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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물에서는 남주를 줍지 마세요 (6)화 (6/108)

6화

“진짜 눈뿐이네.”

차를 타고 한 방향으로 쭉 내달린 지 얼마나 흘렀을까. 남자의 말대로 차창 밖으로 보이는 건 눈뿐이었다.

간혹 사람이 살 만한 집들이 보이긴 했지만, 죄다 빈집들인지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너 여기 있기 전엔 어디서 뭘 하고 있었던 거야.”

“구세군 봉사활동이요.”

“구세군 봉사활동?”

“자선냄비라고. 연말에 종 치면서 빨간 냄비에 기부금 모으는 거 있어요.”

“모르겠는데.”

그럼 네가 모르지 알겠냐, 소설 속 인간이.

우린 서로 다른 세상을 살다 만난 사람들인걸.

“종말을 맞았다고 했는데, 그럼 종말 이전에 당신이 살았던 국가 이름은 뭐예요?”

“에르반 공국. 넌 생긴 게 대륙 출신은 아닌 것 같은데.”

“대한민국이요.”

“처음 듣는군. 일단 한 가지만 확실히 해두자.”

“뭘요?”

“당분간 같이 움직이긴 하겠지만 당분간만이야. 네가 혼자 지낼 능력을 갖추거나 같이 지낼 무리를 구하게 되면 헤어지는 거야.”

“동의해요. 아, 동의하는데 그렇다고 날 길가다가 만나는 아무한테나 버리고 갈 생각은 아니죠? 적어도 떨구려면 정상인한테 떨궈줘요. 아니면 당신 가만 안 둘 거야.”

“유념하지.”

“됐네요, 그럼.”

내 심플한 대답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그가 부드럽게 핸들을 꺾었다.

“근데 대한민국이라……. 대륙 남쪽으로 내려가면 무힘바 같은 원시 부족민 집단을 만날 수 있다던데. 뭐 그런 건가?”

원시 부족민이라.

“허리에 작살 하나 박아줘요?”

“아니. 아닌 거 같군.”

“원시 부족은 무슨…….”

그건 내가 아니라 이 소설의 여주다.

알 수 없는 이유로 빙하기를 맞아 세상에 종말이 온 세계관의 그 소설.

작품소개랑 리뷰만 읽고 결제만 50편 해뒀었는데, 작품소개에 나온 첫 구절이.

「대륙 남쪽의 무힘바 원시 부족 거주지에서 눈을 뜬 여주」

였다.

여주의 본래 신분은 원시 부족민이 아니었지만, 어렸을 때 부족민들과 함께 생활한 덕분에 여주는 대륙 공용어는 못해도 생존력이 끝내줬다.

그런데 지금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이 소설 결말이 다 얼어 죽는 몰살 엔딩이잖아.

“…….”

나는 소설 리뷰 글에서 읽었던 스포를 떠올렸다. 주로 변태 같은 작가에 대한 욕이 태반이었다.

여주 남주가 끌어안고 얼어 죽은 후, 결국 그들이 찾고자 애썼던 ‘최후의 낙원’은 실재하는 것으로 밝혀진다.

그래서 더 작가한테 열이 뻗쳤다고. 충분히 애들 살려서 해피엔딩 만들 수 있게 설정 짜놓고서 뭐 하는 짓이냐고 리뷰한 독자는 열불을 토했다.

‘최후의 낙원.’

생존을 위한 모든 것이 마련된 장소, 거기가 있긴 있다는 말인데…….

하지만 주인공들도 못 찾고 죽은 장소를 내가 어떻게 찾아.

주인공들이 얼마나 생존했다고 했었지. 세 달이라고 했나? 고작 세 달 살고 죽었는데 그 과정이 엄청 파란만장하다고 했다. 그래서 보는 재미가 있었다고.

‘어?’

상념에 빠져 있던 중 갑자기 차가 덜컹거려 운전석을 살폈다. 엔진 소리가 이상했다.

계기판과 기어를 확인해 보니 기어 변속이 잘못된 상태였다.

