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45 재벌에이스 =========================
언니와 체형이 비슷했던 남주희는 남주연의 옷 방으로 들어가서 언니 옷을 챙겨 입고 화장까지 진하게 했다. 그러자 누가 봐도 그녀를 미성년자로 볼 사람은 없을 듯했다. 물론 그건 남주희 혼자 생각이었지만.
그렇게 집을 나선 남주희는 홍대부터 시작해서 유명한 클럽은 다 돌았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새벽이 훌쩍 넘어 있었고 길치인 그녀는 큰 길에서 택시를 잡아타려고 나섰다가 그 길로 길을 잃었다.
“쳇! 여기가 대체 어디야?”
그렇게 헤매던 그녀는 사람 없는 새벽길에 날치기를 만나 봉변을 당했는데 마침 지나가던 남자가 그녀를 구해주고 날치기 당한 핸드백도 찾아 주었다. 그리고 그 남자는 지금 그녀를 자기 차에 태워서 집까지 데려다 주고 있었다. 남주희는 물끄러미 눈앞에 운전 하고 있는 남자를 쳐다보았다.
‘생긴 건 마음에 드네.’
남자의 잘생긴 얼굴과 건장한 체구가 남주희의 관심을 끈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자기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남자에게 이성적인 관심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 그의 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에 남주희는 바로 앞에 운전 중인 남자에게 서서히 호기심이 일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남주희를 보면 언니와 가장 많이 닮았다고 말했다. 그래서 누구나 그녀를 보면 제일 먼저 그 얘기를 했다.
“남주희와 정말 많이 닮았네요.”
그런데 그녀를 구해 준, 지금은 운전 중인 남자는 그런 얘기를 일체 하지 않았다.
‘혹시 언니를 모르나?’
하지만 대한민국 남자라면 남주연을 모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궁금한 남주희가 오히려 먼저 그 남자에게 물었다.
“저 누구 닮지 않았어요?”
“...........”
그 물음에 남자는 힐끗 백미러로 그녀를 쳐다 보고는 아무 말도 없었다. 모른단 소리였다.
‘진짜 어이없네.’
오히려 그런 남자가 남주희를 빡치게 만들었다. 어떻게 언니를 모를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대 놓고 물었다.
“아저씨. 혹시 남주연 몰라요?”
그러자 남자가 바로 대답했다.
“남주연? 잘 알지.”
“네?”
“아, 아니. 남주연 모르는 사람도 있나.”
남자는 얼버무렸지만 눈치 빠른 남주희는 남자가 언니와 일적으로 아는 사이란 직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 직감은 정확했다.
남주연은 오성 자동차 광고 모델이었고 오성 자동차 임원이었던 최민혁은 수차례 그녀와 만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다른 임원들은 남주연을 보고 침을 질질 흘렸지만 최민혁은 아니었다.
당시 그는 여전히 바빴고 남주연 못지않은 미모의 애인, 민예린도 있었기 때문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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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혁은 남주희가 뒷좌석에서 자기가 누구 닮지 않았냐고 물을 때 벌써 그녀가 누군지 눈치를 챘다. 기억력이 좋은 최민혁이 전에 만난 적 있는 남주연을 모를 리 없었고 그녀와 많이 남은, 이름도 남주연과 비슷한 남주희를 보고 그녀가 남주연의 여동생임은 바로 짐작했다. 하지만 그게 뭐 어쨌단 말인가?
남주연이 세계적인 톱스타 반열에 오른 건 맞지만 최민혁은 그녀 같은 스타일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니 관심도 없었고. 그랬는데 남주희가 자신을 몰라보는 최민혁이 어지간히 답답했던 모양이었다. 아예 대 놓고 남주연이 누군지 물었다. 최민혁은 자기도 모르게 그녀를 잘 안다고 말해 버렸다.
오성 자동차 광고 촬영 때 그녀와 제법 길게 얘기 한 적도 있고 해서 그렇게 말한 것인데 그 때문에 남주희가 눈을 흘겼다. 최민혁은 구렁이 담는 듯 바로 둘러 댔지만 남주희는 의심의 눈길을 거두지 않았다. 하지만 최민혁은 그게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어차피 남주희야 그녀 집 앞에 내려 주기만 하고 끝이고 다시 그녀를 볼 일은 없을 테니까. 하지만 일이 제대로 꼬였다.
“빨리 안 내려?”
