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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물에서는 남주를 줍지 마세요 (7)화 (7/108)

7화

난데없이 뜬 직업 선택이라는 단어.

모르는 이들은 당황했겠지만 난 아니다. 작품소개 속 헌터물이라는 키워드를 기억하기 때문에.

이건 헌터라 불리는 각성자들이 존재하는 소설이었다.

내게도 일어날 줄은 몰랐지만 잘된 일이었다. 이 망할 세계관에서 생존하기 위해 각성보다 좋은 일은 없으니까.

문제는.

“하필 지금 헌터로 각성하다니.”

각성은 두 팔 벌려 환영할 일이었지만 타이밍이 문제였다. 편안하고 여유로운 상태일 때 직업 선택창이 떴으면 좋았잖아?

“헌터? 너 각성했어?”

내 혼잣말을 들은 남자가 옆 차량을 견제하다 말고 고개를 돌려 물었다.

“뭐야, 알아요?”

“알지. 나도 각성자니까.”

아하?

“직업 선택했어?”

“아직이요.”

-탕탕.

이번에 날아온 총알은 차 보닛에 가 박혔다. 남자가 고개를 숙였다 들며 총알처럼 빠르게 말을 이었다.

“그럼 마법 쓰는 쪽은 무조건 하지 마. 무조건 물리 계열 해. 마법 말고 무기 특화 직업.”

“알겠어요. 어…… 그러니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헌터 선배가 저렇게 강하게 말하는 덴 뭔가 이유가 있겠지.

무기 특화, 무기 특화, 무…….

“저기요!”

“왜!”

직업 선택지에 그런 직업이 없는데요.

주어진 선택지를 아무리 살펴보아도 물리 계열로 보이는 직업은 존재하지 않았다.

“선택지에 물리 직업이 없어요.”

“그럴 리가. 그럼 뭐가 있는데.”

“어, 그게…….”

선택란은 아주 간결했다. 선택지가 단 한 개밖에 없었으니까.

“조, 종의 요정이요.”

“종?”

나와 그의 눈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남자의 눈동자 위로 물음표를 띄운 내 얼굴이 비쳐 보였다.

그리고 남자의 뒤로는 사이드카에 올라탄 운전자가 입으로 수류탄 핀을 뽑는 중이었다.

놈이 안전핀이 뽑힌 수류탄을 우리가 탄 차 안으로 집어넣으려 팔을 뻗고 있었다.

“잡아요!!”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덕분에 수류탄이 차 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막을 수 있었지만, 눈길에서 급정지하는 바람에 차가 빙그르르 돌았다.

왼손으로 핸들을 잡고, 오른손은 그가 혹시 차 밖으로 튀어 나갈까 봐 남자를 향해 쭉 뻗었지만, 오만이었다.

나는 재빨리 거둬들인 오른손을 핸들로 옮겼다.

-펑!

차 앞쪽에서 폭발음이 들려왔다. 차는 두 바퀴를 돈 후에야 가까스로 멈춰 섰다.

“허억…… 헉.”

거친 숨소리를 토해내며 고개를 들자, 땀으로 축축한 손바닥이 벌게져 있었다. 하도 힘을 꽉 준 탓이었다.

차가 두 바퀴 만에 멈춘 건 오로지 내 힘 때문만은 아니었던 모양인지, 남자의 한 손 역시 핸들을 붙들고 있었다.

그가 핸들에서 손을 떼며 시선을 보냈다. 괜찮냐? 라는 눈빛이었다.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부아앙.

앞 유리를 보자, 자신들이 던진 수류탄을 피해 저 멀리 달려갔던 사이드카가 되돌아오고 있었다.

남자가 그들을 향해 총구를 겨눴다. 눈을 조준경 가까이 대고, 목표물을 조준한 후.

-타앙!

단 한 발의 총성으로 곧게 달려오던 사이드카가 방향을 잃고 비틀거렸다.

죽은 운전자를 대신해, 옆 좌석에 앉아 있던 놈이 핸들을 제어하려 애썼다.

