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
“줘.”
남자가 다락 입구를 통해 아래로 손을 뻗었다. 나는 들고 있던 이불 한 채와 두꺼운 겨울용 커튼을 그에게 건넸다.
그는 필요한 물건을 건네받고서 다락 안쪽으로 쏙 사라진 후 감감무소식이었다.
‘계단이 가파르니까 자, 내 손을 잡고 올라오도록 해.’
같은 개쓸모 없는 상상을 나는 왜 했을까.
계단을 통해 올라선 다락은 남자의 설명대로였다. 천장은 지붕의 모양을 따라 비스듬했고, 다락방의 한가운데 큰 통창이 나 있었다.
그리고 막힌 곳 없이 뚫려 있는 하나의 큰 공간인데다가 유리창까지 커다래서 다락은 1, 2층보다도 더 추웠다. 춥기만 하면 다행이게, 발을 뗄 때마다 바닥에서 먼지가 일었다.
느껴지는 쌀쌀함에 팔뚝을 문지르며 나는 통창이 있는 곳으로 다가섰다.
“와, 달님 크다.”
오늘이 유난히 그런 건지, 이곳의 달은 원래 그런 건지. 통창 너머로 떠 있는 달은 정말 크고 밝았다.
“달보고 님이라고 하는 사람은 처음 보네.”
이불을 옆구리에 끼고 방구석으로 걸어가며 그가 답했다.
“달이 사람이야? 님이라고 하게.”
남자는 이쪽을 보지도 않고, 바닥에 이불을 깔며 말했다.
“달 사람인데. 해님 달님 몰라요?”
“몰라.”
그가 한국 동화를 모르는 게 당연했지만 나는 그를 좀 약 올리고 싶어졌다. 그래서 은근히 깔보는 투로 말을 뱉었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요. 유명한 동화잖아요.”
“글쎄. 처음 들어.”
“왜 모르지 그걸, 바본가.”
“그래. 그렇다고 치고 이제 그만 여기 누워.”
-톡톡.
그가 다 깐 이불을 손바닥으로 두어 번 두드렸다.
무슨 의미야 저거?
흡사 강아지 부르듯 이리 오라는 저 손동작에 내 눈이 커진 건 당연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뻘쭘하게 마른 입술만 축이고 있자, 그가 재차 입을 열었다.
“와서 자라고. 안 피곤해?”
피곤은 하죠. 당연히 피곤은 한데 제가 왜 그쪽 이불에서 자죠?
“…….”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자, 남자가 몸을 일으켰다. 터벅터벅 거침없는 걸음으로 다가온 그가.
“왁!”
“엄마얏!”
크게 고함치며 팔을 뻗는 바람에 깜짝 놀란 내가 있는 대로 몸을 움츠렸다.
남자는 그런 내 모습이 우스운지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꼭 짝 괴롭히고 좋아하는 초등학생 같은 미소였다.
다 큰 어른이 할 짓이 없어서 어이구, 증말.
“너 무슨 오해를 하는 거야.”
“…….”
“관심 없어 나.”
“…….”
“여기 춥잖아. 여기서 열나는 거 나랑 너 말고 더 있어? 너 무능력 하잖아. 생존에 도움 되는 능력 뭐 하나라도 있어? 난로 역할이라도 해서 도움이 되어야 하지 않겠어?”
저 살인 눈덩이 만들 수 있는데요, 라고 답하고 싶지만 그건 튜토리얼 동안만 주어진 능력이니까.
결국 아무 말도 못 하고 불만스러운 얼굴로 가만히 있었다.
“그래. 무능력한 데다 고집스러운 여자분, 가서 편안히 주무세요. 그렇게 싫으면 난 여기서 잘 테니까.”
“…….”
정말? 사실인가 싶어 눈을 들어 올렸다.
남자가 포기했다는 얼굴로 빙글빙글 웃고 있었다.
“자, 빨리. 샤라랑 뾰로롱~ 어서 가세요.”
하, 내가 망할 샤라랑을 왜 해가지고.