“클러치 밟아볼래요?”

그 후 수동 기어를 맞게 놓았다.

내가 기어 변속하는 걸 흘깃 본 그가 입을 열었다.

“내 차가 아니라 그래. 놈들이 몰던 차라.”

“네에. 자기 차 말고는 영 엉성한 운전 실력이신가 봐요.”

“운전할 줄 알아?”

“기깔나요.”

그의 입꼬리가 내 능력치를 확인하고는 만족스러운 듯 올라갔다.

“하등 쓸모없는 부류는 아닌 것 같네.”

“운전 실력 보여줘요, 지금? 말만 해요.”

“됐어, 내가 해.”

뭐야, 진짠데.

어쩐지 영 김이 새버려서 차창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다른 질문을 하느라 미처 하지 못했던 질문을 떠올렸다.

“아, 그런데 우리 목적지가 어디예요?”

“…….”

목적지는 최후의 낙원입니다.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라고 말해준다면 좋을 텐데.

“동료들이랑 일반적인 동료 사이로 보이진 않던데, 그쪽 무리로 가는 거예요? 보니까 신참……이라고 불리던데, 신참이 동료들을 그렇게 만들었는데 돌아가도 아무 일 없는 건가…….”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 뒤로 이어질 말은, “당신 괜찮은 거예요?”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해줘서 고마워요.”였다.

꽤 심각한 질문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답을 하는 남자의 표정은 무덤덤했다.

“거기로 안 가. 그리고 동료 아냐.”

그리고 이어지는 말은 없었다.

그도 나처럼 뒤에 삼킨 말이 있는 것 같았지만 묻진 않았다. 내가 묻는다고 답해줄 것 같지도 않고, 묻는다고 나쁜 상황이 좋게 변하는 것도 아니니까.

“그렇구나.”

짤막한 대화를 마무리 지으며 차창에 기댄 채 사이드미러에 내 얼굴을 비춰보았다.

내 얼굴은 여전했다. 눈꼬리가 올라간 게 선해 보이는 인상은 아니었지만 오밀조밀 귀엽고 예쁜 얼굴로.

자소서를 위한 봉사활동에 나가 팔 빠지게 종 흔들고 있던 대한민국의 평범한 22살 난 대학생. 얼굴은 똑같은데 주변 상황은 천지가 개벽한 수준이었다.

“뭘 그렇게 봐?”

“제 얼굴이요. 여전히 예쁘길래요.”

“…….”

“예쁜 얼굴도 세상이 잘 돌아갈 때나 좋지, 폭삭 망한 세상에서 예쁜 게 무슨 쓸모가 있나 싶어서요. 안 그래요?”

남자는 대답 대신 쓱 한번 쳐다보고는 다시 운전에 집중했다.

대답은 네가 하고 싶을 때만 하는구나.

그러거나 말거나 보고 있던 사이드미러를 계속 보는데…….

‘잠깐만.’

설마 내 옆에서 운전 중인 이 남자가……?

자연스럽게 떠오른 생각에 옆으로 고개를 돌리려다 멈췄다.

사이드미러에 내 얼굴 말고 다른 사물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뭐야 저거?’

사람? 오, 사람이다.

사이드미러에 비친 것은 우리가 온 길을 열심히 뒤따르는 사이드카 한 대였다.

“저기요.”

“알았어. 못 생기진 않았어.”

“아니, 그거 말고.”

저 파란 사이드카 아까 그 집 마당에서 봤던 것 아닌가?

언뜻 보기엔 오토바이처럼 보이나 뒷좌석이 두 개 더 달린 사이드카에 남자 둘이 타고 있었다.

“…….”

네 명 중 나머지 둘의 얼굴을 난 보지 못했는데, 영원히 보지 못할 줄 알았던 그 둘의 얼굴을 지금 본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왜냐하면 그 둘의 머리 위로 선명하게.

[감지 완료: 위협 수준 〘최상〙]

이라고 떠 있었으니까.

“그쪽 사이드미러 봐봐요.”