최민혁이 뒷좌석에서 팔짱을 끼고 앉은 채 자신을 꼬나보는 남주희에게 인상이란 걸 쓰며 말했다. 최민혁은 빨리 남주희를 내려놓고 집에 가서 쉬고 싶었다. 하지만 남주희는 전혀 내릴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아저씨. 저 알죠?”
“내가 네가 누군지 어떻게 알아.”
“알잖아요. 제 이름은 남주희, 제 언니 이름은 남주연. 아저씨. 솔직히 말해 봐요. 언니가 저 몰래 붙인 보디가드 맞죠?”
“뭐?”
최민혁은 남주희가 드라마나 로맨스 소설을 너무 많이 본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때였다. 하얀색 쉐보레 익스플로러 밴이 떡하니 최민혁의 차 앞에 섰다.
“흥. 직접 물어 보면 알겠네.”
콧방귀를 날리며 남주희가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문 닫기 전 그녀는 최민혁에게 명령조로 말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아저씨도 빨리 내려욧!”
최민혁은 기가 찬 얼굴로 시동을 끈 뒤 차에서 내렸다.
철컹! 촤르르륵!
그러자 밴 안쪽에서 차문이 열리고 덩치 좋게 생긴 여자가 먼저 내렸다. 그리고 잠시 뒤 늘씬한 미녀 한 명이 새벽인데도 선글라스를 낀 체 차에서 내렸다. 그런 그녀에게 남주희가 당차게 걸어갔다.
“언니! 정말 이럴 거야?”
“너.......”
선글라스 낀 늘씬한 미녀의 시선이 남주희의 머리부터 발끝까지를 훑었고 이내 그녀가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벗었다. 그러자 드러난 아름다운 얼굴. 하지만 그 얼굴은 싸늘하게 굳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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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혁은 지금 대한민국 남자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여배우 남주연의 집에 들어와 있었다. 널따른 거실의 폭신한 소파에 지금 최민혁 혼자 앉아 있었다. 한 마디로 바늘 방석에 앉아 있는 느낌이었다.
“하아!”
최민혁의 입에서 탄식이 절로 흘러 나왔다. 불과 10분 전이었다. 남주연의 집 대문 앞에서 한 편의 드라마 촬영이 있었다.
남주연과 그녀의 여동생 남주희 주연의 막장 드라마. 남주희는 뭔가 단단히 오해를 한 듯 남주연을 몰아붙였다.
“......잖아. 내가 그렇게 못 미더웠어? 사람까지 붙이게.”
“뭐? 너 지금 내가 너에게 몰래 사람을 붙였다고 이러는 거야?”
“아니야? 그럼 저 사람은 뭔데?”
남주희의 손짓이 최민혁을 향했고 남주연이 살기등등한 눈으로 그를 쏘아보았다. 최민혁은 서슬퍼런 두 여자의 분위기에 압도당해서 아무 말도 못하고 그녀 뻣뻣히 서 있기만 했다.
“하아. 일단 들어가자. 들어가서 얘기하자.”
남주희와 달리 세상 이목이 민감한 남주연을 밖에서 이럴 게 아니라는 판단을 내린 모양이었다.
“저 그럼 저는 이만......”
최민혁은 눈치껏 내빼려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아저씨. 가긴 어딜가?”
“당신도 따라 들어와욧!”
두 자매에 걸린 최민혁은 꼼짝 못하고 그녀들의 집으로 끌려 들어갔고 지금 이 신세였다. 잠시 뒤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두 여자가 거실에 나타났다. 둘 사이는 그 사이 오해가 풀린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 집 주방에서 덩치 좋은 여자가 마실 것을 들고 나왔다.
아까 밴에서 내릴 때 먼저 내렸던 그 여자였는데 아마도 남주연의 매니저나 코디인 모양이었다. 남주연과 남주희는 최민혁이 차를 마실 때까지 팔짱을 낀 체 가만 있었다. 그 모습이 최민혁에게는 뭐라도 먹인 뒤 잡아먹으려는 암사자들로 비춰졌다.
“너희들도 식기 전에 마셔. 화를 가라앉혀 주는 연잎차야.”
남주연의 코디의 그 말에 최민혁이 피식 웃었다. 이 꼭두새벽에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그가 한 건 그저 위험에 처한 여자 하나를 구해 준 거 밖에 없는 데 말이다.
“웃어요?”