놈은 혼자서는 우리를 상대하는 것이 무리라고 여겼는지, 그대로 방향을 돌려 도주했다.

다시 한번 조준경에 얼굴을 가져갔던 남자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맞추기엔 이미 너무 멀어졌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종의 뭐라고?”

“아! 그러니까 그게 종의 요정이란 선택지 밖에…… 어?”

직업 선택창이 떠 있던 시스템 창은 어느새 다른 내용으로 바뀌어 있었다.

나는 얼이 빠진 얼굴로 바뀐 내용을 소리 내 읽었다.

“히든 클래스 ‘종의 요정’으로 각성하셨습니다. 혹독한 추위로 뒤덮인 세계에 사랑의 종소리를 울려주세요.”

“사랑의 뭐? 하하, 하하하하.”

남자는 뭐가 그리도 웃긴지 대놓고 폭소를 터트렸다. 배를 부여잡고 허리가 휘도록 처웃는 남자의 얼굴을 짜증 난단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나는 이마를 짚었다.

‘아! 아까 급정거해서 고개 숙였을 때 이마로 찍었나 보다.’

그렇게 난 내 이마의 선택으로 히든 클래스 종의 요정이 되었고.

줄행랑을 치던 사이드카는 이미 저 멀리 내빼 보이지 않았다.

“아하, 하하하…… 아하하하.”

“그만 웃는 게 좋지 않겠어요?”

“아, 그런가?”

“네.”

“싫은데? 하하하하.”

“…….”

허리를 앞으로 숙여 웃던 그가 이제는 목을 뒤로 꺾어서 웃고 있었다. 그만 웃으라고 소리 지르기엔 나도 종의 요정이란 클래스 명이 좀 웃겼다.

XX, 종의 요정이 뭐 하는 직업이야 도대체.

뭐 하는 직업인지는 둘째치고, 이름이 종의 요정이 뭐야. 무슨 마법 소녀야, 뭐야.

“아하하…… 흐아……. 아, 요정? 하하하하……. 요정이구나, 너?”

처웃는 저 조동아리를 찰싹 쳐주고픈 마음을 고이고이 접으며 핸들 위로 손을 올렸다.

안타깝게도 나는 아직 이 남자 없이 홀로 생존할 자신이 없었으니까.

방금도 이 은발 놈 없이 나 혼자인 상황에서 남자 둘이 쫓아온 거였으면…….

그때, 내 손등 위로 남자가 손을 겹쳐왔다.

“됐어. 내가 운전해.”

“됐어요. 제가 할게요.”

“그 손으로?”

“네?”

그가 턱 끝으로 손을 가리켰다. 핸들을 쥔 내 손이 달달달 떨리고 있었다.

“아까 차 급정거시키면서 힘을 많이 써서 그래. 근육이 놀랐겠지. 그런 손으로 운전하는 사람 옆에 타기엔 내가 많이 소중해서.”

언제부터 이렇게 떨고 있던 거지.

나는 말 없이 소매를 당겨 안으로 떨리는 손을 감췄다.

남자가 날 비웃는 표정으로 조수석에서 내렸다.

날은 금방 저물었다. 큰길을 달리던 남자가 속도를 줄여 마을로 진입했다.

불 켜진 곳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마을의 분위기는 매우 을씨년스러웠다.

마을 초입에 차를 세운 남자가 트렁크에서 짐 몇 가지를 챙겼다.

조용히 따라오라는 그의 조언에 따라, 남자의 등을 보며 발소리를 죽여 걸었다.

몇몇 집의 외관을 살피던 그가 한 집을 향해 걸어 들어갔다.

“보기엔 빈집 같지만 들어가 보기 전엔 몰라.”

차에서 내리기 전 그가 한 말을 곱씹자 은근한 긴장감이 몰려들었다.

나는 문을 따는 그의 뒤에 서서, 남자를 엄호하듯 주위를 경계했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약해진 바람 소리가 전부였다.

딸칵, 잠금이 해제된 문고리를 돌리기 전, 그가 나를 돌아보았다.

“내 뒤에서 떨어지지 마.”

“네.”