일어나지 않고 더 버티면, 그 망할 샤라랑 뿅을 또 하면서 발로 차 이불 쪽으로 떠밀 거 같은 분위기였다.
결국 나는 일어나 슬금슬금 이불을 깔아둔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벽에 기대어, 꼬물거리며 이불 속으로 팔과 다리를 밀어 넣고 나니 따스한 온기가 몸을 감쌌다.
남자는 다시 일어나 아래서 가져온 커튼을 통창에다가 달기 시작했다.
“커튼…… 안 달면 안 되겠죠?”
답을 알면서 물었다. 주위에 이층집이 이곳만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불을 켜지 않아서 과연 저 멀리서 보일까 싶었지만, 안전하려면 확실히 해두는 게 좋을 테지.
“안 돼.”
예상했던 대답이었고, 그래서 나는 그의 거절에 쉽게 수긍했다.
남자는 조용히 커튼을 달아나갔다. 나는 커튼을 다는 그의 옆모습을 순순히 보다가 이야길 꺼냈다.
길어져 가는 침묵이 어색했기 때문이었으리라.
“그 얘기 해줄까요?”
“뭘.”
“아까 그 동화요. 해님 달님. 해와 달이 된 오누이요.”
“……그래.”
“흠흠.”
맛깔스럽게 이야길 빚어내기 위해 나는 목소리부터 가다듬었다.
“옛날 옛적에, 아주 깊은 산속에 홀어머니와 오누이가 살았어요. 그 집은 어머니가 장터에 떡…… 아니, 쿠키를 내다 파는 일로 생계를 이어나갔는데, 되게 가난해서 하루라도 일을 안 하면 안 되는 정도였어요.”
“나 슬픈 이야기 싫어해.”
남자가 이야기의 초장부터 초를 쳤다.
“후…… 마무리는 해피엔딩, 오케? 좀 들어봐요.”
“…….”
“근데 장터에 가려면 이 어머니가 깊은 고개를 몇 번이나 넘어가야 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쿠키를 내다 팔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가 첫 번째 고개에서 호랑이를 만난 거죠.”
“…….”
“호랑이가 쿠키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그러니까 이 엄마가 어떡해, 살아서 아이들한테 가야 할 거 아니에요? 그래서 옜다, 이 호랑이 새끼야, 하고 쿠키를 준 거지. 근데 이 호랑이가 싸패 호랑이였던 거.”
싸패 호랑이라는 말에 호기심이 생겼는지 남자가 이쪽을 힐끗했다.
호오~ 요놈 요거 궁금해하는 거 봐라?
흡족해진 나는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 호랑이가 어떻게 했냐면 고개를 넘을 때마다 엄마보다 미리 가서 대기 탄 후에, 엄마가 나타나면 또 쿠키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이 지X. 와~ 돌지. 근데 어떡해? 아이들한테 가야 하는데, 달란 대로 줬지.”
“…….”
“근데 이 호랑이가 지가 쿠키를 다 처먹고 나서 쿠키가 없으니까 어떻게 했냐, 엄마도 잡아먹은 거.”
감정 이입을 하기 시작했는지 남자의 커튼 다는 속도는 조금 느려져 있었다.
그치? 재밌지? 한국 전래동화가 얼마나 다이나믹한데.
“근데도 호랑이는 배가 덜 차서 아이들까지 잡아먹으려고 엄마 옷으로 갈아입고 그 집을 찾아간 거죠. 발소리가 들리니까 엄마가 온 줄 알고 여동생은 막 뛰어나가려는데, 나이 몇 살 더 먹었다고 오빠는 판단력이 좀 있던 거지. 그래서 오빠가 호랑이한테 세 가지 질문을 하거든요.
‘엄마 목소리가 왜 그래? 손은 왜 그래? 그리구 왜 이렇게 늦게 왔어?’