그런데 그게 남주연과 남주희 자매의 심기를 건드린 모양이었다. 남주희가 뾰족한 목소리로 최민혁을 쏘아보며 말했다. 이때 최민혁은 그냥 평소 자신이 하던 대로 두 여자를 상대하기로 했다. 막말로 자신이 무슨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니지 않은가?
“이 새벽에, 누구 때문에 이 연잎차를 마셔야 하는 내가 기가 막혀서 웃었다. 왜?”
최민혁의 그 말에 쬐려보던 남주희가 슬그머니 눈을 옆으로 돌렸다. 사실 그녀를 돕지 않고 그냥 지나쳤다면 최민혁이 여기 와 있을 이유도 없었다. 그걸 알기에 남주희도 양심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것이고.
그때 그 옆의 남주연이 최민혁에게 물었다.
“당신 누구야?”
대뜸 반말을 하는 남주연을 보고 그녀의 코디가 움찔했다.
“주, 주연아.”
“괜찮아. 딱 보면 몰라 언니? 돈 주면 다 해결 될 일이야.”
남주연의 그 말에 최민혁이 눈살을 찌푸렸다. 최민혁도 남주연이 직설적인 성격인 건 알았다. 그녀와 광고 촬영때 한 시간 가까이 사적으로 대화도 나눠 봤으니까. 그때 그녀는 예의없이 이렇게 함부로 말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 사이 무슨 일이라도 있었는지 남주연의 성격이 많이 까칠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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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연은 광고 촬영을 하루 빨리 끝냈고 서둘러 귀국했다. 즉 그녀에게 이제 하루의 휴식 시간이 주어졌단 소리였다. 그녀는 집에 가는대로 씻고 뻗을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동안 모자랐던 잠을 보충할 생각이었고. 그런데 집 앞에서 황당한 일을 목격했다. 그녀의 여동생이 웬 남자와 같이 있었는데 여동생의 몰골이......
남주연은 일단 여동생과 그 남자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갔다. 혹시 근처에 파파라치라도 있다면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될지 몰랐으니까.
“아무도 없어.”
다행히 그녀의 남자 매니저가 집 주위를 샅샅이 살폈지만 파파라치의 흔적은 찾지 못했다. 남주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 쉰 뒤 여동생의 방을 찾아갔다. 그리고 거기서 한판 했다.
“..........뭐? 진짜 아니야?”
“그래. 아니야. 내가 뭐 하러 너한테 사람을 붙여.”
“그럼 저 사람은 뭐야?”
“그걸 왜 나한테 묻니? 그리고 너 어디서 뭘 하다 이제 집에 들어 온 거야?”
“그, 그게........”
남주희는 사실대로 오늘 하루 그녀의 일탈에 대해 언니에게 얘기했고 남주연은 그런 여동생에게 따끔하게 훈계를 했다.
그 뒤 두 사람은 정체불명의 남자를 만나러 거실로 나갔고 남주연은 당연히 색 안경을 끼고 그 남자를 쳐다보았다.
저 남자가 자신의 여동생을 구해 준 건 분명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그 새벽까지 싸돌아다니고 있는 젊은 남자야 뻔했다. 돈 좀 쥐어주면 다시 볼 일 없는 남자였다. 그래도 형식적으로나마 남자가 누군지는 물었다. 그 물음에 남자가 마시던 연잎차를 내려 놓으며 말했다.
“나는........”
그 남자가 자신이 누군지 밝히려 하자 남주연 옆의 남주희도 딴 데를 쳐다보다 다시 최민혁을 쳐다보았다.
“야구 선숩니다.”
“네?”
두 여자가 황당한 얼굴로 최민혁을 쳐다 볼 때 여자 매니저가 끼어들었다.
“혹, 혹시 오성 라이온즈의 최민혁 선수 아니세요?”
덩치 좋은 여자 매니저는 최민혁을 알아 본 모양이었다. 그때 남자 매니저가 거실에 나타났고 그를 본 여자 매니저가 호들갑을 떨었다.
“형식아. 최민혁이야. 최민혁이 여기 왔어.”
“최민혁?”
남자 매니저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여자 매니저의 턱짓에 거실 소파에 앉아 있던 최민혁을 쳐다보았고 기겁하며 외쳤다.
“진짜 최민혁이다.”
두 매니저의 반응에 두 자매는 황당한 얼굴 표정을 지었다. 그 중에서 특히 남주연은 열심히 눈알을 굴리는 게 어떻게 이 난처한 상황을 수습할지 생각 중인 모양이었다.