집 안으로 진입하는 그를 따라, 1층과 2층의 구석구석을 살폈다. 2층까지 꼼꼼히 살피고 나서야 그가 들었던 총을 내려놓았다.

“없는 것 같군. 오늘 밤은 여기서 묵을 거야.”

“불 켜도 돼요?”

“너무 밝게는 말고.”

혹시 빛이 새어 나갈지 모르니 창을 막아야지.

창가로 가 커튼을 열었더니 이미 창엔 종이와 천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꽉 막힌 창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자, 곁으로 남자가 다가왔다.

“밤엔 많은 것들이 약탈을 위해 돌아다니거든.”

무엇 때문에 이렇게까지 창을 막은 건지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한 남자가 설명을 덧붙였다.

알고 있었다. 이 세계의 밤이 무서운 건 추위만이 다가 아니었다.

생존을 위해 다른 이의 생명을 고민 없이 짓밟는 무법자들과 배곯은 흉포한 생물들이 돌아다녔으니까.

나는 차분히 커튼을 닫았다.

“그렇지 않아도 피곤했는데 이미 붙어 있으니 일을 덜어서 좋네요.”

“무서워서 겁에 질릴 줄 알았는데……. 긍정적인 건 마음에 드네.”

남자는 테이블 위에 올려둔 짐을 풀고 있었다. 숙인 고개를 따라 이마에 드리운 앞머리가 살랑거렸다.

나는 살금살금 그의 옆으로 다가갔다.

“다른 건요? 다른 건 마음에 안 드나?”

“피곤하니까 저리 가지?”

“우~”

어차피 당분간은 동행해야 할 사이에 잘 좀 지내보면 좋겠는데.

남자의 얼어붙은 표정은 여전히 냉랭했다. 이러다 자고 일어나면 저놈 사라져 있는 거 아니겠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기대했지만 역시 빈집에서 온수는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찬물 샤워는 너무하잖아, 하루 종일 추위 속에서 떨다가 들어왔는데.

고생스러웠지만 몇 번씩이나 물을 끓여 따뜻한 물로 씻고 나니 정말 집에 들어와 쉬는 느낌이 났다.

매우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머리를 대충 수건으로 말아 욕실을 나오는데, 그가 욕실 바로 앞에서 무릎을 세운 자세로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엄마! XX, 깜짝이야!”

괴한인 줄 알고 놀란 내가 비명을 지르자, 그가 나른히 시선을 들어 올렸다.

“아니, 뭐 해요, 여기서. 할 일 없어요? 왜 사람 놀라게 하고 난리람.”

“도대체 씻는 데 얼마나 걸리나 세고 있었어. 그렇게 오래 씻으면 하루의 얼마를 씻는 데 쓰는 거야? 아깝지 않아?”

남이사 짧게 씻든 씻다 죽든 뭔 상관이람. 뜨끈하고 즐겁게 씻고 나왔더니 웬 시비야?

기가 막혀 도끼눈을 뜨고 바라보자, 일어난 남자는 다가오더니 아직 물기가 가시지 않은 내 볼 위로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아야.”

“비켜.”

어디서 접촉이야?

욕실 앞 복도를 밀고 들어오며 내 몸을 밀치고 지나가는 남자를 향해 미간을 있는 대로 구기자, 내려보는 그의 표정은 ‘같잖은 게 어디서’ 딱 그거였다.

스쳐 지나가는 그에게서 치켜뜬 내 눈초리가 떨어질 줄 몰랐다.

‘어?’

한껏 구겨진 표정으로 바라보는데 남자의 허리춤엔 단검이, 손엔 권총이 들려 있었다.

이거 설마…….

‘욕실에서 씻을 동안 지켜준 건가?’

그래, 씻을 땐 완전히 무방비한 상태니까. 걱정되는 마음에 내가 씻는 내내 여기서…….

“풋.”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온 실소를 듣고, 그가 욕실로 들어가려다 말고 문 앞에서 돌아섰다.

“다 씻었으면 꺼져.”

“…….”

그래, 꺼지기나 하자.

김칫국 그만 들이키자, 나.

나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박박 문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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