐까요.”

“그랬을 거 같아.”

남자의 실루엣을 보아 몸은 이쪽을 향해 누워 있는데, 그가 눈을 뜨고 있는지는 어두워서 알 길이 없었다.

잠깐 그쪽을 응시하다 나는 천장을 향해 돌아누웠다.

잠깐의 어색함을 지워보자고 한 이야기였는데 머릿속에서 동화가 떠나질 않았다.

오누이네 어머니는 네다섯 고개를 넘다가 떡이 떨어져서 잡아먹혔는데, 나는 이곳에서 몇 고개를 넘을 수 있을까.

10고개? 100고개?

어머니는 떨어져 가는 떡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떡이 떨어져 가는데 이번 고개에서는 생존할 수 있을까? 다음 고개에서도 호랑이가 있겠지? 떡이 없는데…… 그럼 그다음, 그다음은 어쩌지.

그 상황이 마치 앞으로 펼쳐질 내 앞날 같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은 생존할 수 있을까.

이제는 음식을 구하기가 어려운데, 내일은 모래는.

나는 읽지도 않은 이 소설의 엔딩을 알고 있었다.

이곳에서 며칠이나 버틸 수 있을까. 안전한 장소를 찾아 생존할 수 있을까?

엔딩까지 생존하더라도 결말을 바꿀 수는 있고? 주인공들도 다 죽었는데 나는 과연.

또한 엔딩을 보면 내가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는 걸까.

나는 몇 고개를 넘고 또 넘어야 그리운 사람을 다시 볼 수 있게 되는 걸까.

어쩌면 남자의 말이 맞을지도 몰랐다. 어머니는 결국 죽지 않았나.

그러니 이 동화는 해피엔딩이 아닐지도 모른다.

아이들에게 있어 중요한 건, 어쩌면 생존보다도 어머니를 다시 보는 일이었을지도 모르니까.

“…….”

괜히 불안을 떨쳐내려 누운 채로 기지개를 쭉 켰다.

이 세상에 넘어온 첫날 밤이 그렇게 깊어가고 있었다.

‘몇 시지.’

눈을 떴을 땐 어슴푸레했던 다락방이 조금 더 밝아져 있었다.

커튼을 살짝 들춰보니 곧 동틀 녘인 듯싶었다. 하늘이 물에 희석된 분홍빛이었다.

푹 자야 되는데 얼마 자지도 못하고 깨버리다니.

슬며시 다시 누우려는데, 반대쪽에서 끙끙대는 소리가 들렸다. 상대가 깨지 않게 조심히 일어나 다가가니 남자가 앓는 소리를 내며 자꾸만 인상을 써대고 있었다.

어디 아픈가 싶어서 이마를 짚어보니 딱히 열이 있는 것 같진 않았다.

‘아, 추워서 그런 거네.’

낡은 나무 바닥은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뒤틀려, 나무 조각들 사이 사이로 틈이 벌어져 있었다.

손바닥을 대보니 바닥에서 올라오는 한기가 장난 없었다.

나는 패딩을 입고 이불까지 뒤집어쓰고 잔 터라 몰랐는데, 남자가 추워서 저도 모르게 앓는 소리를 낼 만했다.

‘완전 노 양심이었네, 나.’

하나밖에 없는 이불을 가져다 남자의 몸 위를 덮었다. 이불을 덮어주고 나니 그나마 좀 앓는 소리가 작아진 듯도 하고.

‘안 깨네.’

올라간 눈꼬리에 흉터에. 눈 뜨고 있을 땐 마냥 차갑고 강한 인상으로 보였는데, 눈 꼭 감고 자는 얼굴을 보고 있으려니까 남자가 조금은 순해 보였다.

“으.”

아, 또 뒤척거린다.

뒤척거리는 바람에 덮어 놓은 이불이 아래로 흘러내렸다.

나는 아예 자는 얼굴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남자의 얼굴을 한동안 내려다보았다.

“이 자식아, 아프지 말아라. 알겠냐?”

조금 더 얼굴을 가까이하고 속삭이듯 혼잣말을 지껄였다.

“그래야 내가 안전하지, 인마.”

약탈자들이 나타났을 때 이 사람이 아픈 게 더 불리한가, 아니면 내가 아픈 게 더 불리한가를 따지면 답이 나왔다.

이놈이 아픈 건 곧 내 손해, 아니 생명의 위협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았다.

이 남자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 씀씀이라기보다, 이 자식이 아픈 게 내게 좋지 않다는 철저한 계산의 결과였다.

왜냐하면 이 남자는.

「데일 캐드. 27세. 은발에 벽안.

세간에 알려진 신분은 작은 공국의 대령이나 진짜 신분은 숨기고 있다. 아이 한 명을 데리고 다닌다.

콧등에 가로로 난 흉터가 있다. 자기 사람은 철저히 감싸는 편이나 그 이외엔 이용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로 사람을 구분한다.」

이 피폐 소설의 남주 중 한 명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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