그제야 남자가 사이드미러를 살폈다.

바로 구겨지는 표정을 보아하니 내 예상이 맞은 모양이었다. 남은 두 놈이 우리를 추격하고 있었다.

아니, 죽인 거 아니었냐고.

“제대로 처리하고 온 거 아니었어요?”

“기습한 뒤에 묶어두고 왔어. 풀려났지만.”

“이 사람 이거 아주 애매한 사람일세? 일 처리가 뭐 이리 허술해요.”

“내가 애매하지 않은 사람이었으면 너 모른 척했어.”

“…….”

아주 사실이라 할 말이 없었다.

“뒷좌석 봐봐.”

남자의 말에 뒤를 보니, 뒷좌석엔 소총 두 자루가 시트 위를 방황하고 있었다.

“쏠 줄 알아?”

나는 재빠르게 답을 해줬다.

“아뇨?”

무기화 능력만 있지 자동조준 능력이 있는 건 아니니 총기류는 사용 못 한다.

“…….”

그가 내게 건너오라는 손짓을 했다.

“운전대 잡아.”

조수석에 앉아 소총에 장전된 총알을 확인하는 그를 보며 물었다.

“밟아요?”

“따돌릴 수 있어?”

“그건 얘한테 달렸죠.”

지그시 액셀을 밟았다. 기다렸다는 듯 차가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시동을 걸 땐 그럴싸한 엔진 소리를 들려주었던 차는, 직접 핸들을 잡아보니 완전히 고물이었다.

게다가 눈길이라 이 이상 속도를 올리는 건 자살행위다.

흘깃 사이드미러를 살폈다. 멀리 보이던 추격 차량이 거의 뒤꽁무니에 와 있었다.

옆에 탄 남자가 창밖으로 총과 머리를 내밀었다.

-타다당!

뒤에서 날아든 총성과 함께, 남자가 내밀었던 고개를 급하게 안쪽으로 숙였다.

실제로 처음 들어본 총성은, 너무 커서 귀가 멀어버릴 지경이었다.

“화가 많이 났네.”

다친 건 아니겠지?

나는 운전하며 자꾸만 옆을 흘끔거렸다.

혼잣말을 지껄이는 걸로 봐선 멀쩡한 거겠지?

“내가 신호 주면 차 흔들리게 하지 마. 좌우로 꺾지도 말고.”

맘대로 되냐 그게.

“노력은 해볼게요.”

그가 다시 창문 밖으로 총구를 겨눴다.

“지금.”

-탕!

순간, 차체가 들썩이는 바람에 뒤를 겨눴던 총구가 하늘로 향했다. 거친 도로 위 예기치 못한 돌덩이 때문이었다.

“쉽지가 않군.”

그러나 맞추지 못하는 것은 저쪽도 마찬가지였다.

흔들리는 차에서 움직이는 상대를 맞추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게다가 거리도 가깝지 않고.

상대도 그걸 아는지 속도를 내 점점 거리를 좁혀 오고 있었다. 어느새 우리를 따라잡은 사이드카가 차 오른편을 달렸다.

오른쪽 창문을 통해 보이는 두 놈의 얼굴을 제대로 확인하려는 순간.

“숙여!”

-타타타탕.

남자의 고함 소리에 엉덩이를 아래로 미끄러트렸다.

정수리 위로 날아간 총알들이 내 머리 대신 유리창을 뚫고 지나갔다.

파괴된 유리 파편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엄마아악!!”

본능적으로 엄마를 찾은 후, 다시 몸을 고쳐 앉아 운전을 계속해 나갔다.

또 총알이 날아올지 모르지만, 엉덩이를 쭉 뺀 상태로는 시야가 낮아 운전이 불가능했다.

쿵쿵 뛰는 고동 소리를 느끼며 핸들을 쥐는데.

[동기화 진행 중: 〘99%〙]

[동기화 진행 중: 〘100%〙]

[동기화가 완료되었습니다.]

[직업 선택을 시작합니다.]

차 앞 유리에 직업 선택창이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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