그래서 호랑이가 대답을 하는데, 아, 요 오빠 놈이 아주 기똥차거든. 느낌 온 거지. 아, 저거 저거 우리 엄마 아니다. 그래서 여동생 손을 잡고 뒷문으로 나간단 말이에요.”
“어.”
남자가 저도 모르게 대답을 해놓고는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남매가 나무 위로 도망갔는데, 호랑이가 처음엔 그걸 못 찾다가 나무 옆에 있는 우물을 내려다보니까 글쎄, 거기 오누이가 올라가 있는 게 딱 비친 거지.”
그가 안타까운지 후우, 하고 콧김을 내뿜었다.
“호랑이가 ‘얘들아~ 거긴 어떻게 올라갔니?’ 하니까 오빠가 ‘손에 참기름이나 발라, 이 호랑이야.’ 그런 거지. 그랬더니 어떻게 돼? 나무에 오르긴커녕 기름 때문에 주룩주룩 미끄러지네?”
“…….”
“근데 또 여동생은 그 모습이 너무 웃겼던 거야.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너 도끼 몰라?’ 이렇게 말을 해버린 거. 오빠가 순간 놀라서 여동생 입을 틀어막았는데 호랑이는 뭘 해? 이미 도끼 들고 와서 나무를 막 퍽퍽 찍으면서 올라오는 거지. 소름.”
“…….”
“그래서 오누이가 하늘에 빌었어요. ‘하느님 구해주시려면 동아줄을 내려주시고, 그렇지 않으면 썩은 동아줄을 내려주세요.’ 그랬더니 하늘에서 뭐가 내려왔겠어요?”
“동아줄?”
“그렇지, 썩은 동아줄이면 어린이들 들고 일어나지.”
남자가 동의한다는 투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결말은 동아줄이 내려와서 오누이가 그걸 타고 하늘로 올라갔고, 동생은 해님이 되고 오빠는 달님이 되었다, 라는 이야기입니다. 재밌죠?”
고개를 끄덕이던 남자가 갑작스레 질문을 던졌다.
“근데 해피엔딩이라며. 엄마는 잡아먹혔잖아.”
“그렇게 다 따지면 인생에 해피엔딩이 어디 있어요? 적당히 합시다?”
“…….”
꼴을 보니 완전히 납득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남자는 그런대로 이해했다는 반응이었다.
그가 커튼의 마지막 부분을 달며 조용히 읊조렸다.
“재밌고 이색적인 동화네. 아이를 찾게 되면 꼭 들려줘야겠어.”
결혼을 일찍 하신 분이구나, 라는 생각을 먼저 했다가 남자의 말에서 그가 지금 아이를 잃어버린 상황인 것을 나는 깨닫고 말았다.
이럴 때가 나는 가장 어렵다. 무엇으로도 위로받을 수 없는, 예를 들면 지금같이 아이를 잃어버린 상황의 부모 앞에서 무언가 위로의 말을 건네야만 할 것 같은 때가.
결국 나는 눈동자만 도록도록 굴리다가 그 어떤 위로의 말도 꺼내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
“…….”
그가 커튼으로 샐 틈 없이 창을 막은 덕분에 다락은 숨 막히도록 어두워졌다. 다시 찾아든 침묵 속에 어둡기까지 하니 영 가슴이 답답했다.
나는 커튼의 끝부분을 살짝 잡아 뜯으며 그의 눈치를 살폈다.
“눈치를 보면서까지 뜯고 싶어?”
“아주 조금만요. 너무 깜깜하면 잠을 잘 못 자서…….”
“……마음대로 해.”
달빛이 뜯어낸 부분으로 비집고 들어와 내가 덮은 이불 위를 밝혔다.
반면 남자 쪽은 꽉 막혀 있어서 깜깜하기가 깊은 동굴 같았다.
반대편 벽에 비스듬히 등을 기대고 앉은 그가 이쪽을 보고 있는 건지, 아니면 눈을 감고 있는 건지. 남자의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다.
“낮에…….”
어둠 속에서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목적지가 어디인지 물었잖아.”
드디어 남자가 무언가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해주려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